휴머노이드 경쟁의 병목이 지능이 아니라 사람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주장은 절반만 옳다. 나머지 절반은 그 주장을 펴는 쪽이 아직 대답하지 않은 곳에 있다.
스탠퍼드 로봇공학자이자 무용가 출신 창업자인 케이티 콴(Catie Cuan)은 지금 로봇 산업의 진짜 병목이 모델의 지능이 아니라 사람과의 상호작용 설계라고 말한다. 로봇이 수십억 대로 늘어나면 사람과 로봇 사이에 수조 번의 마주침이 생기고, 그 마주침이 안전하고 읽히고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세운 회사 ART Lab(AI Robot Technology)은 그 문제를 풀겠다며 사람의 반응을 성공 지표로 삼는 모델을 만들고 있다.
진단 자체는 새롭지 않다. 사람과 섞이는 로봇의 판독 가능성(legibility)은 인간-로봇 상호작용 연구가 20년 넘게 붙들어 온 과제다. 새로운 것은 규모 논거다. 로봇이 실험실 밖으로 나와 사무실·병원·호텔·가정에 들어오는 순간 이 오래된 과제가 산업 전체의 제약 조건으로 승격된다는 주장. 이 논증이 실제로 지탱되는지, 어디서 어긋나는지를 하나씩 따져 볼 만하다.
강연의 출발점은 아이폰이다. 지구상에 아이폰 10억 대가 존재하기까지 13년이 걸렸을 뿐이니, 로봇도 곧 수십억 대에 이른다는 것이다.
애플이 누적 판매 10억 대를 발표한 것은 2016년 7월로, 2007년 첫 출시로부터 9년째였다. 실사용 중인 아이폰이 10억 대를 넘겼다고 밝힌 것은 2021년 1월 실적 발표 때이니 이쪽은 약 14년이다. 13년은 판매 누적도 활성 대수도 아니다. 참고로 누적 판매는 2025년에 30억 대를 넘어섰다.
연도 하나가 틀린 것은 사소하다. 문제는 그 유비가 무엇을 같은 것으로 놓는가다. 아이폰은 사실상 단일 규격의 소비재이고, 한 사람이 한 대를 들고 다니며, 교체 주기가 짧다. 로봇은 그 어느 조건도 만족하지 않는다. 국제로봇연맹(IFR, International Federation of Robotics) 집계로 2024년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산업용 로봇은 466만 4천 대다. 같은 해 소비자용 서비스 로봇 판매량은 약 2천만 대인데, 이 숫자의 대부분은 로봇청소기와 잔디깎이다.
세 번째 숫자는 직접 계산한 것이다. 연 2천만 대에서 출발해 매년 11%씩 늘어난다고 두면 누적 판매가 10억 대를 넘는 데 대략 18년이 걸린다. 그러니 "수십억 대"라는 전망 자체는 산술적으로 무리가 아니다. 다만 그 10억 대는 바닥을 밀고 다니는 원반과 잔디밭을 도는 기계다. 강연이 그리는 그림 — 사무실과 병실에서 사람 옆에 서서 표정을 읽고 반응하는 기계 — 와는 다른 모집단이다.
"수십억 대의 로봇"이 참이 되려면 로봇을 가전까지 포함해 넓게 세어야 하고, "수조 번의 상호작용이 판독 가능해야 한다"가 참이 되려면 그 로봇들이 사람과 의미 있게 마주친다고 좁게 봐야 한다. 로봇청소기는 넓은 정의에는 들어가지만 좁은 정의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규모 논거와 상호작용 논거가 같은 모집단 위에 서 있지 않다는 뜻이다. 두 주장을 각각 따로 옹호할 수는 있어도, 하나를 다른 하나의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
강연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대목은 구글에서의 일화다. 사무실을 돌며 테이블을 닦고 쓰레기를 분류하던 로봇들에게 관절 움직임을 소리로 매핑하는 기능을 붙였더니, 몇 달간 무관심하던 직원들이 감동해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하드웨어도 과업도 그대로였고 바뀐 것은 그 기계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 사람에게 의미를 갖느냐뿐이었다.
이 이야기는 실재한다. 논문으로 남아 있고(arXiv 2306.02632, 이후 ACM Transactions on Human-Robot Interaction 게재), 저자는 콴 본인과 앨리슨 오카무라를 포함한 네 명이다. 다만 논문이 보고한 결과는 강연의 서술보다 좁다.
첫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음악이 켜진 로봇을 더 안전하고, 생명감 있고, 지능적이고, 인간에 가깝고, 호감이 간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효과가 움직임-소리 연동 때문인지 그냥 음악 때문인지를 가리려고 설계한 두 번째 실험 — 같은 음악을 움직임에 연동한 경우와 무작위로 튼 경우를 영상으로 비교 — 에서 유의하게 갈린 항목은 지각된 지능 하나였다. 나머지 네 항목은 음악 자체의 효과와 구분되지 않았다. 현장 운용 기록은 약 200시간이며, 지나가던 사람들의 반응은 통제된 측정이 아니라 사례 기록으로 실렸다. 강연이 언급한 "로봇 200대"도 실제 함대 규모와 다르다. Everyday Robots가 사내에 굴린 로봇은 100여 대였고, 200이라는 숫자에 가까운 것은 직원 수다.
그리고 이 일화에는 강연이 말하지 않은 결말이 있다. 그 함대는 2023년 1월 알파벳이 1만 2천 명 감원을 발표하면서 해체됐다. Everyday Robots는 정리 대상이 된 몇 안 되는 프로젝트 중 하나였고, 기술과 인력 일부만 구글 리서치와 딥마인드 쪽으로 흡수됐다. 사람을 울린 심포니는 그 조직을 살리지 못했다.
이 결말은 "상호작용 설계가 중요하다"는 명제의 반증이 아니다. 오히려 그 명제가 성립하는 조건을 드러낸다. 감동은 사용자 수용을 끌어올리지만 예산 심사에서는 계량되지 않는다. 사내 직원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은 손익계산서의 어느 줄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상호작용 품질이 실제로 산업의 병목이 되려면, 그것이 채택률·사고율·재구매율처럼 회계로 번역되는 지표에 연결돼야 한다. 강연은 그 번역 경로를 제시하지 않는다. 이것이 병목론의 가장 약한 고리다.
휴머노이드 회의론을 펴면서 강연은 로드니 브룩스를 끌어온다. 사람을 닮을수록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좌우 대칭에 인간 비율을 가진 기계를 보면 거울뉴런이 작동해 사람처럼 움직이리라 기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대와 실제의 간극이 곧 실망이 된다.
브룩스가 오랫동안 그런 취지를 말해 온 것은 맞다. 그러나 그가 2025년 9월에 발표해 업계를 시끄럽게 만든 글의 핵심 논거는 다른 층위에 있다. 「오늘의 휴머노이드는 손재주를 배우지 못한다」에서 그는 지금의 학습 방식 — 사람이 손으로 일하는 영상을 대량으로 먹여 조작을 학습시키는 접근 — 이 촉각과 힘 감각 데이터를 빠뜨렸기 때문에 실패한다고 주장했다. 사람 손의 정교함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정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수십 년 안에 인간 수준 손재주에 도달한다는 전망을 "순전한 공상"이라고 불렀다.
기대치 논변은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전제 위에서 작동한다. 사람 모양이 아니었다면 만족했을 성능인데 사람 모양이라 실망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브룩스의 2025년 논변은 그 전제를 친다. 촉각 없이는 애초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후자가 옳다면 전자는 아직 문제가 아니다. 같은 사람을 인용하면서 그가 지금 밀고 있는 더 강한 주장을 비껴간 것은, 그 주장이 상호작용 병목론과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병목이 촉각 센서라면 병목은 상호작용이 아니다.
물론 브룩스의 진단에도 반론이 있다. 휴머노이드가 사람의 모든 일을 못 한다는 사실에서 아무 일도 못 한다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은 비약이라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다만 그 반론은 "쓸모가 완벽에 앞선다"는 실용론이지, 상호작용 설계가 우선이라는 주장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강연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무게가 실린 대목은 아버지가 입원했을 때의 기억이다. 생명을 지탱하는 기계들이 삑삑거리며 둘러싸고 있었고, 그 비례와 색과 존재감이 환자를 압도했으며, 무엇보다 무슨 일을 하는 기계인지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도출되는 요구를 정확히 읽을 필요가 있다. 환자가 결핍을 느낀 것은 표현력이 아니라 설명이었다. 저 기계가 지금 무엇을 재고 있고, 방금 난 소리가 경고인지 정상인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다. 그런데 강연이 제시하는 해법 계열 — 움직임에 음악을 입혀 기계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 — 은 이 결핍을 직접 겨냥하지 않는다.
Music Mode 실험에서 통계적으로 살아남은 항목이 하필 "지각된 지능"이었다는 점은 곱씹을 만하다. 사람들은 소리가 움직임과 연동됐을 때 그 기계를 더 똑똑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 기계가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더 잘 알게 됐다는 증거는 논문에 없다. 정동적 호감과 인지적 투명성이 갈라지는 자리이고, 병실의 아버지에게 필요했던 쪽은 후자였다. 표현적 설계는 앞의 것을 올리기 쉽고 뒤의 것을 올리기는 어렵다. 앞의 것만 올라간 기계는 오히려 위험하다. 실제보다 유능하다고 믿게 만들기 때문이다. 강연이 끝까지 가지 않은 곳이 여기다.
ART Lab이 만들고 있다는 모델은 VLI(vision language interaction), 즉 시각-언어-상호작용 모델이라 불린다. 무엇을 할지의 동기를 환경 속 사람에게서 가져오고, 실행한 행동의 성패를 사람의 반응으로 채점한다는 구상이다. 사람의 정동이 긍정 쪽으로 움직였는가, 부정 쪽으로 움직였는가. 강연은 이런 종류의 모델이 처음이라고 말한다.
암묵적인 인간 피드백에서 과제를 학습하는 틀은 2021년 Conference on Robot Learning에 발표된 Cui 등의 연구가 이미 제시했고, 정동에 따라 로봇 행동을 학습시키는 접근은 2022년 Churamani 등이 Frontiers in Robotics and AI에 실었다. 최근으로 오면 행동과 보상을 한 모델에서 번갈아 생성하는 VLAC(2025), 대규모 실로봇 데이터로 학습한 범용 보상 모델 RoboReward(2026) 같은 작업들이 이어진다. "이런 종류의 첫 모델"이라는 표현은 방어되지 않는다. 방어할 수 있는 것은 특정한 조합 — 사람 정동의 변화량을 과업 성공의 정의 자체로 삼는다는 선택 — 정도다.
그리고 그 선택이야말로 어려운 대목이다. 사람의 기분 변화를 보상으로 두면 최적화 대상은 "일을 잘하는 로봇"이 아니라 "사람 기분을 좋게 만드는 로봇"이 된다. 대규모 언어모델에서 인간 선호 학습이 아첨(sycophancy)을 낳은 것과 구조가 같다. 다만 물리적 신체가 붙으면 결과가 다르다.
안전을 이유로 요청을 거절하는 로봇, 위험 구역에서 사람을 밀어내는 로봇, 낙상 위험 때문에 노인의 이동을 제지하는 로봇은 모두 상대의 정동을 떨어뜨린다. 정동 변화량을 성공 지표로 삼는 학습기는 이런 행동에 체계적으로 벌점을 준다. 이 문제는 가중치를 조금 조정해 해결되는 종류가 아니다. 무엇을 성공으로 셀 것인가를 정하는 순간 규범이 결정되고, 그 규범을 누가 정하는지가 남는다. 개발사가 정하면 제품 정책이 되고, 사용자가 정하면 개인화가 되며, 규제가 정하면 인증 항목이 된다. 정동을 지표로 올리자는 제안은 그 결정을 어디로 보낼지에 대한 제안이기도 한데, 강연은 그 대목을 다루지 않는다.
강연은 휴머노이드 일변도에서 벗어난 예로 물범 로봇 파로(PARO)를 든다. 2010년대 중반에 유행했던, 아프거나 외로운 사람에게 동반자가 되어 주던 부드러운 기계라는 설명이다. 연대가 상당히 어긋난다.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의 시바타 다카노리가 치료용 동물형 로봇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93년이고, 1세대 시제품은 1998년에 나왔다. 8세대 모델이 2005년 일본에서 상용화됐으며, 200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클래스 II 생체피드백 의료기기로 분류했다. 30여 개국에서 쓰였고 누적 4천 대 규모가 보급됐다. 2010년대 중반은 유행의 시기가 아니라 이미 성숙 국면이었다.
이 정정은 트집이 아니다. 연대가 바뀌면 논거의 방향이 바뀌기 때문이다. 비휴머노이드 정서 로봇이 최근의 미개척 대안이라면 "왜 아무도 안 하는가"를 물으면 된다. 30년 된 노선이라면 물어야 할 질문은 정반대다. 30년 동안 무엇이 이 노선의 확산을 막았는가.
파로는 대당 수백만 원대의 의료기기로 팔렸다. 일본 일부 지자체가 개호보험 적용 대상으로 지정하고 미국에서 생체피드백 치료 수가가 인정되는 경로가 열렸지만, 그 경로 밖에서는 가격을 정당화할 근거가 약했다. 치료 효과에 대한 임상 근거도 긍정적 보고와 신중한 체계적 문헌고찰이 엇갈린다. 요컨대 비휴머노이드 정서 로봇을 막은 것은 업계의 좁은 상상력이 아니라 지불자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시야를 넓히자"는 제안이 힘을 가지려면 이 지점을 통과해야 한다. 강연은 통과하지 않고 상상력의 문제로 돌린다.
인간과 도구의 관계를 논하며 강연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를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 파베르라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고 인용한다. 두 겹으로 틀렸다.
호모 사피엔스 대신 호모 파베르라 부르자는 문장은 앙리 베르그송이 『창조적 진화』(1907)에서 지능을 인공물, 특히 도구를 만드는 도구를 제작하는 능력으로 규정하며 쓴 것이다. "도구를 만드는 동물"이라는 표현은 벤저민 프랭클린에게 돌려지며,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인용해 널리 퍼졌다. 라틴어 문구 자체의 최초 용례는 기원전 3세기 로마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견해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이 계보와 닿는 대목을 찾자면 손을 "도구들의 도구"라 부른 구절과 테크네 개념 정도다.
출처가 틀린 것보다 흥미로운 것은 그 개념이 실제로 무엇을 주장하는가다. 베르그송의 호모 파베르는 인간 지능을 물질을 가공하는 실용적 능력으로 좁게 규정한 개념이다. 그가 이 말을 만든 것은 인간을 기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능이 유동하는 실재를 붙잡기에는 근본적으로 부적합하다는 자기 철학의 논거로 쓰기 위해서였다. 즉 호모 파베르는 도구적 유용성 프레임을 상대화하려는 강연의 취지와 같은 편이 아니라 오히려 그 프레임을 정식화한 개념에 가깝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넓게 보자는 대목에서 하필 지능을 도구 제작으로 환원한 개념을 끌어온 셈이다.
같은 절에서 언급되는 스탠퍼드 연구 사례도 층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인간 심장을 3D 프린팅하는 데 25년이 걸릴 것이라는 언급은 마크 스카일러-스콧 교수의 개인적 전망으로 소개되는데, 그의 연구실이 미국 보건고등연구계획국(ARPA-H)의 HEART 프로그램으로 수행 중인 목표는 5년 내에 바이오프린팅한 심장을 살아 있는 돼지에 이식하는 것이다. 두 숫자는 대상이 달라 모순은 아니지만, 25년은 자금이 붙은 일정이 아니라 사람 이식까지 내다본 사적 어림이다.
상호작용이 병목이라는 주장을 가장 잘 뒷받침하는 사례는 강연이 든 어느 예도 아니다. 지금 미국 가정에 실제로 들어가고 있는 1X의 NEO다.
NEO는 2만 달러 또는 월 499달러에 판매되며, 1X는 2026년 5월 캘리포니아 헤이워드에 전용 공장을 열고 생산에 들어갔다. 문제는 자율성이다. 로봇이 모르는 일을 만나면 1X의 원격 조작자가 접속해 대신 수행한다. 회사는 이를 감추지 않고 데이터 확보 전략으로 설명한다. 집 안에서 사람이 로봇을 조종하며 쌓은 기록이 다음 세대 자율성의 학습 데이터가 된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체험 취재에서는 시연 세션의 가사 과제가 전부 원격 조작으로 수행됐다고 보도됐다. 진입 금지 구역 설정, 얼굴 흐리기, 미국 내 조작자 배치 같은 보호 장치는 회사가 밝힌 사양이며 아직 독립적 감사를 거치지 않았다. 실제 고객 인도가 어느 규모로 이뤄졌는지도 공개 검증된 자료를 찾지 못했다.
여기서 사용자가 알아야 하는 것은 목록으로 적힌다. 지금 이 기계는 자율로 움직이는가 사람이 조종하는가, 카메라는 켜져 있는가, 영상은 어디로 가는가, 지금 접속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것이 2026년의 판독 가능성 문제다. 움직임을 음악으로 옮기거나 안무를 입히는 작업은 이 목록의 어느 항목도 해결하지 않는다. 강연의 진단 — 병목은 지능이 아니라 상호작용 — 은 정확했는데, 정작 그 상호작용의 내용은 미학이 아니라 고지·동의·감사(監査)로 판명되는 중이다. 표현적 로봇공학이 이 자리를 채우려면 상태 신호의 설계 언어로 자신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한국으로 옮기면 그림이 한 번 더 달라진다. IFR 집계에서 한국의 로봇밀도는 2023년 기준 노동자 1만 명당 1,012대로 세계 1위다. 2위 싱가포르가 770대, 3위 중국이 470대다. 그런데 이 로봇들의 대부분은 사람과 마주치지 않는다. 안전 펜스 안, 자동차와 전자 공장의 셀 안에 있다. 로봇밀도 1위는 판독 가능성 문제와 거의 무관한 지표다.
사람과 실제로 섞이는 로봇은 다른 쪽에 있다. 식당 서빙 로봇, 배송 로봇, 방역·안내 로봇이다. 그리고 한국은 이 영역에서 판독 가능성을 미학이 아니라 법정 인증으로 다루기 시작한 드문 사례다.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법 제40조의2에 근거한 실외이동로봇 운행안전인증이 그것이다. 최대 속도 15km/h 이하, 최대 질량 500kg 이하 로봇이 대상이고, 질량과 폭 제한, 운행 속도, 겉모양을 포함한 16개 항목을 심사하며, 통과하면 보도와 횡단보도를 보행자와 같은 자격으로 다닐 수 있다. 2년 주기 정기점검도 붙는다.
심사 항목에 "겉모양"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로봇이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이미 규제 대상으로 편입돼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만 규제가 다루는 것은 표현의 풍부함이 아니라 최소한의 식별 가능성 — 이것이 로봇이라는 사실,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얼마나 큰지 — 이다. 표현적 로봇공학이 산업으로 자리 잡는 경로는 아마 예술 프로젝트가 아니라 이 인증 목록에 항목을 하나 더 얹는 방식일 것이다. 상태등의 색과 점멸 패턴, 경고음의 주파수, 접근 시 감속 프로파일 같은 것들. 아름다움이 아니라 표준으로 들어간다.
가정용 휴머노이드를 둘러싼 논쟁의 축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지금 누가 보고 있는가"로 이동한다. 원격 조작 비율과 영상 처리 방식이 제품 리뷰의 표준 항목이 된다.
반증 조건 — 1X 또는 경쟁사가 2027년 안에 원격 조작 비중을 정기 공개 지표로 삼고 제3자 감사를 통과하는데도 논쟁의 초점이 여전히 과업 수행 능력에 머물러 있다면 틀린 예측이다.
사람의 정동을 보상 신호로 쓰는 연구는 논문 수로는 계속 늘지만, 상업용 안전 인증 경로에는 24개월 안에 진입하지 못한다. 인증은 여전히 물리적 안전과 기능 안전을 다룬다.
반증 조건 — 생활지원 로봇 안전규격(ISO 13482) 계열 개정이나 국내 실외이동로봇 인증 항목에 상호작용 품질·정동 관련 조항이 2028년까지 추가되면 틀린 예측이다.
비휴머노이드 정서 로봇의 재부상은 소비자 시장이 아니라 지불자가 있는 곳 — 요양 수가, 건강보험 코드, 지자체 돌봄 예산 — 에서만 일어난다.
반증 조건 — 의료·복지 수가에 기대지 않고 순수 소비자 판매만으로 연 10만 대 이상 팔리는 정서형 비휴머노이드가 등장하면 틀린 예측이다.
표현적 움직임과 소리는 독립 제품이 아니라 안전 신호의 부속으로 표준화된다. 상태등·경고음·감속 프로파일 규격 안에 흡수되는 형태다.
반증 조건 — 표현성 자체를 판매 명분으로 삼는 로봇 제품군이 24개월 안에 유의미한 매출 규모를 형성하면 틀린 예측이다.
덧붙일 것이 하나 있다. 이 진단을 내놓는 사람은 상호작용 모델을 만드는 회사의 창업자이자 대표다. 휴머노이드 경쟁이 헛다리를 짚었고 진짜 병목은 상호작용이라는 서술은, 자기 회사가 서 있는 자리를 시장의 중심으로 옮기는 서술이기도 하다. 이것은 인신공격이 아니라 강조점과 생략의 구조를 설명하는 말이다. 브룩스의 촉각 논변이 축소되고, Everyday Robots 해체가 언급되지 않고, 파로가 실패한 이유 대신 상상력의 협소함이 원인으로 지목되는 배치는 그 위치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진단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판독 가능성이 실제로 문제라는 점은 지금 미국 거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증명하고 있다. 다만 그 문제의 해법이 무용과 음악 쪽에 있는지, 고지와 감사와 인증 쪽에 있는지는 아직 열려 있고, 지금까지의 증거는 후자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