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과 버튼이 사라진 제품에서 기능은 어디에 사는가. FactSet의 수석 AI 엔지니어가 1년간 스킬 라이브러리를 굴리며 내놓은 답은 명료하다 — 스킬이 곧 기능이다. 그런데 이 등식이 성립하려면 기능이 지금까지 팔아온 성질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제품은 표면이었다. 화면, 버튼, 폼, 대시보드로 짜인 표면을 사용자가 직접 항해했다. 에이전트가 앞단에 서는 제품에서는 그 표면이 사라진다. 사용자는 에이전트에게 말하고, 에이전트가 제품 안을 대신 항해한다. 그러면 기능은 어디로 가는가. FactSet의 수석 AI 엔지니어 요겐드라 미라제(Yogendra Miraje)가 AI Engineer 컨퍼런스에서 내놓은 답은 세 층의 분업이었다.
이 분업에 따르면 주식 리서치와 자산관리 같은 금융 업무는 더 이상 버튼과 드롭다운의 모음이 아니다. 그것은 스킬이다. 미라제의 발표 제목 그대로, 스킬은 새로운 기능이다. 그리고 기능이 마크다운 파일 한 장으로 축소되는 순간 파급이 따라온다. 제품을 잘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기능을 출하할 수 있고, 엔지니어의 일은 기능을 만드는 것에서 그 기능이 잘 돌아가는 하네스를 만드는 것으로 옮겨간다.
발표는 실제로 최소 하네스를 어디까지 줄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스킬 레지스트리, 시스템 프롬프트, 파일 읽기 툴 — 이 셋이면 스킬 지원이 성립한다. 레지스트리는 스킬의 이름·설명·경로를 담은 목록에 불과하고, 시스템 프롬프트에는 그 세 필드만 이어 붙인다. 본문은 넣지 않는다. 에이전트가 목록을 훑어 필요한 스킬만 골라 본문을 읽는다. Anthropic이 점진적 공개(progressive disclosure)라 부르는 그 구조다.
여기까지는 산업 표준의 요약에 가깝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다음, 이 등식이 청구서를 내미는 자리들이다.
기능은 지금까지 결정성을 전제로 팔렸다. 버튼을 누르면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약속이 기능의 상품성이었다. 마크다운으로 쓴 절차는 그 약속을 하지 못한다. 같은 파일을 같은 요청에 물려도 결과는 분포로 나온다.
이 격차는 이제 측정된다. 2026년 초 공개된 SkillsBench는 8개 도메인 87개 과제에 사람이 큐레이션한 스킬을 짝지어 붙이고, 결정론적 검증기로 통과·실패만 판정했다. 18개 모델·하네스 조합에서 평균 통과율은 스킬이 없을 때 33.9퍼센트, 있을 때 50.5퍼센트였다. 16.6퍼센트포인트의 개선은 작지 않다. 그러나 같은 문장이 이렇게도 읽힌다 — 사람이 손으로 다듬은 절차서를 붙여도 절반은 실패한다. 조합별 개선폭은 4.1에서 25.7퍼센트포인트까지 벌어졌다.
미라제 본인이 발표에서 든 사례가 이 성질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모델을 새 버전으로 올렸을 뿐인데 에이전트가 스킬을 따르지 않기 시작했다. 스킬 파일은 한 줄도 바뀌지 않았다. 원인을 파고들어 보니 새 모델이 스킬의 앞부분에 강하게 반응하는 반면, 결정적인 지시는 파일 끝에 놓여 있었다. 발표의 결론은 평가(eval)였다. 평가 없는 스킬은 희망사항에 불과하고, 스킬은 문서가 아니라 모델 버전에 고정된 계약이다.
스킬을 "모델에 버전 고정된 계약"이라 부르는 순간 "스킬은 기능"이라는 등식은 절반이 지워진다. 기능은 사용자와 맺는 계약이고, 그 계약의 상대는 바뀌지 않는다. 반면 스킬의 계약 상대는 모델이며, 모델은 벤더가 몇 달 주기로 교체한다. 사용자에게 판 약속의 유효성이 공급자의 릴리스 노트에 종속되는 상품은, 기능이라기보다 기능을 하겠다는 의향서에 가깝다. 미라제가 코드 관행의 차용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정성이 사라진 자리를 시맨틱 버저닝과 회귀 테스트로 메우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지시가 무시된 사건에 대한 처방으로 평가는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평가는 회귀를 발견하게 해줄 뿐, 왜 자연어 지시가 모델 교체에 취약한지를 바꾸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Anthropic 엔지니어 배리 장(Barry Zhang)과 마헤시 무라그(Mahesh Murag)가 같은 시기 AI Engineering Code Summit에서 내놓은 진단이 더 깊게 들어간다. 슬라이드 서식을 맞추는 파이썬 스크립트는 100번 호출해도 동일하게 실행되지만, 같은 일을 지시하는 자연어 문장은 매번 새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변식은 산문이 아니라 스크립트로 내려야 한다.
이 기준으로 보면 최소 하네스의 구성 순서가 뒤바뀌어 있다. 발표에서 배시나 코드 실행 샌드박스는 "스크립트를 돌린다면 필요한" 선택 항목으로 놓였다. 그런데 모델 교체에 견디는 스킬을 원한다면 실행 환경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다. 파일 읽기만 있는 하네스는 스킬을 프롬프트 조각으로만 소비할 수 있고, 프롬프트 조각은 정확히 미라제가 겪은 방식으로 깨진다. SkillsBench가 함께 보고한 결과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 모듈 세 개 이하의 좁은 스킬이 방대한 번들보다 성적이 좋았고, 에이전트가 스스로 만든 스킬은 이득이 없거나 오히려 성능을 떨어뜨렸다. 스킬의 가치는 문서량이 아니라 절차의 압축률에서 나온다.
발표에서 가장 실전적인 대목은 설명(description)의 역할이었다. 미라제는 보고서를 HTML로 만드는 스킬과 PDF로 만드는 스킬을 나란히 등록해 두고, PDF 쪽 설명에 "사용자가 PDF 보고서를 요청할 때만 쓴다"고 적었다. 실행 시연에서 에이전트는 HTML 쪽만 골랐다. 설명문의 한 단어가 분기를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설명은 스킬의 자기소개가 아니라 라우팅 신호이며, 스킬 자체를 묘사하지 말고 사용자의 요청 표현에 맞춰 써야 한다. 서로 충분히 구별되어야 하고, 낡으면 호출되지 않는다.
맞는 지침이다. 다만 이 지침은 비용을 한쪽으로 밀어 놓는다. 설명을 사용자 요청 표현에 맞춘다는 것은, 작성자가 사용자가 쓸 어휘 분포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발표는 앞서 "제품을 잘 아는 사람 누구나 스킬을 만들 수 있다"고 했고, 뒤이어 비기술 사용자에게 스킬 목록을 외우게 하지 않으려 라우팅을 전부 모델에 맡긴다고 했다. 그러면 남는 구조는 이렇다 — 어휘 예측 능력이 가장 낮은 사람이 라우팅 신호를 쓰고, 그 신호가 실패해도 사용자는 자기 요청이 어느 스킬에 닿았는지 알 방법이 없다. 실패는 조용하다. 잘못된 스킬이 호출된 결과물은 그럴듯한 산문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스킬 작성의 민주화와 평가·거버넌스의 필수화는 발표 안에서 나란히 놓였지만 실제로는 같은 사건의 앞뒤다. 마크다운 한 장으로 기능을 출하할 권한을 도메인 전문가에게 넘기면, 그 출하물의 회귀 테스트·소유권·폐기 절차를 누군가는 대신 져야 한다. 미라제가 마지막에 "엔터프라이즈 규모에서 거버넌스는 협상 불가"라고 말한 것은 규제 산업의 관행이 아니라 민주화의 대가를 계상한 결과로 읽힌다. 실제로 SkillsBench는 자가 생성 스킬의 효용이 사실상 0이라고 보고했다. 절차 지식의 품질은 여전히 사람의 큐레이션에 달려 있고, 큐레이션은 인건비다.
발표는 규모별 처방을 제시했다. 스킬이 몇 개일 때는 시스템 프롬프트에 그냥 밀어 넣어도 되고, 10개를 넘으면 임베딩 유사도 검색이나 작은 모델로 후보를 추려 넣을 시점이며, 수백 개에 이르면 계층 구조와 메타데이터 필터와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무 감각으로는 납득이 가지만 숫자가 무엇을 재는지 따져보면 어긋난다. 컨텍스트 비용으로 보면 10개는 임계값이 될 수 없다. Anthropic 공식 스킬 17개를 실측한 분석에서 스킬 하나의 발견 비용은 중위값 약 80토큰, 가장 무거운 것이 약 235토큰이었다. 100개를 모두 나열해도 1만 토큰 미만이다. 20만 토큰급 컨텍스트에서 이 정도는 임계가 아니다.
실제로 무너지는 것은 용량이 아니라 변별력이다. 올해 공개된 SkillCoach 연구는 의미가 겹치는 방해 스킬을 하나씩 늘려가며 각 모델이 선택 신뢰도를 잃는 경계를 측정했다. 결과는 모델별로 7배 이상 벌어졌다.
세는 단위를 스킬 개수로 잡으면 처방은 조직마다 틀린다. 같은 30개 라이브러리가 어떤 모델에서는 이미 저하 구간이고 다른 모델에서는 여유롭다. 반대로 서로 겹치지 않는 스킬 60개는 겹치는 20개보다 안전할 수 있다. "10개를 넘으면 검색으로 추려라"는 규칙은 기술 상수가 아니라 FactSet이 자기 모델·자기 도메인에서 관측한 경험값이며, 남이 쓸 때는 개수가 아니라 의미적 근접도를 재야 한다. 그리고 이 숫자가 모델 교체마다 다시 움직인다는 점에서, 라우팅 임계값 역시 스킬 본문과 똑같이 모델에 버전 고정된 계약이다.
처방 자체에도 상속되는 문제가 있다. 임베딩 유사도 검색으로 후보를 추리면 라우팅 실패가 검색 실패에 종속된다. 스킬 라이브러리를 200개에서 2000개까지 늘려가며 검색 방식을 비교한 최근 연구(Group of Skills)는 두 극단이 모두 무너진다고 보고했다 — 전량 노출은 비용이 치솟고, 벡터 검색은 검색 노이즈에 지배된다. 구조를 넣은 계층적 인덱싱이 그 사이에서 안정적이었다. 발표가 수백 개 구간에서 "계층과 메타데이터 필터"를 요구한 것은 이 실증과 방향이 같다. 다만 순서가 다르다. 임베딩 검색은 계층으로 가는 계단이 아니라, 계층 없이 검색만 얹었을 때 라우팅 오류의 원인을 관측 불가능한 곳으로 옮기는 우회로일 수 있다.
발표 후반부는 스킬 라이브러리 거버넌스를 다섯 축으로 정리한다. 승인(이 스킬이 존재해야 하는가, 아니면 기존 스킬로 들어가야 하는가), 소유권(누가 유지보수하는가), 경계(어떤 툴에 접근할 수 있는가), 라이프사이클(시맨틱 버저닝, 폐기 경고, 변경 이력), 일관성(주기적 감사와 검증). 미라제는 이 다섯이 기업 티가 나는 말로 들릴 수 있지만 각각 핵심 질문에 답하며, 수십 년간 검증된 코드 관행을 그대로 빌려올 수 있다고 말한다. 승인은 PR 리뷰에 대응하고, 소유권은 코드 오너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대응 관계 자체는 자연스럽다. 그런데 PR 리뷰 비유는 스킬의 위험 구조를 절반만 담는다. PR은 사내 코드베이스에 들어오는 변경이고, 스킬은 사내 절차서인 동시에 실행 가능한 페이로드를 품고 모델 권한으로 도는 패키지다. 올해 나온 스킬 공급망 보안 연구는 악성 스킬 270개와 정상 스킬 270개로 벤치마크를 구성하면서 실제 사고에서 유래한 공격 유형 13가지를 분류했다. HTTP·DNS를 통한 데이터 유출, 환경변수에서 자격증명 탈취, 임의 코드 실행, 권한 상승, 인젝션 페이로드 삽입, 정상 스킬과 이름이 유사한 타이포스쿼팅, 네임스페이스 충돌을 이용한 의존성 혼동, 인코딩으로 감춘 페이로드까지 목록은 패키지 매니저의 위협 모형과 거의 겹친다.
발표에서 툴 허용 목록(allow-list)과 접근 제어는 30초짜리 항목으로 지나갔다. 그러나 스킬이 기능이라면 그 기능은 사내 개발자만 쓰는 것이 아니다. 오픈 표준이 되면서 스킬은 외부에서 받아 쓰는 물건이 되었고, 커뮤니티 디렉터리에는 이미 방대한 목록이 쌓였다. 이 구도에서 승인 게이트의 참조 모형은 PR 리뷰가 아니라 서명·출처 증명·권한 매니페스트를 갖춘 패키지 레지스트리다. 미라제가 승인·소유권·라이프사이클을 코드 관행에서 가져온 것은 정확했지만, 가져와야 할 관행이 하나 더 남아 있다. 그리고 금융이나 전력처럼 감사 추적이 요구되는 산업에서는 이 층이 규제 대응 산출물이 된다.
발표의 발화 위치를 보면 강조점의 배치가 이해된다. FactSet은 매수·매도 양측 금융기관에 데이터와 분석을 파는 회사다. 2024년 말 기준 약 8250개 고객사, 21만 명대 사용자를 두고 있고, 2023년 말 대화형 엔진 Mercury를 내놓은 뒤 2025년 초 투자은행용 Pitch Creator까지 에이전트 제품군을 쌓아 올렸다. 이런 회사에서 도메인 지식은 엔지니어링 조직이 아니라 리서치·자문 인력에게 있다. 기능을 마크다운으로 내릴 수 있다면 병목이 풀리는 쪽은 명확하다. 동시에 산출물은 감사 가능해야 하고, 그래서 거버넌스가 처방이 아니라 전제로 등장한다. 발표가 "엔터프라이즈 규모"를 반복하는 것은 수식이 아니라 제약 조건의 진술이다.
같은 이유로 발표의 가장 대담한 주장 — 엔지니어의 일이 기능 출하에서 하네스 출하로 옮겨간다 — 에는 유효기간이 붙는다. 미라제 자신이 그 논리를 이미 한 번 적용했다. 작년 그는 에이전트에게 넘길 절차서를 블루프린트라 부르는 자체 규격으로 관리하고 있었고, Anthropic이 스킬을 공개하자 자체 표준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며 폐기했다. 표준 유지 비용보다 벤더 표준 편승이 싸다는 판단이다.
그 판단은 하네스에도 적용된다. 스킬은 2025년 10월 Anthropic 제품 기능으로 출발해 같은 해 12월 오픈 표준으로 공개됐고, 반년 만에 OpenAI Codex CLI, Gemini CLI, GitHub Copilot, Cursor를 포함한 수십 개 클라이언트가 같은 SKILL.md 규격을 받았다. 발견·활성화·실행의 3단 로딩은 이제 벤더가 무료로 제공하는 층이다. 자체 하네스가 계속 값을 갖는 부분은 에이전트 루프 자체가 아니라 라우팅 정책, 권한 경계, 감사 로그처럼 도메인과 규제에 붙은 층이다. 하네스를 통째로 자기 자산으로 여기면, 블루프린트를 폐기했던 판단을 몇 년 뒤 하네스에 대해 다시 하게 된다.
아래 다섯 항목은 현재 확인되는 상태에서만 근거를 가져왔고, 각각 틀렸다고 판정할 조건을 붙였다.
발표의 마지막 슬라이드는 네 문장으로 요약됐다. 스킬은 에이전트 제품의 기능이다. 엔지니어의 역할은 기능 출하에서 하네스 출하로 옮겨간다. 라우팅은 규모가 커지면 조율되는 것이 아니라 메커니즘 자체가 바뀐다. 엔터프라이즈 규모에서 스킬 라이브러리 거버넌스는 협상 불가다.
세 번째 문장이 가장 오래 남는다. 튜닝과 메커니즘 교체를 구분하는 것은 실무자만 하는 구분이고, 이 구분을 놓친 팀은 임베딩 차원을 바꾸거나 설명문을 다시 쓰면서 몇 달을 보낸다. 다만 같은 구분을 스킬 본문에도 적용해야 한다. 모델이 바뀌면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계약이 다시 쓰인다. 미라제가 겪은 사건은 스킬 하나가 실패한 이야기가 아니라, 기능이라는 단어가 확률 분포 위에 놓였을 때 무엇이 함께 옮겨오는지를 보여준 사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