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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삶

붙드는 손이 누구의 것인가

칼빈의 성도의 견인 교리는 끝까지 버티라는 요구로 읽히는 순간 위로가 아니라 시험이 된다. 이 교리의 문장에서 주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주어가 바뀐 자리에서 무엇이 무너졌는지를 따라간다.

성도의 견인 교리를 처음 배운 사람의 반응은 대개 두 갈래로 갈린다. 한쪽은 안심한다.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삶은 어느 정도 느슨해도 된다고 결론 내린다. 다른 한쪽은 조용히 겁을 먹는다. 끝까지 남는 자가 참된 신자라면, 오늘 무너지고 있는 자신은 애초에 그 명단에 없었던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두 반응은 정반대로 보이지만 같은 오독에서 나온다. 둘 다 이 교리를 신자의 상태에 관한 진술로 읽었다. 그렇게 읽으면 남는 일은 하나뿐이다. 자기 상태를 점검해 자기가 그 상태에 해당하는지 판정하는 것. 안심은 판정을 서둘러 끝낸 결과이고, 공포는 판정이 끝나지 않는 결과다.

그런데 이 교리를 문서로 확정한 문장들의 주어는 신자가 아니다. 하나님이다. 주어가 어디서 바뀌었는지를 따라가면, 지금 이 교리가 왜 위로 대신 부담으로 전달되는지가 드러난다.

'견인'이라는 번역이 주어를 옮겨 놓았다

한국어 '견인(堅忍)'은 굳게 참고 견딘다는 뜻이다. 참는 주체는 문자 그대로 성도다. '성도의 견인'이라는 네 글자를 처음 듣는 사람이 "성도가 끝까지 참아 낸다"로 이해하는 것은 오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독해다. 라틴어 표현 perseverantia sanctorum의 소유격도 같은 모호함을 안고 있다.

문제는 이 표제 아래에 실제로 적힌 내용이 그 독해와 어긋난다는 데 있다. 1618년부터 1619년까지 열린 도르트 총회는 다섯째 교리를 이 표제로 붙였는데, 그 조항들이 서술하는 동작의 주체는 일관되게 하나님이다. 신자가 자기 힘에 맡겨진다면 은혜 안에 남아 있지 못한다는 것이 셋째 조항의 전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비로 확증하고 능력으로 끝까지 보존한다는 것이 그 조항의 결론이다. 여섯째 조항은 더 분명하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심각하게 넘어지는 동안에도 성령을 완전히 거두지 않으며, 양자의 은혜를 잃고 의롭다 하심의 지위에서 떨어지는 지점까지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표제와 내용이 어긋나는 지점

표제는 '성도의 견인'이지만 조항의 동사는 하나님이 보존한다는 쪽이다. 영어권 개혁주의 문헌에서 이 항목을 perseverance 대신 preservation으로 바꿔 부르자는 제안이 꾸준히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강조점의 문제이며, 강조점이 이동하면 교리의 목회적 효과가 반대로 뒤집힌다.

주어를 신자로 읽으면 이 교리는 예측이 된다. 참된 신자는 끝까지 갈 것이다, 라는 예측. 그리고 예측은 검증을 요구한다. 자신이 끝까지 갈 사람인지 확인하려면 끝까지 가 봐야 하므로, 검증은 죽을 때까지 종결되지 않는다. 주어를 하나님으로 읽으면 같은 문장이 약속이 된다. 검증할 대상이 자기 지속력이 아니라 상대의 성실성으로 옮겨 가기 때문이다.

튤립은 1905년에 만들어졌다

다섯 항목을 TULIP이라는 머리글자로 외우는 방식은 칼빈에게서 온 것이 아니고, 도르트 총회에서 온 것도 아니다. 이 약어의 가장 이른 흔적은 1905년 뉴저지 뉴어크의 장로교 모임에서 클리랜드 보이드 맥아피가 한 강연이다. 그 강연을 들은 윌리엄 베일이 1913년 잡지 『The Outlook』 104권에 회고하면서 활자로 남았고, 1932년 로레인 보에트너의 예정론 저작을 통해 널리 퍼졌다. 맥아피가 쓴 U는 오늘 통용되는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이 아니라 보편적 주권(universal sovereignty)이었다.

연도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목록이 만들어진 순서다. 도르트의 다섯 항목은 체계 전체의 요약이 아니라 17세기 초 아르미니우스 논쟁에서 쟁점이 된 다섯 지점에 대한 국지적 응답이었다. 논쟁 상대가 특정한 다섯 곳을 찔렀기 때문에 다섯 곳에 답한 문서이지, 그 다섯 개가 개혁주의 신학의 목차인 적은 없다. 리처드 뮐러가 2009년 강연에서 지적한 대로, 칼빈 자신은 이 튤립을 심은 적이 없다.

여기서 실질적인 손실이 발생한다. 목록의 다섯째 항목만 떼어 내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명제로 압축하면, 도르트가 그 항목 앞뒤에 붙여 둔 조건절이 전부 떨어져 나간다. 떨어져 나간 것들이 하필 위로의 재료다. 신자가 여전히 죄와 씨름한다는 첫째·둘째 조항, 하나님의 은총의 감각을 한동안 잃을 수 있다는 다섯째 조항, 회복된 확신이 방종을 낳지 않고 오히려 조심스러운 걸음을 낳는다는 후반 조항. 명제만 남기면 남는 것은 결론뿐이고, 결론만으로는 무너진 사람이 서 있을 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자기 점검으로는 닫히지 않는 회로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예정을 다루는 대목을 셋째 권 21장부터 24장에 배치했다. 신앙의 정의, 회개, 칭의, 그리스도인의 삶, 기도를 모두 지나온 뒤에야 선택을 논한다. 편집상의 우연이 아니다. 예정은 신앙의 입구가 아니라 이미 신앙 안에 있는 사람이 자기 신앙의 근거를 되짚어 볼 때 도달하는 자리라는 판단이 배치에 들어 있다.

그 24장에서 칼빈은 확신을 구하는 사람에게 자기 내면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라고 지시한다. 그리스도가 선택의 거울이며, 자기가 선택되었는지를 알려면 하나님의 감춰진 작정을 뚫고 들어가려 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시는 경건한 권면이 아니라 논리적 처방이다. 확신을 자기 점검으로 조달하려는 시도는 원리적으로 닫히지 않는 회로이기 때문이다.

자기 점검으로 확신을 조달하는 경로

  1. 참된 신자는 끝까지 견딘다.
  2. 자신이 그 신자인지 알려면 자신이 견디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3. 견딤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 확인이 완료되지 않는다.
  4. 확신이 약해질 때마다 2단계로 돌아간다.

결과 — 무너진 날일수록 판정이 불리해진다. 위로가 필요한 시점에 위로가 철회되는 구조.

그리스도를 근거로 확신을 조달하는 경로

  1. 붙드는 쪽은 하나님이고 붙들리는 쪽이 신자다.
  2. 하나님이 성실한지를 확인할 자리는 자기 내면이 아니라 그리스도다.
  3. 그리스도는 이미 주어졌고 지금 상태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4. 확신이 약해지면 같은 자리를 다시 본다.

결과 — 무너진 날에도 근거의 위치가 그대로다. 상태가 나쁠 때 오히려 유일하게 남는 근거가 된다.

칼빈이 신앙의 정의를 다루면서 신자는 자기 불신앙과 끊임없이 다툰다고 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의심을 신앙의 반대가 아니라 신앙이 실제로 겪는 조건으로 서술한다. 약함과 씨름하면서도 신앙을 향해 밀고 나가는 사람은 이미 상당 부분 이긴 것이라는 그의 문장은, 승리의 지표를 감정의 안정에서 방향의 유지로 옮겨 놓는다.

이 교리가 사람을 베었던 자리

그러나 이 교리가 실제로 사람을 상하게 한 역사가 있다는 사실도 같이 놓아야 한다. 위로가 되게 하겠다는 목적으로 그 역사를 지우면 위로 자체가 신뢰를 잃는다.

칼빈은 셋째 권 2장에서 일시적 신앙(fides temporalis)을 논한다. 결국 떨어져 나가는 사람도 참된 신앙과 외형상 구별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가질 수 있다는 서술이다. 히브리서 6장과 씨 뿌리는 비유를 해석하기 위한 주해 작업이었지만, 이 서술이 확신 문제와 결합되면 파괴적으로 작동한다. 내 신앙이 그 일시적인 종류일 가능성을 배제할 방법이 자기 점검 안에는 없기 때문이다.

칼빈 이후에 이 위험은 커졌다. 테오도르 베자의 예정 도표는 작정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오는 구조로 선택을 도식화했고, 후대 청교도 목회에서는 확신을 회심의 열매로 역추적하는 실천적 삼단논법이 확산됐다. 삼단논법의 형태는 이렇다. 참된 신자에게는 이런 열매가 있다, 자신에게 이런 열매가 있다, 따라서 자신은 참된 신자다. 대전제와 결론은 견고하지만 소전제가 매일 흔들린다. 확신의 무게가 소전제에 실린 것이 문제였다.

이 흐름을 칼빈으로부터의 이탈로 볼지 정당한 전개로 볼지는 학계에서 결론이 나지 않았다. R. T. 켄들은 1979년 옥스퍼드에서 완성한 연구(1981년 단행본 출간)에서 청교도 신학이 칼빈의 신앙 이해에서 이탈해 사실상 행위로 확신을 조달하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폴 헬름은 1982년 저작에서 그 독해가 칼빈과 후대 개혁주의자 양쪽을 왜곡한 것이라고 반박했고, 뮐러를 포함한 후속 연구는 대체로 헬름 쪽 손을 들었다.

논쟁의 승패와 무관하게 남는 사실

양쪽 모두가 전제하는 것이 하나 있다. 확신을 내면의 열매 점검으로 조달하는 목회 관행이 실제로 광범위하게 존재했다는 것이다. 켄들은 그것을 칼빈으로부터의 이탈로 보고 헬름은 정당한 발전으로 보지만, 그 관행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다투지 않는다. 이 교리를 배운 사람이 겁을 먹는 것은 개인의 예민함이 아니라 4백 년간 축적된 전달 방식의 결과다.

신앙고백이 명문으로 허용한 실패

흥미로운 것은 위로의 재료가 다른 데가 아니라 바로 그 신앙고백 문서들 안에 이미 명문으로 들어 있다는 점이다. 대개 다섯 항목 요약본에서 잘려 나간 조항들이다.

1646년에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장은 견인을 다루면서, 셋째 항에서 신자가 사탄과 세상의 유혹과 자기 안에 남은 부패 때문에 심각한 죄에 빠질 수 있고 한동안 그 상태에 머물 수 있다고 인정한다. 견인 교리를 다루는 바로 그 장이 심각한 실족의 가능성을 명시한다. 실족은 이 교리의 반례가 아니라 이 교리가 예상하고 있는 사태라는 뜻이다.

18장 셋째 항은 더 직접적이다. 오류가 없는 확신은 신앙의 본질에 속하지 않으며, 참된 신자도 그 확신에 이르기까지 오래 기다리며 여러 어려움과 싸울 수 있다고 적혀 있다. 확신이 없는 상태가 신앙이 없는 상태와 같지 않다는 것을 신앙고백이 스스로 못 박아 둔 것이다. 도르트 다섯째 교리 다섯째 조항도 같은 방향에서, 신자가 심각한 죄로 양심을 상하게 하고 한동안 하나님의 은총의 감각을 잃을 수 있다고 서술한다.

여기서 실질적인 귀결이 나온다. 신앙의 유무를 감정으로 재는 습관이 이 문서들에 의해 정면으로 차단된다. 확신의 감각이 사라진 기간은 진단의 근거가 아니라 이 교리가 이미 자리를 마련해 둔 구간이다.

화형장으로 보낸 편지

이 교리가 실제로 어떤 상황에서 쓰였는지를 보면 용도가 분명해진다. 칼빈은 이 교리를 서재에서만 다룬 사람이 아니다.

1538~1541년
제네바에서 추방되어 스트라스부르에 머문다. 3년 뒤 자신을 내보낸 도시로 돌아간다.
1540년 8월
스트라스부르에서 이델레트 드 뷔르와 결혼한다. 아나뱁티스트였던 첫 남편을 병으로 잃고 두 아이를 데리고 피난해 온 과부였다.
1542년
아들 야크가 조산으로 태어나 한 달 남짓 만에 죽는다. 이델레트도 출산으로 생명이 위태로웠다.
1544년
딸이 태어나 며칠 만에 죽는다. 이후 또 한 아이를 사산한다. 살아남은 자녀는 없었다.
1549년
3년간 병으로 쇠약해진 이델레트가 세상을 떠난다. 결혼 생활 9년째였다. 제네바에는 자녀를 잃은 것이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1552~1553년
프랑스로 돌아간 로잔 유학생 다섯 명이 리옹에서 체포된다. 파리로 이송되어 여러 감옥을 거치고, 1553년 3월 리옹으로 되돌려 보내진다.
1553년 5월 16일
마르시알 알바, 피에르 나비에르, 베르나르 세갱, 샤를 파브르, 피에르 에스크리뱅이 리옹에서 화형당한다. 처형장으로 가면서 시편을 노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칼빈은 처형을 앞둔 이 다섯 명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냈다.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신학생들이었지만 편지는 프랑스어로 썼다. 그가 그들에게 쓴 내용의 골자는, 세상을 떠나는 것이 우연에 몸을 맡기는 일이 아니며 그들이 하나님의 자유로운 양자 됨을 확신한 채 자기 상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주목할 것은 이 편지가 하지 않은 일이다. 편지는 그들이 살아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개입해 형 집행을 막을 것이라고 약속하지도 않았다. 실제로 다섯 명 모두 죽었다. 견인 교리가 그 자리에서 수행한 기능은 결과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바뀌지 않을 때 그들이 무엇을 붙들고 서 있을지를 지정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 교리의 원래 용도에 가깝다. 조건이 나은 시절에 만들어진 이론이 아니라, 붙잡을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 위해 벼려진 언어였다.

이 교리가 약속하지 않는 것

용도를 좁히면 위로의 강도가 오히려 올라간다. 이 교리를 실제 위로로 쓰려면 그것이 약속하지 않은 것을 먼저 덜어 내야 한다.

번영이나 치유의 확신과 이 교리를 섞으면 두 번 손해가 난다. 첫째, 약속하지 않은 것을 약속으로 받았기 때문에 상황이 나빠질 때 교리가 거짓말한 것처럼 느껴진다. 둘째, 그 실망 때문에 정작 교리가 실제로 약속한 것까지 함께 버려진다.

남는 것

덜어 낸 뒤 남는 것은 좁지만 단단하다. 네 가지로 정리된다.

실패가 최종 판정이 아니다. 견인을 다루는 장이 실족을 명문으로 예상하고 있으므로, 오늘의 무너짐은 소속의 취소가 아니라 이 교리가 이미 다루기로 한 사태에 해당한다. 도르트 일곱째 조항은 그 넘어짐 안에서 하나님이 중생의 씨를 소멸하지 않도록 지키고, 말씀과 성령으로 확실하게 회개로 되돌린다고 서술한다.

붙드는 손이 자기 손이 아니다. 여기서 힘의 방향이 뒤집힌다. 자기 손아귀의 힘이 관건이라면 지친 날에 확신이 함께 지친다. 붙드는 쪽이 하나님이라면 지친 것은 붙들린 쪽의 상태이고, 결속의 강도와는 다른 항목이 된다.

견딤이 업적이 아니라 선물이므로 약함이 결격 사유가 아니다. 견인이 하나님의 보존 행위라면 신자가 실제로 견디는 사태는 그 행위의 결과다. 결과를 자기 자격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교리는 겸손을 강제하지만, 같은 이유로 약한 사람을 배제하지 않는다.

확신의 조달처가 자기 내면 밖에 있다. 칼빈이 확신을 그리스도에게서 찾으라고 지시한 것은 근거를 관측 가능한 곳으로 옮기는 조치다. 자기 열매를 세는 대신 이미 주어진 약속·말씀·성례를 보는 방식이며, 상태가 나쁠 때도 위치가 변하지 않는 근거를 쓰는 방식이다.

1563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첫 문답으로 삶과 죽음의 유일한 위로를 묻고, 그 답을 신자가 자기 자신에게 속하지 않고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소유의 진술로 시작한 것도 같은 구조다. 위로의 근거를 상태가 아니라 소유 관계에 둔다. 소유 관계는 소유물의 컨디션에 따라 변경되지 않는다.

잘 배웠는지를 가르는 지점

이 교리를 제대로 전달받았는지는 감정이 아니라 시선의 방향으로 판별된다. 견인을 배운 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었다면 주어가 신자로 옮겨진 판본을 받은 것이다. 무너진 날에 볼 곳이 자기 밖에 하나 생겼다면 문서에 적힌 판본을 받은 것이다.

차이는 미묘해 보이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앞쪽 판본에서는 상태가 나쁠수록 확신이 줄어들고, 뒤쪽 판본에서는 상태가 나쁠수록 그 근거가 유일하게 남는다. 4백 년 전 리옹의 감옥으로 들어간 편지가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은 뒤쪽 판본이었기 때문이다. 앞쪽 판본으로는 화형을 앞둔 사람에게 쓸 문장이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