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 책임의 배치
안목은 빌릴 수 있고 판단은 넘길 수 없다는 분업론은, 성립하려면 조용히 세 가지를 전제해야 한다. 애플 지도 사태의 실제 인사 기록, 자율주행 사망사고의 기소 결과, 붕괴한 개발 생산성 실험, 그리고 16개월 미뤄진 규제 일정이 그 세 전제를 차례로 시험한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반복되는 구분이 하나 있다. 안목(taste)은 근거가 다 갖춰지기 전에 무엇이 더 나은지 알아보는 감각이고, 판단(judgment)은 그중 하나를 골라 자기 이름을 걸고 결과를 감당하는 행위라는 구분이다. 구글에서 14년간 크롬 개발자 경험을 이끌고 구글 클라우드 AI 디렉터로 에이전트 개발 플랫폼 출시를 담당한 애디 오스마니(Addy Osmani)가 공개 글에서 정리한 형태가 널리 인용된다. 안목은 남에게서 빌리고 모방하고 도구를 통해 학습할 수 있지만, 판단은 그렇게 이전되지 않는다. 결과에 걸 이름이 에이전트에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이 구분은 위안을 준다. 생성 비용이 무너지고 코드와 문안과 도안이 무한정 쏟아지는 국면에서, 인간에게 남는 영역을 한 단어로 지목해 주기 때문이다. 실무 감각과도 맞는다. 테스트가 부족한 것을 알면서 승인한 병합 요청, 사용자와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고 내보낸 화면은 실제로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다.
다만 이 구분이 성립하려면 명시되지 않은 조건이 셋 필요하다. 첫째, 책임은 개인이 지니는 속성이어서 한 사람이 이름을 걸면 그 자리에 붙는다. 둘째, 이름을 건 사람은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실제로 있다. 셋째, 그 사람은 자기 예상과 실제 결과를 견주어 보면서 판단을 다듬을 수 있다. 판단을 훈련하는 방법으로 흔히 권해지는 것 — 결정 전에 예상 결과를 적어 두고 나중에 대조하라 — 은 셋째 조건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세 조건은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각각을 실제 사례와 데이터에 대보면 세 조건 모두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배치의 문제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능력은 개인이 기를 수 있지만 배치는 조직과 제도가 정한다. 이 차이가 이 글의 본체다.
첫째 전제를 검사하기에 가장 자주 동원되는 사례가 2012년 애플 지도다. 애플은 iOS 6에서 구글 지도를 걷어내고 자체 지도를 내보냈다. 확대해도 무너지지 않는 벡터 렌더링과 정돈된 타이포그래피는 분명한 시각적 안목이었으나, 경로와 위치 데이터는 그 수준이 아니었다. 그해 9월 팀 쿡(Tim Cook)은 애플 웹사이트에 1인칭 서한을 올려 기대에 못 미쳤음을 인정하고 대체 지도 앱을 쓰라고 안내했다. 개인이 이름을 걸어 책임을 흡수한 장면으로 널리 인용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같은 사건의 인사 기록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지도 부문을 실무에서 이끌던 리처드 윌리엄슨(Richard Williamson)은 해임됐다. iOS 소프트웨어 총괄로서 지도를 관장하던 스콧 포스톨(Scott Forstall)은 그 사과 서한에 공동 서명하기를 거부했고 — 아이폰 4 안테나 문제 때처럼 사과 없이 가도 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고 전해진다 — 10월 29일 애플은 그의 퇴사를 발표했다. 서한에 쿡의 이름만 남은 것은 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나선 결과가 아니라, 누가 서명할 것인지를 두고 조직이 벌인 배분의 결과다. 서명을 거부한 사람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은 것이 아니라 자리에서 밀려났다.
이름을 거는 행위는 개인의 미덕이 아니라 절차였다. 서명자를 지정하고, 거부한 사람을 교체하고, 실무 책임자를 먼저 정리하는 일련의 인사 조치가 그 절차의 내용이다. 판단이 이전 불가능한 것이라면, 그 이전 불가능성을 유지시키는 것은 개인의 결심이 아니라 이런 조치들이다.
덧붙이면, 쿡 본인은 2026년 들어 이 사건을 스티브 잡스에게서 회사를 넘겨받은 뒤 저지른 첫 번째 큰 실수로 회고하며 제품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명한 사람이 14년 뒤에도 그 결정을 계속 지니고 있다는 점은 분업론이 옳게 짚은 대목이다. 다만 그가 그것을 지니게 된 경위는 자발적 선택이 아니었다.
둘째 전제 — 이름을 건 사람이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다 — 는 자동화된 시스템에서 가장 자주 깨진다. 2018년 3월 18일 애리조나주 템피에서 우버의 자율주행 시험차량이 자전거를 끌고 도로를 건너던 일레인 허츠버그(Elaine Herzberg)를 치어 숨지게 했다. 완전 자율주행 차량이 낸 첫 보행자 사망 사고였다.
이후 형사 절차의 귀결이 요점이다. 차량에 앉아 있던 안전 운전자 라파엘라 바스케스(Rafaela Vasquez)는 2020년 과실치사로 기소됐고, 2023년 7월 위험행위 혐의를 인정해 3년 보호관찰을 선고받았다. 반면 우버는 형사 기소되지 않았다.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는 사고의 주된 원인을 운전자가 도로를 주시하지 않은 데서 찾았다. 변호인은 2인 1조 배치를 없앤 회사 결정을 지적하며 책임이 주정부와 회사와 피고에게 나뉘어 있다고 주장했으나, 형사책임은 한 사람에게만 붙었다.
연구자 매들린 클레어 엘리시(Madeleine Clare Elish)는 2019년 논문에서 이 구조를 도덕적 크럼플 존(moral crumple zone)이라 명명했다. 자동차의 크럼플 존이 충격을 흡수해 탑승자를 보호하듯, 복잡한 자동화 시스템에서는 시스템 가장 가까이 있는 인간이 도덕적·법적 책임을 흡수해 시스템의 온전함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통제는 여러 행위자에게 분산돼 있는데 책임 개념은 여전히 개인을 향해 있고, 그 어긋남이 최일선 조작자에게 몰린다.
여기서 분업론의 문장 하나가 두 가지로 읽힌다. "결국 인간이 남는다"는 말은 판단하는 인간이 남는다는 뜻일 수도, 책임을 흡수할 인간이 남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 두 경우를 가르는 것은 그 사람의 안목이 아니라 권한이다. 개입할 시간, 시스템 상태를 읽을 정보, 거부해도 불이익이 없는 지위 — 이 셋이 없는 자리에 이름만 놓이면 남는 것은 판단이 아니라 흡수다.
제도 설계도 이 함정을 피하지 못한다. 벤 그린(Ben Green)은 정부 알고리즘에 인간 감독을 요구하는 정책 41건을 검토해, 이 정책들이 사람이 실제로 감독을 수행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한 번도 검증하지 않은 채 서 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감독 조항은 결함 있는 알고리즘의 도입을 오히려 정당화하고, 공급자와 기관이 책임에서 비켜설 통로를 만든다. 그린의 처방은 개인 감독에서 기관 감독으로 축을 옮기는 것 — 알고리즘 도입 자체를 문서로 정당화하게 하고, 감독이 실제로 기능한다는 실증을 요구하는 것 — 이다.
셋째 전제는 훈련법의 형태로 유통된다.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무슨 결과를 예상했는지 적어 두고, 실제 결과에 가까이 머물면서 예상이 어긋난 지점을 확인하라는 것이다. 이 훈련이 성립하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라는 비교 대상이 있어야 한다. 개발 생산성 측정은 지금 그 비교 대상을 잃는 중이다.
비영리 연구기관 METR은 2025년 2월부터 6월까지, 자기 저장소를 평균 5년 다뤄 온 숙련 오픈소스 개발자 16명에게 실제 과제 246건을 맡기고 각 과제를 AI 허용·금지로 무작위 배정했다. 착수 전 개발자들은 AI가 소요 시간을 24% 줄여 줄 것으로 예상했고, 실험이 끝난 뒤에도 20% 빨라졌다고 답했다. 실측치는 반대였다. 과제 소요 시간이 19% 늘었다(신뢰구간 +2%~+39%).
주목할 대목은 후속 실험이다. METR은 2025년 8월 참가자를 57명(원 참가자 10명 + 신규 47명), 저장소 143곳, 과제 800건 이상으로 늘려 같은 설계를 다시 돌렸고, 2026년 2월 24일 그 데이터가 현재 생산성 효과의 신뢰할 만한 신호가 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유가 실험 설계의 실수가 아니라 도구 확산 그 자체다.
대조군이 사라지는 방식
업무의 절반을 AI 없이 하라는 조건 때문에 참여 자체를 거절하는 개발자가 늘었다. 참여한 사람들도 과제를 골라서 제출했다 — 설문에서 30~50%가 AI 없이 하고 싶지 않은 과제는 아예 제출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에이전트를 여러 개 동시에 돌리며 대기 중 다른 일을 하는 참가자들에게는 과제별 소요 시간 자체가 잴 수 없는 값이 됐다. 한 참가자는 AI 금지로 배정된 과제를 하나도 완료하지 않았다.
결과 추정치는 원 참가자 −18%(신뢰구간 −38%~+9%), 신규 참가자 −4%(−15%~+9%)로 속도 향상 쪽을 가리키지만 구간이 0을 크게 걸친다. METR은 이 값이 하한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서도, 과제 수준 무작위화 설계 자체를 바꾸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붕괴는 개인의 게으름이 아니다. 비교 대상이 소멸하면 예상과 결과를 견주는 훈련은 개인의 성실성과 무관하게 불가능해진다. 실험실에서 무작위 배정으로도 반사실을 확보하지 못하는 조건이라면, 마감에 쫓기는 실무자가 "AI 없이 했다면"을 재구성할 방법은 더욱 없다. 판단을 기르는 표준 처방은 지금 그 처방이 요구하는 재료를 구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권해지고 있다.
분업론은 논의를 앞당기기 위해 반대편에 관대한 전제를 하나 깐다. 에이전트가 안목을 갖출 수 있다고 치고, 그다음에 무엇이 남는지 묻자는 것이다. 논증 전략으로는 효율적이지만, 그 관대한 전제도 지금 상태를 확인하지 않으면 논의의 무게중심을 잘못 놓는다.
모델이 모델의 출력을 채점하는 방식(LLM-as-a-judge)은 2023년 정착했다. 리안민 정(Lianmin Zheng) 연구진은 GPT-4가 인간 평가자와 80% 넘게 일치하며 이는 인간끼리의 일치율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고했고, 이 결과가 평가 자동화를 주류로 끌어올렸다. 이후 축적된 것은 그 일치가 어디서 무너지는지에 관한 목록이다.
같은 논문이 이미 위치 편향(제시 순서에 따라 앞쪽을 고르는 경향)과 장황함 편향(긴 답을 선호하는 경향)을 함께 보고했다. 이후 연구는 자기선호 편향을 정식화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 원인이다. 모델은 자기가 쓴 글이라서가 아니라 퍼플렉서티가 낮은 글 — 즉 자기에게 익숙한 글 — 을 인간 평가자보다 후하게 매긴다. 자기 출력을 알아보는 능력이 높을수록 이 편향도 강해진다. 그렇다면 에이전트가 획득한 것은 품질 식별이라기보다 친숙도 추정에 가깝다. 널리 인용되는 안목의 정의 — 인간이 만든 최고의 결과물에 폭넓게 노출되면서 형성되는 감각 — 와 표면적으로 겹치지만, 노출이 곧 선호로 굳는다는 점에서 방향이 반대다. 안목이 좁은 피드의 반복 소비로는 자라지 않는다는 진단은 그대로 옳고, 그 진단이 겨냥한 실패 유형이 지금 평가 모델에서 관측되고 있다.
표준 방어책 — 여러 모델을 묶어 앙상블하고, 제시 순서를 뒤집고, 심판 간 일치율을 보고하는 것 — 은 심판들 사이의 분산은 줄이지만 심판 집단이 공유하는 계통 편향은 건드리지 못한다. 2026년 발표된 평가들은 어떤 심판 모델도 벤치마크 전반에서 고르게 신뢰할 만하지 않으며, 까다로운 편향 검사에서는 최전선 모델도 오류율이 50%를 넘는다고 보고한다. 안목이 위임 가능하다는 전제는 조건부로만 참이다.
용어 자체도 두 뜻으로 굴러다닌다. 하나는 심미적 식별 — 무엇이 아름답고 완성도가 높은지 알아보는 감각이다. 다른 하나는 적합성 판단 — 무엇을 만들어야 하고 무엇을 죽여야 하는지 정하는 능력이다. 뒤쪽은 우선순위 설정, 거절, 성공 기준 정의, 작은 실험 실행, 나쁜 아이디어의 빠른 종료 같은 관리 기술의 다른 이름이다. 두 뜻이 한 단어에 묶여 있으면 심미적 식별의 사례로 논증을 열고 조직 관리의 결론으로 닫는 이동이 눈에 띄지 않는다.
실무에서 자주 채택되는 정의는 미첼 하시모토(Mitchell Hashimoto)의 것이다. 객관적 지표가 아직 없는 영역에서 높은 수준의 질적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라는 규정이다. 이 정의는 명료하지만 시한부다. 안목을 지표의 부재로 정의하면, 지표가 생기는 순간 그 영역은 안목이 아니라 벤치마크가 된다. 오스마니 자신이 이 함의를 인정한다. 안목은 알파이며 모델이 사례와 선호 데이터를 먹는 만큼 감가한다는 것이다. 그의 대응은 안목을 더 꽉 쥐는 것이 아니라 경계선을 한 단계씩 위로 옮기는 것 — 과제를 수행하는 자리에서 가르치고 체계화하고 시점을 정하고 결과를 소유하는 자리로 이동하는 것 — 이다.
이 대응은 일관적이지만, 이동의 종착지가 결국 결과를 소유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앞의 두 절로 되돌아간다. 결과를 소유한다는 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권한과 절차의 문제다. 개인이 아무리 경계선을 위로 옮겨도, 서명자를 지정하는 절차와 개입 권한이 함께 옮겨 오지 않으면 도착한 자리는 크럼플 존이다.
생성 비용이 떨어져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걸러내는 능력이 중요해진다는 명제는 논리적으로 매끄럽다. 산업 데이터가 보여 주는 것은 다른 그림이다. 필터가 강해진 것이 아니라 필터를 통과하는 양이 늘었다.
코드 변경 이력을 분석하는 깃클리어(GitClear)는 2023년부터 2026년까지 6억 2,300만 건의 변경을 여덟 개 품질 신호로 추적했다. 재사용을 나타내는 파일 간 함수 호출은 2022년 대비 35% 줄었고, 리팩터링 성격의 코드 이동은 70%, 오래된 코드에 대한 유지보수는 74% 감소했다. 같은 기간 커밋 내 복사·붙여넣기는 41%, 다섯 줄 이상 중복 블록은 81%, 오류를 덮어 버리는 구문은 47%, 2주 내 재작성되는 코드는 15% 늘었다.
구글이 주관하는 DORA 연례 조사도 방향이 같다. 2024년 보고서는 AI 도입이 25% 늘 때 개인 생산성·업무 몰입·직무 만족과 문서 품질은 개선되는 반면, 배포 처리량은 1.5%, 배포 안정성은 7.2% 낮아지는 것으로 추정했다. 보고서가 제시한 가설은 코드를 빨리 만들수록 한 번에 밀어 넣는 변경 묶음이 커지고, 큰 묶음이 불안정을 부른다는 것이다. 개인 층위의 개선과 시스템 층위의 악화가 동시에 관측된다.
필터 쪽 사정은 더 좋지 않다. 와튼스쿨의 스티븐 쇼(Steven Shaw)와 기디언 나브(Gideon Nave)는 사전 등록된 실험 세 건에서 참가자 1,372명에게 인지반영검사 문항 9,593회를 풀리면서, 숨은 프롬프트로 AI 조수의 정오답을 무작위 조작했다. AI가 맞을 때 정확도는 AI 없는 기준선보다 25%포인트 올랐고, 틀릴 때는 15%포인트 떨어졌다 — 즉 도움이 없을 때보다 못한 상태로 내려갔다. 효과 크기는 코언의 h 기준 0.81이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에서 참가자의 자기 확신은 올라갔다. 연구진은 이를 인지적 항복(cognitive surrender)이라 부른다. 시간 압박은 이 경향을 키웠고, 실시간 피드백과 정확도에 걸린 보상은 줄였다.
필터가 무뎌지는 것은 정보 부족 때문이 아니다. 틀린 답을 받아들인 사람이 더 확신했다는 결과는, 스스로의 안목을 신뢰하라는 조언이 이 국면에서 정확히 반대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신뢰의 근거가 되어야 할 자기 확신이 이미 도구의 출력에 오염돼 있기 때문이다.
이름을 걸 사람을 개인의 양심에 맡기지 않고 법으로 지정하려는 시도가 유럽연합 인공지능법 제14조다. 고위험 AI 시스템은 사용 기간 내내 자연인이 실효적으로 감독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하고, 감독자는 시스템의 능력과 한계를 이해하고 과의존을 피하며 출력을 해석하고 사용을 거부하거나 작동을 중단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일부 시스템에서는 시스템의 식별 결과에 근거한 조치를 두 사람 이상이 검증하도록 요구한다.
이 조항은 원래 2026년 8월 2일부터 적용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가별 감독기관 지정과 조화 표준 정비가 늦어지면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5년 11월 19일 디지털 옴니버스 제안으로 고위험 의무의 적용을 미루자고 제안했다. 2026년 5월 7일 정치적 합의가 이뤄졌고, 유럽의회는 6월 16일 찬성 423 · 반대 57 · 기권 174로 이를 승인했으며, 이사회는 6월 29일 최종 승인했다.
| 대상 | 원래 적용일 | 변경된 적용일 |
|---|---|---|
| 부속서 III 독립형 고위험 시스템 | 2026년 8월 2일 | 2027년 12월 2일 |
| 부속서 I 내장형 고위험 시스템 | 2027년 8월 2일 | 2028년 8월 2일 |
| 제50조 워터마킹 의무 | 2026년 8월 2일 | 2026년 12월 2일 |
| 금지된 AI 관행 | 2025년 2월 2일 | 변동 없음 |
| 범용 AI 모델 의무 | 2025년 8월 2일 | 변동 없음 |
부속서 III에 묶이는 것은 채용·신용평가·생체인식처럼 단독으로 쓰이는 고위험 시스템이고, 부속서 I은 의료기기·기계류처럼 이미 규제되는 제품에 내장된 경우다. 워터마킹 유예는 2026년 8월 2일 이전에 시장에 나와 있던 시스템에만 적용된다. 같은 개정으로 비동의 성적 이미지와 아동 성착취물을 생성하는 시스템이 금지 관행에 새로 추가됐다.
인간 감독 요건을 담은 고위험 규정이 최소 16개월 미뤄졌다는 사실은 규제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문제의 난이도에 대한 지표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감독을 명령하는 문장을 쓰기는 쉽고, 감독이 실효적으로 가능한 조건을 정의하고 검증 가능한 표준으로 옮기기는 어렵다. 그 어려움은 그린이 41개 정책에서 발견한 공백과 같은 자리에 있다. 감독자를 지정하는 조항은 감독 수행 능력의 입증을 함께 요구하지 않으면 도입 정당화 장치로 기능한다. 늦춰진 16개월이 감독 설계와 적합성 평가에 쓰이면 조항의 실효가 올라가고, 유예 자체로 소비되면 서명자만 지정된 채 개입 권한 없는 자리가 법으로 제도화된다.
안목과 판단을 가르는 도식이 주로 어디에서 나오는지도 서술의 형태에 작용한다. 이 도식을 정교하게 다듬어 온 이들은 대체로 AI 코딩 도구와 에이전트 플랫폼을 만들거나 파는 위치에 있다. 오스마니는 크롬 개발자 도구를 오래 이끈 뒤 구글 클라우드 AI 디렉터로 에이전트 플랫폼과 에이전트 CLI, 에이전트 스튜디오 출시를 담당했고 2026년 구글을 떠났다. 인스타그램 최고경영자 애덤 모세리(Adam Mosseri)도 실행 속도가 상품화되는 만큼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데 시간을 쓰는 편이 중요해진다는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이 자리에서 나오는 서술은 도구의 확산과 인간의 가치가 양립한다는 결론을 필요로 한다. 그 필요가 강조점을 정한다. 안목과 판단은 개인이 훈련으로 기를 수 있는 능력으로 서술되고, 훈련 지침 — 비교하라, 기록하라, 결과 가까이 머물라 — 이 결론 자리에 온다. 반대로 생략되는 것은 개인이 훈련으로 바꿀 수 없는 항목들이다. 누가 서명자로 지정되는가,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가, 사고가 났을 때 형사책임은 어디로 가는가, 감독 권한이 예산과 시간과 함께 주어지는가.
이 생략이 의도적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 다만 도구를 만드는 자리에서는 조직 배치와 법적 귀속이 시야 밖에 있고, 시야 밖에 있는 것은 처방에 들어오지 않는다. 안목과 판단이라는 두 단어로 정리된 문제를 실제로 다루려면 인사 규정과 감사 기록과 규제 일정을 함께 봐야 하며, 그 셋은 어느 것도 개인의 훈련 항목이 아니다.
아래 예측은 확인된 현재 상태에서만 근거를 가져왔고, 각 항목에 반증 조건을 붙였다.
예측 1서명자를 지정하는 사내 절차가 문서화된다
2027년 12월 2일 적용일을 앞두고, 대기업은 AI 산출물의 승인 책임자를 직무와 이름으로 지정하는 내부 절차를 정비할 것이다. 애플 지도 사례에서 사후에 벌어진 배분이 사전 규정으로 옮겨 가는 형태다.
반증 조건 — 2027년 말까지 유럽·한국 상장기업의 사업보고서나 내부통제 공시에서 AI 산출물 승인 책임 지정에 관한 기재가 유의하게 늘지 않으면 반증된다.
예측 2과제 수준 무작위 대조 실험은 사실상 폐기된다
생산성 연구는 과제 단위 무작위화를 포기하고 관찰 데이터, 고정 과제 실험, 개발자 단위 무작위화로 옮겨 간다. 대조군 참여 거부와 과제 선별 제출이 이미 설계를 무너뜨렸고, 도구 성능이 오를수록 이 압력은 커진다.
반증 조건 — 2027년 안에 과제 수준 무작위화를 유지한 실험이 신뢰구간이 0을 넘지 않는 추정치를 내놓으면 반증된다.
예측 3사고 귀책은 최일선 검토자에게 먼저 붙는다
AI 산출물이 개입된 사고에서 형사·행정 책임이 조직이나 공급자보다 최종 승인자 개인에게 먼저 향하는 사례가 축적된다. 우버 사건에서 회사가 기소되지 않고 안전 운전자만 유죄를 받은 구조가 소프트웨어 승인 절차로 옮겨 오는 경로다.
반증 조건 — 같은 기간 조직 또는 시스템 공급자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처분이 개인 귀책 사례보다 많이 집계되면 반증된다.
예측 4평가 자동화는 인간 보정 세트를 상시 요구하는 쪽으로 간다
심판 모델의 편향이 앙상블과 순서 뒤집기로 해소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쌓이면서, 주기적으로 인간 표본과 대조해 심판을 재보정하는 절차가 평가 파이프라인의 기본 구성이 된다.
반증 조건 — 단일 심판 모델이 보정 없이 인간 상호 일치율을 여러 과제군에서 재현한다는 결과가 독립적으로 재현되면 반증된다.
세 전제를 차례로 검사한 결과는 하나로 모인다. 안목은 개인이 노출과 반복으로 기르는 것이 맞고, 판단이 이전되지 않는다는 것도 맞다. 다만 판단이 이전되지 않는 이유는 인간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책임을 붙일 자리를 사회가 사람으로만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가 개입 권한과 함께 주어지면 판단이 되고, 이름만 놓이면 흡수 장치가 된다. 둘을 가르는 일은 훈련의 영역 밖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