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kos Kazantzakis, 1883–1957
이라클리온 성벽 위의 묘비에는 세 문장이 새겨져 있다. 그 문장은 죽음을 앞둔 노작가가 남긴 유언이 아니라, 서른 해 전에 완성된 논증의 결론부다. 그리고 돌에 새기는 과정에서 논증의 연결고리 하나가 잘려 나갔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나는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이라클리온 베네치아 성벽 마르티넨고 능보(Προμαχώνας Μαρτινέγκο)의 묘비 명문
무덤은 도시 안이 아니라 도시를 둘러싼 방벽 위에 있다. 17세기 베네치아 공화국이 오스만 함대를 막기 위해 쌓은 마르티넨고 능보 정상, 나무 십자가 하나와 거친 돌판 하나가 전부다. 관광 안내문은 대개 여기에 한 줄을 붙인다. 교회가 묘지 매장을 거부해서 성벽에 묻혔다는 것이다.
사실 관계는 그보다 잘게 갈라진다. 1957년 10월 26일 프라이부르크에서 그가 숨진 뒤, 아내 엘레니 카잔차키는 아테네에서 시신을 일반 조문에 공개해 달라고 그리스 교회에 요청했다. 아테네 대주교 테오클리토스가 이를 거부했다. 시신은 크레타로 옮겨져 이라클리온의 성 미나스 대성당에서 조문을 받았고, 정식 장례 전례는 허용되지 않은 채 행렬이 성벽까지 이어졌다. 즉 그리스 본토 교회의 거부와 크레타 교회의 수용이 같은 장례 안에 겹쳐 있었다.
파문(ἀφορισμός) 요구는 실제로 제기되었으나 성립하지 않았다. 그리스 교회 성무원(聖務院) 안에서 카산드라 주교 이리네오스가 파문을 요구한 주교들에게 문제의 소설을 실제로 읽었는지 되물었고, 안건은 비준을 위해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청으로 넘어갔다.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는 이를 비준하지 않았다. 성무원도 총대주교청도 파문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으므로, 카잔차키스는 파문된 적이 없다. 유족 재단과 그리스 측 자료가 모두 이 점을 확인하고 있으며, ‘파문당한 작가’라는 서술은 현재까지 유통되는 오류다.
이 오류가 유독 질기게 살아남는 이유는 그것이 이야기를 매끄럽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파문당한 이단자가 축성된 땅에서 쫓겨나 성벽 위에 누우면서 마지막으로 교회를 향해 내지른 말 — 이렇게 배열하면 묘비명은 반박문이 되고, 반박문은 읽는 사람에게 즉시 이해된다. 문제는 이 배열이 문장의 작성 시점을 서른 해 가까이 밀어 놓는다는 데 있다. 묘비명은 논쟁의 산물이 아니라 논쟁을 촉발한 텍스트의 일부였다.
세 문장의 출처는 아스키티키(Ασκητική)다. 부제가 라틴어로 살바토레스 데이(Salvatores Dei), 곧 ‘신을 구원하는 자들’이다. 초고는 1922년 여름 빈에서 시작되어 1923년 초 베를린에서 끝났고, 1927년 7–8월 디미트리스 글리노스가 주간을 맡은 잡지 아나겐니시(Αναγέννηση) 599–631면에 처음 실렸다. 같은 해 별쇄본이 나왔으며, 1928년에 마지막 장 ‘침묵’이 추가되고 1944년까지 개정이 이어졌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고 논문도 아니다. 한 행이 한 단락 길이로 늘어나는 절(節) 형식의 산문시로 쓰여 있어서, 문헌학적으로는 요한 묵시록이나 솔로모스의 산문 계열에 붙는다. 1927년 별쇄본이 나왔을 때 클레온 파라스호스는 서평에서 이 책을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닮은 설교조의 철학 시편으로 규정했다. 도덕과 형이상학의 문제를 제기하고 나름의 해답까지 내놓는 책이라는 것이다.
구조는 그리스도교 영성 수련서의 골격을 그대로 빌린다. 서문, 준비, 행진, 환시, 행동, 침묵. 제목의 ‘수련’은 로욜라의 영신수련이나 토마스 아 켐피스 계열의 관행적 표제법이다. 그런데 내용은 뒤집혀 있다. 인간이 신에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구원한다. 신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아직 만들어지는 중인 힘이고, 그 힘이 실패하지 않게 지키는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
‘준비’ 장은 세 가지 의무를 차례로 부과한다. 첫째, 지성이 도달할 수 없는 한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둘째, 의미를 찾지 못한 심장의 고통을 회피하지 않을 것. 셋째, 마지막이자 가장 큰 유혹인 희망을 정복할 것. 이 세 번째 의무의 서술이 끝나는 자리에 묘비명의 원형이 놓여 있다.
1927년 판본의 해당 대목과 돌에 새겨진 문장을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곧 드러난다.
…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λυτρώθηκα από το νου κι από την καρδιά, ανέβηκα πιο πάνω, είμαι λεύτερος.
나는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성에서 그리고 심장에서 해방되었다, 더 위로 올라섰다, 나는 자유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나는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잘려 나간 것은 수사가 아니라 인과다. 원래 문장에서 ‘자유’는 앞의 두 부정에서 곧바로 따라오지 않는다. 두 부정과 자유 사이에 해방과 상승이라는 두 개의 동작이 끼어 있고, 그 동작의 대상이 명시되어 있다. 지성과 심장이다. 앞서 ‘준비’ 장이 부과한 첫째 의무와 둘째 의무의 대상이 바로 그 둘이었다. 그러니까 이 문장은 세 의무를 모두 통과한 자가 그 끝에서 내는 보고이며, 세 항목의 병렬이 아니라 단계의 완료다.
그리스어 원문에서 희망과 두려움이 각각 어느 기관에 붙는지도 이 구절이 알려 준다. 그리스어연구소가 정리한 독법에 따르면, 이 대목은 지성을 희망의 생산자로, 심장을 두려움의 생산자로 지목한다. 통상의 감정 어휘에서는 순서가 반대다. 희망은 가슴에서 나오고 계산은 머리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카잔차키스는 그 배치를 바꾼다. 모든 것을 정돈하고 현상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믿는 지성의 안일함이 희망을 만들고, 사물의 본질을 찾아내야 한다고 조바심치는 심장의 공포가 두려움을 만든다.
세 문장으로 줄어든 명문에서는 이 구분이 사라진다. 남은 것은 두 개의 부정과 하나의 선언뿐이고, 독자는 부정에서 선언으로 곧장 건너뛰게 된다. 이 건너뛰기가 뒤에서 살펴볼 여러 오독의 출발점이 된다.
동사 ἐλπίζω와 그 명사형 ἐλπίς는 신약 그리스어에서 특정한 자리를 차지한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3장 13절이 끝까지 남는 것으로 꼽는 세 가지가 πίστις, ἐλπίς, ἀγάπη, 즉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다. 라틴 신학에서 이 셋은 대신덕(theologicae virtutes)으로 정식화되고, 그 가운데 희망은 지복(至福)을 향한 확실한 기대를 가리킨다. 즉 이 단어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약속된 결말에 대한 신뢰를 지시하는 전문 용어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는다”는 낙관의 포기가 아니라 대신덕 셋 가운데 하나에 대한 정면 거부로 읽힌다. 교회가 이 책에 반응한 강도는 이 사실을 고려하면 훨씬 설명이 쉬워진다. 1930년 그리스 당국은 아스키티키를 근거로 무신론 혐의 재판을 잡았다. 공판 기일은 6월 10일로 지정되었으나 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그 뒤 사반세기에 걸쳐 이어진 고발의 첫 표적도 소설이 아니라 이 얇은 책이었다.
정복해야 할 ‘마지막 유혹’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로 신학 어휘다. 유혹은 광야에서 그리스도가 통과한 시험의 이름이고, 카잔차키스는 뒷날 소설 제목으로 그 단어를 다시 가져온다. 그가 대신덕을 공격할 때 쓰는 언어 자체는 끝까지 교회의 언어였다. 무신론자의 어휘로 신학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신학의 어휘로 신학의 결론을 바꾸려 한 것이다. 파문 요구가 나올 만한 조건과, 총대주교가 파문을 비준하지 않은 조건이 동시에 여기서 나온다. 교리를 겨냥한 문장이지만 교리를 논하는 사람의 문장이 아니었다.
문장의 문법이 어디서 왔는지는 그의 학력에 남아 있다. 1902년 아테네 대학 법학부에 들어가 1906년 법학 학위를 받고, 1907년부터 1909년까지 파리에서 공부했다. 이 시기 그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앙리 베르그송의 강의를 들었고, 학위 논문으로 법과 국가의 철학에서의 프리드리히 니체를 제출했다. 논문은 1909년 이라클리온에서 출간되었다. 귀국 후에는 니체의 비극의 탄생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그리스어로 옮겼다.
베르그송에게서 온 것은 물질을 밀어 올리며 더 높은 형태를 만들어 내는 생명의 도약(élan vital)이라는 그림이고, 니체에게서 온 것은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나아가는 의지라야 자유롭다는 명제다. 아스키티키가 신을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진행 중인 힘으로 놓고, 인간의 투쟁이 그 힘의 실현 조건이라고 말할 때 두 갈래가 합쳐진다. 이 구도에서 희망은 논리적으로 금지된다. 결말이 이미 보장되어 있다면 지금의 투쟁은 장식이 되고, 신을 구원할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는 전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는다”는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책임의 조건이다. 이 점을 놓치면 남은 두 문장의 뜻도 함께 흔들린다.
영어권 해설에서 널리 퍼진 독법은 이 문장을 집착의 소멸로 읽는다. “I hope for nothing”보다 “I expect nothing”이 원의에 가깝다는 번역상의 제안이 함께 따라붙는다. 기대와 두려움은 모두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붙는 반응이므로, 둘을 놓으면 현재에 머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 독법에는 실제 근거가 있다. 그는 붓다를 오래 읽었고 희곡 붓다를 썼으며, 그레코에게 바치는 보고서는 자신의 정신적 이력을 그리스도, 붓다, 레닌, 오디세우스라는 네 정류장으로 배열한다. 붓다는 그 배열에서 지나쳐 버린 역이 아니라 통과해야 했던 역이다.
그러나 세 지점에서 이 독법은 원문에 대해 값을 치른다. 첫째, ἐλπίζω는 가치중립적인 ‘예상’이 아니라 앞서 본 신학적 희망을 지시하는 동사다. 이를 ‘기대’로 옮기면 겨냥된 대상이 사라진다. 둘째, 아스키티키의 문맥에서 희망은 놓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정복(νίκησε)하는 것이다. 정복은 소멸이 아니라 전투의 결과를 가리키는 낱말이다. 셋째, 잘려 나간 중간 구절이 명시한 방향은 하강이 아니라 상승이다. 지성과 심장에서 해방된 뒤 그는 위로 올라섰다고 쓴다. 평정으로 가라앉는 운동이 아니라 더 높은 지점으로 올라가는 운동이다.
번역어 선택이 해석을 결정하는 국면이 여기다. ‘희망’을 ‘기대’로 옮기고 중간 구절을 빼면 이 문장은 평온의 문장이 된다. 그리스어 그대로 두면 이것은 여전히 싸움의 문장이다. 널리 통용되는 한국어 번역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도 같은 종류의 부드러움을 만든다. ‘바란다’는 욕망 전반을 덮는 낱말이라, 욕망을 끊었다는 뜻으로 읽히기 쉽다. 원문이 겨냥한 것은 욕망이 아니라 보장이다.
같은 형식이 그의 소설 안에서 한 번 더 나타난다. 1949년부터 1950년까지 앙티브에서 쓰고 1953년에 출간한 카페탄 미할리스는 1889년 크레타 봉기를 다룬다. 주인공 미할리스는 저자의 아버지 이름을 그대로 가졌고, 실제로 아버지가 봉기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조카 코스마스는 전투 중에 삼촌이 모든 두려움과 모든 희망에서 이미 벗어나 있음을 알아본다. 두 사람은 곧 오스만군의 마지막 돌격에서 함께 죽는다.
이 소설의 그리스 재판 부제와 영어판 제목이 ‘자유 또는 죽음’이다. 원래 문구는 그리스 독립전쟁에서 나와 크레타 반란군이 이어받은 구호 Ελευθερία ή Θάνατος다. 그런데 카잔차키스는 소설의 마지막 낱말에서 접속사를 바꾼다. ‘또는’이 아니라 ‘그리고’다. 영국판 제목이 Freedom and Death가 된 것은 이 변경을 따른 결과다.
‘자유 또는 죽음’은 거래를 제시한다. 자유를 얻거나, 얻지 못하면 죽는다. 이 구호에는 승리라는 항목이 남아 있고 따라서 희망이 남아 있다. ‘자유 그리고 죽음’은 그 항목을 지운다. 자유는 죽음 대신 얻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함께 성립하는 것이 된다. 선택지가 없으므로 기대할 대상도 없다.
묘비명 세 번째 문장의 시제가 여기서 설명된다. “나는 자유다”는 현재형이고, 그 문장이 놓인 자리는 무덤이다. 말하는 자는 이미 희망할 수도 두려워할 수도 없는 위치에 있으며, 바로 그 위치에서 현재형으로 자유를 선언한다. 안전한 곳에서 낸 소리가 아니라 소멸하는 지점에서 낸 소리라는 것이 이 배치의 요점이다.
같은 구도가 미노아 문명 해석에서도 되풀이된다. 그가 그레코에게 바치는 보고서에서 ‘크레타적 시선’(κρητική ματιά)이라 부른 태도는 크노소스 벽화의 황소 뛰어넘기에서 끌어낸 것이다. 뿔을 세운 짐승 앞에 선 인간이 도망치지도 않고 오만하게 굴지도 않으면서 그 위를 넘어간다. 공포를 제거한 것이 아니라 공포를 놀이의 형식으로 바꿔 놓은 자세이며, 희망도 두려움도 없이 심연을 마주 보는 태도를 그는 이 그림에서 읽어 냈다. 1938년의 오디세이아 속 주인공에게 요구했던 시선도 이것이었다.
마지막 유혹의 출판 순서는 이 사건들의 성격을 드러낸다. 그리스어 초판은 1955년 아테네 디프로스에서 나왔지만, 독일어판이 1952년 베를린에서 먼저 출간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금서 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 등재는 그리스어 원본이 나오기 전에 이루어졌다. 등재 시점은 자료에 따라 1953년 12월과 1954년 4월로 갈리며, 어느 쪽이든 그리스 독자가 원문을 읽을 수 있게 되기 전이다. 카잔차키스는 금서 목록 심의부에 테르툴리아누스의 문구를 인용해 답신했다. “Ad tuum, Domine, tribunal appello” — 주님, 당신의 법정에 상소합니다.
같은 해 미국 그리스정교회는 마지막 유혹을 규탄하는 결의에서 또 하나의 책을 함께 지목했는데, 그 제목의 책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스 성무원은 1955년 2월 그의 저작 전체에 대한 판매 금지를 시도했다. 파문 안건을 놓고 이리네오스 주교가 던진 질문 — 문제의 소설을 읽어 보았는가 — 이 특정 회의의 일화가 아니라 이 시기 고발 절차의 일반적 조건을 가리킨다는 정황이 여기서 나온다. 원본이 아직 없는 책, 실재하지 않는 책, 읽지 않은 책이 차례로 규탄 대상이 되었다.
발화 위치를 따져 보면 양쪽 모두 문학 판단을 하고 있지 않았다. 고발하는 쪽에서 필요한 것은 텍스트가 아니라 표적이었고, 표적으로서의 카잔차키스는 이미 1927년 아스키티키로 확정되어 있었다. 소설들은 그 확정에 붙은 후속 항목이다. 방어하는 쪽 사정도 대칭적이다. 이리네오스의 반문은 소설의 정통성을 옹호한 것이 아니라 절차의 결함을 지적한 것이었고, 아테나고라스가 비준을 보류한 근거도 교리 해석이 아니라 파문이라는 제도의 무게였다.
돌에 새긴 낱말의 형태에도 같은 위치 감각이 남아 있다. 명문의 세 번째 문장은 표준 그리스어 ἐλεύθερος가 아니라 민중어 형태를 쓴다. 묘비를 기록한 그리스 자료들은 대부분 λέφτερος로 적고, 아스키티키 본문은 λεύτερος로 적는다. 둘 다 크레타 구어에 가까운 꼴이며 아테네 문어체가 아니다. 관제 언어를 거부한 표기 위에 관제 위안을 거부한 문장이 놓인 셈이다. 언어 문제는 그에게 부수적 취향이 아니었다. 민중어 운동은 그가 평생 소속을 밝혀 온 전선이었고, 표준어와 민중어의 대립은 20세기 전반 그리스에서 정치적 대립이었다.
그의 생애를 요약한 글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문장이 하나 있다. 1957년 노벨 문학상을 단 한 표 차이로 알베르 카뮈에게 내주었다는 것이다.
확인되는 사실은 이렇다. 노벨 재단 후보 기록에 따르면 그는 아홉 개 연도에 걸쳐 후보로 지명되었고, 1946년에는 그리스작가협회가 앙겔로스 시켈리아노스와 함께 그를 추천했다. 1957년 수상자는 카뮈였고, 그해 카잔차키스는 프라이부르크 대학병원에 입원 중이었으며 축하 전보를 보냈다. 카뮈는 뒤에 미망인 엘레니에게 보낸 조문 편지에서, 자신이 받아야 했던 그 영예가 카잔차키스에게 백 배 더 어울렸다고 적었다.
확인되지 않는 것이 표차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최종 표결의 수치를 공표하지 않으며, ‘한 표’라는 숫자는 어느 일차 기록으로도 소급되지 않는다. 이 숫자를 인용하는 자료들은 서로를 근거로 삼고 있고, 신중한 영어권 매체는 ‘전해지는 바로는’이라는 한정어를 붙인다.
그런데도 이 숫자가 서술의 중심에 놓이는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 아홉 번의 후보 지명은 국제적 평가가 있었다는 사실만 말해 줄 뿐 결과를 말해 주지 않는다. 반면 ‘한 표’는 미결의 평판을 아슬아슬한 낙선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리스 국가가 그의 후보 지명을 방해했다는 서술과 결합하면 이야기는 더 매끄러워진다. 검증되지 않는 숫자가 검증되는 사실보다 널리 인용되는 것은 그것이 서사의 빈칸을 채우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의 대조는 표차보다 확인이 쉽다. 1956년 그는 빈에서 평화상을 받았고, 시상식에 그리스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다.
지금 이라클리온에 도착하는 여행자는 그의 이름이 붙은 공항으로 들어온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국제공항은 그리스에서 두 번째로 붐비는 공항으로, 2024년 이용객이 900만 명을 넘었다. 무덤은 시내 주요 관광지 목록에 올라 있고, 명문 세 줄은 기념품과 관광 안내물에 반복 인쇄된다. 그의 저작 전체에 대한 판매 금지가 시도된 지 70년, 국가가 시상식 참석을 거부한 지 70년이 지났다.
이 유통 과정에서 문장은 다시 한 번 줄어든다. 자기계발과 동기부여 어법에서 살아남는 것은 두 번째 문장이다. 두려움 없음은 판매 가능한 태도이므로 남고, 첫 번째 문장은 ‘기대하지 않는다’로 완화되거나 조용히 빠진다. 신을 구원할 책임, 지성과 심장으로부터의 해방, 상승, 심연 — 이 어휘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나는 자유다’는 성취감의 표현이 된다.
주목할 점은 이 축약이 관광산업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첫 번째 축약은 돌에 새기는 단계에서 이미 일어났다. 열 단어를 덜어 낸 그 결정이 문장을 운반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고, 운반 가능해진 문장은 원래 논증과 분리되어 어디에든 놓일 수 있게 되었다. 잘려 나간 구절은 문장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려 주는 표지였다. 표지를 떼면 문장은 가벼워지고, 가벼워진 문장은 원래 무게를 지시하지 못한다.
남은 세 문장은 형식적으로는 완전하다. 같은 1인칭 단수 동사가 세 번 반복되고, 두 번의 부정 뒤에 한 번의 긍정이 온다. 부정의 대상은 미래에 붙는 두 가지 반응이고, 긍정의 대상은 현재의 상태다. 그리고 이 현재형은 무덤 위에 새겨져 있다. 문장을 읽는 사람은 살아 있고, 문장을 말하는 자는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