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을 따라 한 구절씩 읽는 대신 한 권을 통째로 여러 번 읽고, 저자가 남긴 구획 표지와 목적 진술을 찾아 전체 구조를 재구성하는 독법이 있다. 요한복음은 그 독법의 표본으로 가장 자주 쓰인다. 이 방법이 어디서 왔고, 어디까지 본문이 뒷받침하며, 어디서부터 후대가 채워 넣은 눈금인지를 갈라 본다.
오늘날 성경에 붙은 장 구분은 13세기 초 캔터베리 대주교 스티븐 랭턴이 라틴어 불가타에 매긴 것이고, 신약의 절 번호는 1551년 파리의 인쇄업자 로베르 에스티엔이 그리스어·라틴어 대역 신약을 찍으면서 넣은 것이다. 에스티엔은 그 서문에서 번역문과 그리스어 본문을 나란히 대조할 수 있게 하려고 짧은 단위로 쪼갰다고 밝혔다. 즉 절 번호는 해석 단위가 아니라 대조 색인이었다. 랭턴의 장 구분은 위클리프 영역본을 거쳐 사실상 표준이 되었고, 에스티엔의 절 번호는 1560년 제네바 성경을 통해 영어권에 굳어졌다.
여기까지는 널리 알려진 대로다. 그런데 이 사실에서 "따라서 그리스어 본문에는 아무 구분이 없었으니 흐름대로 읽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곧장 건너뛰면 사실 한 겹을 놓친다. 4세기에 이미 그리스어 신약 사본에는 kephalaia라 불리는 주제 단위 구분이 붙어 있었다. 문제는 그 구분이 사본마다 달랐다는 데 있다. 4세기 바티칸 사본은 마태복음을 170개 단락으로 나누었고, 5세기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같은 책을 68개로 나누었다. 여기에 4세기 초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가 네 복음서의 평행 대목을 대조하려고 만든 절편 번호와 대조표가 따로 얹혀 있었다.
이 차이는 사소하지 않다. 고대 사본의 구분은 후대의 것보다 본문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저자의 것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같은 마태복음을 놓고 170으로 볼 것인가 68로 볼 것인가는 이미 4세기 필사자들 사이의 판단 차이였다. 그러니 "후대의 눈금을 걷어내고 저자의 구획을 찾자"는 기획은, 걷어낸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 백지가 아니라 서로 어긋나는 판단들의 지층을 만난다. 장절이 자의적이라는 지적이 맞는 만큼,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구획도 판단의 산물이라는 점이 같은 강도로 성립한다.
한 권을 통째로 반복해 읽고 저자가 남긴 문학적 표지에서 구조를 끌어내는 독법은 흔히 귀납적 성경 연구(inductive Bible study)라 불린다. 이 이름이 붙은 운동의 출발점은 예일과 시카고 대학에서 구약을 가르친 윌리엄 레이니 하퍼와, 그의 제자이자 동료였던 예일 출신 히브리어 학자 윌버트 웨버 화이트다. 화이트는 1900년 성경신학교를 세웠고, 1902년 뉴욕으로 옮겨 학교 이름을 성경교사양성학교로 바꾸었다. 커리큘럼의 중심에는 영어로 읽는 성경 본문 자체가 놓였다.
이 배치에는 분명한 동기가 있었다. 하퍼와 화이트는 당시 신학교육이 성경에 관한 책들을 다루느라 성경 본문을 다루지 않는다고 보았고, 고등비평의 자료층 재구성에 관심이 쏠린 나머지 최종 형태의 본문이 방치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최종 본문을 우선 검토할 것, 한 단락의 의미는 그 단락이 속한 책 전체의 맥락에서 결정될 것, 이 두 원칙을 방법의 뼈대로 삼았다. 1952년 로버트 트레이나가 펴낸 『Methodical Bible Study』가 이 방법을 매뉴얼로 굳혔고, 트레이나는 뉴욕 성경신학교에서 20년을 가르친 뒤 1966년 애즈베리 신학교로 옮겨 그곳을 이 전통의 거점으로 만들었다. 20세기 후반 대학생 선교단체와 평신도 소그룹을 통해 이 방법이 널리 퍼진 것도 같은 계보다.
귀납적 독법의 두 특징 — 주석서를 뒤로 미루는 태도와 최종 본문에 대한 신뢰 — 는 서로 다른 원칙이 아니라 하나의 제도적 조건에서 나온 쌍이다. 자료층을 가르는 작업은 원어와 대형 도서관을 요구하지만, 영어 본문을 반복해 읽으며 반복어와 전환구를 표시하는 작업은 그렇지 않다. 원어 없이도 실행 가능한 방법이어야 했다는 조건이, 학계의 축적을 뒤로 미루라는 권고와 최종 형태를 우선하라는 권고를 동시에 요구한 것이다. 이 조건을 인정하는 것이 방법을 깎아내리는 일은 아니다. 다만 두 권고 중 어느 것도 본문에서 도출된 결론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진다.
이 계보와 별개로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경로도 있다. 벨파스트 퀸스대학교 구약 그리스어 교수였던 데이비드 구딩(1925~2019)은 70인역과 구약 서사 연구로 학술 경력을 쌓은 고전문헌학자였고, 케임브리지에서 그리스어 신명기 연구로 학위를 받았다. 1987년 인터바시티에서 펴낸 『According to Luke』에서 그는 누가를 현대 역사가가 아니라 고대 역사가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 역사가라면 사건 목록을 나열하고 설명을 덧붙이지만, 고대 서사가는 논평을 최소화한 채 자료를 배열하는 방식 자체로 논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배열이 곧 주장이라는 이 전제는 랭턴 이전 문헌 전통 전반에 적용되는 것이고, 실제로 그런 절편 표지를 읽어내는 기법은 라틴 문학 연구에서 먼저 정련되었다.
책 단위 독법이 요한복음을 표본으로 삼는 이유는 분명하다. 요한복음 20장 30~31절이 저자의 집필 목적을 명시하기 때문이다. 예수가 행한 다른 표적이 많으나 이 책에 기록되지 않았고, 여기 기록된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하려는 것이며, 믿어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는 진술이다. 목적이 적혀 있으니 그 목적을 질문으로 삼아 전체를 다시 읽으라는 절차는 여기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런데 이 문장 자체가 사본 사이에서 갈린다. "믿게 하려 함이라"에 해당하는 동사가 부정과거 가정법 πιστεύσητε인 사본과 현재 가정법 πιστεύητε인 사본이 나뉘고, 두 독법 모두 이른 시기의 유력한 지지를 받는다. 지리적 분포로는 부정과거가 넓고, 이른 사본의 무게로는 현재형이 앞선다. 브루스 메츠거와 편집위원회는 이 지점에 확신도 C를 매겼다. 내적 증거도 결정적이지 않아서, 뒤따르는 절의 현재형에 맞추려던 필사자의 손이 개입했으리라는 설명과 그 반대 방향의 설명이 모두 가능하다.
차이는 문법 세부에 그치지 않는다. 부정과거로 읽으면 "믿게 되도록"이 되어 아직 믿지 않는 독자를 향한 전도 문서가 되고, 현재형으로 읽으면 "계속 믿도록"이 되어 이미 믿는 공동체를 향한 양육 문서가 된다. 요한복음 전체를 어떤 질문으로 읽을 것인가가 이 한 글자에 걸리는 셈이다. 다만 결론을 시제에 전적으로 걸 수는 없다. 그리스어 시제 형태의 차이는 시간이 아니라 상(aspect)의 차이이며, 요한은 두 형태를 최초의 믿음과 지속되는 믿음 양쪽에 두루 쓴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 지적이 옳다면 본문비평의 승부와 무관하게 독자층 문제는 미결로 남는다.
여기서 방법의 성격이 드러난다. "저자가 목적을 밝혀 놓았으니 그것으로 전체를 읽으라"는 절차는 유효하지만, 그 목적 진술이 독자층·용도·강조점까지 결정해 주지는 않는다. 진술을 찾는 것과 진술을 해석하는 것은 다른 작업이고, 두 번째 작업에는 방법이 배제하려 했던 판단이 그대로 들어온다.
요한복음의 표적이 일곱이라는 설명은 거의 상투구가 되었다. 그런데 본문 어디에도 일곱이라는 숫자는 나오지 않는다. 요한은 σημεῖον(표적)을 17회 쓰는데, 이 가운데 특정 사건을 표적으로 명시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다.
여섯 개까지는 대체로 의견이 모이지만 그 너머에서 합의가 무너진다는 것이 연구 문헌의 실제 상태다. 안드레아스 쾨스텐베르거는 여섯 개의 확정된 표적에서 공통 특징을 뽑아 요한이 말하는 표적의 프로필을 만든 뒤 나머지 후보를 그 잣대로 걸러 보았고, 이 기준을 통과하는 것은 성전에서의 행동뿐이며 물 위를 걸은 사건은 공적 사역이 아니라 제자들 앞에서만 일어났으므로 제외된다고 결론지었다.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는, 1~12장의 표적들과 상징 대 실재의 관계에 있으므로 같은 목록에 넣지 않는다고 보았다. 반면 씨 에이치 도드는 십자가의 죽음을 그리스도의 높아짐과 영광의 표적으로 읽었다. 어느 쪽이든 결론이 나온 자리는 본문의 명시가 아니라 기준 설정이다.
번호 자체도 단순하지 않다. 4장 54절이 "둘째 표적"이라 말하지만, 그 사이인 2장 23절에는 예루살렘 유월절에 사람들이 예수가 행하는 표적들을 보고 믿었다는 진술이 있고, 3장 2절에서 니고데모는 그 표적들을 언급하며, 4장 45절은 갈릴리 사람들이 명절에 예루살렘에서 본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므로 4장 54절의 "둘째"는 전체 통산이 아니라 "유대에서 갈릴리로 온 뒤"라는 제한 아래의 둘째로 읽을 수밖에 없다. 이 독법을 받아들이면 2장 1절부터 4장 54절까지가 가나에서 시작해 가나로 닫히는 하나의 단락으로 떠오른다. 저자가 남긴 표지를 따라간 결과는 일곱 개짜리 목록이 아니라 이 수미상관 구획이다.
일곱이라는 숫자가 자리를 잡은 경로는 본문의 지시가 아니라 고대 세계에서 칠이 완전과 충만을 가리켰다는 상징 전통이다. 여섯이 확정되어 있으니 하나만 더 채우면 완전수가 된다는 기대가 목록을 닫았고, 그 마지막 한 칸을 무엇으로 채울지는 연구자마다 다르다. 후대의 눈금을 걷어내자는 원칙을 가장 철저히 적용했을 때 첫 번째로 걸리는 것이 바로 이 방법이 애용해 온 일곱 표적 도식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구획을 찾는 작업은 언제나 찾는 사람이 이미 가진 모양을 되돌려 준다.
표적 목록에서 곧바로 "표적 → 믿음"이라는 도식을 끌어내면 본문의 절반을 놓친다. 요한은 표적으로 촉발된 믿음을 반복해서 견제한다. 2장 23~25절에서 많은 사람이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자신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않았다고 적힌다. 4장 48절에서 예수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고 나무란다. 6장 26절에서는 표적을 보아서가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불러서 찾아왔다고 지적한다. 20장 29절, 그러니까 목적 진술 바로 앞에서는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고 선언된다.
용어 선택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공관복음이 기적을 δύναμις(능력)로 부르는 데 반해 요한은 이 단어를 기적에 한 번도 쓰지 않는다. σημεῖον은 사건의 위력이 아니라 사건이 가리키는 바에 무게를 싣는 말이고, 70인역에서는 기적이 아닌 예언자의 상징 행위에도 쓰인다. 어휘를 바꾼 것 자체가 기적성을 낮추고 지시성을 높이려는 선택이었다는 해석이 여기서 나온다.
그렇다면 "이 표적이 예수가 메시아임을 어떻게 믿게 하는가"를 각 사건마다 묻는 절차는, 요한 자신이 그 인과를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놓여야 한다. 표적은 믿음을 낳지만 그렇게 생긴 믿음이 곧바로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이중 진술이 본문 안에 나란히 있다. 목적 진술 한 문장을 격자로 삼아 전체를 읽으면 이 긴장이 격자 밖으로 밀려나기 쉽다. 방법이 한 문장을 중심에 놓을수록, 그 문장을 스스로 제한하는 다른 문장들의 무게는 줄어든다.
표적 목록과 다른 구획을 만드는 표지가 본문에 하나 더 있다. 유대 절기와 그에 따른 예루살렘 왕복이다. 유월절이 2장 13절, 6장 4절, 11장 55절에 나오고, 초막절이 7장 2절, 수전절이 10장 22절에 나오며, 5장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명절을 배경으로 안식일 논쟁을 벌인다. 공관복음에서 예수가 마지막 주간에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과 달리, 요한복음의 예수는 절기마다 올라갔다 내려온다. 정결례에 대한 언급도 2장 6절, 3장 25절, 11장 55절, 18장 28절에 흩어져 있다.
이 격자를 따라가면 요한복음은 예수가 유대교의 제도와 절기를 차례로 대체하는 구조로 읽힌다. 성전 대신 그의 몸, 야곱의 우물 대신 생수, 안식일의 쉼 대신 아버지의 일을 계속함, 유월절의 만나 대신 생명의 떡, 초막절의 물 붓는 예식 대신 그가 주는 물, 수전절의 성전 봉헌 대신 그 자신. 절기의 상징을 배경으로 삼는 이 독법은 표적 목록과 겹치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한다. 이 어긋남이 곧 방법의 실패는 아니다. 한 본문에 여러 조직 원리가 동시에 작동할 수 있고, 요한복음은 그런 책이다.
문제는 표지들이 서로를 반박할 때다. 요한복음에는 서사의 흐름이 끊기는 자리가 여럿이고, 연구자들은 이를 봉합선 또는 아포리아(aporia)라 부른다. 게리 버지는 이런 지점을 열세 개 열거한다. 대표적인 것들만 보아도 다음과 같다.
이 자리들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여러 단계의 편집을 거치며 동질 자료가 덧붙어 생긴 흔적으로 보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저자가 지리적·시간적 정합보다 신학적 배열을 우선했으므로 어긋남 자체가 의도라고 보는 쪽이다. 21장에 관해서는 이 장이 빠진 그리스어 사본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자주 근거로 제시되어, 나중에 덧붙었더라도 처음부터 작품의 일부였다는 판단으로 이어진다.
여기가 책 단위 독법이 스스로 답할 수 없는 지점이다. 방법의 핵심 절차는 "저자가 남긴 표지를 찾아 그 사이를 한 단위로 묶으라"는 것인데, 표지들이 서로 다른 구획을 지시하거나 서사의 흐름과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할지는 절차 안에 들어 있지 않다. 어긋남을 의도로 볼 것인가 흔적으로 볼 것인가는 본문 관찰이 아니라 저작 과정에 대한 전제에서 나온다. 자료층 재구성을 뒤로 미루자던 방법이, 정작 가장 까다로운 대목에서 바로 그 문제에 대한 입장을 요구받는 셈이다.
배열이 논지라는 전제가 가장 잘 작동하는 대목이 3장과 4장이다. 성전에서 상을 뒤엎은 장면 직후에 니고데모가 밤에 찾아오고, 예수는 그에게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것을 모르느냐고 말한다. 성전이 장터가 된 사태와 그 성전을 관리하는 계층이 거듭남을 모른다는 사실이 나란히 놓인다. 이어 유대 바깥, 사마리아의 우물에서 한 여인이 같은 주제 — 목마름과 물 — 로 대화한다. 안에서 알아야 할 자가 모르고, 밖에서 알 리 없는 자가 알아본다는 대비다. 요한복음은 성전 정화를 공관복음과 달리 사역 초반에 배치했는데, 배열을 논지로 읽는 독법에서 이 이동은 연대기를 신학적 순서와 맞바꾼 결과가 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통용되는 여인 상(像)은 본문이 지지하지 않는다. 다섯 남편과 현재 남편 아닌 남자라는 4장 18절의 정보에서, 마을에서 배척당해 사람 없는 정오에 물을 길으러 나온 부도덕한 여자라는 인물이 만들어졌다. 벤 위더링턴 3세가 그를 도덕적으로 의심스럽다며 창부라 부른 것이 특별히 가혹한 축도 아니다. 그러나 본문을 통째로 읽으라는 원칙을 이 대목에 실제로 적용하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요한복음은 죄를 지적할 때 지적한다. 5장 14절에서는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고, 8장 11절에서도 같은 말이 나온다. 4장 5~42절에는 죄에 대한 언급도, 회개하라는 명령도, 그를 죄인으로 규정하는 서술도 없다.
배경도 이 그림을 지탱하지 않는다. 당시 여자가 이혼을 시작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이었으므로, 다섯 번의 혼인이 끝난 사정은 사별이거나 남편 쪽의 이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부장 가구에 생계를 의존하던 조건에서 이는 방탕의 이력이라기보다 재난의 이력이다. 정오라는 시각도 본문이 이유를 대지 않는다. 그 시각이 적힌 직접적 이유는 예수가 길에 지쳤다는 서술과 맞물린다. 결정적으로 4장 39절은 그 마을의 많은 사마리아인이 여인의 말을 듣고 믿었다고 전한다. 여자의 증언이 법정에서 효력이 없던 문화에서 마을이 곧바로 그의 말을 듣고 나섰다면, 그가 마을의 소문난 파렴치한이었다는 전제는 서사와 충돌한다.
다섯 남편을 상징으로 읽는 해석도 오래되었다. 열왕기하 17장 24~34절이 사마리아에 이주해 각자의 신을 섬긴 다섯 집단을 열거하는데, 이를 배경으로 삼아 예수가 사마리아의 종교사를 요약하고 있다고 보는 독법이다. 이 해석을 채택하든 않든, 결론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본문에 없는 평판이 본문 안에 있는 것처럼 유통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책 단위 독법의 한계를 다른 각도에서 보여 준다. 이 방법이 내세우는 강점은 미리 가진 전제를 본문에 밀어 넣지 않는 것인데, 정작 가장 널리 설교되는 인물 하나에 대해서는 설교 전통이 채워 넣은 상을 그대로 통과시켜 왔다. 절차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절차는 본문에서 관찰되는 것과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을 구별하도록 요구하지만, 무엇을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기는지는 절차 밖에서 온다. 방법이 막아 준다고 여겨지는 오염이 실제로는 방법을 우회한다.
본문을 소리 내어 읽으라는 권고는 이 독법에서 흔히 따라붙는다. 숨을 끊는 자리와 이어 읽는 자리가 구문 단위를 드러내므로 구획을 감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 관찰 자체는 타당하다. 문제는 이 권고에 자주 덧붙는 근거다. 고대에는 띄어쓰기가 없었고 묵독이 불가능했으므로 모든 독서가 낭독이었다는 설명이 그것이다.
이 설명은 1927년 요제프 발로그가 「Voces paginarum」에서 정식화한 것으로, 고대에 묵독은 드물었고 놀라움을 자아냈으며 카이사르나 암브로시우스 같은 예외적 인물에게나 가능했다는 주장이었다. 이 견해는 1968년 버나드 녹스가 발로그가 든 증거들을 하나씩 검토하며 흔들었고, 1997년 Classical Quarterly에 실린 알렉산드르 가브릴로프와 마일스 버니엇의 논문들이 결정적으로 뒤집었다. 오늘날의 정리는 이렇다. 충분히 문식(文識)을 갖춘 고대 독자가 묵독하려 할 때 인지적 장애는 없었고, 묵독은 특별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암브로시우스의 묵독을 두고 남긴 유명한 대목도 묵독의 불가능성이 아니라 다른 사정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그렇다고 낭독의 중요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근거가 달라진다. 고대에 낭독이 지배적이었던 이유는 묵독이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낭독이 저작물의 표준적인 유통·수용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사본은 비쌌고 공유는 필수였으며, 텍스트는 개인의 눈이 아니라 모임의 귀에 도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요한복음처럼 회중을 염두에 두고 쓰인 문서라면 낭독은 저자가 상정한 수용 형식에 가깝다. 이 근거는 앞의 것보다 약하지 않고, 무엇보다 사실이다. 잘못된 근거로 옳은 권고를 지탱하면 근거가 무너질 때 권고까지 함께 무너진다.
지금까지 본 것을 모으면 책 단위 독법의 성과와 한계가 같은 자리에서 나온다는 점이 드러난다. 성과는 분명하다. 장절이 만든 인위적 경계를 걷어내면 2장에서 4장까지가 가나에서 가나로 닫히는 단위로 보이고, 절기마다 반복되는 예루살렘 왕복이 하나의 조직 원리로 떠오르며, 성전 정화 직후에 놓인 니고데모 이야기의 배치가 우연이 아님이 보인다. 이런 관찰은 한 구절씩 읽어서는 나오지 않는다.
한계도 같은 자리에서 나온다. 표지를 따라가면 구획이 하나로 정해질 것 같지만, 표적을 세는 격자와 절기를 세는 격자는 서로 다른 구획을 만들고 봉합선에서 충돌한다. 목적 진술은 존재하지만 그 문장의 시제부터 사본이 갈리고, 갈린 결과가 독자층 문제를 좌우한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본문이 아니라 완전수 관념이 채운 것이고, 여인의 평판은 본문이 아니라 설교 전통이 채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 방법이 실제로 하는 일은 해석의 결론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본문이 말하는 지점과 해석이 시작되는 지점의 경계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첫째와 둘째만 번호가 붙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람은 일곱이라는 숫자를 쓸 때 자기가 무엇을 채워 넣고 있는지 안다. 4장에 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사람은 여인을 죄인이라 부를 때 그것이 본문이 아님을 안다. 20장 31절이 사본에서 갈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목적 진술로 전체를 읽을 때 자기가 어느 독법을 택했는지 안다.
주석서를 언제 볼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도 여기서 다시 정리된다. 자기 판단을 먼저 세워 두어야 남의 판단과 대조가 가능하다는 순서상의 이유는 성립한다. 그러나 판단이 개입한 자리를 스스로 표시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먼저 읽든 나중에 읽든 대조할 것이 없다. 통독이 주는 것은 결론이 아니라 자기 결론의 출처에 대한 목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