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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사

리추얼의 어원부터 한국의 '리추얼 라이프'까지 공동체가 부과하던 의례가 개인이 설계하는 자기관리로 뒤집힌 과정

리추얼이라는 말은 원래 개인이 고를 수 없는 행위를 가리켰다. 공동체가 물려주고, 효과를 겨냥하지 않으며, 정해진 순서를 그대로 따라야 하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이 말은 정반대의 것을 가리키게 되었다. 개인이 스스로 고르고, 효과를 겨냥하며, 달성률로 채점받는 습관이다. 이 뒤집힘은 번역의 실수가 아니라 선택의 결과다.

매일 마시는 물 한 잔이 리추얼이 되는 조건

한국에서 리추얼이라는 말이 쓰일 때, 그 말을 설명하는 방식은 대체로 하나로 수렴한다. 저녁을 먹고 30분 걷는 것은 습관이지만, 그 30분 동안 하루를 되짚고 생각을 정리한다면 리추얼이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시는 것은 습관이지만, 그 한 잔에 오늘을 시작한다는 뜻을 얹으면 리추얼이다. 행동은 같고, 그 행동에 의미를 부여했는지가 둘을 가른다는 설명이다.

깔끔한 구분이다. 문제는 이 구분이 어디에서도 유래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영어 ritual의 사전 뜻풀이에는 '의미 부여'라는 조건이 없다. 이 말을 100년 넘게 연구해 온 인류학과 종교학에도 그런 기준은 없다. 오히려 이 학문들이 리추얼에 대해 합의한 것에 가까운 명제는 정반대다. 리추얼은 수행자가 무엇을 느끼든 상관없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어의 '리추얼'은 영어 ritual의 번역어가 아니다. 같은 철자를 빌렸을 뿐 다른 개념이다. 이 글은 그 다른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추적한다. 먼저 원래의 말이 무엇을 가리켰는지 확인하고, 그 뜻이 400년 동안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핀 뒤, 2010년대 한국에서 무엇이 떨어져 나가고 무엇이 남았는지를 본다.

로마의 법정과 신전에서 쓰이던 '검증된 방식'

ritual은 라틴어 형용사 ritualis에서 왔고, 그 어근은 명사 ritus다. ritus는 고대 로마의 법률 용어이자 종교 용어였고, 뜻은 '올바르게 수행하는 방식', '입증된 절차'였다. 로마인들이 조상 대대로 내려온 관습을 가리키던 말인 mos와 짝을 이루었다. 즉 어원 단계에서 이 말이 지시한 것은 마음가짐이 아니라 절차의 정확성이었다.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경건한지는 이 단어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순서를 틀리지 않았는지가 관심사였다.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산스크리트어 ṛtá(리타)와의 관련성이 거론된다. 인도의 가장 오래된 종교 문헌인 베다에서 리타는 '눈에 보이는 질서', 즉 우주와 인간사가 마땅히 따라야 할 규칙적 구조를 뜻했다. 계절이 순서대로 오고, 별이 정해진 길을 지나가고, 사람이 제 자리를 지키는 그 전체 짜임새다. 이 연결이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뜻의 방향은 라틴어 ritus와 같다. 개인의 내면이 아니라 바깥에 이미 놓여 있는 질서를 가리킨다.

영어에 ritual이라는 낱말이 처음 기록된 것은 1570년이고, 1600년대에 자리를 잡으면서 두 가지를 뜻하게 된다. 하나는 예배를 집전하는 정해진 순서, 다른 하나는 그 순서를 적어 놓은 책이다. 오늘날 감각으로는 두 번째 뜻이 낯설다. 리추얼이 행동이 아니라 사물이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기 영어 화자들에게는 그쪽이 더 자연스러운 용법이었다.

1614년, 교구마다 제각각인 예식을 없애려고 만든 책

그 책의 대표 사례가 1614년에 나온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로마 예식서(Rituale Romanum)다. 교황 바오로 5세가 1614년 6월 17일 사도헌장 Apostolicae Sedis로 반포했다. 사제가 집전하는 세례·혼인·병자 도유·장례·축복·구마 등, 미사 경본과 성무일도서에 담기지 않은 모든 예식의 문구와 동작을 규정한 책이다.

이 책이 나온 배경이 중요하다. 16세기 중반 가톨릭 교회는 종교개혁에 대응해 트렌트 공의회(1545~1563)를 열었고, 그 결론 가운데 하나가 전례의 통일이었다. 그때까지 서유럽의 예식은 교구마다 달랐다. 지역 관습이 섞여 들어갔고, 같은 세례식도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북부에서 문구가 달랐다. 공의회 이후 로마는 미사 경본(1570), 성무일도서(1568), 주교 예식서(1595) 같은 책을 차례로 표준화했고, 사제용 예식서가 마지막으로 1614년에 나온 것이다.

이 단어가 태어난 목적

영어 ritual이 '책'이라는 뜻을 얻은 그 자리에서, 책의 존재 이유는 지역마다 다른 방식을 없애는 것이었다. 리추얼이라는 말은 '나만의 방식'을 허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금지하기 위해 유통되기 시작했다.

이 대비는 나중에 다시 살펴볼 지점이다. 2020년대 한국에서 이 말과 가장 자주 붙어 다니는 수식어가 '나만의'이기 때문이다.

브리태니커가 140년 만에 항목을 다시 쓰면서 바뀐 것

말의 뜻이 언제 어떻게 옮겨 갔는지는 사전과 백과사전을 시대순으로 늘어놓으면 드러난다. 이 작업을 한 사람이 탈랄 아사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공부한 인류학자로, 지금은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 명예교수다. 그는 종교와 세속이라는 범주 자체가 근대 유럽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산물이라고 주장해 온 학자이고, 1993년 저서 『종교의 계보들』(Genealogies of Religion)에 「리추얼 개념의 계보를 향하여」라는 장을 실었다. '계보'라는 말은 어떤 개념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특정 시기에 특정한 이유로 조립되었음을 드러내는 작업을 뜻한다.

아사드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ritual 항목을 판본별로 훑은 결과는 이렇다.

1910년의 이 정의가 오늘날 리추얼이라는 말에서 떠올리게 되는 것의 직접적인 조상이다. 종교에 국한되지 않게 되었고, 국기 게양이든 악수든 반복되고 상징적이면 리추얼이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 아침 물 한 잔에 이 말을 붙이는 것도 이 계보 안에 있다.

그런데 1910년의 정의에는 조건이 하나 딸려 있었고, 이 조건이 이 글의 핵심이다. 리추얼은 상징적 행위이며, 기술적 행위와 구별된다는 조건이다.

효과를 겨냥하지 않는다는 조건

'기술적 행위'는 목표한 결과를 실제로 만들어 내는 행위를 말한다. 못을 박으려고 망치를 휘두르는 것, 열을 내리려고 해열제를 먹는 것이다. 20세기 초 인류학이 리추얼을 정의하면서 세운 경계선이 바로 여기였다. 영국 인류학자 A. R. 래드클리프브라운은 1939년에 이를 명시적으로 적었다. 의례적 행위는 기술적 행위와 달리 언제나 표현적이거나 상징적인 요소를 지닌다는 것이다.

같은 시기 폴란드 출신 인류학자 브로니스와프 말리노프스키는 다른 각도에서 같은 경계를 그었다. 그는 인간이 기술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리추얼을 쓰지 않는다고 보았다. 지식과 통제력에 메울 수 없는 틈이 생기는데도 그 일을 계속해야 할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주술과 의례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가 관찰한 트로브리안드 제도 어민들은 잔잔한 석호에서 고기를 잡을 때는 아무 의례도 하지 않았지만, 위험한 먼바다로 나갈 때는 정교한 의례를 치렀다.

이 조건을 지금 한국의 용법에 겹쳐 보면 어긋남이 곧바로 드러난다. 한국에서 리추얼이라 불리는 것들 — 새벽 기상, 하루 물 2리터, 감사 일기, 스트레칭, 독서 30분 — 은 하나같이 결과를 겨냥한 기술적 행위다. 자기효능감을 높이고, 체력을 기르고, 집중력을 회복하고, 궁극적으로는 성과를 내기 위한 것이다. 효과가 없다면 그만둘 이유가 되는 종류의 행위다. 1910년 브리태니커가 리추얼의 범주에서 명시적으로 밀어낸 바로 그 영역이다.

같은 낱말, 반대쪽 범주

서양 학술 전통에서 리추얼은 효과를 겨냥하지 않기 때문에 리추얼이었다. 한국의 리추얼은 효과를 겨냥하기 때문에 리추얼이라 불린다. 두 용법은 같은 지점에서 정확히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공동체가 부과하고 개인은 고르지 못한다

20세기 인류학이 리추얼을 두고 축적한 답은 대체로 집단에 관한 것이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1912년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종교 의례의 본질을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동작을 함께 반복할 때 발생하는 집단적 고양 상태에서 찾았다. 그 고양이 사회를 결속시키고, 사람들은 그 힘을 신이라고 부른다는 것이 뒤르켐의 설명이었다.

같은 시기 프랑스 민속학자 아르놀드 방 주네프는 1909년에 '통과의례'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출생·성인식·혼인·장례처럼 사람의 신분이 바뀌는 자리에 놓인 의례들이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는 관찰이다. 먼저 이전의 신분에서 분리되고, 다음으로 이도 저도 아닌 중간 상태에 놓이고, 마지막으로 새 신분으로 통합된다.

영국 인류학자 빅터 터너는 1960년대에 이 중간 단계를 파고들어 리미널리티(liminality)라고 이름 붙였다. 라틴어로 문지방을 뜻하는 limen에서 온 말이다. 성인식을 치르는 중인 소년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지만 아직 어른도 아니다. 이 상태에 함께 놓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위와 재산과 신분의 표지가 잠시 지워지고, 터너는 그렇게 생기는 평등한 유대를 커뮤니타스(communitas)라고 불렀다.

터너가 의례에 대해 남긴 규정 가운데 하나는 지금 논의에 특히 날카롭게 걸린다. 그는 의례를 의무를 욕망으로 주기적으로 바꾸는 장치라고 정의했다. 사람은 사회가 요구하는 일을 억지로 하기 마련인데, 의례를 통과하고 나면 그 억지가 하고 싶은 일로 바뀐다는 뜻이다.

한국의 리추얼은 이 변환을 정확히 반대로 수행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서 출발해, 그것을 매일 새벽에 일어나 인증샷을 올려야 하는 의무로 바꾼다.

규율인가 상징인가 — 아사드의 반론

앞의 흐름에 아사드가 붙인 반론도 짚어 둘 만하다. 20세기 중후반 인류학은 리추얼을 '읽어야 할 텍스트'처럼 다루었다. 미국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가 대표적으로, 의례를 해석해야 할 상징 체계로 보았다. 아사드는 이 접근이 중세 수도원 같은 사례 앞에서 무너진다고 지적한다.

수도원 규칙서가 규정한 것은 해석할 상징이 아니라 먹고 자고 일하고 기도하는 구체적 방식이었다. 수도사가 익혀야 했던 것은 의미의 해독이 아니라 몸에 배는 기량과 태도였다. 아사드의 표현을 옮기면, 적절한 수행이란 해석해야 할 모호한 의미가 아니라 권위가 승인한 규칙에 따라 습득해야 할 신체적·언어적 능력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잘라 말한다. 상징은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만, 규율의 실천은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없다. 도덕적 능력을 기르는 일은 표상을 지어내는 일과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종교학자 캐서린 벨은 1992년에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리추얼'이라는 범주 자체를 묻는 대신 의례화(ritualization)라는 과정을 보자고 제안했다. 어떤 행위를 다른 일상적 행위들과 구별되고 특권적인 것으로 만들도록 설계하고 연출하는 방식이 의례화다. 언뜻 한국식 용법과 가까워 보이지만, 벨이 말한 구별 짓기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문화다. 무엇을 특별한 것으로 삼을지를 정하는 권한이 공동체에 있다.

2014년, 한 권의 번역서에서 루틴이 리추얼로 바뀌었다

여기까지가 이 말이 한국에 도착하기 전의 이력이다. 도착 지점은 비교적 또렷하게 짚인다.

미국 편집자 메이슨 커리는 2007년부터 예술가와 학자들의 하루 일과를 모으는 블로그를 운영했다. 블로그 이름은 Daily Routines, 즉 '일상의 반복'이었다. 7년치 수집을 묶어 2013년에 책으로 내면서 제목이 바뀐다. Daily Rituals다. 루틴이 리추얼로 승격된 첫 지점이 여기다.

한국어판은 2014년 1월 26일 책읽는수요일에서 나왔고, 강주헌이 옮겼다. 제목은 원제에서 'Daily'까지 떨어져 나간 『리추얼』이었다. 토머스 홉스부터 무라카미 하루키까지 400년에 걸친 창작자 161명의 하루를 담은 책이다. 하루키가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여섯 시간 일하고 오후에 달리기나 수영을 하고 밤 9시에 잤다는 식의 기록이 이어진다.

이 번역서를 통해 한국어 독자가 '리추얼'이라는 낱말에서 처음 배운 뜻은 이것이었다. 위대한 성취를 낸 사람들이 매일 반복한 개인적 일과. 여기에는 공동체도, 신분의 변화도, 효과를 겨냥하지 않는다는 조건도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그 일과가 걸작을 만들어 냈다는 인과가 책 전체의 전제다.

참고로 커리 본인은 2019년 후속작을 여성 예술가들로 채워 냈는데, 그 한국어판 제목은 『예술하는 습관』이었다. 같은 저자의 같은 기획이 한국에서 한 번은 '리추얼'로, 한 번은 '습관'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은 이 말이 아직 굳지 않은 상태였음을 보여 준다.

팬데믹이 이 말에 붙여 준 두 번째 뜻

말이 굳은 것은 2020년과 2021년이다. 그 사이에 몇 가지 일이 겹쳤다.

미국 강연자 할 엘로드가 쓴 『미라클 모닝』은 2016년 2월 22일 한빛비즈에서 한국어판이 나왔다. 김현수가 옮겼고, 출간 첫해에 자기계발서 분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일과가 시작되기 전 이른 시간에 일어나 운동·독서·명상을 한다는 단순한 제안이다. 이 책이 코로나19 유행기에 다시 팔리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 '미라클모닝'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30만 건에 이르렀다는 집계가 2021년에 나왔다. 기상 시각이 찍힌 휴대전화 화면과 운동 인증샷을 올리는 형식이다.

같은 시기 서점 데이터도 움직였다. 예스24가 밝힌 바로는 2020년 북클럽 가입 회원 수가 2019년 대비 57.8% 늘었고, 전자책 내려받기 횟수는 73.2% 늘었다. 2021년 5월 기준 북클럽 이용자의 52%가 20~30대였고, 이용 시간대 1위는 잠들기 직전인 밤 11시대였다.

사업이 붙은 것도 이때다. 밑미(meet me)는 에어비앤비 코리아 출신 마케터들이 2020년 8월에 창업한 플랫폼이다. 심리상담과 요가·명상·글쓰기·달리기 같은 활동을 결합했고, 핵심 상품이 '리추얼 프로그램'이었다. 6~20명 단위로 묶여 한 달 남짓 매일 자기 실천을 기록하고 단체 대화방과 화상회의로 공유하는 방식이며, 각 조에는 '리추얼 메이커'라 불리는 진행자가 배치된다. 2021년 5월 기준 커뮤니티 규모는 2,140여 명, 월 이용료는 7만 원 선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확산된 다른 서비스들은 금전적 강제를 얹었다. 카카오프로젝트100은 100일간 매일 실천을 인증하는 구조에 실천 보증금을 걸게 했고, 완주하면 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금액은 기부할 수 있게 했다. 참가비를 걸고 달성률이 기준에 못 미치면 일부를 돌려주지 않는 방식의 챌린지 앱도 함께 퍼졌다.

2021년 하반기에는 이 흐름이 소비 트렌드 분석의 언어로 정리된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2021년 10월에 낸 『트렌드 코리아 2022』는 열 개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바른생활 루틴이'를 꼽았다. 통제감을 잃은 사람들이 스스로 구조화된 생활을 실천하며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있음을 확인하려 한다는 진단이었다.

학계는 루틴이라 부르고 시장은 리추얼이라 불렀다

『트렌드 코리아 2022』가 이 현상에 붙인 영문 표기는 Routinize Yourself였다. 같은 행위를 두고 소비 연구자들은 '루틴'이라는 말을 골랐고, 이 시장을 만든 쪽은 '리추얼'을 골랐다. 두 낱말 중 무엇을 고르느냐가 무엇을 파느냐를 갈랐다.

다섯 항목에서 뜻이 정확히 뒤집힌다

여기까지의 두 계보를 나란히 놓으면 겹치는 곳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반복된다는 것 하나만 공유하고, 나머지는 전부 어긋난다.

20세기 인류학이 기술한 리추얼과 2020년대 한국에서 리추얼이라 불리는 것
항목인류학이 기술한 리추얼한국에서 쓰이는 리추얼
정하는 사람공동체가 물려주고 개인은 고를 수 없다개인이 직접 고르고 설계한다
겨냥하는 것기술적 성과를 겨냥하지 않는다자기효능감과 성과를 겨냥한다
어겼을 때공동체가 제재하거나 아무 일도 없다인증에 실패하면 참가비를 잃는다
시간의 모양문턱을 넘고 나면 신분이 달라진다매일 반복되지만 신분은 그대로다
실패의 귀속절차의 문제이지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전적으로 본인의 의지 문제가 된다

마지막 항목이 특히 무겁다. 전통 사회에서 의례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절차를 다시 밟거나 다른 의례를 덧붙였다. 개인의 인격이 심판대에 오르지는 않았다. 자기 손으로 설계한 리추얼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규칙을 만든 사람과 지키는 사람과 채점하는 사람이 모두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왜 하필 '리추얼'이었나 — '루틴'이 줄 수 없는 것

같은 행위를 가리키는 한국어 낱말은 이미 여러 개 있었다. 습관, 버릇, 일과, 루틴, 규칙적 생활. 그중 어느 것도 쓰이지 않고 외래어가 채택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습관'과 '버릇'에는 의식하지 않고 몸이 하는 일이라는 함의가 붙어 있다. '루틴'은 더 나쁘다. 이 말에는 이미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하다는 평가가 얹혀 있어서, 반복 자체를 지루함의 동의어로 만들어 버린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감사 일기를 쓰는 일을 '루틴'이라 부르면 그 행위에서 뜻이 빠져나간다.

'리추얼'에는 그 손실이 없다. 이 말에는 400년 동안 종교가 남긴 잔향이 붙어 있다. 성스러움, 경건함, 자기보다 큰 무언가와 이어져 있다는 감각이다. 낱말을 바꾸는 것만으로 같은 행위에 그 잔향이 옮겨붙는다. 물 한 잔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부르는 이름이 그 한 잔을 다르게 만든다.

이 채택 자체가 세속화의 결과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의미를 공급하던 제도 — 종교 공동체, 마을, 대가족, 평생직장 — 가 물러난 자리에서 의미는 개인이 스스로 조달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의미를 조달하려면 의미를 가리키는 어휘가 필요하고, 남아 있는 어휘의 대부분은 종교의 것이다. 그래서 종교를 떠난 사회가 종교의 낱말은 계속 빌려 쓴다. 리추얼은 그 대여 목록에 오른 이름 가운데 하나다.

공교롭게도 이 관찰은 밑미가 회사 이름에 담은 문제의식과도 맞물린다. 창업자는 병리적 문제가 있어야만 심리 상담을 받는다는 인식이 잘못되었으며 예방 차원의 상담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맞는 지적이다. 다만 그 말이 성립하려면, 예방적 돌봄을 무상으로 제공하던 관계망이 이미 사라졌다는 사실이 전제되어야 한다. 리추얼 시장은 그 공백 위에 세워졌다.

효과를 근거로 팔렸는데 그 근거가 철회되었다

한국에서 리추얼을 권할 때 자주 딸려 나오는 근거가 하나 있다. 리추얼이 불안을 낮추고 수행 능력을 높인다는 실험 결과다. 이 주장의 출처는 특정할 수 있다.

2016년 학술지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에 「믿음을 멈추지 마라: 의례는 불안을 낮춤으로써 수행을 향상시킨다」라는 논문이 실렸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앨리슨 우드 브룩스를 비롯해 다섯 개 기관의 연구자 일곱 명이 공저자였다. 실험 절차는 이랬다. 참가자에게 지금 기분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고, 그 위에 소금을 뿌리게 하고, 소리 내어 다섯까지 세게 하고, 종이를 구겨 쓰레기통에 버리게 한다. 그 직후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압박 속에 수학 문제를 풀게 했다.

결과는 인상적이었다. 이 절차를 거친 집단이 실수를 덜 했고, 자기 보고 불안도와 심박수가 모두 낮았다. 그리고 논문의 가장 유명한 발견은 따로 있었다. 똑같은 동작을 시키면서 '무작위 행동'이라고 설명했을 때는 효과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행위가 아니라 그것을 리추얼이라 부르는 이름이 효과를 만든다는 결론이었다.

이 논문은 2024년 11월 철회되었다. 저자들이 직접 편집장에게 철회를 요청했고, 사유는 자체 감사 결과 데이터의 무결성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철회 공지에 따르면 일부 연구는 데이터와 실험 재료가 제출되지 않아 학술지가 더 들여다볼 수 없었고, 공개된 데이터에서는 자연적으로 발생하기 어려운 심박수 값의 연쇄가 발견되었다.

공저자 가운데 한 명인 프란체스카 지노는 부정직 행동을 연구해 온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였다. 2021년 데이터 콜라다라는 연구 검증 블로그가 그의 공저 논문에서 데이터 조작 정황을 제기했고,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18개월 조사는 최소 네 편의 논문에서 연구 부정이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2023년 6월 무급 행정휴직 조치가 내려졌고, 2025년 5월 하버드 코퍼레이션은 그의 종신교수직을 박탈했다. 하버드에서 종신교수직이 박탈된 것은 1940년대 이후 처음으로 알려져 있다. 지노 본인은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철회된 것과 남은 것

이 철회가 '리추얼은 아무 효과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불안과 반복 행동의 관계를 다룬 연구 계보는 말리노프스키 이래로 두껍고, 상실 이후의 애도 의례가 통제감을 회복시킨다는 2014년 연구는 아직 철회되지 않았다. 사라진 것은 가장 널리 인용되던 하나의 실험과, 그 실험이 내놓은 가장 매력적인 명제다.

그 명제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보면 사정이 묘해진다. '같은 행동이라도 리추얼이라 이름 붙이면 효과가 달라진다'는 문장은, 한국에서 습관과 리추얼을 가르는 기준으로 유통되어 온 바로 그 논리다. 저녁 산책은 그대로인데 의미를 얹으면 리추얼이 된다는 설명과 구조가 같다. 이 개념을 뒷받침하던 실험적 근거가 사라졌다고 해서 그 실천이 무가치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효과를 근거로 이 말을 파는 방식은 근거를 하나 잃었다.

개인이 만든 리추얼이 다시 회사가 시키는 것이 되었다

이 말의 한국 내 이력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최근의 방향 전환이다. 개인화의 극단에서 출발한 개념이 다시 집단으로 돌아갔다.

밑미는 2024년 시점에 기업을 상대로 한 리추얼 프로그램을 판매하고 있었다. 번아웃 상태를 진단하고 해소하는 멘탈케어 리추얼, 구성원 간 소속감을 높이는 팀 본딩 리추얼, 새로운 시도에 대한 자발성을 끌어올리는 리추얼 같은 구성이다. 대림그룹 임직원 대상 프로그램, 샤넬의 컬러 에너지 프로그램과 인생숲 프로그램, 네이버와 진행한 MBTI 프로그램, LG전자 서비스센터의 감정 연결 프로그램이 사례로 제시되었다.

형식만 보면 뒤르켐이 기술한 것과 닮았다. 여러 사람이 같은 시각에 같은 절차를 함께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결속이 생긴다. 그러나 부과하는 주체가 다르다. 뒤르켐의 의례를 부과한 것은 개인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개인이 죽은 뒤에도 남을 공동체였다. 기업 리추얼을 부과하는 것은 고용계약의 상대방이다. 참여자가 그 자리를 떠나면 관계도 끝난다.

이 차이는 터너의 커뮤니타스 개념에서 더 선명해진다. 커뮤니타스가 성립하는 조건은 지위와 서열의 표지가 잠시 지워지는 것이었다. 사내 프로그램에서는 그 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 팀장은 여전히 팀장이고, 프로그램 참여도가 인사 평가와 무관하다는 보장도 없다. 형식은 의례를 빌렸으나 그 형식이 원래 작동하던 조건은 옮겨 오지 않았다.

말을 퍼뜨린 사람들이 어디에 서 있었는지도 이 개념의 모양을 설명한다. 한국에서 리추얼이라는 말을 유통시킨 주된 통로는 종교 기관도 인류학계도 아니었다. 출판사, 브랜드 마케터 출신 창업자, 구독형 플랫폼, 뷰티·웰니스 업계였다. 이런 위치에서는 상품이 될 수 있는 속성이 부각되고 상품이 될 수 없는 속성은 조용히 빠진다. 개인이 고를 수 있다는 점은 부각된다. 그래야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효과가 있다는 점도 부각된다. 그래야 값을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동체가 부과한다, 대가 없이 주어진다, 효과를 겨냥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는 하나같이 상품화를 가로막는 속성이고, 정확히 이 셋이 한국어 '리추얼'에서 탈락했다.

스스로 정하고 스스로 채점하는 의례는 위로가 되기 어렵다

지금까지의 추적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한국의 리추얼은 원어의 오역이 아니라 정교한 선별이다. 종교적 후광은 가져오고 종교적 구속은 버렸다. 반복이라는 형식은 가져오고 그 형식이 놓여 있던 공동체는 버렸다. 의미가 있다는 감각은 가져오고 의미를 보증해 주던 권위는 버렸다.

문제는 버린 쪽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는 데 있다. 의례가 불안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그 절차가 수행자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정하지 않았으므로 취향이 심사받을 일이 없었고, 본인이 만들지 않았으므로 실패해도 설계가 틀린 것이 아니었으며, 같은 절차를 밟는 사람이 곁에 있었으므로 혼자 감당할 일도 아니었다. 말리노프스키가 의례를 통제 밖의 영역에 나타나는 것으로 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제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의례는 수행자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 주는 장치였다.

스스로 설계하고 스스로 채점하는 리추얼은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지 못한 아침은 통제 밖의 사건이 아니라 자기 관리 실패의 기록이 된다. 인증에 실패하면 돈이 빠져나가고, 단체 대화방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기록이 남는다. 불안을 덜기 위해 만든 장치가 새로운 평가 항목이 되는 구조다. 리추얼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서 이 구조가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고 새벽에 일어나 일기를 쓰는 일을 그만둘 이유는 없다. 그것은 좋은 습관이고, 좋은 습관은 그 자체로 값이 있다. 다만 그 실천이 무엇을 줄 수 있고 무엇을 줄 수 없는지는 나누어 보는 편이 낫다. 규칙적인 생활은 체력과 집중력을 준다. 성스러움이나 소속감이나 자기 존재의 정당화는 주지 않는다. 그것들은 원래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4세기 전부터 다른 사람이 써 놓은 책을 펴 놓고 따라 했던 것이다.

1614년의 로마 예식서가 사제들에게 요구한 것은 창의성이 아니라 순종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리추얼이라 불리는 것이 요구하는 것은 순종이 아니라 창의성이다. 나만의 방식을 찾고, 나에게 맞는 시간을 설계하고,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라고 한다. 그 요구가 자유롭게 들리는 만큼, 실은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 늘어난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같은 낱말이 400년 사이에 정확히 반대편으로 건너온 사정이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