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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의 경계선

'진화론은 과학, 창조론은 종교'는 누가 판정했나

대중이 상식으로 공유하는 이 분류는 과학철학이 내린 결론이 아니다. 1980년대 미국 헌법 재판이 국교금지조항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남긴 문장이며, 그 법적 토대는 2022년 이후 흔들리고 있다.

2026년 8월 11일

이 문장은 교과서 논쟁이든 저녁 식탁의 말다툼이든 거의 언제나 같은 형태로 등장한다. 진화론은 과학의 영역에 속하고 창조론은 신앙의 영역에 속하므로, 둘을 같은 교실의 같은 시간에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범주를 어긴다는 것이다. 이 분류가 어디서 왔는지를 따라가면, 출처는 실험실도 아니고 과학철학 학술지도 아니다. 미국 연방법원의 판결문이다.

01한 문장에 세 개의 명제가 들어 있다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종교"라는 말은 하나의 주장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성격이 다른 세 명제가 붙어 있다. 첫째, 진화생물학은 과학의 방법으로 작동한다. 둘째,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다. 셋째, 창조 교리는 종교의 관할에 속한다.

첫째와 셋째는 거의 다투어지지 않는다. 진화생물학이 과학인 이유는 판결이 아니라 연구가 댄다. 화석 기록, 분자시계, 항생제 내성의 실시간 관측, 유전체 비교가 서로 독립적으로 같은 계통을 가리키고, 어긋나면 수정된다. 창조 교리가 종교에 속한다는 것도 신학 쪽에서 먼저 인정한다. 창조는 신앙고백의 첫 항목이지 실험 보고서의 항목이 아니다.

실제로 다투어진 것은 둘째뿐이다. 그리고 둘째를 공식적으로 판정한 주체는 과학자 사회도, 과학철학자들도 아니었다. 미국 연방법원이었다. 더 정확히는, 법원이 답해야 했던 질문은 애초에 "이것이 과학인가"가 아니라 "국가가 특정 종교를 세우는 행위인가"였다. 과학 여부는 그 헌법 판단을 위해 소환된 부차적 쟁점이었는데, 대중의 기억에는 부차적 쟁점만 남고 본래 질문이 사라졌다.

02법정이 과학의 정의를 적었다

순서를 되짚으면 이렇다. 1925년 테네시주 버틀러법은 공립학교에서 인간의 진화를 가르치는 것을 금지했고, 존 스콥스는 이를 시험하기 위한 재판에서 유죄 판결과 벌금을 받았다. 1968년 연방대법원은 엡퍼슨 대 아칸소 사건에서 이런 종류의 진화 교육 금지법을 위헌으로 판단했다. 금지가 막히자 전략이 바뀌었다. 진화론을 빼는 대신 창조론을 같이 넣는 방식, 이른바 균형 취급이다.

1981년 아칸소주는 '창조과학과 진화과학의 균형 취급에 관한 법률'(Act 590)을 통과시켰다. 공립학교가 진화과학을 가르치면 창조과학도 같은 비중으로 가르치도록 한 법이다. 법안의 원형은 창조과학연구소(ICR) 쪽에서 마련한 모델안이었고,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한 단체를 통해 여러 주로 배포되었다. 소송이 제기되었고, 1982년 1월 5일 윌리엄 오버턴 판사는 이 법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판결문은 창조과학이 과학이 아니라고 단정하면서 과학의 본질적 특징 다섯 가지를 열거했다. 자연법칙에 의해 인도될 것, 자연법칙을 참조해 설명할 것, 경험 세계에 대해 검증 가능할 것, 결론이 잠정적일 것, 반증 가능할 것. 이 다섯 줄이 그 뒤 40년 동안 대중이 "과학의 정의"로 인용하게 되는 목록이다.

판결문이 답한 질문과 대중이 읽은 질문

Act 590이 위헌인 근거는 당시 통용되던 레몬 기준의 첫 항목, 즉 입법에 세속적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요건이었다. 창조과학의 정의 조항이 무에서의 창조와 전 지구적 홍수를 명시하고 있었으므로, 재판부는 그것이 창세기 서사를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판결의 축은 종교 여부였고 과학 여부는 그 판단을 보강하는 장치였다. 대중에게 유통된 요약은 정확히 그 반대다. "법원이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라고 판정했다."

다섯 줄이 판결문에 들어간 경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기준은 재판부가 독자적으로 구성한 것이 아니라 원고 측 전문가로 증언한 과학철학자 마이클 루스의 진술에서 나왔다. 소송 전략은 선명한 경계선을 요구했다. 창조과학이 "다소 부실한 과학"이라는 결론으로는 국교 수립 논증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그것이 과학의 바깥에 있다는 판정이었고, 법정은 그 판정을 받아 적었다.

03철학자들은 그 다섯 줄을 승인하지 않았다

판결이 나온 해에 과학철학자 래리 라우든이 반론을 냈다. 요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 다섯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면 물리학의 상당 부분도 과학의 자격을 잃는다는 것이다. 이론이 잠정적이어야 한다는 요건이나 개별 명제가 반증 가능해야 한다는 요건은 실제 과학 활동을 설명하지 못한다. 다른 하나가 더 날카로웠다. 창조과학의 문제는 검증 불가능하다는 데 있지 않고, 검증 가능한 주장을 여럿 내놓았는데 그것들이 이미 반증되었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젊은 지구, 전 지구적 홍수에 의한 지층 형성, 종의 고정성은 모두 경험적으로 다툴 수 있는 명제다. 그리고 방사성 연대측정, 층서학, 대륙별 화석 분포, 유전체 데이터가 그것들과 어긋난다. 라우든의 지적은 창조과학을 "비과학"으로 규정하는 순간 이 반증의 기록이 논의에서 빠져 버린다는 것이었다. 범주에서 밀어내면 틀렸다는 사실을 보여줄 자리가 사라진다. 루스는 재판이라는 실무적 상황에서 판사가 쓸 수 있는 기준이 필요했다는 취지로 응수했고, 논쟁은 결론 없이 남았다.

반증가능성이라는 잣대의 이력

대중 담론에서 경계선의 근거로 가장 자주 소환되는 반증가능성은 칼 포퍼의 것이다. 그런데 포퍼 자신은 1970년대 중반 자서전에서 다윈주의를 검증 가능한 과학 이론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연구 프로그램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1978년 학술지 Dialectica에 실은 논문에서 그 판단을 철회했다. 자연선택 이론의 검증 가능성과 논리적 지위에 대해 생각을 바꾸었으며 철회할 기회를 얻어 기쁘다고 적었다. 즉 대중이 창조론을 밀어내는 데 쓰는 잣대는, 그 잣대를 만든 사람이 한때 진화론에 들이댔다가 스스로 거둬들인 도구다.

여기서 갈라지는 것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질문이다. 하나는 과학철학의 구획 문제, 즉 과학과 비과학을 나누는 일반 기준이 존재하는가다. 이 질문은 지금도 합의된 답이 없다. 다른 하나는 헌법 문제, 즉 주 정부가 공립학교 교육과정에 특정 종교의 교리를 넣는 것이 허용되는가다. 이 질문에는 미국에서 확립된 답이 있었다. 대중이 쓰는 한 문장은 이 둘을 하나로 뭉쳐 놓았고, 그래서 답이 없는 질문에 답이 있는 질문의 확신을 빌려 쓰게 되었다.

04'창조론'이 젊은 지구를 뜻하게 된 것은 1961년 이후다

대립 구도가 성립하려면 조용한 전제 하나가 필요하다. '창조론'이라는 말이 지구 연대 1만 년과 전 지구적 홍수를 뜻한다는 전제다. 이 전제는 기독교 교리의 오래된 표준이 아니라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20세기 초 반진화 운동의 주역들은 지구가 오래되었다는 지질학의 결론을 대체로 받아들였다. 스콥스 재판에서 검사석에 앉았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에게 창세기의 '날'은 긴 지질학적 시대를 뜻했다. 젊은 지구를 주장한 것은 소수였고, 그중 가장 체계적인 인물은 캐나다 태생의 재림교인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였다. 프라이스는 재림교 창시자 엘렌 화이트의 창조 주간 이해를 자기 입장으로 삼아, 지층 대부분이 노아 홍수의 산물이라는 홍수지질학을 구성했다. 그의 견해는 생전에는 창조론자들 사이에서도 주류가 아니었다.

계보를 따라가 보면 오늘날 한국에서 '창조론'이라 불리는 것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 일반의 창조 교리가 아니라, 미국의 특정 시기·특정 갈래에서 형성되어 1980년대에 수입된 운동이다. 가톨릭교회, 성공회, 루터교, 주류 장로교와 감리교는 이 입장을 교단 차원에서 채택하지 않았고, 창조 교리를 지구 연대 문제와 분리해 다룬다.

이 사실이 대립 구도를 흔든다. "진화론 대 창조론"이라는 이항 대립이 성립하려면 창조 교리 전체가 홍수지질학과 같은 것이어야 하는데, 실제 신자 인구의 분포는 그렇지 않다.

37%
신이 1만 년 이내에 현재 형태의 인간을 창조했다 — 이른바 엄격한 창조론
34%
인간은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했으나 신이 그 과정을 인도했다
24%
인간은 진화했고 신은 그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

미국 갤럽, 2024년 5월 성인 1,024명 조사. 1982년 조사 개시 이래 첫 항목은 최저치, 셋째 항목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 칸의 분포가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 성인의 약 71%는 인간의 기원에 신이 어떤 방식으로든 관여했다고 답하지만, 그중 절반가량은 동시에 진화를 받아들인다. 이 34%는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라는 질문지의 어느 칸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대립 구도는 실제 신념 분포가 아니라 공교육 교실을 두고 벌어진 분쟁의 구도를 그린 것이다.

05이름을 바꾼 흔적이 문서로 남았다

아칸소주는 항소하지 않았고, 같은 취지의 루이지애나주 법이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다. 1987년 6월 에드워즈 대 아길라드 판결에서 대법원은 7 대 2로 이 법을 위헌으로 판단했다. 논거는 다시 세속적 목적의 결여였다. 학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판결 몇 달 뒤부터 한 교과서의 원고가 고쳐지기 시작했다. 1989년에 『판다와 사람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는 이 책은 원래 '창조 생물학'이라는 제목의 이분 모델 교재였다. 2005년 도버 재판 과정에서 출판사가 소환에 응해 제출한 초고들을 비교한 결과, 1987년을 경계로 '창조론자'와 '창조론'이라는 단어가 '지적설계 지지자'와 '지적설계'로 일괄 치환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치환이 어긋난 한 지점에는 두 단어가 겹쳐진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2005년 12월 20일 도버 지역 학교구 사건에서 존 존스 3세 판사는 지적설계를 과학으로 가르치는 것이 국교금지조항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원고 측이 제시한 결정적 자료가 바로 그 초고 비교였고, 1990년대 후반 유출된 디스커버리연구소 내부 문서가 운동의 목표를 유물론적 과학의 대체로 서술한 것도 함께 제시되었다.

문서 하나가 논증 검토를 대신하게 된 자리

초고 비교는 강력한 증거였다. 이름만 바꿨다는 것이 문서로 증명되면 그 안에 담긴 논증을 하나하나 검토할 필요 없이 분류가 끝난다. 실제로 대중 담론에서 지적설계에 대한 대응은 그 뒤로 대부분 이 형태를 취했다.

편리함에는 대가가 따랐다.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같은 개별 주장이 왜 성립하지 않는지를 설명하는 습관 대신, 출처를 지목해 분류를 종결하는 습관이 자리 잡았다. 논증의 내용이 아니라 발화자의 계보로 판정하는 방식은 이번에는 옳은 답을 냈지만 다음에도 옳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절차다.

2025년 12월 애리조나주 상원에서 데이비드 판스워스 의원이 발의한 SB 1025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가르치는 공립학교가 지적설계도 함께 가르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발의자는 지적설계가 창조론의 다른 이름이며 자기 뜻대로라면 그냥 창조론이라 부르겠다고 언론에 밝혔고, 지적설계를 뒷받침하는 과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법안은 2026년 2월 20일 교육위원회 심사 시한이 지나면서 폐기되었다.

발의자의 발언은 40년간의 명칭 전략이 무엇에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역으로 보여준다. 이름을 바꾸는 방식이 법적으로 작동하려면 아무도 그 말을 소리 내어 하지 않아야 했다. 소리 내어 하는 순간, 세속적 목적 요건을 통과할 수 없는 입법 의도가 기록으로 남는다.

06자연주의를 방법으로 한정하자고 제안한 쪽은 복음주의 철학자였다

경계선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개념이 방법론적 자연주의다. 과학은 자연적 원인만을 설명 자원으로 사용한다는 규칙이며, 창조과학이 과학의 자격을 얻지 못하는 이유로 흔히 제시된다. 그런데 이 용어의 출처는 세속 진영이 아니다.

'방법론적 자연주의'라는 표현은 1983년 학회 발표에서 처음 쓰였고 1986년 Christian Scholar's Review에 실린 논문으로 정식화되었다. 이 개념을 제안한 사람은 미국 복음주의 교육의 중심지인 휘튼 칼리지의 철학자 폴 드브리스다. 그는 신의 존재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학문적 방법으로서의 자연주의와, 초월적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형이상학적 자연주의를 구별했다. 목표는 학생들에게 창조과학과 과학주의 양쪽 모두와 다른 제3의 자리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 구별이 대중 담론에서는 양쪽에서 무너진다. 한쪽은 과학이 신을 설명 변수로 쓰지 않는다는 방법상의 제한을 신이 없다는 선언으로 읽고, 그래서 과학 교육 자체를 무신론 교육으로 규정한다. 다른 쪽은 방법상의 제한을 형이상학적 결론으로 확장해, 과학이 다루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로 옮겨 간다. 두 오독은 서로를 강화한다. 후자가 실제로 발화될수록 전자의 우려가 근거를 얻기 때문이다.

철학적 반론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앨빈 플랜팅가는 1997년 논문에서, 유신론자가 세계에 대해 아는 바를 탐구에서 배제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 물음에 대한 표준적 답변은 방법론적 자연주의가 형이상학적 주장이 아니라 작업 규약이라는 것이다. 규약이 산출한 결과가 계속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지, 규약 자체가 증명된 적은 없다. 이 사실은 어느 쪽에도 유리하지 않다. 규약이 정당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대안 규약이 정당화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07한국은 판결 없이 같은 선을 그었다

한국에는 국교금지조항을 둘러싼 판례가 없다. 그런데도 같은 분류가 통용된다. 경계선이 어떻게 그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2012년에 있었다.

2011년 12월 5일,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가 교육과학기술부에 청원서를 냈다.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종이 아니므로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서 삭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고교 과학 교과서는 인정도서였으므로 청원은 출판사 일곱 곳으로 전달되었고, 출판사들은 집필진의 의견을 받아 해당 서술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겠다고 회신했다. 이듬해 봄에는 말의 화석 계열이 상상의 산물이라는 두 번째 청원이 접수되었고, 여러 출판사가 이를 받아들였다.

여기까지는 청원 절차가 정상적으로 작동한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심사 구조에 있었다. 인정도서 수정 요청은 과학적 타당성을 판정하는 관문을 거치지 않고 출판사와 집필자 개인의 판단으로 처리되었다. 한 출판사 담당자는 명백한 오류는 아니지만 계속 문제 제기가 들어오니 삭제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판정 기준이 내용의 타당성이 아니라 민원의 지속성이었다는 뜻이다.

보도 이후 상황이 뒤집혔다. 한국생물과학협회는 청원의 과학적 타당성이 없다는 반박 청원을 냈고, 생물학연구정보센터가 6월에 공식 반론문을 냈다. 서울시교육청과 한국과학창의재단의 협의를 거쳐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검토를 맡았고, 2012년 9월 5일 진화론 내용 수정·보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진화론은 현대 과학의 핵심 이론이며 모든 학생이 배워야 한다는 것, 시조새는 수각류 공룡에서 현생 조류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화석이라는 것, 종의 진화는 직선형이 아니라 관목형이라는 것이 골자였다. 교과부는 이를 받아 삭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같은 결론, 다른 지지대

미국에서 경계선을 그은 것은 헌법 재판이었고, 한국에서 그은 것은 학술 권위기관의 의견이었다. 결론은 같아 보이지만 지지대의 성격이 다르다. 판례는 선례로 남아 다음 사건을 미리 규율하지만, 전문가 협의체의 가이드라인은 그런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의 경계선은 교육과정이 개정될 때마다 같은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2012년에 작동한 것은 제도가 아니라 사후에 동원된 학계의 반발이었고, 그 반발이 다음번에도 같은 속도로 조직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같은 해 7월 한국갤럽이 성인 613명에게 물은 결과도 함께 볼 만하다. 시조새 내용이 교과서에 계속 실려야 한다는 응답이 42%, 삭제해야 한다가 19%였는데, 모름이나 의견 없음이 39%였다. 창조론을 지지한다고 답한 응답자 중에서도 존치가 33%로 삭제 29%보다 많았고, 개신교 신자에서는 존치 30%와 삭제 31%가 팽팽했다.

39%라는 무응답 비율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중이 "진화론은 과학, 창조론은 종교"라는 명제를 신념으로 보유하고 있다기보다, 그 다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상태에 가깝다는 뜻이다. 신념은 근거를 요구하면 근거가 나오지만, 관여 회피는 압력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밀린다. 2012년 초에 출판사들이 손쉽게 삭제를 결정한 것이 그 예다.

08레몬 테스트가 폐기된 뒤 남은 것

맥린과 에드워즈 판결이 딛고 선 것은 1971년 레몬 대 커츠먼 사건에서 나온 세 갈래 기준이었다. 세속적 목적이 있을 것, 주된 효과가 종교를 진흥하거나 억제하지 않을 것, 정부와 종교의 과도한 얽힘이 없을 것. 창조과학 관련 판결은 모두 첫 항목에서 결론이 났다.

2022년 6월 27일 연방대법원은 케네디 대 브레머턴 학교구 사건에서 6 대 3으로, 법원이 이미 오래전에 레몬 기준과 그 파생인 승인 기준을 버렸다고 선언했다. 대신 국교금지조항은 역사적 관행과 이해를 참조해 해석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반대의견을 낸 세 명의 대법관도 이를 레몬 판례의 폐기로 읽었다.

이 변화가 창조론 판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시험대가 된 것은 2024년 6월 루이지애나주가 제정한 십계명 교실 게시 의무화법이다. 하급심은 세속적 목적 요건이 케네디 판결 이후에도 살아 있다고 보아 위헌으로 판단했고, 제5연방항소법원 3인 재판부도 2025년 6월 같은 결론을 냈다. 그러나 그해 10월 전원합의체 재심리가 결정되면서 이 의견은 실효되었고, 전원합의체는 2026년 2월 20일 12 대 6으로, 게시물이 아직 원고 측 교실에 붙지 않았으므로 판단하기에 이르다며 하급심의 가처분을 취소했다.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은 내려지지 않은 채 법은 시행 단계로 넘어갔다.

판단이 갈리는 대목은 하나로 좁힌 뒤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세속적 목적 심사가 독립된 요건으로 살아남는지 여부다. 살아남는다면 1987년 에드워즈 판결의 논리는 그대로 유지된다. 반대로 목적 심사가 역사적 관행 심사에 흡수된다면, 공립학교 교육과정에 관한 종교 관련 판례 전반이 재검토 대상이 된다. 후자로 판명되는 신호는 명확하다. 연방대법원이 세속적 목적 요건을 명시적으로 축소하거나, 항소법원들이 목적 심사를 생략한 채 역사적 관행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사례가 누적되는 경우다. 반대로 어떤 판결이든 입법 목적을 독립적으로 심사해 결론을 내린다면 앞의 예상은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한 가지는 달라지지 않는다. 법적 판단이 바뀐다고 해서 창조과학이 과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그 명제는 헌법 판단의 부산물이었고, 그 사실을 놓치면 양쪽 모두 잘못된 승리 선언을 하게 된다. 판례가 유지되면 과학적 정당성이 재확인되었다고 읽고, 판례가 흔들리면 과학적 정당성이 복권되었다고 읽는 것이다. 두 독해 모두 판결문이 애초에 다루지 않은 것을 판결문에서 읽어내려 한다.

09문장의 정확한 크기

추적의 결과를 정리하면 이렇다. 대중이 상식으로 들고 다니는 "진화론은 과학, 창조론은 종교"라는 문장은 1982년 아칸소 지방법원 판결문의 요약본이고, 그 판결문은 과학의 정의를 확정하려고 쓰인 문서가 아니라 주 정부가 특정 종교를 세우지 못하게 하려고 쓰인 문서였다. 판결문에 실린 다섯 줄짜리 과학의 정의는 소송에서 필요했기 때문에 채택된 도구이며, 과학철학계는 당시에도 그것을 승인하지 않았고 지금도 승인하지 않는다.

이 문장을 그대로 들고 다니면 두 가지를 놓친다. 하나는 진화생물학이 과학인 이유를 판결에서 찾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이유는 재판정 바깥에 있다. 화석 기록과 유전체 데이터가 서로 독립적인 경로로 같은 결론을 가리키고, 틀린 예측이 나오면 이론이 수정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 근거는 판례가 바뀌어도 그대로 남는다.

다른 하나는 창조 교리가 종교의 영역인 이유를 소송에서의 패배에서 찾게 된다는 것이다. 창조 교리가 종교에 속하는 것은 그것이 재판에서 졌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다른 종류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세계가 우연이 아니라는 진술은 지층의 형성 연대에 대한 가설이 아니다. 20세기 중반의 특정 운동이 그 진술을 지질학 명제로 번역하기로 결정하면서 두 영역이 겹치는 지대가 만들어졌고, 미국 법원은 그 겹침을 걷어냈다.

겹침을 걷어낸 방식이 정확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창조과학이 내놓은 검증 가능한 주장들이 왜 성립하지 않는지를 설명하는 대신 그것을 과학의 바깥으로 분류한 처리 방식은, 분쟁을 종결시키는 데는 효과적이었고 무엇이 참인지를 이해시키는 데는 그렇지 않았다. 2012년 한국의 청원 국면에서 출판사들이 명백한 오류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삭제 쪽으로 기운 것, 그리고 2026년 미국의 한 주 의회에서 같은 법안이 다시 발의된 것은 분류가 끝난 자리에 설명이 남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