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과학
유추가 곧 사고라고 보는 견해는 25년 동안 인지과학의 바깥쪽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주장을 떠받치는 세 종류의 근거를 발표된 자료까지 따라가 보면, 주장이 요구하는 것보다 자료가 적게 말한다. 그리고 사람과 언어 모델을 같은 유추 문제 앞에 세운 최근 실험들이, 그 주장이 잃어버렸던 시험 조건을 되돌려 놓고 있다.
유추(analogy)는 서로 다른 두 상황에서 같은 뼈대를 알아보는 일을 가리킨다. 신발과 발의 관계가 장갑과 손의 관계와 같다는 것을 알아보는 일이 가장 단순한 형태이고, 도미노가 줄줄이 넘어지는 모습으로 한 나라의 공산화가 이웃 나라로 번지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좀 더 복잡한 형태다. 20세기 후반 인지과학은 이것을 '유추적 추론과 문제해결'이라는 항목 아래 묶어 두었다. 논리적 추론, 기억, 주의, 언어 처리와 나란히 놓인 여러 항목 가운데 하나였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그 분류 자체를 문제 삼았다. 2001년 MIT 출판부에서 나온 논문집 『The Analogical Mind』의 에필로그(499~538쪽)에서 그는 유추를 추론의 한 종류로 취급하는 것이 유추를 심하게 홀대하는 일이라고 썼다. 그가 내놓은 대안은 세 겹이었다. 사람이 가진 모든 개념은 촘촘히 뭉쳐진 유추 다발이고, 생각이란 그 다발 사이를 미끄러지듯 옮겨 다니는 일이며, 다발과 다발 사이를 건너뛰는 그 동작 자체도 유추로 이루어진다. 요컨대 범주화가 곧 유추이고, 인지에서 유추가 아닌 부분은 거의 없다는 주장이다.
글의 성격은 그가 직접 규정해 두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인과의 방향을 뒤집어 보게 만든 것처럼, 익숙한 현상을 보는 시선을 바꾸자고 제안하는 글에 가깝다. 자신의 견해가 지나치게 야심적이고 어쩌면 틀렸을 수도 있다는 단서도 같은 문단에 달아 두었다. 좋은 생각은 처음에 자기 몫보다 넓은 땅을 주장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여전히 크되 처음만큼 모든 것을 포괄하지는 않는 것으로 밝혀진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글이 실린 자리도 눈여겨볼 만하다. 논문집을 엮은 세 사람 가운데 데드리 젠트너와 키스 홀리오크는 유추를 '인지의 한 부분'으로 놓고 그 작동 방식을 모형으로 만들어 온 진영의 대표자였다. 자기 이론이 부정당하는 주장을 책의 마지막 장에 실어 준 셈인데, 그 배치는 그 주장이 학계 안의 경쟁 가설이라기보다 학계를 향한 선언에 가까웠음을 알려 준다. 선언에는 선언의 장점이 있다. 대신 선언은 무엇이 관찰되면 자기가 틀린 것이 되는지를 좀처럼 밝히지 않는다.
아래에서는 그 주장을 떠받치는 세 갈래의 근거를 차례로 따라간다. 낱말이 상황의 이름표라는 관찰, 말실수에서 드러나는 낱말들의 경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사례다. 세 갈래 모두 실제 자료까지 내려가면 주장이 요구하는 것보다 적게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 몇 해 사이에 사람과 기계를 같은 유추 문제 앞에 세운 실험들이 이 논쟁을 다시 잴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놓은 과정을 본다.
첫 번째 근거는 어휘다. 호프스태터가 즐겨 든 예는 '그림자'다. 나무 밑에 생긴 어두운 자국이 그림자다. 산맥 동쪽에 비가 닿지 않아 생긴 건조 지대를 영어에서 '비그늘(rain shadow)'이라 부르는 것도 사전에 실려 있다. 눈이 내린 뒤 나무 밑에만 남은 둥근 맨땅은 '눈그늘'이라 부를 만한데, 눈에 훨씬 잘 띄는데도 이 표현은 흔하지 않다. 어머니가 올림픽 수영 선수였던 딸은 '어머니의 그늘에서' 헤엄치고,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나도 어떤 나라는 '전쟁의 그늘에' 있다. 전쟁으로 특정 세대가 사라진 집단의 인구 분포도 같은 구조를 가진다. 사람의 흐름을 눈송이나 광자의 흐름처럼 보면, 죽음이라는 장애물이 뒤쪽에 남긴 빈자리가 곧 그림자다.
여기서 낱말의 영역은 새 사례가 붙을 때마다 번져 나가는 흐릿한 지대가 된다. 그리고 새 사례를 그 안에 넣는 판단은 매번 두 상황을 겹쳐 보는 일, 즉 유추다.
범주가 명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이 논증에서 가장 힘이 센 대목이다. '아마도'가 어울리는 상황이 따로 있고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따로 있다. 영어의 'well…'이 들어갈 자리를 원어민은 알고 외국인은 자주 틀린다. 그가 이탈리아 연구소 복도에서 겪은 일이 좋은 사례다. 마주 오는 사람에게 Buon giorno와 Salve와 Ciao 가운데 무엇으로 인사할지는 상대의 지위, 친밀도, 지금까지 만난 횟수, 그날의 분위기가 뒤섞여 결정되며, 그 판단은 몇 초 안에 끝나야 한다. 모국어 화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이 판단이 외국어 화자에게는 통째로 드러난다. 낱말이 상황의 이름이라는 것, 그리고 그 이름을 붙이는 일이 즉석 범주화라는 것이 여기서 선명해진다.
이 그림에 청킹(chunking)이 얹힌다. 작은 개념을 여러 개 묶어 하나의 큰 개념으로 만들고, 그 큰 개념을 다시 재료 삼아 더 큰 개념을 만드는 과정이다. 항공사의 '허브'라는 한 낱말 안에는 바퀴와 바큇살, 중심, 탈것, 노선, 시간표, 회사, 비용 절감 같은 개념이 층층이 접혀 있지만, 그 낱말을 쓸 때 안쪽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다. 개념은 껍질이 생기면 내부가 보이지 않게 되고, 그때부터 원시적인 개념과 똑같이 한 덩어리로 다루어진다.
청킹은 이 주장에서 드물게 검증 가능한 예측을 낳는다. 호프스태터는 두 가지 수수께끼를 청킹 하나로 풀었다. 아기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사건 하나를 통째로 담을 만큼 큰 개념이 아직 없기 때문이고, 해가 갈수록 한 해가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삶을 더 큰 덩어리로 삼키게 되어 한 해에 담기는 최상위 덩어리의 개수가 줄기 때문이다.
뒤쪽 예측은 그 뒤 실제로 측정되었다. 마르크 비트만과 산드라 렌호프가 2005년 『Psychological Reports』(97권 3호, 921~935쪽)에 실은 연구는 14세에서 94세 사이 499명을 대상으로 시간 흐름의 주관적 속도를 물었고, 나이가 많을수록 시간이 빨리 흘렀다고 답하는 경향을 확인했다. 다만 나이가 설명하는 몫은 전체 변량의 10%를 넘지 않았다. 방향은 맞았지만 크기는 작았다는 뜻이다.
메커니즘 쪽은 더 어긋난다. 2026년 『Memory & Cognition』에 실린 연구는 지난 10년이 빨리 지나갔다고 느끼는 정도를 나이와 함께 설명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따졌고, 저장된 자서전적 기억의 양이 아니라 새 정보를 기억으로 부호화하는 능력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보고했다. 참가자의 기억 검사 점수와 시간 감각 응답 사이의 상관을 매개 모형으로 분석한 결과이므로 인과로 읽기에는 이르지만, 지목된 자리는 분명하다. 청킹 설명은 쌓인 덩어리의 개수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측정이 가리킨 것은 새로 담는 능력이었다. 예측의 방향이 맞았다는 사실이 그 예측을 낳은 기제까지 확인해 주지는 않는다.
두 번째 근거는 말실수다. 정확히는 혼성(blend), 즉 두 표현이 반쯤씩 섞여 나오는 오류다. 자루걸레와 빗자루가 섞여 없는 낱말이 튀어나오고, 느긋하다는 뜻의 두 관용구가 겹쳐 어느 쪽도 아닌 표현이 나온다. 문장 단위에서도 일어난다. 온갖 수단을 다 쓰겠다는 뜻의 두 관용구가 뒤엉켜, 뒤집지 않은 돌도 없고 빼지 않은 스톱도 없다는 식의 문장이 나온다. 호프스태터가 2001년 글에 실은 예들이다.
이 오류의 해석은 어렵지 않다. 어떤 상황이 여러 표현을 한꺼번에 불러내고, 그 후보들이 출력 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조각이 뒤섞여 나온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대개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니 평소에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경쟁이 없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경쟁이 늘 벌어지고 있다가 우열이 팽팽할 때만 흔적을 남긴다는 결론이 따라 나온다. 여기까지는 심리언어학의 표준적인 이해와 어긋나지 않는다. 말실수 자료는 1970년대 이래 낱말 인출 모형을 세우는 주된 증거였다.
문제는 빈도다. 앨런 가넘과 동료들은 1981년 『Linguistics』(19권 7·8호, 805~818쪽)에 런던-룬드 구어 말뭉치에서 걸러낸 말실수 목록을 실었다. 녹음된 실제 대화를 옮겨 적은 자료에서 실수를 세어, 일상 발화에서 이런 오류가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 추정할 근거를 만든 작업이다. 빔 레벌트가 1994년 캐스린 보크와 함께 쓴 언어 산출 개관에서 정리한 바로는, 낱말 선택 오류의 추정치는 연구에 따라 천 낱말당 0.25건에서 2.3건 사이에 흩어져 있다. 어느 쪽 끝을 택하더라도 발화된 낱말의 99.7% 이상은 선택 단계의 다툼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나온다. 혼성은 그 오류들 가운데 일부다.
2001년 글에서 그는 혼성이 더 흔하지 않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랍다고 적었다. 피아니스트가 이웃한 두 건반을 동시에 누르는 일이 좀처럼 없는 것과 비슷하다는 비유도 붙였다. 이 문장은 논증의 무게중심을 옮긴다. 자료가 보여주는 것은 경쟁이 늘 격렬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경쟁이 있음에도 출력이 거의 언제나 하나로 수렴한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쟁이 있다는 것과 그 경쟁이 유추라는 것은 다른 명제다. 서로 뜻이 가까운 낱말들이 함께 활성화되었다가 하나만 살아남는다는 설명은 활성 확산이라는 훨씬 좁은 개념으로도 충분히 세워진다. 그 설명을 '유추'라 부르려면 낱말 후보들 사이의 경쟁이 두 상황을 겹쳐 보는 일과 같은 종류의 연산이라는 것을 따로 보여야 하는데, 혼성 자료 자체는 그 대목에서 침묵한다.
같은 현상을 놓고 정반대의 이론적 약속을 한 진영이 있다. 데드리 젠트너가 1983년 『Cognitive Science』(7권 2호, 155~170쪽)에 발표한 구조 사상 이론(structure-mapping theory)이다. 이 이론에서 유추란 잘 알려진 영역(기반)의 지식 구조를 낯선 영역(표적)에 옮겨 놓는 일이고, 두 가지 원칙이 그 옮김을 지배한다. 첫째, 옮겨지는 것은 대상의 속성이 아니라 대상들 사이의 관계다. 원자와 태양계를 견줄 때 건너오는 것은 '무엇이 무엇의 둘레를 돈다'라는 구조다. 둘째, 여러 관계 가운데 상위 관계로 묶여 하나의 체계를 이루는 것이 먼저 옮겨진다. 이를 체계성 원리라 부른다.
이 이론이 스스로 내세운 장점 가운데 하나가 결정적이다. 논문 초록은 이 틀 덕분에 유추를 문자적 유사성 진술이나 추상 개념의 적용 같은 다른 종류의 비교와 깔끔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밝힌다. 호프스태터는 그 구분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같은 현상 앞에서 한쪽은 구분 능력을 이론의 성과로 내걸고, 다른 쪽은 구분의 부재를 통찰로 내건다.
이 대립은 1990년대에 지면 위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데이비드 차머스, 로버트 프렌치, 호프스태터는 1992년 『Journal of Experimental & Theoretical Artificial Intelligence』(4권, 185~211쪽)에서 유추란 고차원 지각(high-level perception)이며, 상황을 어떻게 표상할지 정하는 일과 표상들을 맞대는 일은 원리상 나눌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젠트너 진영의 구조 사상 엔진처럼 표상을 입력으로 받아 사상만 수행하는 모듈형 모형은 그래서 방법론부터 틀렸다고 그들은 보았다.
케네스 포버스, 젠트너, 아서 마크먼, 로널드 퍼거슨은 1998년 같은 학술지(10권 2호, 231~257쪽)에 반론을 실었다. 개별 논점의 오류를 짚은 뒤 그들이 내린 총평이 이 논쟁의 핵심을 건드린다. 유추가 고차원 지각이라는 주장은 비유로서는 매력적이지만 기술적 제안으로 쓰기에는 너무 막연하다는 것이다.
"너무 막연하다"는 지적을 취향의 문제로 읽으면 논점을 놓친다. 이 지적이 겨냥한 것은 시험 가능성이다. 표상 구축과 사상이 나뉘지 않는다면, 사람이 어떤 문제를 풀 때 무엇을 표상으로 삼았는지 따로 확인할 길이 없어진다. 그리고 인지의 모든 국면이 유추라면, 어떤 관찰이 나왔을 때 그 주장이 반박되는지도 알 수 없다. 아래 두 절은 이 주장의 대표적인 근거 두 가지를 실제 자료 위에 놓았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본다.
유추가 인지의 고속도로라면, 통제된 조건에서 그 도로에 올라타는 일도 쉬워야 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분야에서 가장 여러 번 재현된 결과다.
메리 기크와 키스 홀리오크가 1980년 『Cognitive Psychology』(12권 3호, 306~355쪽)에 실은 실험이 기준점이다. 재료는 카를 덩커가 1945년에 만든 방사선 문제다. 환자의 몸속에 종양이 있고, 강한 광선을 한 방향에서 쏘면 종양은 파괴되지만 지나가는 정상 조직도 함께 파괴된다. 약한 광선은 조직을 상하게 하지 않지만 종양도 없애지 못한다. 해답은 약한 광선을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쏘아 종양 자리에서 합쳐지게 하는 것이다.
실험 참가자들은 먼저 군대 이야기를 읽는다. 요새로 향하는 길이 여럿인데 대군이 한 길로 몰려가면 안 되는 상황에서, 장군이 병력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동시에 도착하게 만들어 요새를 함락시킨다는 이야기다. 구조는 방사선 문제와 같다. 논문 초록이 다섯 실험을 통틀어 요약한 결과는 이렇다. 참가자들은 그 이야기를 써 보라는 힌트를 받은 조건에서 유추적 해답을 내놓는 경향을 보였다. 제임스 쿠브리크트, 훙징 루, 홀리오크가 2017년 『Memory & Cognition』에 실은 후속 연구에서 이 결과를 다시 정리한 바로는, 관련 있는 원천 이야기가 아예 없을 때 수렴 해답에 도달한 참가자는 10% 안팎이었다.
1983년 후속 연구(『Cognitive Psychology』 15권, 1~38쪽)는 그 간격을 메우려 했고, 초록이 그 실패를 그대로 적어 두었다. 이야기를 요약하게 시키거나, 밑에 깔린 원리를 말로 짚어 주거나, 도식으로 그려 보여 주는 방법을 시도했지만 어느 것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효과가 있었던 것은 구조가 같은 이야기를 둘 이상 주고 서로 비교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갈라지는 대목은 사상(mapping)이 아니라 인출이다. 두 상황을 나란히 놓아 주면 사람들은 대응 관계를 어렵지 않게 찾아낸다. 어려운 것은 지금 눈앞의 문제를 보고 기억 어딘가에 있는 그 이야기를 스스로 떠올리는 일이다. 표면이 다른 두 상황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다리가 놓이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호프스태터라면 실험실 자료가 자기 주장과 무관하다고 답할 것이고, 실제로 2001년 글에서 그렇게 답해 두었다. 일상의 사고는 문제해결이 아니라 장기 기억을 무작위가 아닌 방식으로 거니는 일이며, 방사선 문제 같은 과제는 그가 말하는 유추와 종류가 다르다고 본다. 그런데 이 답변은 대가를 치른다. 유추가 측정 가능한 형태로 놓인 자리에서는 유추가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고, 대신 그가 내세우는 강한 형태의 유추, 곧 아무 목적 없이 저절로 떠오르며 대부분 알아채지도 못한 채 지나가는 떠올림은 오직 본인이 수집한 일화로만 뒷받침된다. 관찰자가 자기 머릿속을 들여다본 기록에는 대조군이 없다.
세 번째 근거는 과학적 발견이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이고,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서술은 대략 이렇다. 흑체 복사의 에너지 분포 곡선과 이상기체 분자의 속도 분포 곡선이 둘 다 종 모양이었고, 아인슈타인이 그 닮은꼴을 알아본 순간 기체가 입자로 되어 있듯 빛도 입자로 되어 있으리라는 생각이 나왔다고 한다.
1905년 3월 논문(『Annalen der Physik』 17권, 132~148쪽)이 실제로 하는 일은 다르다. 출발점은 플랑크의 복사 법칙 전체가 아니라 빈의 복사 법칙, 즉 진동수가 높고 밀도가 낮은 영역에서만 잘 맞는 경험식이다. 아인슈타인은 부피 V0에 든 에너지 E의 단색 복사가 그보다 작은 부피 V 안으로 몰려 있을 확률을 계산했고, 그 값이 (V/V0)E/hν 꼴로 나온다는 것을 얻었다. 점입자 P개로 이루어진 이상기체에서 같은 일이 일어날 확률은 (V/V0)P다. 두 식은 지수 자리만 다르고 형태가 같다. 엔트로피와 확률을 잇는 볼츠만 원리를 두 식에 나란히 적용하면, 복사가 E/hν개의 독립된 성분으로 이루어진 계처럼 행동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론 문장에 붙은 단서들이 이 논증의 성격을 알려 준다.
Monochromatische Strahlung von geringer Dichte (innerhalb des Gültigkeitsbereiches der Wienschen Strahlungsformel) verhält sich in wärmetheoretischer Beziehung so, wie wenn sie aus voneinander unabhängigen Energiequanten von der Größe Rβν/N bestünde.
밀도가 낮은 단색 복사는 (빈의 복사 공식이 유효한 범위 안에서) 열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크기가 Rβν/N인 서로 독립적인 에너지 양자들로 이루어져 있을 경우와 똑같이 거동한다.
A. Einstein, 「Über einen die Erzeugung und Verwandlung des Lichtes betreffenden heuristischen Gesichtspunkt」, Annalen der Physik 17 (1905), 143쪽. Rβν/N은 오늘날의 hν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번역에서 갈린 대목은 so, wie wenn … bestünde다. 접속법 과거로 쓴 비현실 가정이므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보다 "이루어져 있을 경우와 똑같이"가 독일어 문장의 조심성에 가깝다. 아인슈타인은 빛이 입자라고 쓰지 않았다. 열이론의 셈법 안에서는 그렇게 되어 있다고 가정할 때와 결과가 구별되지 않는다고 썼다. 앞의 괄호는 그 진술이 빈 공식이 통하는 좁은 영역에만 걸린다는 제한이다. 논문 제목에 '발견법적 관점'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도 같은 조심성의 표현이다.
과학사 쪽 정리도 이 그림을 뒷받침한다. 존 노튼이 2006년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Modern Physics』에 실은 논문은 이 논증의 핵심이 여섯째 절에 있으며, 열복사의 엔트로피에 관한 무미건조한 경험식 하나를 몇 번의 추론으로 확률 공식으로 바꿔 놓은 데 있다고 정리한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1905년의 다른 통계역학 논문들에서 이미 이상기체 법칙을 '유한한 개수의, 공간에 국소화된, 서로 독립인 성분들'의 거시적 표지로 다루는 작업을 해 두었다는 점을 짚는다. 겹쳐 볼 두 짝 가운데 한쪽은 여러 해에 걸쳐 그가 직접 다듬어 놓은 도구였다.
유추가 이 발견에 개입했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 다만 유추가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가 통용되는 서술과 다르다. 그림 두 개를 보고 닮았다고 느낀 것이 아니라, 각각 따로 유도해 낸 두 개의 식이 같은 대수적 꼴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거기에 물리적 해석을 붙인 것이다. 앞쪽 작업과 뒤쪽 작업은 난이도가 다르고, 걸린 시간도 다르다. 창조적 유추의 표본 사례가 실제로는 오랜 계산의 맨 끝에 놓인 짧은 한 걸음이라면, 유추를 사고의 엔진으로 부를 때 그 엔진이 감당하는 몫은 이야기가 시사하는 것보다 작아진다.
논쟁이 다시 잴 수 있는 것이 된 계기는 뜻밖의 곳에서 나왔다. 호프스태터가 1985년 『Metamagical Themas』 24장에서 제안한 문자열 유추 문제가 그것이다. 형식은 단순하다. a b c d가 a b c e로 바뀌었다면, i j k l은 무엇으로 바뀌어야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i j k m이라 답한다. 정답이 논리적으로 강제되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답이 몰리는 자리는 뚜렷하다. 이 축소 세계를 만든 목적은 산술이나 세상 지식 같은 곁가지를 걷어내고 유추의 기제만 남기는 것이었고, 멜라니 미첼이 1993년 MIT 출판부에서 낸 『Analogy-Making as Perception』에서 코피캣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구현했다.
테일러 웹, 홀리오크, 훙징 루는 2023년 『Nature Human Behaviour』(7권 9호, 1526~1541쪽)에서 이 문제들을 대규모 언어 모델에 그대로 냈다. 언어 모델이란 방대한 문서를 학습해 다음 낱말을 예측하도록 훈련된 신경망이고, 제로샷(zero-shot)이란 그 과제를 위한 별도 훈련이나 예시 없이 문제만 던지는 조건을 말한다. 결과는 그 조건에서 GPT-3가 대부분의 설정에서 사람 평균과 같거나 그보다 높은 성적을 냈다는 것이었다. 논문은 언어 모델에 유추 능력이 창발했다고 결론지었다.
곧바로 반론이 붙었다. 문제의 형태가 학습 자료에 흔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이를 가리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반사실 과제(counterfactual task)다. 같은 추상적 능력을 요구하되 학습 자료에 있었을 법하지 않은 형태로 문제를 바꾼다. 알파벳 순서를 뒤섞어 a u c d e f … 같은 가상 알파벳을 주거나, 글자 대신 기호를 쓰는 식이다.
마사 루이스와 미첼이 2024년 11월 공개하고 이듬해 『Transactions on Machine Learning Research』에 실은 연구는 웹 등이 쓴 세 영역을 그대로 가져와 이 변형을 적용했다. 문자열 유추에 263명, 숫자 행렬에 301명, 이야기 유추에 245명이 참여했다.
| 과제 | 사람 | GPT-4 | GPT-3.5 |
|---|---|---|---|
| 문자열 유추 | 0.754 | 0.452 | 0.350 |
| 숫자 행렬(원본) | 0.715 | 0.810 | 0.813 |
| 빈칸 위치 이동 | 0.771 | 0.477 | 0.480 |
| 숫자를 기호로 | 0.704 | 0.792 | 0.790 |
루이스와 미첼(2024)의 표 1과 표 3에서 가져왔다. 문자열 유추 행은 일반화를 얹지 않은 가장 단순한 문제를 원본·순서 변경·기호 알파벳 전체에 걸쳐 평균한 값이다. 숫자 행렬은 격자에서 빠진 칸을 채우는 과제이며, 아래 두 행은 각각 빈칸을 오른쪽 아래가 아닌 무작위 위치에 두었을 때와 숫자를 기호로 바꿨을 때의 값이다.
모양이 선명하다. 사람의 성적은 알파벳을 뒤섞든 빈칸을 옮기든 거의 흔들리지 않는다. 숫자 행렬 원본에서 사람을 앞서던 GPT-4는 빈칸 위치를 옮기는 것만으로 절반 가까이 떨어진다. 숫자를 기호로 바꾸는 변형에는 사람도 기계도 흔들리지 않았으니, 모든 변형이 기계를 무너뜨린다는 것도 아니다. 이야기 유추에서는 다른 종류의 흔들림이 나왔다. 정답 이야기를 앞에 놓으면 GPT-4는 18문항을 모두 맞혔고 뒤에 놓으면 0.72로 떨어졌다. 같은 조건에서 사람의 성적은 양쪽 다 0.78이었다.
오답의 모양도 갈렸다. 문자열 유추에는 유일한 정답이 없고, 사람들이 몰리는 답 말고도 규칙으로서 성립하는 다른 답이 있다. 사람의 오답 가운데 38.6%가 그런 대안 규칙에 해당했다. GPT-4는 22.0%, GPT-3는 5.8%였다. 나머지는 규칙을 잘못 적용했거나 아예 어떤 규칙과도 이어지지 않는 답이었다.
웹, 홀리오크, 루는 2025년 5월 『PNAS Nexus』(4권 5호, pgaf135)에서 이 결과의 해석을 반박했다. 뒤섞인 알파벳 문제를 풀려면 글자를 알파벳 안의 몇 번째 자리로 바꿔야 하는데 언어 모델은 목록의 항목을 정확히 세는 일에 약하고, 무너지는 것은 유추 능력이 아니라 세기 능력이다. 근거로 그들은 코드를 직접 짜서 실행할 수 있게 한 GPT-4를 같은 문제에 붙였다. 코드 없이는 21.7%, 코드 사용을 금지한 대조군은 22.5%였는데, 코드 실행을 허용하자 사람(99명과 97명이 참여한 두 실험)과 통계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수준에 올라섰다. 인공 알파벳에서 두 글자 사이의 간격을 맞히는 별도 과제에서 GPT-4의 정확도가 10.8%에 그친 것도 세기가 병목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루이스와 미첼은 글자를 번호로 바꾸는 절차가 애초에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다. 뒤섞인 알파벳에서도 '바로 다음 글자'와 '바로 앞 글자'가 무엇인지만 알면 문제는 풀리고, 실제로 모델들은 그 확인 문항을 잘 통과했다. 더 무거운 지적은 도메인의 설계 의도다. 문자열 세계는 애초에 산술을 배제하려고 만들어졌다. 글자를 번호로 바꿔 뺄셈하는 경로는 그 세계가 검사하려던 것을 우회한다.
그러니 다툼의 대상은 성적이 아니라 경계다. 무엇이 유추의 본체이고 무엇이 곁다리 부담인가. 호프스태터의 강한 주장은 이 구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인지의 모든 국면이 유추라면 곁다리도 유추이기 때문이다. 기계를 같은 문제 앞에 세우는 순간 그 구분이 강제된다.
이 논쟁이 앞으로 어디로 갈지는 관측 가능한 형태로 적을 수 있다. 코드 실행이나 단계별 사고 유도 없이, 순수 제로샷 조건에서 기호 알파벳 변형 문제까지 사람 수준으로 푸는 모델이 나오면 '학습 자료와의 근접성' 설명은 유지되기 어렵다. 반대로 세대가 몇 번 바뀌어도 원본에서 변형으로 옮길 때만 성적이 꺾이는 모양이 남는다면 그 설명이 살아남는다. 어느 쪽이든 판정은 몇 해 안에 자료로 갈린다.
다만 행동 수준의 성적 비교만으로는 두 체계가 같은 일을 하는지 답할 수 없다. 웹 등도 2025년 글의 끝에서 내부 기제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적었고, 언어 모델 안에서 관계를 다루는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살피는 연구가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연구자들이 서 있는 자리도 이 대립의 모양을 설명해 준다. 홀리오크는 40년 넘게 유추를 인지의 중심 능력으로 다루어 온 연구 프로그램의 주인이고, 미첼은 문자열 세계를 프로그램으로 구현한 당사자다. 한쪽이 '핵심 능력'으로 지키려는 것과 다른 쪽이 '설계 의도'로 지키려는 것이 각자의 이력과 맞물려 있다. 웹은 논문에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소속을 이해관계로 밝혔다. 이 사실들이 어느 쪽 측정을 무효로 만들지는 않는다. 다만 같은 숫자를 보고 왜 정반대의 결론이 나오는지는 설명해 준다.
범주화가 곧 유추이고 인지가 곧 유추라는 강한 주장은 세 갈래의 근거 위에 서 있다. 낱말이 상황에 붙는 이름표라는 관찰, 말실수의 혼성이 드러내는 낱말들의 경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사례다. 세 갈래 모두 자료로 내려가면 주장이 요구하는 것보다 적게 말한다. 낱말 선택 단계의 오류는 천 낱말에 한 건 안팎이고 혼성은 그중 일부이며, 발화된 낱말의 99.7% 이상은 다툼의 흔적 없이 나온다. 실험실에서 표면이 다른 두 상황 사이에 유추의 다리가 저절로 놓이는 일은 좀처럼 없고, 요약도 원리 진술도 도식도 그 간격을 메우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의 사례에서 유추는 여러 해에 걸친 계산의 맨 끝에 놓였고, 그가 쓴 결론 문장에는 적용 범위를 좁히는 단서가 여럿 달려 있었다.
남는 것은 무엇을 본체로 볼 것인가라는 선택이다. 유추를 '표상을 만드는 일과 표상을 맞대는 일이 나뉘지 않는 과정'으로 놓으면 호프스태터의 주장은 거의 정의상 참이 되고, 대신 그 주장으로 미리 말할 수 있는 것이 남지 않는다. 1998년의 반론이 짚은 '너무 막연하다'는 지적이 겨눈 자리가 여기다. 유추를 '이미 만들어진 구조들 사이의 사상'으로 좁혀 놓으면 유추는 인지의 전부가 아니라 한 부분이 되지만, 대신 어디서 성공하고 어디서 실패하는지 잴 수 있게 된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아직 갈리지 않았다. 다만 두 선택이 치르는 대가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몇 해의 기계 실험은 세 번째 길을 냈다. 사람과 언어 모델에게 똑같은 문제를 내고 문제의 표면만 바꿔 보면, 성적이 어디서 꺾이는지가 그 체계가 무엇을 붙잡고 있었는지를 알려 준다. 그 자료 위에서 두 진영은 여전히 정반대의 결론에 이르지만, 이번에는 무엇을 놓고 다투는지가 분명하다. 유추의 본체와 곁다리를 가르는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 호프스태터의 강한 주장은 그 선을 그을 필요가 없다는 데서 힘을 얻었고, 시험대는 바로 그 선을 요구한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물음도 그 선 근처에 있다. 성적표가 비슷해도 두 체계가 같은 연산을 하고 있다는 보장은 없다. 사람의 오답 가운데 대안 규칙에 해당하는 비율이 기계보다 훨씬 높았다는 결과는 겉으로 드러난 점수보다 오히려 많은 것을 말해 준다. 같은 문제를 풀면서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신경망 안에서 관계가 어떤 형태로 표현되는지, 그 형태가 사람의 뇌에서 유추를 떠받치는 것과 겹치는지는 이제 막 묻기 시작한 물음이다.
호프스태터가 2001년 자기 글에 미리 달아 둔 단서는 그 뒤 25년의 경과를 꽤 정확히 예고한 셈이 되었다. 좋은 생각은 처음에 자기 몫보다 넓은 땅을 주장하고, 시간이 지나면 여전히 크되 처음만큼 모든 것을 포괄하지는 않는 것으로 밝혀진다는 말이다. 유추는 인지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유추를 인지의 전부라고 말해 본 덕분에, 그것이 인지의 어디까지인지를 묻는 실험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