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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ties

볼리비아 폴레라의 정치사 — 식민 복장령이 만든 옷, 낙인의 시대, 그리고 스케이트보드

볼리비아 코차밤바의 젊은 여성들이 여러 겹 주름치마를 입고 스케이트보드를 탄다. 이들을 소개하는 문장은 대개 “전통을 지키며”로 시작한다. 그런데 그 치마는 지켜 온 전통이 아니라, 1781년 식민 행정이 법으로 지정한 복식에서 출발했다.

코차밤바의 아홉 명, 그리고 그들이 입는 치마

볼리비아 제3의 도시 코차밤바에는 이밀라 스케이트(ImillaSkate)라는 여성 스케이트보드 모임이 있다. ‘이밀라(imilla)’는 안데스 지역의 두 원주민 언어인 아이마라어와 케추아어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뜻한다. 2019년 당시 스물세 살이던 다니엘라 산티바녜스가 친구 둘과 함께 만들었고, 구성원은 아홉 명 안팎이다.

이들을 국제적으로 알린 것은 기술이 아니라 옷차림이다. 보드를 탈 때 폴레라(pollera)를 입는다. 폴레라는 속치마를 여러 겹 겹쳐 부풀린 주름치마로, 챙 좁은 중산모와 길게 땋아 내린 두 갈래 머리, 어깨에 두르는 숄과 한 벌을 이룬다. 볼리비아에서는 이 차림을 한 여성을 ‘촐라(chola)’ 또는 애칭형인 ‘촐리타(cholita)’라고 부른다.

이들을 다룬 기사의 상당수는 같은 구도를 쓴다. 남성 중심의 스케이트 문화에 여성이 들어갔고, 그것도 할머니와 어머니가 입던 전통 의상을 입은 채로 들어갔다는 구도다. 앞의 절반은 사실이다. 뒤의 절반은 조용한 전제를 하나 깔고 있다. 폴레라가 안데스 원주민의 고유 복식이며, 식민 지배를 견디고 살아남은 옷이라는 전제다.

그 전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폴레라의 출발점은 저항이 아니라 판결문이다.

1781년, 복식을 법으로 지정하다

1780년 11월, 페루 남부 틴타 지방의 원주민 수장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캉키가 봉기를 일으켰다. 그는 16세기에 처형된 마지막 잉카 군주의 후손임을 내세워 투팍 아마루 2세를 자처했고, 봉기는 지금의 페루 남부와 볼리비아 고원 전역으로 번졌다. 스페인 왕실이 파견한 감찰관 호세 안토니오 데 아레체가 진압을 지휘했다. 감찰관은 부왕과 별개로 국왕이 직접 보내 재정과 사법을 감사하던 직책으로, 봉기 국면에서는 사실상 전권을 쥐었다.

1781년 4월 투팍 아마루가 붙잡혔고, 5월 15일 쿠스코에서 아레체가 판결을 선고했다. 판결문의 앞부분은 처형 방식을 규정한다. 광장으로 끌어내 아내와 두 아들과 삼촌의 처형을 보게 한 뒤 혀를 자르고 사지를 말 네 마리에 묶어 찢으며, 시신을 태워 재를 날리고 머리와 팔다리를 여러 마을에 나누어 매단다는 내용이다. 처형은 사흘 뒤 집행되었다.

그런데 이 문서의 무게중심은 그 뒤에 이어지는 조항들에 있다. 판결문은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길게 적는다. 세습 수장직 폐지, 잉카 초상화 소각, 판결문의 매년 낭독, 케추아어 사용 억제. 그리고 복식이 나온다.

Al propio fin se prohíbe que usen los indios los trajes de la gentilidad, y especialmente los de la nobleza de ella, que solo sirven de representarles los que usaban sus antiguos Incas, recordándoles memorias que nada otra cosa influyen que en conciliarles más y más odio a la nación dominante, fuera de ser su aspecto ridículo y poco conforme a la pureza de nuestra religión, pues colocan en varias partes de él al Sol, que fue su primera deidad.

같은 목적으로, 인디오가 이교 시절의 복식을, 특히 그 귀족의 복식을 입는 것을 금한다. 그 옷은 옛 잉카가 입던 바를 그들 앞에 되살려 보일 뿐이며, 그렇게 불러낸 기억은 지배 국민에 대한 증오를 점점 더 키우는 것 말고는 아무 작용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 모양은 우스꽝스럽고 우리 종교의 순수함에 걸맞지 않으니, 옷 곳곳에 그들의 첫 신이었던 태양을 붙여 놓는 까닭이다.

호세 안토니오 데 아레체, 「투팍 아마루와 그 아내·자식 및 주요 가담자에 대한 판결」, 1781년 5월 15일 쿠스코 선고

여기서 ‘이교 시절(gentilidad)’은 기독교 이전, 곧 잉카 시대를 가리키는 당대 스페인어 표현이다. 판결문은 금지 대상을 구체적으로 나열한다. 웅쿠(unco, 소매 없는 상의), 야코야(yacolla, 검은 벨벳이나 호박단으로 만든 어깨걸이), 마스카파이차(mascapaycha, 붉은 알파카 술을 늘어뜨린 관 모양의 귀족 표지). 각 지방 감독관은 이 물건들을 거두어들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금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판결문은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도 지정한다.

Y para que estos indios se despeguen del odio que han concebido contra los españoles y sigan los trajes que les señalan las leyes, se vistan de nuestras costumbres españolas y hablen la lengua castellana, se introducirá con más vigor que hasta aquí el uso en sus escuelas bajo las penas más rigurosas y justas contra los que no las usen.

그리고 이 인디오들이 스페인 사람에게 품은 증오에서 떨어져 나오고, 법이 그들에게 지정하는 복식을 따르며, 우리 스페인의 관습대로 옷을 입고 카스티야어를 말하도록, 그들의 학교에서 지금까지보다 더 강하게 그 사용을 도입한다. 익힐 만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따르지 않는 자에게는 가장 엄정하고 마땅한 벌을 내린다.

같은 판결문

“법이 그들에게 지정하는 복식”이라는 구절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원주민 여성이 입게 된 여러 겹 주름치마는 18세기 스페인 시골 여성복 계열이고, ‘폴레라’라는 낱말 자체가 스페인어다. 옷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베리아반도가 나온다.

인과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

판결문 한 장이 옷 하나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복식 규율은 정복 초기부터 여러 형태로 있었고, 아레체의 조항은 그 흐름을 봉기 직후에 가장 날카롭게 성문화한 국면이다. 실제로 폴레라가 안데스 도시의 표준 여성복으로 굳는 데는 그 뒤로 몇 세대가 더 걸렸다.

다만 방향은 분명하다. 이 옷은 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그 목적은 원주민 신분을 지우는 데 있지 않았다. 잉카 귀족의 표지를 없앤 자리에, 식민 행정이 한눈에 읽어 낼 수 있는 표지를 새로 놓았다.

같은 차림의 다른 구성 요소도 사정이 비슷하다. 촐리타의 상징처럼 통하는 중산모는 1849년 런던에서 만들어진 유럽 모자다. 볼리비아에 들어온 시기는 1920년대로 잡힌다. 영국이 철도 노동자용으로 보낸 물량이 남성 머리에 맞지 않아 여성에게 팔았다는 이야기가 널리 돌지만, 이 일화를 뒷받침하는 당대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확인되는 것은 모자의 출신지가 유럽이라는 사실뿐이다.

광장에 들어갈 수 없던 옷

강제로 입힌 옷이 신분 표지로 작동하려면 강제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표지를 근거로 사람을 갈라놓는 관행이 따라붙어야 한다. 20세기 볼리비아 도시가 그 일을 했다.

라파스에서 폴레라를 입은 여성은 오랫동안 특정 식당과 택시, 일부 시내버스에서 거절당했다. 대통령궁이 면한 도심 광장 플라사 무리요와 부유층 거주지인 소나 수르는 사실상 출입이 막힌 구역이었다. 시내 시장에서 꽃을 파는 한 상인은 그 시절 사람들이 “촐라는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고 회고한다.

이 구조를 학술적으로 정리한 대표적 연구가 마르시아 스티븐슨의 『안데스 볼리비아의 젠더와 근대』(텍사스대학교출판부, 1999)다. 이 책의 1장 제목은 「스커트와 폴레라: 1900년부터 1952년까지 라파스에서 여성성의 이념과 저항의 정치」다. 설문이나 통계에 기댄 연구가 아니라, 당대의 소설과 교육 교본과 위생 안내서, 원주민 증언집과 여성 단체 문서를 읽어 담론의 구조를 재구성한 텍스트 연구다. 스티븐슨은 볼리비아 국가가 인종적·문화적으로 균질한 사회를 만들려 하면서, 그 기획을 여성의 몸에 관한 규범으로 실행했다고 본다. 위생, 모성, 가정, 복식이 하나의 담론으로 묶이고, 그 안에서 폴레라는 아직 근대화되지 않은 몸의 표식이 된다.

여기서 스커트와 폴레라의 대립이 그냥 옷 두 벌의 대립이 아님이 드러난다. 서구식 원피스를 입은 여성은 ‘세뇨리타’이고 폴레라를 입은 여성은 ‘촐라’다. 옷이 곧 사회적 범주였다. ‘촐로/촐라’라는 낱말 자체가 식민기 카스타 제도, 곧 혈통에 따라 사람을 등급 짓던 분류 체계의 잔재이며, 20세기 내내 경멸어로 쓰였다.

배제의 논리는 단순하다. 옷을 지정해 신분을 읽을 수 있게 만들고, 읽힌 신분을 근거로 공간을 닫는다. 1781년의 조항과 20세기 라파스의 관행은 같은 장치의 앞뒤다.

2005년 이후 — 상징의 승격

2005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에보 모랄레스가 당선되어 이듬해 취임했다. 아이마라계 코카 재배 농민 조합 지도자 출신으로, 볼리비아 역사상 처음으로 원주민 정체성을 전면에 내건 대통령이었다. 2009년에는 국호에 ‘다민족국(Estado Plurinacional)’을 넣은 새 헌법이 발효되었다.

폴레라의 지위는 이 시기에 뒤집힌다. 2013년 11월 라파스 시의회는 촐라 파세냐, 곧 라파스의 촐라를 도시의 무형문화유산으로 규정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조례문은 촐라가 비공식 시장과 가사 노동에만 머물던 자리에서 정치·언론·사업 영역으로 옮겨 갔다고 적었다. 같은 시기에 촐리타 패션쇼가 열리고, 촐리타 전문 모델 에이전시가 생기고, 엘알토의 촐리타 레슬링이 관광 상품이 되고, 촐리타를 독자로 삼는 잡지가 창간되었다.

이 전환의 동력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짚어 둘 필요가 있다. 밑에서 올라온 요구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농민 조합과 원주민 조직의 오랜 동원이 2005년의 선거 결과를 만들었다. 그러나 폴레라를 ‘유산’으로 못 박은 것은 시의회이고, 그것을 상품으로 유통시킨 것은 패션·미디어 산업이다. 옷의 값을 올린 손 가운데 상당 부분은 위에 있었다.

상징이 오를 때 인구는 줄었다

여기서 통념과 어긋나는 숫자가 나온다. 볼리비아 국립통계원이 2024년 3월 실시하고 2025년 8월에 최종 결과를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 1,136만 5,333명 가운데 원주민·아프리카계 볼리비아인 집단에 속한다고 답한 사람은 430만 2,484명, 38.7퍼센트였다. 케추아가 164만 6,811명으로 가장 많고 아이마라가 159만 5,045명으로 뒤를 이었다.

이 항목을 처음 물은 2001년 총조사에서는 62퍼센트가 원주민이라고 답했다. 2012년에는 41퍼센트대로 내려갔고, 2024년에는 38.7퍼센트가 되었다. 폴레라가 조롱의 대상에서 도시의 유산으로 올라선 그 20여 년 동안, 스스로를 원주민이라고 밝히는 사람의 비율은 계속 떨어졌다.

이 숫자를 읽을 때 빠뜨리기 쉬운 것

비율은 떨어졌지만 절대수는 거의 그대로다. 2012년에 약 420만 명이 원주민이라고 답했고 2024년에는 430만 명이 답했다. 같은 기간 전체 인구가 1,000만 명대에서 1,136만 명으로 늘었으므로, 커진 쪽은 분모다. 원주민 인구가 사라지고 있다는 식의 서술은 이 지점에서 정확하지 않다.

측정 방식에 따른 흔들림도 크다. 같은 항목을 물은 2018년 가구조사에서는 34퍼센트, 2021년 가구조사에서는 26.5퍼센트가 나왔다. 총조사 수치인 38.7퍼센트는 그보다 높다. 질문 문항과 조사 규모가 결과를 크게 움직인다는 뜻이므로, 하나의 숫자를 인구 구성의 확정값처럼 다루면 안 된다.

그렇다면 상징의 격상과 자기식별의 하락이 나란히 간 이유는 무엇인가. 볼리비아 안에서도 해석이 갈린다. 도시화와 혼혈이 진행되면서 세대가 바뀌었고 젊은 층이 종족 범주보다 도시·직업 정체성을 앞세우게 되었다는 설명이 하나다. 원주민 정체성을 떠받칠 정책이 꾸준히 이어지지 못했다는 설명이 다른 하나다.

어느 쪽을 택하든 남는 사실이 있다. 폴레라가 국가적 상징이 되는 과정과, 그 옷이 가리키던 집단이 통계에서 줄어드는 과정이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 상징이 강해지는 것과 그 상징이 대표한다는 집단이 두꺼워지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탈 때만 입는 옷

이밀라 스케이트로 돌아오면 이 어긋남이 더 선명해진다. 산티바녜스는 여러 인터뷰에서 같은 사실을 밝혔다. 구성원들은 폴레라를 일상복으로 입지 않는다. 보드를 탈 때만 입는다. 의사 표시를 위해 꺼내 입는 옷이다.

입는 방식도 바뀌었다. 시장에서 파는 폴레라를 그대로 쓰지 않고 무릎 길이로 짧게 만들고, 속치마 겹 수를 줄여 부풀기를 조절하고, 스케이트용 신발과 긴 양말에 맞춘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입던 형태를 인용해 새로 짓는다.

이 사실은 이들의 행위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성격을 정확히 규정해 준다. 이것은 전통의 계승이 아니라 기호의 선택이다. 그리고 낙인이 붙어 있던 기호를 골라 쓴다는 점에서, 물려받아 그냥 입는 쪽보다 훨씬 의식적인 행위다.

다만 이 대목에서 ‘되찾음’이라는 말은 흔들린다. 되찾으려면 먼저 잃어버린 것이 있어야 하고, 잃어버린 그것이 원래 자기 것이어야 한다. 폴레라는 처음부터 자기 것이 아니었다. 강제로 받은 옷을 계속 입으면서 그 안에서 지위를 만들어 온 200여 년의 축적이 있고, 이밀라 스케이트는 그 축적의 최신 국면에 서 있다. 이 옷의 의미는 줄곧 새로 지정되어 왔고, 이들은 그 지정을 한 번 더 한다.

밴스가 찍고 스미소니언이 무대를 준다

이 다시 지정하기가 어떤 장치를 타고 이루어지는지는 최근 몇 해의 일정에 그대로 드러난다.

2024년 여름, 미국 스미소니언협회가 워싱턴 내셔널 몰에서 여는 포크라이프 페스티벌의 주제가 ‘아메리카 원주민의 목소리(Indigenous Voices of the Americas)’였다. 이밀라 스케이트는 이 자리에서 시범을 보이고 어린이 강습을 진행했다. 1967년부터 이어진 이 축제는 미국 국립 기관이 기획하고 예산을 대는 행사다.

2025년에는 스케이트 용품 기업 밴스(Vans)가 제작을 맡은 15분짜리 다큐멘터리 「이밀라스케이트: 볼리비아의 촐리타 스케이터들」이 만들어졌다. 제작사는 옵티미스트, 연출은 레베카 바사우레와 마리아노 카란사다. 이 작품은 2026년 3월 25일 발표된 제47회 스포츠 에미상 후보 명단에 ‘장편 스포츠 피처’ 부문으로 올랐고, 5월 26일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수상은 놓쳤다. 같은 부문 수상작은 미국 미식축구리그 필름이 만든 「팀 그린: 되찾은 목소리」였다. 다큐멘터리의 반향은 볼리비아 최초의 여성 주도 스케이트파크 건립 모금으로 이어졌다.

제도 바깥의 몸짓이 제도의 자원을 타고 유통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흠이 아니다. 문제는 이 사실이 이야기에서 자주 지워진다는 데 있다. 국립 축제의 무대, 다국적 기업의 제작비, 미국 방송 아카데미의 후보 지명은 이 상징이 지금의 크기를 갖게 된 조건이다. 1781년에 옷의 의미를 정한 것이 식민 행정의 명령이었다면, 2026년에 그 옷의 의미를 정하는 것은 축제와 후원과 시상식이다. 주체가 바뀌었고 방향도 바뀌었지만, 의미가 위에서 지정된다는 구조는 남아 있다.

구성원들이 이 구조를 모르고 있다고 볼 근거는 없다. 이들은 국제적 노출을 스케이트파크라는 물리적 결과로 바꾸는 데 쓰고 있고, 그것은 상징 경제를 다루는 꽤 실용적인 태도다. 다만 이 실용성은 “제도 바깥에서 자기 존재를 주장한다”는 서술과는 다른 그림이다.

결론 — 폴레라는 되찾은 전통이 아니라 세 번 다시 지정된 옷이다

이 옷의 의미는 세 번 지정되었다. 첫 번째는 1781년, 식민 감찰관의 판결문이 잉카의 표지를 금지하고 “법이 지정하는 복식”을 명령했을 때다. 두 번째는 20세기 도시에서, 광장과 식당과 버스가 이 옷을 근거로 사람을 가려내면서 옷을 신분 표지로 굳혔을 때다. 세 번째는 2005년 이후, 국가와 시의회와 패션 산업과 국제 미디어가 같은 옷을 자긍심의 표지로 다시 못 박았을 때다. 세 번 모두 지정하는 손이 옷 바깥에 있었다.

그러므로 “전통을 지킨다”는 설명은 무엇을 본체로 보느냐에 따라 갈린다. 옷의 기원을 본체로 보면 이 옷은 전통이 아니라 식민 행정의 산물이다. 200여 년에 걸친 사용을 본체로 보면 이 옷은 충분히 전통이다. 옷을 물려받아 입는 사람에게 그 옷을 규정하는 것은 자기 할머니가 그것을 입었다는 사실이다. 둘 다 맞는 말이고, 두 답 사이에서 하나를 고를 필요는 없다. 다만 어느 쪽을 택하든 “원래 우리 것이었던 옷을 되찾았다”는 문장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은 확정된다.

남는 물음은 숫자 쪽에 있다. 폴레라의 상징 가치는 20년 사이에 크게 올랐고, 같은 기간 스스로를 원주민이라 밝히는 사람의 비율은 62퍼센트에서 38.7퍼센트로 내려갔다. 상징의 값과 그 상징이 대표한다는 집단의 크기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상태가 얼마나 오래 갈 수 있는지는 아직 답이 나오지 않았다. 코차밤바에서 무릎 길이로 줄인 폴레라를 입고 언덕을 내려가는 아홉 명은 그 물음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