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 능력이 충분히 커지면 시장 없이도 자원을 배분할 수 있다는 구상이 인공지능과 함께 되살아났다. 그런데 이 구상의 계보를 1920년대까지 되짚어 보면, 시장을 계산 장치에 비유한 쪽은 시장을 옹호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2016년 11월 19일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저상 포럼에서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짧은 예측을 내놓았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사람들은 시장경제가 좋다고 여겼지만 앞으로 30년 사이에 큰 변화가 일어나 계획경제의 몫이 커진다는 것이었다. 근거는 데이터였다. 데이터를 손에 쥐면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를 들여다볼 수 있고, 그것은 엑스선 촬영 장치가 나오기 전과 나온 뒤의 의학이 달라진 것과 같다고 그는 설명했다.
计划经济将会越来越大
계획경제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마윈, 2016년 11월 19일 세계저상 상하이 포럼 연설
여기서 계획경제란 무엇을 얼마나 만들지를 중앙의 기구가 정하는 체제를 뜻한다. 시장경제에서는 그 결정이 가격을 매개로 흩어진 채 이루어진다. 20세기의 큰 논쟁 하나가 바로 이 둘 사이에 있었고, 시장 쪽의 승리로 정리되었다는 것이 오랫동안 통용되어 온 결론이었다. 마윈의 발언은 그 결론이 계산 능력의 부족이라는 일시적 조건 위에 서 있었다고 보는 관점이다.
10년이 지나 같은 주장이 훨씬 정교한 형태로 돌아왔다. 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의 에릭 브린욜프슨과 하버드 소사이어티 오브 펠로스의 조이 히치그는 2025년 9월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인공지능 경제학 논문집에 실을 글에서, 강력한 인공지능이 의사결정 권한의 최적 위치를 바꾼다고 주장했다. 두 갈래 경로를 든다. 하나는 그동안 말로 옮기기 어려웠던 현장의 지식이 기록되고 코드화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 주체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 자체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두 힘이 함께 작동하면 현장에 사람을 두어 판단하게 할 이유가 줄고, 중앙에서 조정하는 편이 더 효율적인 영역이 넓어진다는 계산이다. 이들은 그 결과로 기업 평균 규모의 증가, 산업 집중도의 상승, 현장 관리자 재량의 축소를 예측하고, 이미 관측되는 자료가 그 방향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적었다.
두 주장은 같은 도식을 공유한다. 시장이 필요했던 이유는 계산이 어려웠기 때문이고, 계산이 쉬워지면 그 이유가 사라진다. 이 도식에는 반대편에 세워 둔 인물이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다. 계획경제가 작동할 수 없다는 20세기 중반의 논증을 대표하는 이름이고, 브린욜프슨과 히치그도 자기 글의 제목을 하이에크의 1945년 논문 제목에서 따왔다.
그런데 그 논쟁의 실제 경과를 문헌으로 되짚어 보면 배역이 통용되는 그림과 다르게 배치되어 있다.
출발점은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1920년 독일 학술지 Archiv für Sozialwissenschaft und Sozialpolitik 47권에 발표한 논문이다. 제목은 「사회주의 공동체에서의 경제 계산」이었고, 논지는 짧게 요약된다. 생산수단이 사적으로 소유되지 않으면 생산수단이 거래되지 않고, 거래되지 않으면 가격이 생기지 않으며, 가격이 없으면 어느 쓰임새가 더 나은지 비교할 잣대도 없다. 강철을 다리에 쓸지 기관차에 쓸지 정하려면 두 용도의 값어치를 같은 단위로 견주어야 하는데, 그 단위를 만들어 내는 장치가 바로 가격이라는 주장이었다.
미제스의 논문은 영어권에 곧바로 전해지지 않았다. 하이에크가 1935년 런던의 라우틀리지에서 Collectivist Economic Planning이라는 논문집을 엮어 내면서 미제스의 글을 영역해 실었고, 여기에 자기 글 두 편을 앞뒤로 붙였다. 앞의 「문제의 성격과 역사」(1~40쪽)와 뒤의 「논쟁의 현재 상태」(201~243쪽)다. 이 논문집이 영어권에서 이른바 사회주의 계산 논쟁의 무대를 만들었다.
미제스의 주장에는 이미 반론의 뼈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와 엔리코 바로네는 사회주의 경제에서도 균형 조건을 연립방정식으로 적을 수 있다는 점을 보인 바 있었다. 여기서 연립방정식이란 여러 미지수가 서로 얽혀 있어 한꺼번에 풀어야 하는 방정식들의 묶음을 말한다. 어느 재화를 얼마나 만들고 어떤 가격을 매길지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그 관계를 식으로 적고 함께 풀면 배분에 필요한 값이 나온다. 바로네의 1908년 논문 「집산주의 국가의 생산부」는 하이에크의 1935년 논문집에 부록으로 실렸다.
1935년의 하이에크는 이 반론에 실행 불가능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방정식을 적을 수 있다는 것과 푸는 것은 다르다. 수천 개 이상의 연립방정식을 실제로 풀어내는 일은 가능하지 않고, 게다가 방정식에 들어갈 값들은 푸는 동안에도 계속 바뀐다. 「논쟁의 현재 상태」에서 그는 모든 경제 활동을 중앙에서 지휘하는 일이 근대의 복잡한 조건에서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고 적었다.
이 대목이 뒤에 벌어질 일의 씨앗이다. 실행 불가능이라는 논변은 계산 능력을 변수로 삼는다. 능력이 커지면 논변의 힘이 약해진다.
폴란드 경제학자 오스카르 랑게(1904~1965)가 그 씨앗을 정확히 겨냥했다. 그는 1936년과 1937년에 걸쳐 영국 학술지 The Review of Economic Studies에 「사회주의 경제 이론에 관하여」를 두 차례로 나누어 실었다. 1부는 1936년 10월호 4권 1호 53~71쪽이다. 크라쿠프에서 가르치다 미국으로 건너가 1938년부터 시카고 대학에 있었고, 뒤에 폴란드 인민공화국의 초대 주미 대사를 지낸 인물이다.
랑게의 답은 계산이 아니라 절차였다. 방정식을 한 번에 풀지 않고 시행착오로 더듬어 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계획 당국이 아무 가격이나 하나 정해서 공표한다. 그 가격에서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값을 올리고, 반대면 내린다. 이 조정을 반복하면 수급이 맞아떨어지는 가격에 점점 가까워진다. 프랑스 경제학자 레옹 발라가 기술한 모색 과정을 계획 기구가 떠맡는 셈이고, 그렇게 도달한 가격이 파레토와 바로네의 방정식이 요구하는 값이 된다.
이 답이 왜 강력했는지는 짚어 둘 만하다. 랑게는 계획 당국이 모든 정보를 미리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정보가 부족해도 되풀이해서 더듬어 가면 된다고 답했다. 부족한 정보를 절차로 메우는 설계였고, 그래서 하이에크가 1935년에 내세운 실행 불가능 논변을 정면으로 비껴갔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중반까지 하이에크가 발표한 세 편의 글은 논쟁의 지반을 바꾸어 놓았다. 1937년 2월 Economica 4권 13호 33~54쪽의 「경제학과 지식」, 1940년 같은 학술지의 「사회주의 계산: 경쟁적 해법」, 그리고 1945년 9월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35권 4호 519~530쪽의 「사회에서의 지식 활용」이다. 마지막 논문은 랑게와 애바 러너를 겨냥해 쓰였다.
1945년 논문의 첫머리에서 하이에크는 합리적 경제 질서를 세우려 할 때 우리가 풀려는 문제가 무엇인지 되묻는다. 필요한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고 선호 체계가 주어져 있으며 쓸 수 있는 수단에 관한 지식이 완전하다면, 남는 것은 순수한 논리 문제다. 그 최적화 조건은 수학으로 깔끔하게 적을 수 있다. 어떤 두 재화 사이의 한계대체율이 모든 용도에서 같아야 한다는 조건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사회가 실제로 마주하는 문제가 그것과 다르다고 잘라 말한다.
이유는 자료의 성격에 있다. 경제 계산이 출발점으로 삼는 자료는 사회 전체에 대해 어느 한 정신에게 주어진 적이 없고 주어질 수도 없다. 필요한 지식은 한곳에 모인 형태로 존재하지 않고, 개인들이 저마다 가진 불완전하고 서로 어긋나기까지 하는 조각들로만 흩어져 있다. 그래서 문제는 주어진 자원을 어떻게 나눌지가 아니라, 구성원 누군가는 알고 있는 자원을 그 중요성을 아는 사람들의 목적에 맞게 어떻게 쓰이도록 할 것인가가 된다.
하이에크는 이 흩어진 지식에 이름을 붙였다. 일반 규칙의 형태를 띠는 과학적 지식과 구별되는, 시간과 장소의 특정한 사정에 관한 지식이다. 어느 기계가 절반만 돌아가고 있는지, 어느 창고에 재고가 남아 있는지, 어느 손님이 무엇을 계속 찾는지 같은 것들이다. 이런 지식은 통계로 집계하는 순간 사라진다. 통계는 작은 차이를 지우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앙의 계획 기구는 통계에 기대는 한 그 사정들을 직접 셈에 넣을 수 없고, 현장에 있는 사람에게 판단을 남겨 두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1935년 하이에크의 논변은 방정식이 너무 많아 풀 수 없다는 실행의 문제였다. 1945년 하이에크의 논변은 방정식에 넣을 값이 애초에 한곳에 모이지 않는다는 지식의 문제다.
이 구별을 놓치면 논쟁 전체가 어긋난다. 계산기가 빨라지면 논변이 무너지는 쪽은 1935년의 하이에크이고, 1945년의 하이에크는 계산 속도를 변수로 삼지 않는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처리 능력이 아니라 처리할 재료였다.
덧붙일 것이 있다. 하이에크는 시장을 완벽한 계산기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가 비판한 대상 안에는 모든 정보가 주어졌다고 가정하는 균형 이론이 들어 있었고, 그런 가정을 두는 분석은 문제를 없애 버린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가 그린 시장은 전체를 아는 사람이 없는 조건에서 그럭저럭 조정이 일어나게 하는 절차였다.
랑게는 죽기 얼마 전에 이 논쟁으로 돌아왔다. 1965년에 쓰고 1967년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모리스 도브 헌정 논문집 Socialism, Capitalism and Economic Growth에 실린 「컴퓨터와 시장」이 그것이다. 그해 10월 런던의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마지막 글이다.
글은 30년 전 자기 논문을 회고하면서 시작한다. 당시 하이에크와 라이어널 로빈스는 파레토와 바로네의 방정식이 현실에서는 소용없다고 주장했고, 자신은 시행착오라는 경험적 절차로 그 방정식이 풀린다는 것을 보여 반박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오늘 다시 쓴다면 과제가 훨씬 간단해진다고 적는다. 하이에크와 로빈스에게 줄 답은 그래서 무엇이 문제냐는 되물음이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연립방정식을 전자계산기에 넣으면 1초도 걸리지 않아 해가 나오고, 번거로운 모색을 거치는 시장 과정은 낡아 보인다고 그는 썼다.
이어지는 대목이 이 글의 요점과 맞닿는다. 랑게는 자신이 1936년에 제안한 시행착오 절차가 실은 연립방정식을 푸는 계산 장치의 역할을 했다고 정리한다. 되풀이 계산이었고, 균형에서 벗어난 정도를 되먹임으로 줄여 가는 서보메커니즘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말을 뒤집을 수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전자 아날로그 계산기가 시장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아날로그 계산기를 흉내 내는 것이며, 시장은 연립방정식을 푸는 일종의 컴퓨터이고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래된 방정식 풀이 장치의 하나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 풀이 장치가 사회적 과정으로 작동한다는 데 있다고 그는 적었다.
그러니까 시장을 컴퓨터에 빗대는 어법은 시장을 옹호한 쪽이 아니라 계획을 옹호한 쪽에서 나왔다. 랑게에게 그 비유는 칭찬이 아니었다. 시장이 계산 장치라면 더 나은 계산 장치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결론이 곧바로 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시장을 전자 시대 이전의 계산 장치라고 불렀고, 속도가 느리고 시차와 진동이 크며 수렴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단점으로 꼽았다. 거미집 순환이나 재고 순환, 경기 순환이 그 진동의 사례라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 붙였다. 시장이 가격을 움직일 때마다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누군가는 손해를 보는데, 계산기는 그런 소득효과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인공지능이 배분을 계산해 낸다는 구상은 하이에크의 시장관을 잇는 것이 아니다. 시장을 계산 장치로 규정하고 더 빠른 장치로 갈아 끼우자는 것이 그 구상의 형태이며, 그 형태를 처음 제시한 사람은 랑게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배분의 중심에 놓는 설계는 하이에크 노선의 연장이 아니라 그가 반박하려 했던 쪽의 자리에 선다. 어느 쪽이 옳은지와 별개로 좌표는 그렇게 찍힌다.
랑게 자신이 계산기의 한계도 적어 두었다는 점은 함께 옮겨야 공정하다. 아무리 강력한 계산기도 용량에 한계가 있고, 재화 수와 방정식 유형이 너무 복잡해 감당하지 못하는 경제 과정이 실제로 있으며, 그런 계산기를 만드는 비용이 너무 클 수도 있다고 그는 썼다. 그럴 때는 처리 폭이 훨씬 넓은 낡은 시장 서보메커니즘을 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비재는 이미 시장을 통해 배분되고 있으니 굳이 다른 장치를 들일 이유가 없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다만 장기 투자만큼은 시장이 다룰 수 없다고 보았다. 현재 가격은 현재의 조건을 반영하는데 투자는 새로운 소득과 새로운 기술 조건, 때로는 새로운 욕구까지 만들어 조건 자체를 바꾸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산업이 생겨서 텔레비전 수요가 생겼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예를 들었다.
랑게가 「컴퓨터와 시장」을 쓰던 무렵에 그 구상을 실제 장비로 구현하려는 시도가 두 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두 사례의 결말은 계산 능력이 병목이었다는 전제를 검증할 재료가 된다.
칠레 쪽이 사이버신이다. 1971년 7월 칠레 생산개발공사(CORFO)의 기술 총괄이던 페르난도 플로레스가 영국의 경영 사이버네틱스 연구자 스태퍼드 비어에게 편지를 보냈고, 비어는 그해 11월 산티아고를 찾았다.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가 국유화한 기업들을 어떻게 운영할지가 문제였다. 8일 동안 비어와 소규모 팀이 짜 낸 설계는 네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전국의 공장과 수도를 잇는 텔렉스 통신망, 생산 지표에서 이상 징후를 통계로 잡아내고 앞을 내다보는 소프트웨어, 경제 모의실험 장치, 그리고 미래적인 외양의 작전실이었다. 1973년 1월까지 모의실험 장치를 뺀 나머지가 시제품 수준으로 돌아갔다.
에덴 메디나가 2011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출판부에서 낸 Cybernetic Revolutionaries는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의 스태퍼드 비어 문서고와 관계자 면담을 바탕으로 이 사업의 전말을 복원했다. 이 연구가 밝힌 사실 가운데 논쟁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비어의 설계는 중앙 계산이 아니라 분권을 지향했다. 각 층위가 스스로 조절하고 위층은 그 층이 감당하지 못하는 예외에만 개입하는 구조였다. 둘째, 이 체계가 실제로 값어치를 보인 국면은 1972년 10월 트럭 소유주 파업이었다. 생산과 수송이 끊긴 상황에서 텔렉스망이 전국의 상황을 실시간에 가깝게 전달했다. 사이버신을 끝낸 것은 계산 용량의 한계가 아니라 1973년 9월의 군사 쿠데타였다.
소련 쪽이 오가스, 곧 전국가자동관리체계다. 벤저민 피터스가 2016년 같은 출판부에서 낸 How Not to Network a Nation이 이 사업을 다룬다. 사이버네틱스 연구자 빅토르 글루시코프가 1962년에 구상을 내놓았으니 미국의 아파넷이 가동한 1969년보다 앞선다. 계획은 승인되지도 기각되지도 않은 채 관료 조직 속에 갇혔다. 부처들이 자기 자료를 내주려 하지 않았고, 중앙집중을 자처하던 국가의 민간 행정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피터스는 진단한다. 그는 이 대비를 뒤집어 정리한다. 아파넷은 잘 관리된 국가 보조금과 협업하는 연구 환경 덕분에 자라났고, 소련의 망 사업들은 자기 이익을 좇는 기관들의 규제되지 않은 경쟁 탓에 넘어졌다. 자본가들이 사회주의자처럼 굴고 사회주의자들이 자본가처럼 굴었다는 문장이 그 요약이다.
두 사례에서 병목은 계산이 아니었다. 자료를 내놓게 만드는 권한, 조정 결과를 따르게 만드는 강제력, 그리고 정권 자체의 존속이 실패를 갈랐다. 그렇다면 계산 능력이 늘어난다고 해서 결론이 자동으로 뒤집히지는 않는다. 이 점은 중국 안에서 나온 반박이기도 했다. 마윈의 발언이 나온 뒤 경제학자 우징롄은 그 판단이 틀렸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빅데이터가 있어도 계획경제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고, 계산기와 통신망으로 정보를 모으는 시도가 과거에 이미 실패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마윈은 2017년에 자신이 말한 계획경제가 전통적 의미의 계획경제와 같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을 고쳤다.
여기까지가 계산 능력을 축으로 삼는 논변의 한계다. 그렇다고 1945년 하이에크의 논변이 무사한 것은 아니다. 그의 논변이 걸려 있는 곳은 계산이 아니라 코드화 가능성이다. 시간과 장소의 사정에 관한 지식이 옮겨 적힐 수 없다는 전제 위에 서 있고, 그 전제가 흔들리면 결론도 흔들린다.
브린욜프슨과 히치그의 2025년 논문이 겨냥한 지점이 정확히 여기다. 이들은 기업이론에서 쓰는 소유권 틀을 빌려 왔다. 현장 관리자가 가진 지식을 하나의 자산으로 놓고, 그 자산이 양도 불가능하면 그것과 짝을 이루는 설비의 소유권도 현장에 있어야 투자 유인이 커진다. 이것이 하이에크의 직관을 형식화한 결과이며, 분권이 나은 이유가 된다. 그런데 그 지식 자산이 기록되고 옮겨질 수 있게 되면 설비와 함께 묶어서 본사로 넘길 수 있고, 그 순간 조정에서 얻는 이득이 되살아난다.
코드화가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는 근거로 이들이 든 것은 세 갈래다. 문서 인식 기술이 기록 보관소와 운영 기록을 디지털로 옮겼고, 기계학습 체계가 사람의 지각과 숙련에 얹혀 있던 요령을 작업 기록과 원격 계측 자료에서 뽑아내며, 단백질 구조 예측이나 이상 거래 탐지처럼 사람이 열거할 수 없는 규칙성을 기계가 새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이에크가 예로 든 동네 상인의 우위, 곧 절반만 실린 채 오가는 화물차를 알아보는 눈과 공급이 끊겼을 때 꺼내 쓸 재고의 파악과 특정 손님이 계속 찾는 물건의 기억은 판매 시점 자료를 모아 분석하는 체계 앞에서 뒤집힐 수 있다고 이들은 적는다.
처리 용량 쪽 근거는 더 구체적이다. 한 번에 넣을 수 있는 문맥이 20만에서 100만 토큰 규모로 늘었고, 추론 속도를 높이는 기법과 외부 검색을 붙이는 방식이 계산 예산을 늘리지 않고도 다룰 수 있는 문제의 크기를 키웠다. 이들의 모형에서 본사가 한 주기에 처리할 수 있는 자산의 수가 커질수록 중앙집중이 유리해지는 조건이 쉽게 충족된다.
브린욜프슨과 히치그는 반대로 작용하는 힘도 함께 적었다. 신체를 쓰는 기능과 표정이나 목소리를 읽는 일에서는 현장의 사람이 여전히 낫고, 자료가 드문 꼬리 구간에서는 기계학습 체계가 무너지며, 통신 지연이 밀리초 단위로 문제가 되는 곳에서는 가장자리에 판단을 두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지구와 화성 사이의 왕복 지연이 4.3분에서 21분에 이르므로 착륙선과 탐사차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예를 들었다. 법과 면허 제도가 사람의 개입을 요구하는 영역도 남는다.
따라서 이 예측은 다음이 관측되면 반증된다. 인공지능 도입이 깊은 산업에서 사업장 단위 재량이 축소되지 않거나, 기업 규모와 산업 집중이 도입 정도와 무관하게 움직이거나, 코드화된 현장 지식이 실제 배분 결정을 개선하지 못하는 경우다.
발화의 자리도 함께 보아야 한다. 마윈은 소비자 거래 자료를 가장 많이 축적한 기업의 총수였고, 데이터가 시장을 들여다보는 촬영 장치라는 비유는 그 자료의 값어치를 높이는 서술이다. 브린욜프슨과 히치그의 논문은 인공지능 경제학을 주제로 삼은 논문집에 실렸고, 서두에 세계를 위한 두뇌를 만들고 있다는 오픈AI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의 2025년 발언을 하이에크의 문장과 나란히 놓았다. 두 문장을 마주 세운 배치 자체가 논문의 문제 설정이다. 이것은 어떤 자리에서 무엇이 강조되고 무엇이 생략되는지에 대한 관찰이다. 실제로 이 논문은 자기 예측의 정치적 결과를 경고하는 절로 끝난다.
미제스와 랑게와 하이에크가 다툰 대상은 국가였다. 계획 기구를 세울 것인가 시장에 맡길 것인가가 물음이었다. 그런데 오늘 관측되는 중앙집중은 국가가 아니라 기업 내부에서 일어난다.
이 흐름이 인공지능과 함께 시작된 것은 아니다. 브린욜프슨과 히치그가 든 이른 사례는 1980년대 미국 과자 체인 미시즈필즈다. 본사가 만든 시스템이 매장에 반죽을 언제 섞고 언제 구울지, 어느 품목을 앞세울지, 인력을 더 부를지, 시식을 언제 돌릴지까지 실시간 손님 예측에 맞추어 지시했다. 창업자 데비 필즈는 매장 층위에서 의사결정 과정을 걷어 냈으며 점장의 책임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논문이 정리한 월마트의 경로도 비슷하다. 1987년에 전 매장을 벤턴빌 본사와 위성망으로 연결해 품목 단위 판매를 본사가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했고, 1991년에는 매장별 보충 주문을 자동으로 생성하고 협력사와 자료를 공유하는 리테일링크를 열었다. 어느 매장에 무엇을 얼마나 채울지는 점장이 아니라 본사의 카테고리 담당자가 정하게 되었다.
이 논문이 모아 놓은 수치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미국 소매업의 상위 4개 기업 집중도는 1970년대에 15퍼센트에 못 미쳤으나 지금은 40퍼센트를 넘는다. 종업원 100명 미만 소매업체가 가져가던 몫은 1982년에 절반을 웃돌았지만 2017년에는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 상위 10개 기업의 시가총액 비중은 2010년의 두 배인 38퍼센트 안팎이다.
그렇다면 계획과 시장이라는 축은 정치 체제가 아니라 소유와 통제의 구조로 옮겨 간 셈이다. 랑게가 상상한 계산 기구는 국가 계획위원회의 모습이었지만 실제로 세워진 것은 기업 본사의 자료 처리 설비였다. 이 아이러니는 논쟁의 양쪽에서 지적되어 왔다. 예브게니 모로조프가 2019년 New Left Review 116·117호 33~67쪽에 실은 「디지털 사회주의?」는 빅데이터 시대의 계산 논쟁을 다시 열면서, 기업이 계획을 하는데 사회주의자라고 못 할 이유가 있느냐는 논법과 그 반대 논법을 나란히 검토한다. 반대편 논법이 흥미롭다. 벤처 자본과 국부펀드와 자금이 두둑한 플랫폼이 서비스 값을 원가 아래로 떨어뜨려 실제 비용을 아는 사람이 사라졌으므로, 자료가 넘치는 오늘의 시장이 내는 가격 신호가 붕괴 직전 소련 체제의 그것을 닮아 간다는 것이다. 고스플란 2.0이라는 별명이 거기서 나온다.
미제스의 논변을 여기에 대 보면 문제가 분명해진다. 그가 겨냥한 것은 계산의 어려움이 아니라 계산에 쓸 잣대가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잣대를 지우는 요인이 국유화든 원가 이하의 가격 책정이든 결과는 같은 자리로 모인다. 계산 능력을 늘리는 일은 이 문제에 아무 답도 내놓지 못한다.
브린욜프슨과 히치그가 논문 끝에서 경제적 집중과 정치적 권력을 연결한 것도 이 맥락에 놓인다. 조직이 커지면 의제 설정과 입법 활동의 역량이 커지고, 그 조직이 동시에 정보의 중개자이기도 하면 검색과 요약과 추천을 통해 공론의 문지기가 된다. 이들은 여기에 세 번째 경로를 덧붙인다. 인지 능력에 대한 투자 유인이 낮아지면 교육과 시민적 역량이 함께 줄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지속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데, 실증으로 열려 있는 물음이라고 스스로 적었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하나로 모인다. 계산 능력이 커지면 시장이 필요 없어진다는 구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하이에크의 시장관을 잇지도 않는다. 그 구상은 랑게가 1967년에 적은 문장의 되풀이다. 시장을 연립방정식 풀이 장치로 규정하고 더 빠른 장치로 대체하자는 형태이며, 시장을 컴퓨터에 비유하는 어법 자체가 계획을 옹호하는 쪽에서 나왔다.
근거는 세 갈래다. 첫째, 1935년의 하이에크는 방정식을 풀 수 없다는 실행의 논변을 폈지만 1945년의 하이에크는 방정식에 넣을 값이 한곳에 모이지 않는다는 지식의 논변으로 자리를 옮겼고, 계산 속도를 근거로 하이에크를 반박한다는 서술은 앞의 논변에만 닿는다. 둘째, 계산기와 통신망으로 계획을 구현하려 한 칠레와 소련의 시도는 계산 용량이 아니라 자료를 내놓게 만드는 권한과 정권의 존속에서 무너졌으므로, 계산이 병목이었다는 전제 자체가 역사적 뒷받침을 얻지 못한다. 셋째, 미제스가 던진 물음은 견줄 잣대의 부재였고, 처리 능력을 늘리는 일은 그 물음에 닿지 않는다.
그렇다고 1945년의 논변이 안전지대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이에크의 결론은 시간과 장소의 사정에 관한 지식이 옮겨 적힐 수 없다는 전제에 매여 있고, 계측 장치와 기계학습이 그 전제의 경계를 실제로 밀고 있다. 브린욜프슨과 히치그의 논문은 그 경계 이동을 형식화해 기업 규모와 산업 집중과 현장 재량의 축소를 예측했으며, 미국 소매업의 집중도 변화는 그 방향과 어긋나지 않는다. 무엇을 본체로 보느냐에 따라 답이 갈리는 자리가 여기다. 계산량을 본체로 보면 논쟁은 이미 끝난 것처럼 보이고, 코드화 가능성을 본체로 보면 논쟁은 이제 시작이며, 잣대의 형성을 본체로 보면 논쟁의 조건 자체가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다.
남는 물음은 기술의 성능이 아니라 계측과 제도에 걸려 있다. 어떤 지식이 데이터로 옮겨 적히는지는 어디에 감지기를 달고 무엇을 기록으로 남기도록 허용하는지가 정한다. 작업자의 시선과 손놀림을 기록하는 장비를 어디까지 붙일 수 있는지, 기록된 것을 누가 소유하는지, 옮겨 적히지 않은 채 남은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 어떤 협상력이 남는지가 그 경계를 결정한다. 100년 전 논쟁이 국가의 계획 기구를 놓고 벌어졌다면 같은 논쟁의 오늘 판본은 기업 본사와 사업장 사이에서, 그리고 자료를 만들어 내는 사람과 자료를 모으는 조직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