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인간의 인식이 닿을 수 없는 영역에 경계를 그었다. 뒤에 온 세 사람은 각각 그 경계를 뚫고, 지우고, 옮기려 했다. 원전을 따라가 보면 세 번 모두 경계는 사라지지 않고 자리만 바꾸었다.
철학사 개설서에서 이 네 사람은 따로 소개된다. 칸트는 인식론의 완성자,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언한 사람,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철학의 문을 연 사람. 활동한 시대도 흩어져 있다. 칸트의 주저는 1781년에 나왔고 비트겐슈타인의 주저는 1921년에 나왔으니 140년 차이다.
그런데 네 사람이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장을 나란히 놓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칸트는 우리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알 수 없다고 적었다. 쇼펜하우어는 세계가 나의 표상이라고 적었다. 니체는 참된 세계를 폐기했다고 적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적었다. 네 문장은 모두 같은 지점을 가리킨다. 우리가 아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사이에 그어진 선이다.
이 글의 주장은 하나다. 칸트가 그은 그 선은 세 번의 공격을 받고도 지워지지 않았고, 매번 자리를 옮겼을 뿐이다. 자리를 옮기게 만든 힘은 각각 달랐고, 옮겨진 뒤에 남은 문제도 각각 달랐다. 세 번의 시도가 모두 어디에서 멈추었는지를 원전에서 확인하면, 왜 이 선이 지워지지 않는지도 함께 드러난다.
이마누엘 칸트(1724~1804)는 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논리학·형이상학 교수였다. 그가 1781년에 낸 『순수이성비판』은 형이상학을 수학이나 물리학처럼 확실한 학문으로 세울 수 있는지를 따진다. 1787년 2판 서문에서 그는 자기가 한 일을 이렇게 요약했다.
Bisher nahm man an, alle unsere Erkenntnis müsse sich nach den Gegenständen richten; aber alle Versuche, über sie a priori etwas durch Begriffe auszumachen, wodurch unsere Erkenntnis erweitert würde, gingen unter dieser Voraussetzung zu nichte. Man versuche es daher einmal, ob wir nicht in den Aufgaben der Metaphysik damit besser fortkommen, daß wir annehmen, die Gegenstände müssen sich nach unserem Erkenntnis richten.
지금까지는 우리의 인식이 모두 대상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여겨 왔다. 그러나 그 전제 아래에서는, 대상에 관하여 경험에 앞서 개념만으로 무언가를 확정해 인식을 넓히려는 시도가 모두 무너졌다. 그러니 이번에는 반대로 해 보자. 대상이 우리의 인식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가정하면 형이상학의 과제가 더 잘 풀리지 않겠는가.
칸트, 『순수이성비판』 2판 서문, B XVI. 대본은 Immanuel Kant, Werke in zwölf Bänden, 제3권(프랑크푸르트, 1977)에 실린 본문.
여기서 "경험에 앞서"라고 옮긴 말이 a priori, 곧 선험이다. 경험을 통해 배우지 않고도 미리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칸트의 제안은 이렇다.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인과관계 같은 틀은 인식하는 쪽에 붙어 있는 장치이지 사물에 딸린 성질이 아니다. 우리는 그 장치를 통과시킨 것만 볼 수 있다. 색안경을 쓰고 태어난 사람이 모든 것을 그 색으로 보듯이, 우리는 모든 것을 공간과 시간과 인과의 형태로 받아들인다. 다만 색안경 비유는 한 군데에서 어긋난다. 안경은 벗을 수 있고 벗은 뒤와 비교할 수도 있지만, 칸트가 말한 장치는 벗을 수 없고 비교 대상도 없다.
그러면 장치를 통과하기 전의 사물은 무엇인가. 칸트는 그것을 물자체(Ding an sich), 곧 사물 그 자체라고 불렀고, 우리에게 나타난 쪽을 현상(Erscheinung)이라고 불렀다. 물자체는 인식할 수 없다. 그렇다고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나타나는 것이 있는데 나타나는 무언가가 없다면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서문에서 칸트는 물자체를 인식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사유할 수는 있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리고 이 작업 전체의 뜻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Ich mußte also das Wissen aufheben, um zum Glauben Platz zu bekommen.
그러므로 나는 믿음의 자리를 얻기 위하여 지식을 걷어 내야 했다.
칸트, 『순수이성비판』 2판 서문, B XXX.
여기서 aufheben을 "걷어 내다"로 옮겼다. 없앤다는 뜻과 한쪽으로 치워 둔다는 뜻을 함께 가진 낱말이다. 칸트가 지식을 폐기했다는 말이 아니라, 지식이 넘어가서는 안 될 영역을 비워 두었다는 말에 가깝다. 신·자유·영혼 불멸은 그 비워 둔 자리에 들어간다. 이론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부정할 수도 없다.
선을 그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선을 그었는가다. 칸트는 1783년의 『형이상학 서설』에서 두 낱말을 갈라 놓았다.
Grenzen (bei ausgedehnten Wesen) setzen immer einen Raum voraus, der außerhalb einem gewissen bestimmten Platze angetroffen wird, und ihn einschließt; Schranken bedürfen dergleichen nicht, sondern sind bloße Verneinungen, die eine Größe affizieren, so fern sie nicht absolute Vollständigkeit hat.
경계는, 넓이를 가진 것에 관하여 말하자면, 어떤 정해진 자리 바깥에 있으면서 그 자리를 둘러싸는 공간을 언제나 전제한다. 반면 제한은 그런 것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어떤 크기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단순한 부정일 뿐이다.
칸트, 『형이상학 서설』 § 57, 「순수이성의 한계 규정에 관하여」.
독일어 Grenze는 국경처럼 저쪽과 이쪽을 가르는 선이고, Schranke는 여기까지밖에 못 간다는 차단봉이다. 국경에는 반드시 건너편 땅이 있어야 한다. 차단봉에는 건너편이 없어도 된다. 칸트는 같은 대목에서 수학과 자연과학이 아는 것은 차단봉이지 국경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 학문들은 끝없이 나아갈 뿐 저쪽을 알지 못한다. 형이상학만이 국경을 안다.
칸트의 한계선이 국경이라는 사실은 결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국경을 그으려면 건너편에 무언가가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칸트 자신이 그 건너편을 물자체라고 부르고 실재한다고 인정했다. 그러니 그의 선은 "저쪽은 없다"가 아니라 "저쪽은 있는데 갈 수 없다"였다. 갈 수 없다고 선언된 땅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으면, 다음 세대는 반드시 그리로 간다.
다만 칸트가 정확히 무엇을 나누었는지는 지금도 정리되지 않았다. 물자체와 현상이 서로 다른 두 개의 대상인가, 아니면 같은 하나를 두 가지 방식으로 본 것인가. 앞쪽을 두 세계 해석, 뒤쪽을 두 측면 해석이라 부른다. 헨리 앨리슨은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예일대 출판부, 1983년 초판, 2004년 개정판)에서 두 측면 해석을 옹호했고, 폴 가이어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물자체가 우리 표상과 수적으로 구별되는 존재라고 반박한다. 미하엘 오버스트는 「두 세계와 두 측면」(Kantian Review, 2015)에서 이 대립을 텍스트만으로는 결판나지 않는 교착이라고 정리했다. 뒤에 볼 세 사람은 모두 두 세계 해석 위에서 움직였다. 건너편에 실재하는 땅이 있다고 전제해야만 그리로 가거나 그것을 없앨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는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유산으로 평생 생활한 재야 저술가였다. 1820년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할 자격을 얻었으나 자기 강의를 헤겔의 주요 강의와 같은 시간에 배정했고, 헤겔의 강의실에 200명 넘게 모이는 동안 그의 강의실에는 몇 사람만 앉았다. 대학 철학에 대한 그의 적의는 여기서 굳어졌다. 이 사실은 그의 서술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학계의 체계와 겨루는 대신 체계가 손대지 않은 옆길로 들어가는 방식을 택했다.
1818년 말에 나온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이렇게 시작한다. 간기에 적힌 발행 연도는 1819년이다.
»Die Welt ist meine Vorstellung«: – dies ist die Wahrheit, welche in Beziehung auf jedes lebende und erkennende Wesen gilt.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이것은 살아 있고 인식하는 모든 존재에 대하여 성립하는 진리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 § 1. 대본은 취리히판 전집 Werke in zehn Bänden.
Vorstellung은 우리말로 표상이라 옮기는데, 마음 앞에 세워진 상(像)이라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칸트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우리가 만나는 세계는 우리 인식 장치가 만들어 낸 화면이다. 쇼펜하우어의 새로움은 그다음에 있다. 그는 밖에서 화면을 뚫으려 하지 않고, 화면을 보고 있는 자기 자신을 뒤졌다.
논리는 단순하다. 인식하는 사람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인 동시에 그 세계 안에 놓인 하나의 물체다. 손이 움직이는 장면은 밖에서 보면 다른 사물의 운동과 다를 바 없는 현상이다. 그런데 그 움직임은 안쪽에서도 알려진다. 손을 뻗겠다는 의욕이 그 안쪽에 해당한다. 세계의 수많은 사물 가운데 자기 몸 하나만 바깥과 안쪽에서 동시에 알려진다. 쇼펜하우어는 그 안쪽 접근로를 물자체로 들어가는 통로로 보았고,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daß mithin zu jenem selbst-eigenen und inneren Wesen der Dinge, bis zu welchem wir von außen nicht dringen können, uns ein Weg von innen offen steht, gleichsam ein unterirdischer Gang, eine geheime Verbindung, die uns, wie durch Verrath, mit Einem Male in die Festung versetzt, welche durch Angriff von außen zu nehmen unmöglich war.
그러므로 밖에서는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사물의 고유하고 내적인 본질에 이르는 길이 안쪽으로 우리에게 열려 있다. 말하자면 지하 통로이며, 내통과도 같이 우리를 단번에 요새 안으로 옮겨 놓는 비밀 연결로다. 밖에서 공격해서는 결코 함락할 수 없던 요새 안으로.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권 제18장 「물자체의 인식 가능성에 관하여」. 대본은 취리히판 전집 제3권.
요새의 비유는 칸트의 국경 비유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성벽은 여전히 서 있다. 다만 쇼펜하우어는 정문 대신 지하도를 찾았다고 주장한다. 그 통로 끝에서 그가 만난 것이 의지(Wille)다. 여기서 의지는 목적 없이 밀고 나가는 맹목적인 충동을 가리킨다. 무엇을 하겠다는 결심과는 무관하다. 돌이 떨어지는 것, 식물이 빛을 향해 자라는 것, 동물이 먹이를 쫓는 것이 모두 같은 하나의 충동이 단계를 달리해 나타난 모습이라고 그는 보았다. 그의 유명한 비관론은 여기서 나온다. 만족을 모르는 충동이 세계의 본체라면, 삶은 채워지지 않는 결핍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가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그러나 쇼펜하우어 자신이 같은 장에서 통로의 한계를 적어 두었고, 이 대목이 빠지면 그의 작업은 실제보다 훨씬 단순해 보인다.
Jedoch ist die innere Erkenntniß von zwei Formen frei, welche der äußern anhängen, nämlich von der des Raums und von der alle Sinnesanschauung vermittelnden Form der Kausalität. Hingegen bleibt noch die Form der Zeit […] Demnach hat in dieser innern Erkenntniß das Ding an sich seine Schleier zwar großen Theils abgeworfen, tritt aber doch noch nicht ganz nackt auf.
다만 내적 인식은 외적 인식에 붙어 있는 두 형식에서는 벗어나 있다. 공간이라는 형식, 그리고 모든 감각적 직관을 매개하는 인과라는 형식이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형식은 여전히 남는다. […] 그러므로 이 내적 인식에서 물자체는 자기 베일을 상당 부분 벗어 던지기는 하였으나, 아직 온전히 벌거벗은 채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권 제18장.
같은 장에서 그는 자기 작업의 성격도 스스로 규정했다. 물자체가 인식되지 않는다는 칸트의 가르침을 자기가 "수정했다"고 쓰면서, 수정의 내용을 물자체가 "절대적으로 그리고 근본에서부터" 인식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정도로 한정했다. 요새 안에서 그가 본 것은 물자체의 가장 직접적인 현상이었다는 뜻이다.
시간이라는 형식이 남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쇼펜하우어는 그 결과까지 따라갔다. 시간의 형식 아래에서는 의지가 통째로 알려지지 않고 잇따르는 개별 작용으로만 알려진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자기 성격을 미리 알지 못하고, 살아가면서 경험을 통해 그것도 늘 불완전하게 알아 갈 뿐이다. 나아가 그는 마지막 물음을 스스로 던졌다. 그러면 세계로 나타나는 저 의지는 결국 그 자체로는 무엇인가. 인식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그 자체로 있음과 어긋나므로 이 물음에는 결코 답할 수 없다고 그는 적었다.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성벽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그는 벽 아래로 통로를 파서 안쪽 마당까지 들어갔고, 거기서 벽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그 사실을 자기 책에 적어 두었다. 인식의 한계선은 밖에서 안으로 한 겹 물러났을 뿐이다. 물러난 자리에 남은 형식이 시간이다.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24세에 바젤 대학 고전문헌학 교수가 되었다가 10년 만에 건강을 이유로 그만두었다. 대학을 떠난 뒤의 저술은 논증을 쌓아 올리는 형식이 아니라 진단하고 계보를 캐는 형식을 띤다. 이 방식은 뒤에 볼 그의 칸트 비판이 어떤 모양이 되는지를 결정한다.
먼저 정리해 둘 사실이 하나 있다. 칸트에서 니체로 이어지는 계보는 매끄러운 직선으로 그려지곤 하는데, 실제 독서 경로는 그렇지 않았다. 니체가 쇼펜하우어를 직접 읽고 충격을 받은 것은 1865년 라이프치히 학생 시절이다. 칸트에 관해서는 사정이 다르다. 1866년 그는 프리드리히 알베르트 랑게의 『유물론의 역사와 그 현재적 의의 비판』을 읽었다. 1865년 10월에 나왔으나 간기에는 1866년으로 적힌 책이다. 랑게는 칸트의 인식론 위에서 유물론을 평가한 신칸트주의자였고, 니체는 같은 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책을 지난 시기에 나온 가장 중요한 철학 저작이라 부르며 칸트와 쇼펜하우어와 랑게의 책이면 더 필요한 것이 없다고 썼다. 조지 스택은 『랑게와 니체』(베를린: 데 그루이터, 1983)에서 이 통로를 추적했고, 서평자들은 스택이 영향의 크기를 과장했다고 보면서도 랑게를 거친 경로 자체는 인정한다. 요컨대 니체가 상대한 칸트는 상당 부분 랑게가 정리해 건넨 칸트였다.
그가 겨눈 자리는 칸트의 결론이 아니라 칸트의 질문이었다. 『선악의 저편』(1886) 11절에서 니체는 칸트가 "경험에 앞선 종합 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결국 무엇이라 답했는지를 묻는다.
„Vermöge eines Vermögens“ — hatte er gesagt, mindestens gemeint. Aber ist denn das — eine Antwort? Eine Erklärung? Oder nicht vielmehr nur eine Wiederholung der Frage? Wie macht doch das Opium schlafen? „Vermöge eines Vermögens“, nämlich der virtus dormitiva — antwortet jener Arzt bei Molière.
"어떤 능력의 힘으로." 그는 그렇게 말했거나 적어도 그렇게 뜻했다. 그런데 그것이 답인가. 설명인가. 오히려 물음을 되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는가. 아편은 어떻게 잠들게 하는가. "어떤 능력의 힘으로", 곧 잠재우는 힘으로. 몰리에르에 나오는 그 의사는 그렇게 답한다.
니체, 『선악의 저편』 11절. 정서법은 1886년 초판 기준.
몰리에르의 희극에 나오는 이 답변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으면서 설명한 척하는 말의 표본으로 오래 인용되어 왔다. 니체는 칸트가 인식 능력의 구조를 밝힌 것이 아니라 이름만 붙였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물음을 바꾼다. 왜 그런 판단을 참이라고 믿을 필요가 있었는가. 우리 같은 존재가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믿어야만 했고, 그렇다고 해서 그 판단들이 참인 것은 아니라는 답이 따라 나온다.
같은 방식이 물자체에도 적용된다. 1889년의 『우상의 황혼』에는 여섯 단계로 된 짧은 글이 실려 있다. 제목은 「'참된 세계'가 마침내 우화가 된 경위 — 어느 오류의 역사」다. 참된 세계라는 관념이 플라톤에서 시작해 어떻게 늙어 죽었는지를 여섯 문단으로 압축한 글이다. 세 번째 단계가 칸트다.
Die wahre Welt, unerreichbar, unbeweisbar, unversprechbar, aber schon als gedacht ein Trost, eine Verpflichtung, ein Imperativ. (Die alte Sonne im Grunde, aber durch Nebel und Skepsis hindurch; die Idee sublim geworden, bleich, nordisch, königsbergisch.)
Die wahre Welt haben wir abgeschafft: welche Welt blieb übrig? die scheinbare vielleicht? … Aber nein! mit der wahren Welt haben wir auch die scheinbare abgeschafft!참된 세계. 이를 수 없고 증명할 수 없고 약속할 수도 없다. 그러나 생각되기만 해도 이미 위안이고 의무이며 명령이다. (근본에서는 옛 태양이되 안개와 회의를 통과한 태양이다. 이념이 숭고해지고 창백해지고 북방적이 되고 쾨니히스베르크적이 되었다.)
니체, 『우상의 황혼』(1889), 「'참된 세계'가 마침내 우화가 된 경위」 3절과 6절.
참된 세계를 우리는 폐기했다. 그러면 어떤 세계가 남았는가. 혹시 가상의 세계인가. […] 아니다. 참된 세계와 더불어 우리는 가상의 세계까지 폐기해 버렸다.
"쾨니히스베르크적"이라는 한 낱말이 칸트를 가리킨다. 니체가 보기에 칸트의 물자체는 기독교의 저 세상이 형이상학의 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이다. 실제로 같은 책의 「철학에서의 '이성'」 절에서 그는 세계를 참된 세계와 가상의 세계로 나누는 일이 기독교식이든 칸트식이든 쇠퇴의 징후일 뿐이라고 적었고, 칸트를 두고 "끝내 교활한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여기까지는 선을 지우는 이야기다. 결정적인 것은 6절의 마지막 문장이다. 니체는 참된 세계만 없앤 것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까지 함께 없앴다고 적는다. 이것은 수사가 아니라 논리적 귀결이다. '가상'이라는 말은 참된 것과의 대비 속에서만 뜻을 가진다. 대비 항이 사라지면 남은 것을 가상이라 부를 근거도 사라진다. 그러니 니체가 한 일은 국경 저쪽 땅을 없앤 것이 아니라, 국경이 그어져 있던 지도 자체를 치운 것이다.
지도를 치우면 선도 없어진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남은 세계를 무엇이라 부를지도 없어진다. 참된 세계도 아니고 가상의 세계도 아닌 것에는 이름이 없다. 니체는 그 자리에 개념 대신 인물을 놓았다. 6절은 정오와 가장 짧은 그림자와 인류의 정점을 나열한 뒤 "차라투스트라가 시작된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논증이 끝나는 자리에 서사가 들어섰다. 그의 방식이 지닌 힘과 한계가 같은 지점에 있다. 칸트의 논증을 반박하는 대신 그 논증이 왜 필요했는지를 물었으므로, 물음은 근본까지 내려갔고 답의 자리에는 논증을 놓을 수 없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빈의 부유한 철강업 집안에서 태어나 항공공학을 공부하다 수학의 기초에 끌려 철학으로 옮겨 간 사람이다. 1차 세계대전에 오스트리아군 자원병으로 참전했고, 전선에서 원고를 썼다. 원고는 1918년 8월에 완성되었고, 그해 11월 이탈리아군에 포로가 될 때 배낭에 들어 있었다. 1921년 독일의 한 학술지에 『논리철학적 논고』라는 독일어 제목으로 실렸으며, 이듬해 영어 번역을 붙인 단행본이 라틴어 제목을 달고 나왔다. 오늘날 통용되는 『논리철학논고』라는 이름이 그것이다.
이 사람과 칸트의 관계에는 확인해 둘 사실이 두 가지 있다. 첫째, 그가 칸트를 정독한 시점이다. 카시노 수용소에서 함께 지낸 오스트리아 교사 프란츠 파라크는 회고록 『카시노의 포로 비트겐슈타인』(로마: 아르만도, 1978)에서, 비트겐슈타인이 아침마다 루트비히 헨젤과 함께 의자를 들고 나가 바깥에 앉아 칸트를 읽었다고 적었다. 그때는 이미 원고가 완성된 뒤다. 둘째, 쇼펜하우어의 위치다. 1931년 비트겐슈타인은 자기 사고가 남에게서 받은 것뿐이라고 적으면서 영향을 준 이름을 늘어놓았다. 볼츠만, 헤르츠, 쇼펜하우어, 프레게, 러셀, 크라우스, 로스, 바이닝거, 슈펭글러, 스라파. 제임스 클라게가 지적했듯 이 목록은 처음에 프레게·러셀·슈펭글러·스라파 넷뿐이었고 나머지는 나중에 덧붙여졌다. 칸트의 이름은 끝내 없다. 그가 칸트에게 닿은 경로는 청년기에 읽은 쇼펜하우어 쪽이었다.
그럼에도 『논리철학논고』 서문은 칸트가 부딪힌 난점을 가장 정확하게 진술한 문장을 담고 있다.
Das Buch will also dem Denken eine Grenze ziehen, oder vielmehr – nicht dem Denken, sondern dem Ausdruck der Gedanken: Denn um dem Denken eine Grenze zu ziehen, müssten wir beide Seiten dieser Grenze denken können (wir müssten also denken können, was sich nicht denken lässt). Die Grenze wird also nur in der Sprache gezogen werden können und was jenseits der Grenze liegt, wird einfach Unsinn sein.
그러므로 이 책은 사유에 경계를 그으려 한다. 아니, 사유가 아니라 사유의 표현에 경계를 그으려 한다. 사유에 경계를 그으려면 우리는 그 경계의 양쪽을 다 사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유될 수 없는 것을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경계는 오직 언어 안에서만 그어질 수 있고, 경계 너머에 놓인 것은 그저 무의미일 따름이다.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서문(1918년 빈에서 씀).
여기 쓰인 낱말이 칸트가 국경이라는 뜻으로 쓴 바로 그 Grenze다. 그리고 이 문장은 국경형 한계선이 안고 있던 난점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국경을 그으려면 건너편이 있어야 하고, 건너편이 있다고 말하려면 건너편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안다면 그것은 이미 건너편이 아니다. 칸트는 이 난점을 물자체를 인식할 수는 없어도 사유할 수는 있다는 구분으로 넘겼다. 비트겐슈타인은 그 구분을 받지 않는다. 그는 경계를 사유에서 언어로 옮긴다.
옮기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언어의 경계는 안쪽에서만 그을 수 있다. 문장이 뜻을 가지려면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고, 그 조건을 어긴 낱말 배열은 거짓 문장이 아니라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소리다. 저쪽 땅이 있어서 못 가는 상황이 아니다. 저쪽에는 아무것도 없다. 칸트의 용어로 옮기면 이렇다. 비트겐슈타인은 국경(Grenze)을 차단봉(Schranke)으로 바꾸었다. 본문의 명제도 같은 말을 한다.
5.6 Die Grenzen meiner Sprache bedeuten die Grenzen meiner Welt.
5.61 Die Logik erfüllt die Welt; die Grenzen der Welt sind auch ihre Grenzen.5.6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뜻한다.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명제 5.6과 5.61.
5.61 논리는 세계를 가득 채운다. 세계의 한계는 논리의 한계이기도 하다.
널리 인용되는 5.6은 흔히 어휘가 빈약하면 세계도 좁아진다는 뜻으로 읽힌다. 5.61과 함께 읽으면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는 개인이 아는 낱말의 목록이 아니다. 무언가를 말할 수 있게 해 주는 논리적 구조를 가리킨다. 논리 밖에서 본 세계 같은 것은 없다. 논리가 세계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어서 그 바깥을 가리킬 위치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라면 한계선은 완전히 무해해졌을 것이다. 저쪽이 없다면 저쪽을 향한 형이상학도 없고, 못 간다는 아쉬움도 없다. 실제로 빈 학단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이 책을 그렇게 읽었다. 그런데 정작 저자는 그렇게 쓰지 않았다.
6.41 Der Sinn der Welt muss außerhalb ihrer liegen.
6.522 Es gibt allerdings Unaussprechliches. Dies zeigt sich, es ist das Mystische.
7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ss man schweigen.6.41 세계의 뜻은 세계 바깥에 놓여 있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명제 6.41, 6.522, 7.
6.522 그렇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것이 신비로운 것이다.
7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6.522의 Unaussprechliches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옮겼다. 신비주의를 뜻하는 낱말로 읽히기 쉬우나 이 문맥에서는 그렇지 않다. 문장으로 말할 수는 없고 문장이 놓인 방식에서 드러날 뿐인 것이라는 뜻이다. 논리의 형식이 그렇고, 윤리와 삶의 뜻이 그렇다. 결국 그가 없앤 것은 저쪽에 관해 말하는 문장이다. 6.41이 세계의 뜻은 세계 바깥에 있어야 한다고 못 박는 이상, 바깥은 여전히 있다. 다만 그 바깥은 이제 문장으로 접근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처리할지까지 적어 두었다.
6.54 Meine Sätze erläutern dadurch, dass sie der, welcher mich versteht, am Ende als unsinnig erkennt, wenn er durch sie – auf ihnen – über sie hinausgestiegen ist. (Er muss sozusagen die Leiter wegwerfen, nachdem er auf ihr hinaufgestiegen ist.) Er muss diese Sätze überwinden, dann sieht er die Welt richtig.
6.54 나의 명제들은 이런 식으로 밝혀 준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그 명제들을 통하여, 그 명제들을 딛고서 그 위로 올라선 끝에, 그것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본다. (말하자면 그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뒤에 그 사다리를 던져 버려야 한다.) 그는 이 명제들을 넘어서야 하며, 그러고 나서야 세계를 올바로 본다.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명제 6.54.
이 자기 폐기는 앞의 서문이 이미 예고해 두었다. 언어의 한계를 언어로 진술하려면 한계 밖에 서야 하는데, 저자는 그럴 자리가 없다고 스스로 못 박았다. 그러므로 한계를 진술하는 문장들 자체가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에릭 스테니우스가 『비트겐슈타인의 논고』(옥스퍼드: 블랙웰, 1960)의 마지막 장에 「칸트주의 철학자로서의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이 구조 때문이다. 칸트가 인식의 조건을 물어 인식에 한계를 그었듯, 이 책은 뜻의 조건을 물어 언어에 한계를 긋는다. 스테니우스 이후 이 독법을 얼마나 밀고 갈 수 있느냐는 계속 논쟁거리로 남았고, 후기 저작까지 칸트식 비판철학으로 읽으려는 시도에는 반대가 많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곳을 공략했다. 쇼펜하우어는 통로를 팠다. 밖에서 못 들어가는 곳에 안에서 들어가려 했고, 몸이라는 단 하나의 이중 접근로를 찾아냈다. 니체는 지도를 치웠다. 저쪽 땅이 이쪽 사람들의 필요에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히면 선도 함께 없어진다고 보았다. 비트겐슈타인은 좌표계를 바꾸었다. 선을 사유에서 언어로 옮기고, 그 너머를 실재하는 땅이 아니라 무의미로 다시 정의했다.
세 번 모두 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지지 않은 형태가 서로 달랐을 뿐이다. 쇼펜하우어의 통로 끝에는 시간이라는 형식이 남아, 그가 만난 것을 물자체가 아니라 물자체의 가장 가까운 현상으로 만들었다. 니체가 지도를 치우자 참된 세계와 함께 가상의 세계도 사라져, 남은 것을 부를 이름이 없어졌다. 비트겐슈타인이 선을 언어로 옮기자 저쪽에 관해 말하는 문장은 사라졌지만 세계의 뜻은 여전히 바깥에 있어야 했고, 선을 그은 문장들까지 사다리로 버려야 했다.
공통된 원인은 하나다. 한계선을 부정하는 말도 그 선의 바깥에 서야만 성립한다. 저쪽이 없다고 말하려면 저쪽을 살펴본 뒤라야 하고, 저쪽에 도달했다고 말하려면 도달 여부를 판정할 자리가 저쪽 바깥에 있어야 한다. 칸트가 국경과 차단봉을 갈랐던 그 대목에 문제가 이미 들어 있었다. 국경을 긋는 행위 자체가 건너편의 존재를 인정하는 행위이고, 인정한 이상 그것을 없앨 수도 그리로 갈 수도 없다.
이 계보 전체의 성격은 칸트의 구분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갈린다. 두 세계 해석에서는 세 사람이 실재하는 저쪽 땅을 공략한 것이 되고, 실패는 저쪽이 실제로 닿을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준 셈이 된다. 두 측면 해석에서는 애초에 공략할 땅이 따로 없었으므로, 세 사람은 없는 문을 두드린 것이 되고 그 헛수고 자체가 두 측면 해석의 근거로 쓰인다. 어느 쪽인지는 칸트 연구에서 지금도 결판나지 않았다. 다만 갈린 채로도 확인되는 것이 있다. 두 독법 어느 쪽에서든 세 번의 시도는 선을 없애지 못했고, 선이 어디에 그어져야 하는지를 차례로 좁혀 냈다.
선이 언어로 옮겨진 뒤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비트겐슈타인 자신이 1929년 철학으로 돌아온 뒤 『논리철학논고』의 전제를 버렸다. 언어가 세계를 그리는 하나의 논리적 구조라는 생각을 놓고, 말은 쓰임 속에서 뜻을 얻는다고 보기 시작했다. 하나의 구조가 여러 갈래의 쓰임으로 흩어지면 한계선도 하나로 그어지지 않는다. 칸트가 국경 하나를 그은 자리에서 출발한 문제는, 그렇게 해서 선을 어디에 긋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선이라는 비유가 어디까지 통하느냐의 문제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