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 인지
뉴스를 끊으면 마음이 조용해지고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앞부분에는 실험 증거가 있다. 뒷부분은 사정이 다르다.
이 이야기의 가장 잘 알려진 판본은 스위스 작가 롤프 도벨리가 2010년에 낸 「뉴스를 피하라: 건강한 뉴스 식단을 향하여(Avoid News: Towards a Healthy News Diet)」다. 뉴스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설탕이 몸에 미치는 영향과 같다는 것이 그 글의 중심 비유였다. 도벨리는 뉴스가 위험의 크기를 체계적으로 오도하고, 개인의 삶과 무관하며, 시간과 주의를 갉아먹고, 깊은 이해를 방해하고, 몸에 만성적인 긴장을 남긴다고 정리한 뒤, 완전한 절연을 권했다. 이 주장은 2013년 『가디언』 기고와 2019년 단행본 『뉴스 다이어트(Stop Reading the News)』로 이어지며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절연을 권하는 논변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하나는 진단이다. 뉴스는 세상을 실제보다 나쁘고 위험한 곳으로 보이게 만든다. 다른 하나는 처방이다. 그러므로 끊어야 한다. 진단에는 반세기 치의 실증 연구가 쌓여 있다. 처방은 그 연구에서 따라 나오지 않는다. 진단이 가리키는 원인은 뉴스라는 매체가 아니라 표본 추출이고, 표본 추출은 매체를 끊어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 딸린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Reuters Institute for the Study of Journalism)는 2012년부터 해마다 세계 각국의 뉴스 이용 실태를 조사해 『디지털 뉴스 리포트』로 펴낸다. 15번째인 2026년판은 48개 시장에서 97,520명을 설문했다(시장당 약 2,000명). 요즘 적극적으로 뉴스를 피하려 하느냐는 물음에 42%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 문항을 처음 넣은 2017년에는 29%였다. 불가리아·크로아티아·그리스·튀르키예에서는 60%를 넘는다.
한국의 수치는 더 높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2024년 5월 30일부터 6월 19일까지 3,000명을 온라인 조사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1.79%포인트), 최근 뉴스를 의도적으로 회피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72.1%였다. 연령별로는 50대가 78.3%로 가장 높고 20대가 47.3%로 가장 낮았다. 두 조사가 같은 것을 재지는 않는다. 로이터 쪽은 지금 피하려 하는 상태를 묻고, 재단 쪽은 그런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를 묻는다. 뒤엣것이 훨씬 헐거운 기준이다. 그래도 두 자료가 가리키는 방향은 같다.
뉴스 끊기는 소수의 결단이 아니다. 이미 다수가 하고 있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물음은 이렇게 바뀐다. 그 다수는 세상을 더 정확히 보게 되었는가. 답하려면 뉴스가 세계상을 뒤튼다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진단의 뼈대는 1970년대 말 미국 오리건주 유진의 연구기관 디시전리서치에서 나왔다. 사라 릭턴스타인, 폴 슬로빅, 배럭 피시호프를 포함한 연구진 5명은 성인 660명을 대상으로 실험 5개를 진행해 41가지 사망 원인의 연간 빈도를 추정하게 했다(『실험심리학회지: 인간학습과 기억』 4권, 1978년, 551~578쪽).
결과에서 치우침 두 가지가 드러났다. 첫째, 드문 원인은 실제보다 크게 잡고 흔한 원인은 작게 잡는다. 둘째, 실제 빈도가 같아도 어떤 원인은 부풀리고 어떤 원인은 줄인다. 사고로 죽는 사람이 질병으로 죽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답하거나, 살인이 자살보다 흔하다고 답하는 식이다. 실제로는 질병 쪽이 사고의 여러 배이고 자살이 살인보다 많다. 이런 치우침을 피하라고 미리 일러 주어도 응답은 교정되지 않았다.
이듬해 바버라 콤스와 폴 슬로빅은 매사추세츠와 오리건의 일간지 두 곳을 내용분석했다(『저널리즘 쿼털리』 56권 4호, 1979년, 837~849쪽). 두 신문 모두 폭력적이고 파국적인 죽음은 과다 보도하고 질병은 과소 보도했으며, 보도량의 치우침은 앞선 실험에서 나온 판단의 치우침과 밀접하게 대응했다. 내용분석은 기사를 정해진 기준에 따라 세어 매체의 관심 분포를 수치로 만드는 방법이다.
여기까지가 뉴스가 세상을 실제보다 위험해 보이게 만든다는 주장의 실증적 근거다. 근거 자체는 튼튼하다. 다만 두 연구가 보인 것은 대응이지 인과가 아니다. 신문의 분포가 사람의 판단을 만들었을 수도 있고, 사람이 궁금해하는 것을 신문이 실었을 수도 있다. 콤스와 슬로빅도 두 분포가 닮았다는 사실을 보고했을 뿐이다.
인과의 방향을 정면으로 다룬 연구가 2019년에 나왔다. 스튜어트 소로카(미시간대), 파트릭 푸르니에(몬트리올대), 릴라흐 니르(히브리대)는 6개 대륙 17개국에서 참가자 1,156명에게 BBC 월드뉴스 기사 7편을 무작위 순서로 보여주면서 손가락에 부착한 센서로 신체 반응을 측정했다(『미국국립과학원회보』 116권 38호, 2019년, 18888~18892쪽).
피부 전기 전도도는 땀샘 활동에 따라 달라지는 피부의 전기 저항으로, 각성 수준을 초 단위로 보여준다. 심박변이도는 심장 박동 사이 간격의 흔들림이며, 각성과 주의 집중이 함께 반영된다. 두 지표 모두 의식적으로 꾸며 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설문 응답과 다르다.
평균적으로 두 지표 모두 부정적인 기사에서 더 크게 움직였다. 기사 시작 20초 지점에서 부정적 내용이 피부 전도도에 미친 효과는 관측된 표준편차의 65%에 해당했다. 연구진이 이 결과에서 끌어낸 함의는 뉴스의 부정성을 언론 관행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정적 보도는 세계 어디서나 우세한데, 미국 저널리즘의 직업 관행을 원인으로 드는 설명은 미국 밖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언론이 사람들을 그렇게 길들였다는 서사의 절반이 무너진다. 부정 편향은 공급 쪽에만 있지 않다. 사람의 몸이 부정적 정보에 먼저 반응하고, 그 반응을 좇는 매체가 살아남는다.
같은 논문의 다음 장면이 더 중요하다. 연구진은 참가자 한 사람씩 따로 회귀분석을 돌려 개인별 계수의 분포를 그렸다. 나라별 평균 계수가 통계적으로 0보다 유의하게 큰 경우는 심박변이도 기준으로 브라질·캐나다·프랑스·이탈리아·스웨덴 5개국뿐이었다. 피부 전도도 기준으로는 17개국 중 9개국이었다. 뉴질랜드와 스웨덴에서는 평균적 방향이 예상과 반대였다(유의하지는 않았다). 분산분석에서 국가라는 변수가 설명하는 몫은 심박변이도 계수의 1.5%, 피부 전도도 계수의 2.7%에 그쳤다.
국가가 설명하지 못한 나머지는 개인차다. 즉 인간이 나쁜 소식에 더 반응한다는 명제는 전체 표본의 평균에 관한 서술이고, 개인 사이의 차이가 그 평균을 압도한다. 논문이 결론에서 강조한 것도 여기다. 부정적이지 않은 보도의 잠재 독자를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것.
그러므로 뉴스가 당신의 뇌를 착취한다는 문장은 소로카 연구진의 측정 위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측정이 떠받치는 문장은 더 좁다. 평균적인 사람의 몸은 부정적 영상에 더 반응하며, 특정한 개인이 그 평균에 해당하는지는 17개국 자료로 알 수 없다. 이 구분은 처방을 바꾼다. 인구 전체에 일률적으로 작용하는 위험 요인이라면 일률적인 절제가 답이 되지만, 개인차가 지배하는 반응이라면 답은 자기 반응을 확인하는 쪽으로 옮겨 간다.
릭턴스타인 연구진은 판단의 치우침을 설명하면서 원인 후보를 여럿 들었다. 노출의 불균형, 기억에 남는 정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정도. 이후 통용된 설명은 그중 하나로 좁혀졌다. 에이머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이 1973년에 제안한 가용성 어림짐작(availability heuristic)이다(『인지심리학』 5권 2호, 207~232쪽). 머리에 잘 떠오르는 사건일수록 자주 일어난다고 판단한다는 원리이며, 뉴스 비판의 표준 설명 도구로 쓰여 왔다.
2005년 랄프 헤르트비히, 토르스텐 파후어, 슈테파니 쿠르첸호이저는 이 설명을 처음으로 직접 검증했다(『실험심리학회지: 학습·기억·인지』 31권 4호, 621~642쪽). 가용성이 작동하는 방식을 후보 기제 4개로 각각 정식화한 뒤, 위험 영역 3개에서 사람들의 실제 선택과 맞춰 보았다. 가장 잘 맞은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실제 빈도를 압축해 반영하는 기제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사회적 연결망 안에서 떠올릴 수 있는 사례의 수에 기대는 기제였다. 논문은 릭턴스타인 연구진도 그 뒤의 연구자들도 어림짐작에서 나오는 구체적 예측을 검증한 적이 없으며, 어림짐작이 결과를 사후에 설명하는 이름으로 쓰여 왔다고 지적한다.
이 결과는 논점을 옮긴다. 빈도 감각을 지배하는 표본에서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자기 주변에서 떠오르는 사례들이다. 매체는 그 표본에 사례를 밀어 넣는 여러 통로 가운데 하나다.
표본 추출이라는 말로 다시 보면 문제의 자리가 달라진다. 왜곡을 만드는 것은 표본을 뽑는 규칙이다. 드문 것은 눈에 띄고 흔한 것은 배경으로 가라앉는다. 심장병으로 죽는 사람은 매일 있어서 사건이 되지 않고, 사고로 죽는 사람은 드물어서 사건이 된다. 이 규칙은 신문 1면에도, 동네 소문에도, 짧은 영상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매체를 끊는다고 규칙이 멈추지 않는다.
언론이 자주 틀린다는 주장에는 자주 인용되는 수치가 있다. 스콧 마이어(오리건대)는 미국 신문 14개에 실린 기사의 취재원 4,800명에게 자기가 등장한 기사를 검토하게 했다(『저널리즘 앤드 매스 커뮤니케이션 쿼털리』 82권 3호, 2005년, 533~551쪽). 취재원들은 지역 뉴스와 피처 기사의 61%에서 오류를 찾아냈다. 70년에 가까운 정확도 연구 가운데 가장 높은 축에 드는 수치였다.
이 숫자가 실제로 무엇을 셌는지 뜯어보면 세 가지가 걸린다. 첫째, 판정자는 기사에 등장한 당사자다. 강조점이나 맥락에 대한 불만도 오류로 집계되며, 마이어는 이런 주관적 오류를 취재원들이 가장 심각하게 여긴다고 보고했다. 이름·날짜·수치가 틀린 객관적 오류만 세면 48%로 내려간다. 둘째, 대상은 지역 뉴스와 피처 기사다. 뉴스를 끊겠다고 말할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국제·정치 보도가 아니다. 셋째, 이 수치는 최근의 악화를 뜻하지 않는다. 같은 방법론은 1936년 찰리(Charnley)의 조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카를로 포를레차, 마이어, 슈테판 루스몰이 2012년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지역 일간지에 같은 방법을 적용했을 때 나온 수치는 각각 60%와 52%였다(『저널리즘 프랙티스』 6권 4호, 530~546쪽).
취재원이 집어내는 오류의 비율은 1936년 이래 비슷한 범위에 머물렀다. 그사이 뉴스를 피한다는 응답은 2017년 29%에서 2026년 42%로 올랐다. 오류율이 이렇게 안정적이라면 회피의 증가를 기사의 정확도로 설명하기 어렵다. 달라진 것은 기사를 만나는 방식 쪽이다.
겔만 기억상실이라는 표현도 같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소설가 마이클 크라이턴이 2002년 4월 26일 캘리포니아 라호이아의 인터내셔널 리더십 포럼에서 한 강연 「왜 추측하는가(Why Speculate?)」에서 만든 말이다. 자기가 잘 아는 분야의 기사는 엉터리라는 것을 알아보면서, 페이지를 넘겨 모르는 분야의 기사는 그대로 믿는 습관을 가리킨다. 관찰로서는 날카롭다. 다만 이 표현의 출처는 표본을 갖춘 조사가 아니라 강연에서 든 개인 경험이며, 그 추론의 형태는 자기 분야 기사 몇 건에서 언론 전체로 건너뛰는 일반화다. 드물고 눈에 띄는 사례에서 전체를 짐작하는 방식, 즉 뉴스가 저지른다고 지적받는 바로 그 방식과 구조가 같다.
2026년 조사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영상 플랫폼은 온라인 뉴스 이용 경로 1위에 올랐다(54%). 텔레비전이 52%, 언론사가 직접 운영하는 웹사이트와 앱이 51%다. 세 경로의 격차는 작지만 흐름은 분명하다. 텔레비전과 언론사 사이트는 2020년 이후 각각 13%포인트와 12%포인트 줄었다.
더 중요한 수치는 따로 있다. 뉴스를 오직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영상 플랫폼으로만 접하는 사람이 2020년 6%에서 12%로 늘었다. 연구진은 이들을 여러 경로에서 물러난 뒤 다른 일을 하다가 뉴스를 우연히 마주치는 상태로 설명한다. 신뢰는 반대로 움직인다.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는 37%로 2015년 측정을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데,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접한 뉴스에 대한 신뢰는 22%, 인공지능 챗봇 답변에 대한 신뢰는 20%다.
한국 자료도 같은 방향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2025년 7월부터 9월까지 19세 이상 6,000명을 조사한 결과, 인터넷 포털을 통한 뉴스 이용률은 66.5%로 해당 문항을 도입한 2017년 이래 가장 낮았고,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을 통한 뉴스 이용은 1년 사이 18.4%에서 30.0%로 뛰었다.
회피의 결과는 공백이 아니다. 교체다. 그리고 교체된 표본은 이용자 자신이 덜 믿는다고 답한 표본이다.
교체가 무엇을 남기는지에 대한 증거는 갈린다. 알리트 담스트라를 비롯한 연구자 7명이 스웨덴 자료로 분석한 연구에서는, 적극적으로 뉴스를 회피한다고 답한 사람들이 논쟁적인 쟁점에서 가장 강한 오신념을 보였다(『인터내셔널 저널 오브 프레스/폴리틱스』 28권 1호, 2023년, 29~48쪽). 반면 논쟁적이지 않은 영역의 지식은 뉴스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낮았다. 두 집단이 겹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안토니스 칼로게로풀로스, 카밀라 몬탈베르니, 파트리샤 로시니, 람프리니 로리는 2022년 브라질 선거와 2023년 그리스 선거를 낀 인구 대표 패널 조사를 각 나라에서 선거 전후 2회차로 실시해 다른 결과를 얻었다(『인포메이션, 커뮤니케이션 앤드 소사이어티』, 2025년 12월 온라인 게재). 정치 뉴스를 선택적으로 회피하는 사람들은 잘못된 정보를 더 믿지 않았고 투표 참여만 낮았다. 잘못된 믿음 및 선거 절차에 대한 낮은 신뢰와 결부된 쪽은 회피 의사가 아니라 낮은 이용량이었다. 두 나라 유권자를 각각의 선거 국면에서 조사한 결과이므로, 일반화의 범위도 그 국면에 매인다.
두 연구는 반대 결론을 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을 쟀다. 피하려 한다는 자기보고와 실제로 거의 보지 않는다는 행동은 별개의 변수이며, 논문 자신이 둘의 상관이 약하고 겹치는 범위도 좁다고 보고한다. 저자들은 두 나라와 스웨덴의 결과 차이를 회피의 동기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점으로도 설명한다. 관심이 없어서 피하는 것과 믿지 못해서 피하는 것은 남는 결과가 다르다.
한국 조사에서도 회피자와 비회피자의 신뢰는 갈렸다. 평소 이용하는 뉴스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회피자는 41.4%, 비회피자는 58.8%였고, 언론 전반에 대해서는 24.5%와 33.7%, 언론인에 대해서는 18.5%와 26.8%였다. 재단은 낮은 신뢰 때문에 뉴스를 회피한다는 인과로 읽는 것은 무리라는 단서를 함께 달았다.
절연을 권하는 주장은 대개 자기계발 저술의 장르 안에서 나왔다. 도벨리는 작가이자 기업인이고 크라이턴은 소설가였으며, 두 사람의 논거는 개인의 경험과 일화다. 반대편도 중립은 아니다. 뉴스 회피를 측정하고 문제로 규정하는 조사는 저널리즘 연구기관과 언론 진흥기관이 수행한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톰슨로이터재단의 핵심 지원을 받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언론 진흥을 설립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다. 어느 쪽도 자료를 무효로 만들지는 않지만,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묻지 않는지에는 영향을 준다.
남은 것은 기분이다. 1997년 웬디 존스턴과 그레이엄 데이비(서식스대)는 참가자를 집단 3개로 나눈 뒤 14분 길이로 편집한 텔레비전 뉴스를 각각 긍정·중립·부정 내용으로 보여주었다(『브리티시 저널 오브 사이콜로지』 88권, 85~91쪽). 부정 조건을 본 집단에서 불안과 슬픔이 올라갔고, 자기 개인의 걱정거리를 파국적으로 키우는 경향도 유의하게 늘었다. 뉴스 내용과 관련이 없는 걱정까지 커졌다는 점이 이 실험의 핵심이다.
2020년 나타샤 더 호흐와 페터르 페르본은 63명(남성 24명, 여성 39명)에게 10일 동안 하루 5회씩 그때그때의 뉴스 접촉과 정서를 보고하게 했다(『브리티시 저널 오브 사이콜로지』 111권 2호, 157~173쪽). 그날의 뉴스를 더 부정적으로 지각한 시점일수록 부정 정서가 높고 긍정 정서가 낮았다. 이 관계는 뉴스가 자신과 관련 있다고 느끼는 정도에 따라 달라졌고, 신경증 성향이나 외향성으로는 달라지지 않았다.
두 연구가 말하는 범위는 좁다. 앞의 것은 14분 노출의 즉각적 효과이고, 뒤의 것은 지각된 부정성과 정서 사이의 동시적 관계다. 뒤의 설계는 뉴스가 기분을 낮췄는지, 기분이 낮을 때 뉴스가 더 부정적으로 보였는지 가르지 못한다. 표본은 63명이고 기간은 10일이다.
기분 효과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있다. 다만 뉴스를 담배에 견주는 비유가 함축하는 것은 이보다 훨씬 강한 주장이다. 용량에 비례해 해가 쌓이고, 어떤 수준에서도 이롭지 않으며, 끊으면 노출이 사라진다는 세 가지다. 마지막 항목이 특히 어긋난다. 담배는 끊으면 연기가 들어오지 않지만, 뉴스를 끊는다고 세계상이 비지는 않는다. 그 자리는 다른 표본으로 채워진다.
정리하면 세 갈래다. 첫째, 진단은 유효하다. 사람들의 사망 원인 빈도 판단은 체계적으로 뒤틀려 있고, 그 뒤틀림은 신문 보도량의 뒤틀림과 밀접하게 대응한다. 둘째, 뒤틀림을 만드는 기제는 매체 바깥까지 걸쳐 있다. 검증된 후보 가운데 사람들의 판단에 가장 잘 맞은 것은 자기 연결망에서 회상되는 사례의 수였고, 부정적 자극에 대한 신체 반응에서는 개인차가 국가 차이를 압도했다. 원인의 자리는 드문 것을 골라 눈에 띄게 만드는 표본 추출의 규칙이며, 그 규칙은 어떤 창을 통해 보든 작동한다. 셋째, 회피의 실제 결과는 교체다. 48개 시장에서 42%가 뉴스를 피하는 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영상 플랫폼이 처음으로 이용 경로 1위가 되었고, 그 경로에 대한 신뢰는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의 약 60% 수준이다.
판단이 갈리는 자리도 분명하다. 회피가 잘못된 믿음과 결부되는지는 회피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달렸다. 본체를 피하려는 의사로 보면 스웨덴 자료가 답을 주고, 실제 이용량으로 보면 브라질·그리스 자료가 답을 준다. 두 자료를 나란히 놓으면 쟁점은 하나로 좁혀진다. 문제가 되는 것은 피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남은 표본의 질이다. 같은 이유에서 절제의 단위도 시간이 아니라 표본이다. 하루 30분을 0분으로 줄이는 것과, 드문 사건 옆에 그 사건이 나온 모집단의 크기를 함께 놓는 것은 다른 조치다.
남은 물음 하나는 인과의 방향이다. 회피가 불신을 낳는지 불신이 회피를 낳는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도 자기 조사 결과에 그 단서를 붙였다. 그사이 새로운 표본 추출 장치가 들어오고 있다. 뉴스 목적의 인공지능 챗봇 이용은 세계 평균으로 7%에서 10%로 늘었고, 한국은 1년 만에 2배가 되어 14%에 이르렀다. 챗봇 답변에 대한 신뢰는 20%에 머문다. 이 경로가 표본을 넓힐지 좁힐지는 원 기사로 넘어가는 비율에서 갈린다. 지금은 챗봇으로 뉴스를 보는 사람의 42%가 원 기사로 넘어간다고 답했고, 한국은 56%로 조사 대상 시장 가운데 가장 높다. 클릭 비율이 유지되면 챗봇은 여러 매체를 한 번에 훑는 넓은 표본 추출기가 되고, 떨어지면 요약만 남고 모집단은 사라진다. 두 갈래 모두 같은 조사가 해마다 재는 수치이므로 몇 해 안에 판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