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트는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말했고, 동시에 성경 밖의 계시를 20세기에서 가장 강하게 막아선 사람이었다. 이 두 가지가 어떻게 한 논증에서 나오는지 따라가 본다.
1934년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독일 부퍼탈의 바르멘에서 총회가 열렸다. 나치 정권이 개신교회를 국가 이념에 통합하려 하자 이에 반대한 목사와 신학자들이 모인 자리였고, 여기서 채택된 문서가 바르멘 신학 선언이다. 이 모임에서 출발한 흐름을 고백교회라고 부른다. 선언의 첫 조항을 주로 쓴 사람이 스위스 개혁교회 신학자 칼 바르트(1886~1968)였다.
제1조는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라고 못박고, 교회가 그 말씀 외에 다른 사건이나 권세, 인물이나 진리를 계시의 원천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주장을 거짓 교리로 배격했다. 당시 독일에서는 하나님이 독일 민족의 역사와 지도자를 통해 지금 새롭게 말씀하신다는 주장이 교회 안에서 세력을 얻고 있었다. 제1조는 그 주장을 겨눴다. 바르트는 이 선언문을 히틀러에게 직접 우편으로 보냈고, 이듬해 총통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 서약을 거부해 본 대학 교수직을 잃고 독일에서 추방됐다. 바젤 대학이 곧바로 그를 조직신학 교수로 임용했다.
같은 사람이 몇 해 뒤 낸 책에서는 이렇게 썼다. 예언자와 사도는 증언자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중에도, 그 증언을 글로 옮기는 행위 자체에서도 우리와 같은 역사적 인간이었고, 따라서 행위에서 죄를 지었으며 말과 글에서 오류를 범할 수 있었고 실제로 범했다. 그것도 역사나 지리나 연대 같은 영역에 한정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성경의 오류 가능성이 종교적·신학적 내용에까지 미친다고 명시했다. 율법과 예언서 사이, 요한복음과 공관복음 사이, 바울과 야고보 사이에 겹침과 모순이 있다는 것도 그가 직접 든 예다. 이 대목은 『교회교의학』 제1권 제2부, 영역본 507쪽에서 510쪽 사이에 있다.
성경에 신학적 오류가 있다고 말한 사람과, 성경 밖에서 오는 계시를 목숨 걸고 막아선 사람이 같은 사람이다. 이 어긋나 보이는 두 가지가 하나의 논증에서 나온다는 것이 이 글에서 따라갈 내용이다. 그 논증의 핵심은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는 데 있지 않고, 권위의 근거를 옮기는 데 있다. 본문이 지닌 속성에서 하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행위로.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낱말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이 분야의 용어는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가리키는 대상이 제각각이다.
| 낱말 | 가리키는 것 |
|---|---|
| 영감 | 하나님이 성경 기자에게 작용해 그 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셨다는 주장. 그리스어 테오프뉴스토스(θεόπνευστος,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신)에서 왔고,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나온다. |
| 축자영감 | 영감이 대의나 사상 수준에 그치지 않고 낱말 하나하나에까지 미친다는 주장. |
| 받아쓰기 이론 | 성령이 낱말을 불러 주고 기자는 받아 적기만 했다는 설명. 축자영감의 한 형태이지만 축자영감이 곧 받아쓰기는 아니다. |
| 무류 | 성경이 독자를 그르치지 않는다는 주장. 목적과 기능 쪽에 무게가 있다. |
| 무오 | 성경에 사실의 오류가 하나도 없다는 주장. 무류보다 강하다. |
| 자필 원본과 사본 | 기자가 직접 쓴 최초의 문서와 그것을 베낀 필사본. 자필 원본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
여기서 실제 논쟁의 지형이 드러난다. 무오라는 낱말이 시대마다 완전히 다른 대상을 가리켜 왔기 때문이다.
1675년 스위스 개혁교회는 헬베티아 일치신조를 채택했다. 취리히의 요한 하인리히 하이데거가 주로 작성했고 제네바의 프란시스 투레틴, 바젤의 루카스 게른러가 함께했다. 이 문서의 앞부분 세 조항이 성경을 다루는데, 프랑스 소뮈르 학파의 루이 카펠이 히브리어 모음 부호가 후대 마소라 학자들의 작품이라고 논증한 데 대한 대응이었다. 카논 2는 이렇게 말한다.
Hebraicus Veteris Testamenti codex, quem ex traditione ecclesiae Iudaicae, cui olim oracula Dei commissa sunt, accepimus hodieque retinemus, tum quoad consonas tum quoad vocalia, sive puncta ipsa sive punctorum saltem potestatem, et tum quoad res tum quoad verba θεόπνευστος.
유대 교회에게 일찍이 하나님의 말씀이 맡겨졌거니와, 그 전승을 통해 우리가 받아 오늘까지 보존하고 있는 구약의 히브리어 본문은, 자음에서나 모음에서나(모음 부호 그 자체에서나 적어도 그 부호가 지시하는 음가에서나) 그리고 내용에서나 낱말에서나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신 것이다.
헬베티아 일치신조(1675) 카논 2. 라틴어 본문은 니마이어, 『신앙고백 집성』(라이프치히 1840) 729~739쪽. 번역은 직접 옮겼다.
주목할 곳은 첫 부분이다. 이 문장의 주어는 우리가 오늘까지 보존하고 있는 본문이다. 손에 들고 읽는 마소라 히브리어 성경, 그것도 모음 부호까지 포함해서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신 것이라는 주장이다. 17세기 정통주의가 지키려 한 것은 현존하는 본문의 무오성이었다.
1978년 10월 시카고에서 미국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모여 채택한 시카고 성경 무오 선언은 같은 낱말을 다른 곳에 걸었다. 제10항은 영감이 엄밀히 말해 성경의 자필 원본 본문에만 적용된다고 명시하고, 사본과 번역본은 원본을 충실히 반영하는 한도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정한다. 그리고 자필 원본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오 주장을 무효로 만들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1675년의 무오는 손에 있는 본문에 걸려 있었고, 그래서 사본학의 검증을 받는 자리에 있었다. 1978년의 무오는 존재하지 않는 본문에 걸려 있고, 그래서 원리상 반증되지 않는다. 낱말은 같지만 검증 가능성의 구조가 반대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바르트가 겨눈 표적이 어느 쪽인지 정해 주기 때문이다. 그가 비판한 것은 앞의 것, 곧 17세기 정통주의가 세운 형태다. 그는 폴라누스가 마소라 학자들의 판단 위에 신앙을 세울 수 없다고 한 대목, 루터파 신학자 아브라함 칼로프가 성경 전체에 사소한 사항에서조차 오류나 기억의 착오가 없다고 한 대목, 요한 안드레아스 크벤슈테트가 한 구절에서라도 성령의 직접적 작용이 멈췄다면 사탄이 한 장, 한 권, 나아가 성경 전체에서 그것을 거둬 낼 수 있다고 한 대목을 차례로 인용하며 논박했다. 이 인용들은 『교회교의학』 제1권 제2부 522쪽에서 526쪽 사이에 모여 있다.
바르트의 성경론은 『교회교의학』 제1권에서 세워진다. 첫 부는 1932년에 나왔고, 성경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제2부는 1938년에 나왔다. 제2부의 영역본은 1956년에 나왔다. 이 글의 쪽수는 영역본을 따른다.
출발점은 하나님의 말씀이 세 가지 형태로 있다는 구도다. 계시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기록된 말씀은 성경이며, 선포된 말씀은 교회의 설교다. 셋은 나란히 놓인 세 갈래 통로가 아니라 하나의 말씀이 취하는 세 형태다. 다만 순서가 있다.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건에서 일어났고, 성경은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이 남긴 증언이며, 설교는 그 증언에 근거해 지금 하는 말이다.
증언이라는 낱말이 이 구도의 무게를 진다. 증언은 증언하는 대상과 구별된다. 법정에서 증인의 진술이 사건 자체는 아닌 것과 같다. 바르트는 성경을 계시와 직접 동일시하는 것을 두고, 그렇게 하면 성경에 좋은 대접이 아니라 반갑지 않은 대접을 하는 셈이라고 썼다(제1권 제1부 112쪽). 성경은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 말씀하시는 한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그의 정식이다(같은 책 109쪽).
여기서 오해가 자주 생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표현을, 성경이 평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다가 독자가 감동을 받는 순간에만 승격된다는 뜻으로 읽는 오해다. 바르트가 말하려는 바는 다르다. 그 사건의 주체는 하나님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되는지는 사람이 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정하신다. 그래서 그는 이 대목을 다루면서 기도가 마지막 말이 되어야 한다고 썼다(제1권 제2부 531~532쪽).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성경을 붙들고 찾고 묻고 구하는 것이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 밖이라는 뜻이다.
이 구도는 성경을 두 층으로 나누는 시도도 함께 막는다. 성경 안에서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내용과 형식, 영과 문자를 갈라내어 앞엣것만 취하고 뒤엣것을 버리는 방식 말이다. 바르트는 그런 선별에서 사람이 면제되었다고 썼다. 하나님이 성경의 인간적 말들이 지닌 오류 가능성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그대로 쓰셨다면, 사람이 그중에서 무오한 부분을 골라내려 애쓰는 일은 자기 뜻대로 하려는 불순종에 해당한다.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 대부분은 절충안을 택한다. 역사나 과학이나 연대 같은 영역에서는 당대의 한계가 드러날 수 있지만 신앙과 구원에 관한 가르침에서는 오류가 없다는 식이다. 바르트는 이 절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든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상식에 가까운 이유다. 예언자와 사도가 계시를 만났다고 해서 하늘과 땅의 모든 일에 관한 지식 요람을 함께 받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각자 자기 시대와 환경의 문화를 나눠 가졌고, 그 문화는 다른 시대가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바르트는 이 지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를 끌어온다. 요한복음 강해 첫 편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Audeo dicere, fratres mei, forsitan nec ipse Iohannes dixit ut est, sed et ipse ut potuit; quia de Deo homo dixit, et quidem inspiratus a Deo, sed tamen homo. Quia inspiratus, dixit aliquid; si non inspiratus esset, dixisset nihil: quia vero homo inspiratus, non totum quod est dixit; sed quod potuit homo, dixit.
형제들이여, 감히 말하거니와 요한조차도 있는 그대로 말하지는 못했을 것이고, 다만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말했을 것이다. 하나님에 관해 말한 이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람이었다. 감동을 받았기에 무언가를 말했다. 감동을 받지 않았더라면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동을 받은 것이 사람이었기에 있는 그대로를 다 말하지는 못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을 말했다.
아우구스티누스, 『요한복음 강해』 1편 1절. 라틴어 본문은 CCSL 36(빌렘스 교정본). 번역은 직접 옮겼다. 마지막 문장의 quod potuit homo를 바르트가 그대로 받아 쓴다.
여기서 potuit는 능력의 한계를 가리키는 낱말이다. 사람의 말이 감당할 수 있는 폭이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말을 한 대목은 요한복음 1장의 높이를 설명하려는 자리였다. 바르트는 이것을 성경 전체에 적용한다.
둘째 이유가 이 논증의 본체다. 바르트는 성경의 인간성을 부분적으로만 인정하는 태도를 가현설이라고 불렀다(제1권 제2부 510쪽). 가현설은 예수가 사람처럼 보였을 뿐 실제로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던 초대교회의 이단이다. 성경론에서 이 이름을 꺼낸 이유는 이렇다. 기독교는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나님이면서 완전한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성경론에서도 같은 구조가 성립한다면, 성경의 인간성을 훼손하거나 축소하는 순간 계시의 기적 자체가 사라진다. 하늘에서 완제품으로 내려온 책은 사람의 책인 척만 하는 책이고, 그것은 사람인 척만 한 그리스도와 같은 오류다.
이 논증에는 대가가 따른다. 인간성을 끝까지 인정하려면 오류의 범위를 신학적 내용에서 잘라 낼 수 없다. 잘라 내는 순간 그 부분에서만 인간성이 정지하고, 정지한 인간성은 인간성이 아니게 된다. 바르트가 절충안을 거부한 까닭은 유비를 끝까지 밀었기 때문이다. 유비를 끝까지 밀지 않으면 유비가 무너진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바르트가 영감 교리 전체를 걷어 낸 것처럼 읽힌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는 축자영감이라는 낱말을 버리지 않고 다시 정의해서 지켰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영감을 본문에 붙박인 성질로 바꿔 놓은 사고방식이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테오프뉴스토스를 성경이라는 물건이 소유한 화학 성분처럼 다루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행위가 이미 완료되어 종이 위에 고정된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성경은 그 자체로 근거를 갖게 되고 그리스도와 성령의 신비에서 떨어져 나온다. 바르트가 이 상태를 부른 이름이 종이 교황이다. 그는 이 종이 교황이 로마의 살아 있는 교황보다 나쁘다고 썼다. 살아 있는 교황은 적어도 스스로 말하지만, 종이 교황은 해석자들의 손에 넘겨져 인간 권력의 도구가 되고, 철학이나 수학의 공리와 같은 형식적 지위를 지닌 명제 목록으로 바뀐다는 것이다(제1권 제2부 522쪽과 525쪽).
반면 낱말 자체가 중요하다는 데는 그가 동의한다. 하나님은 두루뭉술한 메시지를 주시지 않고 바로 이 구체적인 문장들을 통해 말씀하신다. 그래서 그는 축자영감이 무엇이 아닌지를 먼저 밝힌 뒤 무엇인지를 말한다.
축자영감은 성경의 낱말이 언어적·역사적·신학적 성격에서 무류하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실 때 이 본문의, 다른 낱말이 아닌 바로 이 낱말들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주신다는 뜻이다. 인간의 오류 가능한 말과 나란히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통해 주신다. 그러므로 기록된 말씀을 건너뛰고 직접적인 신비 체험을 기대하는 길은 막혀 있다. (제1권 제2부 533쪽)
이 정의에서 무오와 축자성이 분리된다. 낱말이 중요한 이유는 낱말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낱말을 쓰기로 하셨기 때문이다. 무오는 본문의 자격 조건에서 빠지고, 남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다.
바르트가 무오 요구의 배후에서 읽어 낸 것도 이 지점이다. 그는 그것을 종교개혁의 은혜론에서 물러선 자리로 보았다. 개혁자들이 지킨 것은 구원의 전부가 하나님의 선물이며 사람은 모든 지점에서 주시는 분에게 의존한다는 주장이었다. 손에 쥘 수 있는 무오한 책을 요구하는 마음은 그 의존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보증을 확보하려는 마음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 진단은 그가 인용한 크벤슈테트의 문장 구조에서 실제로 드러난다. 한 구절이라도 영감이 멈췄다면 성경 전체의 권위가 무너진다는 논법은, 성경의 권위가 오류 없음이라는 조건 위에 서 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논법이다. 조건이 하나라도 깨지면 전부가 무너지는 구조를 만들어 놓으면, 그 구조를 지키는 일이 신앙의 중심 과제가 된다. 바르트가 보기에 그것은 보증을 관리하는 자세다.
여기까지 오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물음이 있다. 성경이 오류 가능한 인간의 증언이고 권위가 하나님의 현재 행위에 달려 있다면, 성경 없이 성령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극단적으로 성경이 모두 소실되었다고 가정해도 신앙이 성립하지 않는가.
바르트의 답은 명확한 부정이다. 그리고 이 부정이 앞의 논증보다 더 강하다.
이유는 세 형태의 구조에서 나온다.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체적 사건에서 단 한 번 일어났다. 사람이 그 사건에 닿는 통로는 그것을 직접 목격한 예언자와 사도의 증언뿐이다. 성경이 사라지면 성령이 증언할 대상 자체가 사라진다. 성령은 새로운 계시를 주는 영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축자영감을 다시 정의하는 자리에서 기록된 말씀을 건너뛸 수 없다고 못박았다.
더 실질적인 문제는 판별 기준이다. 성경 없이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만 남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목소리인지 자기 종교적 자의식인지 가려낼 방법이 사라진다. 바르트가 슐라이어마허 이후의 자유주의 신학과 싸운 핵심이 이것이었다. 하나님을 인간의 내면에서 찾기 시작하면 결국 인간이 자기 목소리를 하나님이라 부르게 된다. 성경의 낱말을 붙든 이유는 그것이 읽는 사람 밖에서 온 말, 읽는 사람이 만들지 않은 말, 읽는 사람을 거스를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뒤집힌 구조가 있다. 바르트가 무오설을 거부한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을 사람의 통제 아래 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성경 없는 내적 음성은 통제 가능성이 훨씬 크다. 종이 교황은 적어도 읽는 사람을 반박할 수 있지만, 내면의 목소리는 그 사람을 반박하지 못한다. 무오설 비판과 성령 직통주의 비판은 같은 원칙을 두 방향으로 적용한 결과다. 확실성의 소유권을 사람이 가지려는 시도를 양쪽에서 막는다.
바르멘 제1조가 그 원칙을 문장으로 굳힌 자리다. 조항의 무게는 성경이 증언하는 그대로의라는 한정구가 진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지만, 그 그리스도는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다. 이 한정구를 빼면 어떤 민족의 역사도, 어떤 시대의 요청도, 어떤 내면의 확신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걸칠 수 있게 된다. 1934년 독일에서 벌어지고 있던 일이 그 일이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칼뱅으로 돌아간다. 성경의 권위가 증명 가능한 무오성이 아니라 성령의 내적 증언에 근거한다는 개혁자의 주장이다. 칼뱅은 『기독교 강요』 최종판에서 이렇게 썼다.
Maneat ergo hoc fixum, quos Spiritus sanctus intus docuit, solide acquiescere in Scriptura, et hanc quidem esse αὐτόπιστον, neque demonstrationi et rationibus subiici eam fas esse; quam tamen meretur apud nos certitudinem, Spiritus testimonio consequi.
αὐτόπιστον = 아우토피스톤
그러므로 이것을 확정해 두자. 성령께서 안에서 가르치신 사람들은 성경 안에서 든든히 쉰다. 그리고 성경은 그 자체로 신뢰할 만한 것이어서, 증명이나 논증에 종속시키는 일은 온당하지 않다. 다만 성경이 우리에게서 받아 마땅한 그 확실성은 성령의 증언을 통해 얻어진다.
칼뱅, 『기독교 강요』(1559) 1권 7장 5절. 이 문장은 1559년 최종판에서 추가되었다. 번역은 직접 옮겼다. 그리스어 autopiston은 스스로 신뢰성을 지닌다는 뜻으로, 자증(自證)이라고도 옮긴다.
이 문장의 구조가 바르트가 가려는 방향을 보여 준다. 성경은 증명의 대상이 아니다. 동시에 그 확실성은 성령의 증언에서 온다. 성경과 성령이 함께 가는 구조다. 바르트가 개혁자들에게로 돌아가자고 한 것은 이 구조를 뜻한다.
그가 이 주장을 어디서 언제 폈는지도 강조점에 작용했다. 성경을 다루는 『교회교의학』 제1권 제2부는 그가 독일에서 추방된 뒤인 1938년에 나왔다. 성경 밖의 원천을 계시로 삼는 주장이 실제 정치 세력이 되어 교회를 삼키던 시기이며, 그 자신이 그 주장을 거부한 대가로 자리를 잃은 직후다. 성경의 권위가 사람의 손을 벗어난 곳에 있어야 한다는 그의 강조는 당장 진행 중인 싸움의 논거였다. 같은 사정 때문에 그는 정통주의를 정치적으로 무해한 학설로 다루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손에 쥔 보증을 확보하려는 태도는 어느 쪽에서 나오든 같은 뿌리였다.
이 논증에 대한 반론은 곧바로 나왔고, 지금도 이어진다. 반론의 무게중심은 세 곳이다.
첫째는 성경의 인간성에서 오류를 도출하는 추론 자체에 대한 반박이다. 1982년 시카고 성경 해석학 선언 제2항이 이 반박을 가장 압축된 형태로 담았다. 그리스도가 한 인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을 지니듯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언어로 있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인성이 비하의 상태에서도 죄를 함의하지 않았듯 성경의 인간적 형식도 오류를 함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르트가 가현설을 피하려고 쓴 그리스도론 유비를, 같은 유비를 써서 정반대 결론으로 되돌린 셈이다. 유비의 짝을 어디에 맞추느냐가 결론을 정한다. 바르트는 인간성을 유한성과 오류 가능성에 맞췄고, 시카고 선언은 인간성을 무죄한 인성에 맞췄다. 두 유비 모두 성립하지 않는 지점이 있다. 그리스도는 두 본성을 지닌 한 인격이고 성경은 두 저자를 가진 글이라는 차이가 그것인데, 1982년 선언은 이 차이를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유비의 힘이 여전히 남는다고 주장한다.
둘째는 권위의 객관성이 훼손된다는 반박이다. 1978년 시카고 성경 무오 선언 제3항은 성경이 계시에 대한 증언에 그친다는 주장, 만남 속에서만 계시가 된다는 주장, 성경의 타당성이 사람의 반응에 달려 있다는 주장을 차례로 거짓 교리로 지목했다. 바르트를 명시하지는 않지만 조준점이 어디인지는 문장 자체가 말한다. 같은 선언 제16항은 무오 교리가 스콜라적 개신교가 만들어 낸 것이라거나 고등비평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입장이라는 견해를 부인한다. 이것은 바르트가 편 역사적 주장, 곧 무오 교리는 17세기의 산물이라는 주장에 대한 직접적 부정이다.
이 지점에서는 양쪽 다 논증의 부담을 진다. 무오라는 낱말을 쓰지 않았어도 성경이 그르치지 않는다는 신뢰가 교회사 내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그 신뢰가 근대적 의미의 사실 무오와 같은 것이었다고 말하려면 별도의 논증이 필요하다. 앞에서 본 1675년과 1978년의 차이가 그 어려움을 드러낸다. 무오를 주장한 두 문서가 무오를 걸어 놓은 자리가 다르다면, 교회사 내내 하나의 무오 교리가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셋째는 더 근본적인 반박이다.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코르넬리우스 반 틸은 1946년 『새로운 현대주의』와 1962년 『기독교와 바르트주의』에서 바르트의 신학이 겉으로 정통과 낱말을 공유하지만 실질에서는 정통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논증했다. 그의 표적은 계시와 역사의 관계 전체였다. 반 틸이 보기에 바르트의 구도에서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은혜로 넘어가는 이행이 역사 안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계시를 언제나 사건으로 놓으면 그 사건은 역사의 특정 시점에 고정되지 않고, 그러면 성경이 보고하는 사실들의 역사성이 신학적으로 필수적이지 않게 된다는 지적이다.
칼 헨리는 조금 다른 자리에 섰다. 그는 1957년 『현대 신학에서의 복음주의적 책임』에서 바르트가 복음주의적 강조점 몇 가지를 현대 신학에 되돌려 놓은 공을 인정하면서도, 계시 이해가 여전히 자유주의의 자취를 지녔다고 보아 바르트에게 진 빚은 조심스럽게만 말해야 한다고 썼다. 헨리는 1978년 시카고 선언 서명자였고 그 전문을 자신의 『하나님, 계시, 권위』 제4권에 실었다.
바르트 쪽의 반론은 사건의 주체가 하나님의 자유로운 결정이므로 주관주의라는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반론은 형식 논리로는 통한다. 다만 반론을 받아들여도 남는 문제가 있다. 하나님의 결정이 주체라 해도, 그 결정이 일어났는지를 사람 쪽에서 확인할 절차는 여전히 없다. 바르트 자신이 그 절차를 요구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확실성을 구조 밖에 두는 것이 이 신학의 목적이었으므로, 그 목적을 달성한 대가로 확인 절차가 사라진 것은 이 설계의 귀결이다. 이것을 결함으로 볼지 설계의 귀결로 볼지가 두 진영이 끝내 합의하지 못한 자리다.
바르트가 성경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한 것은 성경의 권위를 깎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권위의 근거를 본문이 지닌 속성에서 하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행위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이 하나의 조작에서 그의 성경론 전체가 나온다.
근거는 세 갈래로 묶인다. 첫째,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건이고 성경은 그 사건에 대한 증언이므로 성경과 계시는 직접 동일하지 않다. 둘째, 증언자가 사람인 이상 그 인간성을 어느 영역에서도 정지시킬 수 없고, 정지시키면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한 가현설과 같은 구조가 성경론에서 반복된다. 셋째, 무오한 본문을 확보하려는 요구는 하나님이 언제 말씀하실지를 사람이 관리하려는 시도이며, 그것은 종교개혁의 은혜론에서 물러선 자리다. 그래서 그는 축자영감이라는 낱말은 지키고 축자무오는 버렸다. 하나님은 다른 낱말이 아닌 바로 이 낱말들을 통해 말씀하시지만, 그 낱말들이 완전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같은 원칙이 반대 방향에서도 작동한다는 것이 이 신학을 자유주의와 나누는 지점이다. 성경 없는 성령, 곧 내면의 확신이나 시대의 요청을 계시의 원천으로 삼는 길은 바르트에게 무오설보다 더 위험한 길이었다. 무오한 본문은 적어도 읽는 사람을 반박할 수 있지만 내면의 목소리는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1934년 바르멘 제1조의 한정구가 그 원칙을 문장으로 굳혔다.
판단이 엇갈리는 자리는 확인 절차가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있다. 성경의 권위를 본문의 속성으로 보는 쪽에서는 그것이 권위의 객관성을 해체한 결과다. 하나님의 행위로 보는 쪽에서는 그것이 하나님의 자유를 지킨 대가다. 1978년과 1982년의 시카고 선언은 앞의 판단을 조항으로 확정했고, 그중 하나는 바르트가 쓴 것과 똑같은 그리스도론 유비를 정반대 결론으로 돌려세웠다. 유비 하나가 두 방향으로 다 쓰인다는 사실은 이 논쟁이 유비의 힘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는 물음은 무오라는 낱말 자체에 걸려 있다. 1675년 스위스의 신학자들은 손에 든 히브리어 본문이 모음 부호까지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신 것이라고 고백했고, 1978년 시카고의 신학자들은 현존하지 않는 자필 원본에만 그것이 적용된다고 한정했다. 두 문서가 같은 낱말로 다른 대상을 가리킨다면, 바르트가 논박한 무오와 오늘 사람들이 옹호하는 무오가 같은 것인지부터 확정해야 논쟁이 성립한다. 그 확정 없이 오간 반박이 지난 한 세기 논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