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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이라는 이름과 그 도시의 건축 — 창세기 11장을 메소포타미아 왕실 문서와 나란히 읽기

창세기 11장 1~9절에는 메소포타미아 사람이라면 곧바로 알아볼 요소가 여럿 들어 있다. 도시의 이름, 벽돌을 굽는 장면, 하늘에 닿는 꼭대기, 이름을 내겠다는 선언이 모두 그렇다. 이 요소들이 바빌로니아 왕실 문헌에서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를 확인하면, 창세기 저자가 무엇을 가져다 어떻게 돌려놓았는지가 드러난다.

2026년 9월 12일

창세기 11장 1~9절의 줄거리는 아홉 절로 끝난다. 온 땅의 말이 하나였고,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동해 시날 땅의 평지에 자리를 잡았다. 벽돌을 구워 성읍과 탑을 쌓기로 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있게 하며 이름을 내자고 했다. 여호와가 내려와 그것을 보고 말을 섞어 놓았고, 사람들은 흩어져 성읍 쌓기를 그쳤다. 그곳의 이름은 바벨이 되었다.

짧은 이야기이지만 배경이 뚜렷하다. 시날은 메소포타미아 남부를 가리키는 지명이고, 바벨은 바빌론이다. 돌 대신 구운 벽돌을 쓰고 진흙 대신 역청을 접착제로 쓰는 것은 석재가 나지 않는 충적평야의 실제 공법이다. 저자는 그 지역의 건축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바빌론인가. 이야기의 주제가 언어의 기원이라면 무대는 어디든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저자는 바빌론을 골랐고, 그 도시의 이름을 이야기의 결말에 놓았다. 이 글은 그 선택이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를, 같은 소재를 다룬 메소포타미아 문헌과 나란히 놓고 확인한다. 결론을 미리 밝히면, 창세기 11장은 바빌론이 자기를 설명하던 문법을 그대로 가져와 뜻만 뒤집어 놓았다.

‘신의 문’을 ‘뒤죽박죽’으로 읽는 이름풀이

이야기의 마지막 절이 도시의 이름을 설명한다.

עַל־כֵּ֞ן קָרָ֤א שְׁמָהּ֙ בָּבֶ֔ל כִּי־שָׁ֛ם בָּלַ֥ל יְהוָ֖ה שְׂפַ֣ת כָּל־הָאָ֑רֶץ

ʿal-kēn qārāʾ šəmāh bābel kî-šām bālal YHWH śəpat kol-hāʾāreṣ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불렀다.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말을 섞으셨기 때문이다.

창세기 11장 9절. 히브리어 본문은 레닌그라드 사본 계열의 마소라 본문. 번역은 직접 옮겼다.

히브리어 בָּבֶל(바벨)과 동사 בָּלַל(발랄, ‘섞다’)의 자음이 겹치는 것을 이용한 이름풀이다. 문제는 이것이 실제 어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카드어에서 이 도시의 이름은 bāb-ilim, 곧 ‘신의 문’으로 통용되었다. 바빌로니아인들 자신이 그렇게 이해했다. 도시의 진짜 어원이 무엇인지는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고, 회복 불가능하다고 보는 학자가 많다. 겔브와 키에나스트를 비롯한 아시리아학자들이 이 문제를 다루었으나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창세기 저자의 관심은 어원학에 있지 않았다. 창세기의 이름풀이는 소리의 유사성에만 기댄다. 하와의 이름을 ‘산 자의 어머니’로 푸는 3장 20절, 가인의 이름을 ‘얻다’로 푸는 4장 1절, 노아의 이름을 ‘위로하다’로 푸는 5장 29절이 모두 같은 방식이다. 어느 것도 언어학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9절이 하는 일은 어원 설명이 아니라 이름의 탈취다. 제국의 수도가 스스로 내세우던 이름, ‘신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자랑스러운 호칭을 가져와, 소리가 비슷한 히브리어 동사에 붙여 ‘뒤섞임’으로 바꾸어 놓는다. 도시의 이름 자체가 그 도시에 대한 판정이 된다.

벽돌을 굽는 장면은 바빌론이 자기 창건을 설명하던 방식이다

이야기의 첫 행동은 벽돌 만들기다.

וַיֹּאמְר֞וּ אִ֣ישׁ אֶל־רֵעֵ֗הוּ הָ֚בָה נִלְבְּנָ֣ה לְבֵנִ֔ים וְנִשְׂרְפָ֖ה לִשְׂרֵפָ֑ה וַתְּהִ֨י לָהֶ֤ם הַלְּבֵנָה֙ לְאָ֔בֶן וְהַ֣חֵמָ֔ר הָיָ֥ה לָהֶ֖ם לַחֹֽמֶר׃

wayyōʾmərû ʾîš ʾel-rēʿēhû hābâ nilbənâ ləbēnîm wəniśrəpâ liśrēpâ wattəhî lāhem halləbēnâ ləʾāben wəhaḥēmār hāyâ lāhem laḥōmer

그들이 서로에게 말했다. “자, 우리가 벽돌을 빚어 단단히 굽자.” 그들에게는 벽돌이 돌을 대신했고 역청이 진흙을 대신했다.

창세기 11장 3절.

이 장면은 바빌로니아 창조 서사시 「에누마 엘리시」의 한 대목과 겹친다. 「에누마 엘리시」는 마르둑이 태초의 바다 티아마트를 무찌르고 세계를 지은 뒤 신들의 왕이 되는 이야기다. 현존 토판들은 기원전 1200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바빌론의 신년 축제 아키투에서 낭송되었다. 여섯째 토판에서 아눈나키 신들이 마르둑에게 무엇으로 보답할지 묻자 마르둑은 바빌론을 지으라고 답한다.

“너희가 청한 그 일, 바빌론을 지어라. 그것을 위해 벽돌을 찍고 성소를 높이 세워라.” 아눈나키가 곡괭이를 들었다. 한 해 동안 그들은 필요한 벽돌을 만들었다. 이듬해가 되자 그들은 에사길라의 꼭대기를 높이 들어 압수에 맞먹게 했다.

「에누마 엘리시」 여섯째 토판 57~62행. 아카드어 본문 대신 뜻만 옮겼다.

겹치는 항목이 많다. 신들이 모여 의논하고, 한 해 동안 벽돌을 만들고, 그 벽돌로 도시와 신전 탑을 세운다. 창세기 11장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의논하고, 벽돌을 굽고, 그 벽돌로 성읍과 탑을 세운다. 「에누마 엘리시」에서 완성된 건축물은 에사길라이고, 그 이름은 ‘머리를 높이 든 집’이라는 뜻이다. 바빌론의 대지구라트 이름은 에테메난키, ‘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집’이다. 창세기 11장 4절의 “그 꼭대기는 하늘에 있게 하고”와 같은 계열의 표현이다.

차이는 행위자와 평가다. 「에누마 엘리시」에서 바빌론을 세운 것은 신들이고, 그 건설은 우주 질서의 완성으로 찬양된다. 창세기 11장에서 바벨을 세우는 것은 사람들이고, 그 공사는 중단된다. 같은 장면을 놓고 한쪽은 창조의 절정으로, 다른 쪽은 좌절된 기획으로 쓴다.

지구라트 메소포타미아의 계단식 신전탑을 가리킨다. 진흙 벽돌로 심을 쌓고 겉면을 구운 벽돌로 감싼 뒤 층을 줄여 가며 올리고, 꼭대기에 신전을 두었다. 도시마다 주신을 위해 하나씩 세우는 것이 관례였고, 지금까지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서른 곳 남짓이 확인되었다. 바빌론의 에테메난키가 그중 가장 유명하지만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것은 오늘날 이라크 남부의 우르 지구라트다.

왕실 건축 비문의 문법을 가져와 뒤집기

벽돌 장면만 겹치는 것은 아니다. 메소포타미아 왕들은 큰 건축을 마칠 때마다 그 경위를 기록한 비문을 남겼고, 그 비문에는 반복되는 형식이 있었다. 건축의 동기를 밝히고, 자재를 조달하고, 인력을 동원하고, 완성된 구조물의 위용을 묘사하고, 그 일로 왕의 이름이 영원히 남을 것을 선언하는 순서다.

앤드루 조르제티는 2014년 『베투스 테스타멘툼』에 실은 논문에서 창세기 11장 1~9절이 바로 이 건축 기록 장르의 구조를 따라가되 논지를 뒤집는 ‘모방 건축 기록’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정리에 따르면 이름 내기, 보편적 지배, 거대 건축이라는 모티프가 창세기 본문과 메소포타미아 왕실 비문에 나란히 나타난다. 히브리어 저자는 그 형식을 빌려 왕실 건축 이념의 오만을 되받아 쓴다. 조르제티는 이 장르 분석이 본문의 까다로운 대목, 곧 여호와가 두 번 내려오는 것처럼 읽히는 구성을 설명해 준다고 본다. 새 도시를 처녀지에 세우려면 신의 승인이 필요했는데, 창세기에서 여호와는 그 승인을 주지 않는다.

‘하늘에 닿는 꼭대기’라는 표현이 상투 어구였다는 점도 여기에 걸린다. 신명기 1장 28절과 9장 1절은 가나안 성읍들의 성벽을 “하늘까지 닿은”이라고 묘사한다. 아시리아 왕 산헤립은 유다의 성읍 아제카의 성벽을 두고 같은 계열의 아카드어 표현을 썼다. 함무라비 시대의 연도 표기에는 신전 탑을 두고 “그 꼭대기가 하늘 같은”이라는 수메르어 표현이 나온다. 시어도어 히버트는 이 용례들을 근거로, 창세기 11장 4절의 표현이 높이를 강조하는 관용구일 뿐 하늘을 공격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고 본다.

이름을 내겠다는 선언도 마찬가지다. 히브리어 성서 안에서 이름을 낸다는 관용구는 늘 긍정적으로 쓰인다.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크게 하는 자리에도, 아브라함의 이름이 창대해지는 자리에도, 다윗의 명성을 말하는 자리에도 같은 표현이 쓰인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 왕실 비문에서 이름을 남기는 일은 왕권의 핵심 행위였다. 존 스트롱은 2008년 논문에서 이 점을 파고든다. 정복한 왕은 자기 형상과 이름을 새긴 비석을 세웠고, 적이 그 이름을 긁어내는 것은 왕 자신을 지우는 행위였다. 스트롱의 독법에서 시날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내려 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긁어내고 그 자리에 자기 이름을 새기는 일에 해당한다.

내려와야 보이는 탑

본문의 한가운데에 놓인 5절이 저자의 수사를 가장 잘 보여 준다.

וַיֵּ֣רֶד יְהוָ֔ה לִרְאֹ֥ת אֶת־הָעִ֖יר וְאֶת־הַמִּגְדָּ֑ל אֲשֶׁ֥ר בָּנ֖וּ בְּנֵ֥י הָאָדָֽם׃

wayyēred YHWH lirʾōt ʾet-hāʿîr wəʾet-hammigdāl ʾăšer bānû bənê hāʾādām

여호와께서 사람의 아들들이 쌓은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다.

창세기 11장 5절.

꼭대기가 하늘에 있다던 구조물을 보기 위해 신이 내려와야 한다. 다수의 주석가는 이를 축소의 수사로 읽는다. 인간이 하늘에 닿았다고 여긴 높이가 신의 자리에서는 내려다보이지도 않을 만큼 낮다는 뜻이 된다. 히버트는 이 독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의 하강은 야휘스트 문서의 현현 장면에 늘 따라붙는 관용적 서술이고(창세기 18장 21절, 출애굽기 3장 8절, 34장 5절), 하늘과 땅을 두 층으로 나눈 고대 근동의 우주관에서 신이 인간의 영역에 개입하려면 내려오는 것 외에 다른 표현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어느 쪽으로 읽든 5절이 구조상 이야기의 축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1~4절의 인간 행위와 6~9절의 신의 행위가 이 절을 경계로 갈라지고, 뒤쪽 절반은 앞쪽 절반을 그대로 되풀이하면서 방향만 반대로 돌린다. 한 언어는 여러 언어가 되고, 한곳에 머물려던 사람들은 온 땅에 흩어지며, “자, 우리가 ~하자”는 인간의 청유형은 “자, 우리가 내려가자”는 신의 청유형에 되받힌다.

창세기 전체에서 이 이야기가 놓인 자리

이 이야기는 홀로 떨어져 있지 않다. 앞뒤 문맥과 맞물리는 지점이 셋이다.

첫째는 창세기 1장 28절과 9장 1절의 명령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했다. 그런데 창세기 11장 4절의 사람들은 온 땅에 흩어지지 않기 위해 성읍을 쌓는다. 여러 주석가가 이 대조를 근거로 바벨의 죄를 ‘수평적 불순종’으로 규정해 왔다. 땅으로 퍼져 나가기를 거부한 것이 문제였다는 해석이다. 다만 이 대조를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문서비평의 관례를 따르면 1장 28절과 9장 1절은 제사장 문서에 속하고 11장 1~9절은 야휘스트 문서에 속한다. 서로 다른 계열의 전승을 한 저자의 의도처럼 읽는 셈이 된다는 것이 히버트의 지적이다.

둘째는 창세기 12장 2절이다. 바벨의 사람들은 “우리 이름을 내자”고 말했다. 그다음 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고 약속한다. 인간이 스스로 얻으려 한 것을 하나님이 주겠다고 하는 구조다. 인류 전체를 다루던 원역사가 한 가문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이음매에 이 대비가 놓여 있다.

셋째는 바로 앞 장과의 어긋남이다. 창세기 10장의 민족 목록은 노아의 세 아들에게서 나온 족속들이 이미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땅에 퍼져 있다고 세 번 되풀이해 적는다(5절, 20절, 31절). 그런데 11장 1절은 온 땅의 말이 하나였다고 시작한다. 시간 순서가 맞지 않는다. 히버트는 이 불연속을 두 장이 같은 사건을 다룬 서로 다른 판본이라는 근거로 본다. 10장은 제사장 문서의 계보 형식이고 11장은 야휘스트 문서의 서사 형식이며, 편집자가 둘을 나란히 남겼다는 것이다. 편집자가 연대기를 적으려 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언제 쓰였는가에 따라 겨냥한 대상이 달라진다

본문이 바빌론을 겨냥했다고 볼 경우, 어느 시기의 바빌론인지가 문제가 된다. 답은 저작 시기에 달려 있고, 이 문제는 지금도 정리되지 않았다.

다수 견해는 바빌론 포로기 전후, 곧 기원전 6세기 무렵을 본다. 유다 왕국이 바빌론에 멸망당하고 주민이 끌려간 시기이므로 제국의 상징 건축을 미완성 실패작으로 묘사할 동기가 뚜렷하다. 성서고고학 쪽에서도 문헌 증거와 고고학 증거를 함께 볼 때 포로기 이후가 이런 이야기를 쓸 만한 가장 그럴듯한 배경이라고 정리한다.

크리스토프 위흘링거는 1990년의 연구에서 다른 층위를 제안했다. 이야기의 원형은 기원전 8세기에 아시리아 제국, 특히 사르곤 2세의 정책을 비판하며 생겼고, 기원전 6세기의 첫 개정에서 비판 대상이 신바빌로니아 제국으로 옮겨 갔다는 것이다. 아리 판 데르 코이도 창세기 11장을 아시리아 제국주의의 맥락에서 읽는다. 로버트 그누세는 이 이야기를 제국의 건축 사업에 대한 우화로 보되 건축자를 신바빌로니아의 왕들, 특히 나보니두스로 특정한다.

제국 비판이라는 독법 자체를 물리치는 견해도 있다. 히버트는 이 이야기에 왕이 등장하지 않고 인칭이 처음부터 끝까지 복수형이며 왕권이나 제국을 가리키는 어휘가 하나도 없다는 점을 든다. 게다가 본문이 밝힌 사람들의 목적은 제국의 확장과 정반대, 곧 한곳에 머무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앙드레 라코크는 2009년의 응답에서, 포로기 이후 유다의 저자가 바빌론을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는 이야기를 썼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결론 — 저자는 제국의 언어를 빌려 제국을 서술했고, 그 대가로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지금까지 확인한 것을 묶으면 이렇다. 창세기 11장 1~9절이 쓰는 재료는 대부분 메소포타미아에서 왔다. 구운 벽돌과 역청이라는 공법, 시날이라는 지명, 신들이 모여 벽돌을 찍어 도시와 신전 탑을 세운다는 「에누마 엘리시」의 장면, 하늘에 닿는 꼭대기라는 건축 관용구, 이름을 남기는 일을 왕권의 핵심으로 보는 관념, 그리고 바빌론이라는 도시 이름이 모두 그렇다. 저자는 이 재료들을 가져와 방향을 돌려놓는다. 신들이 짓던 도시를 사람들이 짓고, 완성되어 찬양받던 공사는 중단되며, ‘신의 문’이라는 이름은 ‘뒤섞임’이 된다.

이 뒤집기가 성립하려면 독자가 원래의 문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벽돌 장면이 무엇의 패러디인지, ‘신의 문’이 무슨 뜻인지 아는 독자에게만 9절의 이름풀이가 타격이 된다. 창세기 11장이 유독 짧고 설명을 생략한 것도 여기서 이해할 수 있다. 당대 독자에게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생략이 뒤의 문제를 낳는다. 원래의 문법을 잃은 독자에게 이 본문은 죄목 없이 벌만 있는 이야기로 남는다. 무엇이 잘못이었는지를 본문이 말해 주지 않으므로, 읽는 쪽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폭군 니므롯과 무너진 탑과 교만이라는 죄목이 후대에 들어오는 경로가 여기서 열린다.

남는 물음은 저작 시기다. 이 이야기가 아시리아를 겨냥한 8세기의 글인지, 신바빌로니아를 겨냥한 6세기의 글인지, 제국과 무관하게 문화의 기원을 설명한 글인지는 본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세 답은 각각 다른 독법을 낳고, 어느 것도 결정적 증거를 갖지 못한 상태다. 창세기 11장이 무엇을 겨냥했는지에 관한 논쟁은 그 시기 문제가 정리되기 전까지 같은 형태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