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알려진 폭군 니므롯, 그들이 지었다는 죄목인 교만, 그리고 허물어진 탑의 잔해. 창세기 11장 1~9절 아홉 절에는 이 셋이 모두 없다. 기원전 2세기의 희년서부터 요세푸스와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 브뤼헐의 그림에 이르기까지, 없던 것들이 언제 어떤 이유로 이야기에 들어왔는지를 원전으로 따라간다.
바벨탑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개 한 장면이 떠오른다. 거대한 탑이 나선형으로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그 아래에서 사람들이 돌을 깎고 있으며, 한쪽 구석에는 공사를 명령한 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서 있다. 탑은 끝내 완성되지 못한다. 신이 사람들의 말을 뒤섞어 놓아 일이 중단되고, 세워지다 만 구조물만 남는다. 인간의 교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끝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로 정리된다.
이 장면의 출처는 창세기 11장 1~9절이다. 그런데 그 아홉 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방금 나열한 요소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공사를 명령한 왕은 등장하지 않는다. 죄나 교만이나 반역에 해당하는 낱말이 한 번도 쓰이지 않는다. 탑이 무너지는 장면도 없고, 탑이 미완성으로 남았다는 진술조차 없다.
없는 것이 이토록 많은데도 우리가 그 장면을 또렷하게 떠올린다는 사실은, 그 장면의 출처가 따로 있다는 뜻이다. 그것을 만든 것은 본문을 읽어 온 사람들이다. 이 글은 그 경로를 따라간다. 언제 누가 무엇을 채워 넣었고, 무엇이 그렇게 채우도록 만들었는지를 원전에서 확인하는 것이 목표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창세기 11장이 유독 설명을 생략했다는 점이 이야기를 키운 동력이었다.
먼저 본문을 정확히 짚어 두어야 한다. 창세기 11장 1~9절의 줄거리는 짧다. 온 땅의 말이 하나였다.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동해 시날 땅의 평지를 찾아 거기 자리를 잡았다. 서로 벽돌을 만들어 굽자고 말했고, 돌 대신 벽돌을, 진흙 대신 역청을 썼다. 그다음이 이 이야기의 중심 문장이다.
וַיֹּאמְר֞וּ הָ֣בָה ׀ נִבְנֶה־לָּ֣נוּ עִ֗יר וּמִגְדָּל֙ וְרֹאשׁ֣וֹ בַשָּׁמַ֔יִם וְנַֽעֲשֶׂה־לָּ֖נוּ שֵׁ֑ם פֶּן־נָפ֖וּץ עַל־פְּנֵ֥י כָל־הָאָֽרֶץ׃
wayyōʾmərû hābâ nibneh-lānû ʿîr ûmigdāl wərōʾšô baššāmayim wənaʿăśeh-lānû šēm pen-nāpûṣ ʿal-pənê kol-hāʾāreṣ
그들이 말했다. “자, 우리가 성읍과 탑을 쌓자. 그 꼭대기는 하늘에 있게 하고,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내자.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도록.”
창세기 11장 4절. 히브리어 본문은 레닌그라드 사본 계열의 마소라 본문. 번역은 직접 옮겼다.
이 한 문장에 이 글이 다룰 쟁점이 거의 다 들어 있다. 문장의 구조부터 보자. 앞쪽에 명령형 하나(“자”)와 청유형 둘(“쌓자”, “내자”)이 놓이고, 맨 끝에 히브리어 접속사 פֶּן(펜)이 이끄는 절이 붙는다. 이 접속사는 “~하지 않도록”을 뜻한다. 곧 성읍과 탑을 쌓는 일과 이름을 내는 일은 마지막 절에 적힌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그들이 원한 것은 한곳에 함께 머무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5절에서 여호와가 “내려와서” 성읍과 탑을 본다. 6절에서 여호와는 이렇게 말한다. 보라, 이들은 한 백성이고 모두 한 언어를 쓴다. 이것이 그들이 하기 시작한 일이며, 이제 그들이 하려고 꾀하는 일은 무엇이든 막을 수 없을 것이다. 7절에서 신의 대응이 나온다.
הָ֚בָה נֵֽרְדָ֔ה וְנָבְלָ֥ה שָׁ֖ם שְׂפָתָ֑ם אֲשֶׁר֙ לֹ֣א יִשְׁמְע֔וּ אִ֖ישׁ שְׂפַ֥ת רֵעֵֽהוּ׃
hābâ nērədâ wənābəlâ šām śəpātām ʾăšer lōʾ yišməʿû ʾîš śəpat rēʿēhû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말을 섞어 버리자. 서로 상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도록.
창세기 11장 7절.
여기서 히브리어의 소리 장난이 드러난다. 3절에서 사람들이 “벽돌을 만들자”고 할 때 쓴 말은 נִלְבְּנָה(닐브나)이고, 4절에서 “쌓자”고 할 때 쓴 말은 נִבְנֶה(닙네)다. 7절에서 신이 “섞어 버리자”고 할 때 쓴 말은 נָבְלָה(나블라)다. 자음의 배열이 거의 뒤집힌 꼴이다. 게다가 “자”에 해당하는 감탄사 הָבָה(하바)를 사람들이 두 번 쓰고 신이 한 번 되받는다. 인간의 기획과 신의 대응이 같은 어투로 맞물리게 짜여 있다.
그리고 8절, 곧 이 글의 논지에서 가장 중요한 절이 온다.
וַיָּ֨פֶץ יְהוָ֥ה אֹתָ֛ם מִשָּׁ֖ם עַל־פְּנֵ֣י כָל־הָאָ֑רֶץ וַֽיַּחְדְּל֖וּ לִבְנֹ֥ת הָעִֽיר׃
wayyāpeṣ YHWH ʾōtām miššām ʿal-pənê kol-hāʾāreṣ wayyaḥdəlû libnōt hāʿîr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땅 위에 흩으셨고, 그들은 그 성읍 쌓기를 그쳤다.
창세기 11장 8절.
마지막에 그친 것은 “성읍”(הָעִיר) 쌓기다. 탑은 언급되지 않는다. 4절과 5절에서 “성읍과 탑”으로 짝지어 나오던 표현이 8절에서 “성읍”만 남는다. 그리고 9절의 이름풀이도 성읍을 가리킨다. 그곳의 이름을 바벨이라 한 것은 거기서 여호와가 온 땅의 말을 섞으셨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탑이 무너졌다는 말도, 미완성으로 남았다는 말도 본문에 없다. 공사가 중단되었다는 서술에서 독자가 미완성을 추론할 수는 있지만, 그 추론의 대상은 성읍으로 한정된다.
정리하면 창세기 11장 1~9절에 없는 것은 이렇다. 공사를 주도한 개인이 없다. 인칭이 처음부터 끝까지 복수형이다. 죄·악·교만·반역에 해당하는 낱말이 없다. 신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대목도 없다. 탑의 붕괴도 없다. 하늘에 닿아 신을 공격하겠다는 의도 표명도 없다. 본문이 명시한 동기는 오직 하나, 흩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바벨탑 이야기에는 이 여섯 가지가 다 들어 있다. 하나씩 어디서 왔는지 따라가 보자.
현존하는 자료 가운데 창세기 11장을 다시 쓴 가장 이른 것은 희년서다. 희년서는 기원전 2세기에 유대인 저자가 쓴 책으로, 창세기와 출애굽기 앞부분을 49년 단위의 연대표에 맞춰 다시 서술한 작품이다. 정경에는 들지 못했으나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지금도 경전으로 받는다. 이 책은 히브리어로 쓰였고 그리스어를 거쳐 에티오피아어(그으즈어) 완역본으로 전해졌으며, 쿰란에서 히브리어 단편이 다수 발견되었다.
희년서 10장 18~27절이 바벨탑 대목이다. 여기서 창세기에 없던 것들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먼저 벨렉이 아들의 이름을 르우라 지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사람의 자손들이 시날 땅에 성읍과 탑을 세우려는 악한 뜻 때문에 악하게 되었다”고 적는다. 창세기가 쓰지 않은 도덕적 평가가 여기서 명시된다.
다음으로 건축의 목적이 바뀐다. 희년서 10장 19절은 사람들이 “자, 이것을 딛고 하늘로 올라가자”고 말했다고 전한다. 창세기 11장 4절의 “꼭대기는 하늘에 있게 하고”가 하늘로 올라가겠다는 선언으로 바뀐 것이다. 앞에서 확인했듯 창세기 본문에서 하늘에 관한 말은 탑의 높이를 수식하는 구절이다. 희년서는 그 수식어를 목적으로 승격시켰다.
그다음은 수치다. 희년서 10장 21절은 공사가 43년간 이어졌고, 너비는 벽돌 203장, 높이는 5,433 규빗 두 뼘, 한쪽 벽은 13스타디온, 다른 쪽은 30스타디온이었다고 적는다. 창세기는 치수를 하나도 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결말이 달라진다.
주께서 강한 바람을 보내어 탑을 쳐 땅에 무너뜨리셨다. 보라, 그것은 시날 땅에서 앗수르와 바벨론 사이에 있었고, 사람들은 그 이름을 ‘무너짐’이라 불렀다.
희년서 10장 26절. 그으즈어 본문 대신 뜻만 옮겼다.
무너진 탑의 출처가 여기다. 창세기가 그치게 한 것은 성읍 공사였고, 탑을 무너뜨린 것은 희년서다. 게다가 희년서 10장 24절은 창세기 11장 8절을 다시 쓰면서 “그들은 그때 성읍과 탑 쌓기를 그쳤다”고 탑을 끼워 넣는다. 창세기에서 한 짝이 빠져 있던 자리를 메운 것이다.
희년서의 개입이 어디까지인지 표로 대조하면 분명해진다.
| 항목 | 창세기 11장 | 희년서 10장 |
|---|---|---|
| 건축 동기 | 흩어지지 않기 위해 | 이것을 딛고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
| 도덕적 평가 | 없음 | “악한 뜻”이라 명시 |
| 탑의 규모 | 언급 없음 | 높이 5,433 규빗 두 뼘, 공사 기간 43년 |
| 공사 중단 대상 | 성읍 | 성읍과 탑 |
| 탑의 최후 | 언급 없음 | 강한 바람에 무너짐 |
| 주모자 | 없음(복수형) | 없음 |
표의 마지막 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희년서는 죄와 붕괴를 도입했으면서도 주모자는 세우지 않았다. 니므롯이 이 이야기에 들어오려면 시간이 더 걸린다.
니므롯이라는 이름이 성서에 등장하는 주된 자리는 창세기 10장 8~12절이다. 그 앞뒤는 노아의 세 아들에게서 갈라져 나온 민족들의 계보이고, 니므롯은 함의 아들 구스가 낳은 인물로 소개된다. 그에 관한 서술은 다섯 절이 전부다.
הֽוּא־הָיָ֥ה גִבֹּֽר־צַ֖יִד לִפְנֵ֣י יְהוָ֑ה עַל־כֵּן֙ יֵֽאָמַ֔ר כְּנִמְרֹ֛ד גִּבּ֥וֹר צַ֖יִד לִפְנֵ֥י יְהוָֽה׃
hûʾ-hāyâ gibbōr-ṣayid lipnê YHWH ʿal-kēn yēʾāmar kənimrōd gibbôr ṣayid lipnê YHWH
그는 여호와 앞에서 힘센 사냥꾼이었다. 그러므로 “니므롯처럼 여호와 앞에서 힘센 사냥꾼”이라는 말이 생겼다.
창세기 10장 9절.
이어 10절은 그의 나라의 시작이 시날 땅의 바벨, 에렉, 아카드였다고 적고, 11~12절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봇 이르와 갈라와 레센을 세웠다고 적는다. 여기까지가 전부다. 니므롯을 비난하는 말은 한 줄도 없다. 그는 최초의 용사이자 사냥꾼이며 도시의 창건자로 그려진다.
이 인물의 뿌리가 무엇인지는 오래 논쟁거리였다. 카렐 판 데르 토른은 1990년 『하버드 신학 평론』에 실은 공동 논문 「성서 이전과 이후의 니므롯」 앞부분에서 후보들을 하나씩 검토한다. 마르둑으로 보는 견해는 1871년 그리벨이 제안하고 1966년 리핀스키가 되살렸으나, 마르둑이 히브리어 성서에 이미 ‘므로닥’ 또는 ‘벨’로 나온다는 점 때문에 어형 설명이 막힌다. 실존 왕으로 보는 견해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후보는 아시리아 왕 투쿨티니누르타 1세(재위 기원전 1243~1207)지만, 창세기 10장이 나열하는 도시들의 전성기가 1,500년 넘게 벌어져 있어 한 사람의 생애에 담기지 않는다.
판 데르 토른은 니므롯의 원형을 수메르·아카드의 전쟁신 니누르타로 본다. 니누르타는 「루갈에」 같은 수메르 서사시에서 괴수들을 사냥해 죽이는 신이고, 사냥꾼들의 수호신이며, 시리우스 별과 동일시되었다. 동시에 농경의 신으로서 문명의 기초를 놓은 존재로 그려진다. 창세기 10장이 나열한 도시들의 순서가 니누르타 숭배가 남부에서 북부로 퍼져 간 경로와 겹친다는 점, 그리고 아시리아의 니누르타 숭배 중심지가 바로 갈라(칼후)였다는 점이 그 근거다. 다만 נמרד라는 히브리어 어형과 니누르타 사이의 음운 대응은 지금도 설명되지 않았다고 판 데르 토른은 인정한다.
어느 후보가 옳은지는 이 글의 논지를 바꾸지 않는다. 창세기 10장의 니므롯은 메소포타미아 배경을 가진 문명 창건자이고, 그 서술에 도덕적 비난이 붙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니므롯은 어떻게 바벨탑의 폭군이 되었는가.
창세기 10장 9절의 히브리어 לִפְנֵי יְהוָה(리프네 아도나이)는 문자 그대로 “여호와의 얼굴 앞에서”다. 히브리어에서 이 표현은 대개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이다. 칠십인역은 이를 그리스어 ἐναντίον(에난티온)으로 옮겼다. 문제는 이 그리스어가 “~앞에서”와 “~에 맞서”를 모두 뜻한다는 점이다. 번역자가 중립적으로 옮긴 낱말이 뒤의 독자에게는 두 갈래로 읽힐 여지를 남겼고, 해석사는 뒤쪽을 택했다.
이 선택을 처음 명시적으로 기록한 사람은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이다. 기원전 20년경 태어나 기원후 50년경까지 활동한 유대인 철학자로,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 철학의 틀로 우의적으로 풀이한 저작을 많이 남겼다. 『창세기 문답』 2권 81~82절에서 필론은 니므롯의 조부 함을 악으로, 부친 구스를 메마름과 불모의 상징으로 놓고, 그런 계보에서 나온 니므롯을 땅의 것을 하늘의 것보다 높이는 자로 규정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에난티온) 거인”이라는 표현을 “하나님께 맞서는”이라는 뜻으로 읽는다. 같은 저자의 『거인들에 관하여』 65~66절에서는 니므롯이라는 이름 자체를 ‘이탈’ 또는 ‘탈주’로 풀이한다.
필론의 두 대목이 짧지만, 여기에 이후 전승의 씨앗이 거의 다 들어 있다. 창세기 6장 4절의 거인들(히브리어 גִּבֹּרִים, 칠십인역 γίγαντες)과 창세기 10장 8~9절의 니므롯(גִּבֹּר, 칠십인역 γίγας)이 같은 낱말로 묶이면서 니므롯은 홍수 이전 거인족의 일원이 되고, 그의 나라가 바벨이었으므로 바벨탑의 건설자가 되며, 이름의 어원이 ‘반역하다’로 풀리면서 반역자가 된다. 히브리어 מרד(마라드)는 실제로 ‘반역하다’를 뜻하고, נִמְרֹד는 그 동사의 1인칭 복수형 “우리가 반역하자”로 읽힐 수 있다.
필론보다 반세기 뒤, 로마에서 활동한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유대 고대사』를 쓴다. 기원후 94년경의 저작이다. 1권 109~121절에서 그는 창세기 11장을 다시 쓰면서 두 가지를 새로 넣는다. 하나는 사람들이 흩어지기를 거부한 이유다. 신이 흩어지라고 권한 것은 그들을 갈라놓아 공격하기 쉽게 하려는 속셈이라고 그들이 의심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가 니므롯이다.
Ἐξῆρέ τε αὐτοὺς πρός τε ὕβριν τοῦ θεοῦ καὶ καταφρόνησιν Ναβρώδης, ὃς υἱωνὸς μὲν ἦν Χάμου τοῦ Νώχου, τολμηρὸς δὲ καὶ κατὰ χεῖρα γενναῖος· ἔπειθεν οὖν αὐτοὺς μὴ τῷ θεῷ διδόναι τὸ δι᾽ ἐκεῖνον εὐδαιμονεῖν, ἀλλὰ τὴν ἰδίαν ἀρετὴν ταῦτα παρέχειν αὐτοῖς ἡγεῖσθαι.
exēre te autous pros te hybrin tou theou kai kataphronēsin Nabrōdēs, hos hyiōnos men ēn Chamou tou Nōchou, tolmēros de kai kata cheira gennaios; epeithen oun autous mē tō theō didonai to di’ ekeinon eudaimonein, alla tēn idian aretēn tauta parechein autois hēgeisthai.
그들을 부추겨 하나님을 모욕하고 업신여기게 한 자는 니므롯이었다. 그는 노아의 아들 함의 손자로, 담대하고 완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을 설득해, 자신들이 누리는 복을 하나님 덕분으로 돌리지 말고 자기들의 용맹이 그것을 가져다준 것으로 여기게 했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권 113절. 그리스어 본문은 전승 본문에 따랐으며 이름은 사본에 따라 Ναβρώδης와 Νεβρώδης로 갈린다. 번역은 직접 옮겼다.
이어지는 114절에서 니므롯은 정치체제를 서서히 참주정으로 바꾸는데, 그 이유가 명시된다. 사람들을 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떼어 놓으려면 자기 권력에 계속 의존하게 만드는 길밖에 없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탑을 쌓는 목적이 이렇게 제시된다.
πύργον γὰρ οἰκοδομήσειν ὑψηλότερον ἢ τὸ ὕδωρ ἀναβῆναι δυνηθείη, μετελεύσεσθαι δὲ καὶ τῆς τῶν προγόνων ἀπωλείας.
pyrgon gar oikodomēsein hypsēloteron ē to hydōr anabēnai dynētheiē, meteleusesthai de kai tēs tōn progonōn apōleias.
물이 닿을 수 있는 높이보다 더 높은 탑을 쌓아, 조상들을 멸망시킨 일에 대해 보복하겠다는 것이었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권 114절.
탑이 홍수에 대비한 방벽이자 신에 대한 복수 수단이 된다. 창세기에는 홍수와 탑을 연결하는 문장이 없다. 홍수 이야기(창세기 6~9장)와 바벨 이야기(11장) 사이에는 민족 목록(10장)이 놓여 있을 뿐이다. 두 사건을 인과로 묶은 사람은 요세푸스이며, 그 매듭을 지은 인물이 니므롯이다.
요세푸스가 그리스어로 썼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의 책은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이 손쉽게 읽을 수 있었고, 실제로 널리 읽혔다. 니므롯을 바벨탑의 주모자로 보는 시각은 이 경로를 타고 기독교 전통에 들어갔다.
요세푸스와 거의 같은 시기, 저자를 알 수 없는 『성서 고대사』가 쓰인다. 위(僞)필론의 작품으로 불리며 기원후 1세기 후반의 저작으로 본다. 여기 6장에서 니므롯과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정면 대결한다. 셈과 함과 야벳 세 지파의 우두머리들이 바벨에 큰 탑을 세우기로 하는데, 아브라함을 포함한 열두 사람이 주를 섬기는 자들이어서 참여를 거부한다. 욕단이 이들을 가두었다가 달아날 기회를 주는데 아브라함만 거절한다. 니므롯은 아브라함을 불가마에 산 채로 던지라고 명령하고, 불길이 튀어 나와 8만 3,500명을 태우는 동안 아브라함만 상하지 않는다.
이 대결의 발생 경위는 추적할 수 있다. 창세기 15장 7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냈다”고 말한다. 히브리어 지명 אוּר(우르)는 ‘불’을 뜻하는 אוּר와 철자가 같다. 후대 해석자들이 이를 “갈대아 사람들의 불”로 읽으면 아브라함이 불에서 구출된 사건이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바벨이 갈대아의 중심이고 니므롯이 바벨의 왕이며 니므롯이 반역의 원형이라면, 아브라함이 던져진 불가마의 주인은 니므롯일 수밖에 없다. 이야기의 골격은 다니엘 3장의 풀무불 장면에서 빌려 왔다. 창세기 11장 28절에서 아브라함의 형 하란이 “갈대아 우르”에서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는 구절도 같은 논리로 재해석되어, 하란은 그 불에 타 죽은 사람이 된다.
타르굼들은 니므롯을 어떻게 옮겼는지를 보여 준다. 타르굼 위요나단은 창세기 10장 9절을 “여호와 앞에서 힘센 반역자”로 옮기고, 세상이 창조된 날부터 니므롯 같은 사냥꾼이자 반역자는 없었다고 덧붙인다. 타르굼 네오피티는 그를 “여호와 앞에서 죄의 용사”라 부른다. 단편 타르굼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가 사람들을 말로 덫에 걸리게 하여 “셈의 법을 떠나 니므롯의 법을 따르라” 했다고 적는다. 타르굼 온켈로스는 절제된 표현을 써서 “강력한 권세자”로 옮긴다.
흥미로운 것은 타르굼 위요나단이 바로 두 절 뒤에서 정반대로 간다는 점이다. 창세기 10장 11절의 히브리어는 “그 땅에서 앗수르가 나아가”로 읽을 수도 있고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로 읽을 수도 있다. 위요나단은 후자를 택하고, 니므롯이 바벨을 떠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가 분열 세대의 공사에 가담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적는다. 같은 번역본 안에서 니므롯은 최악의 반역자이자 탑 공사를 거부한 의인이다.
이 긍정적 계열은 시리아 교부들에게서 더 뚜렷하다. 4세기의 에프렘은 창세기 10장 9절 주석에서, 니므롯이 여호와 앞의 힘센 거인이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민족들과 싸워 그들을 각자에게 배정된 지역으로 흩어 놓았기 때문이라고 적는다. 그래서 지도자나 왕을 축복할 때 “니므롯처럼 되소서, 여호와 앞의 힘센 거인, 여호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자여”라고 말했다고 한다. 9세기의 메르브의 이쇼다드는 더 구체적으로, 니므롯이 바벨탑 건축자들과 싸워 그들을 도시에서 몰아냈으며 그 덕분에 원시 언어인 히브리어가 벨렉에게서 보존되었다고 쓴다.
여기까지의 문헌들을 나란히 놓으면 하나가 분명해진다. 창세기 10장의 니므롯은 평가가 붙지 않은 인물이고, 그 공백을 두 방향으로 채운 전승이 나란히 존재했다. 부정적 계열이 압도적으로 남은 것은 그쪽이 전승 안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 탈무드는 니므롯 전승을 압축된 형태로 전한다. 「에루빈」 53a에서 랍 과 슈무엘이 창세기 14장 1절의 아므라벨을 두고 논쟁한다. 한쪽은 그의 본명이 니므롯인데 아므라벨로 불린 것은 “그가 말하여(아마르) 우리 조상 아브라함을 불가마에 던졌기(히필) 때문”이라 하고, 다른 쪽은 본명이 아므라벨인데 니므롯으로 불린 것은 “그가 자기 치세에 온 세상을 하나님께 반역하게(히므리드) 만들었기 때문”이라 한다. 두 설명 모두 어원 유희이며, 두 이름을 한 인물로 묶는 근거는 아므라벨이 아브라함 시대 시날의 왕이었다는 사실 하나다.
「아보다 자라」 53b는 바벨탑을 “니므롯의 집”이라 부르고 우상으로 취급한다. 「훌린」 89a에서는 하나님이 “내가 니므롯에게 위대함을 주었더니 그가 ‘자, 성읍을 쌓자’ 하였다”고 말한다. 창세기 11장 4절의 복수형 발언이 니므롯 한 사람의 입으로 옮겨 붙었다. 「페사힘」 118a에는 니므롯이 아브라함을 불가마에 던졌을 때 천사 가브리엘이 내려가 구하겠다고 청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창세기 랍바 23장 7절과 26장 4절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창세기에서 “시작하다”라는 동사가 네 번(4장 26절, 6장 1절, 10장 8절, 11장 6절) 쓰였는데 그 모두가 반역의 뜻이라는 유추다. 그중 두 곳이 니므롯에 관한 구절이다. 그리고 11장 6절의 “이것이 그들이 하기 시작한 일이며”를 근거로, 하나님이 니므롯의 머리를 치며 “저자가 그들을 부추겨 반역하게 하였다”고 외쳤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창세기 11장에 니므롯이 없다는 문제는 이런 식으로 해결되었다. 본문에 없는 인물을 다른 장에서 데려와 대명사의 자리에 앉혔다.
한편 4세기 말 히에로니무스가 편찬한 『히브리어 이름 풀이집』은 니므롯의 뜻을 네 가지로 제시한다. 폭군(tyrannus), 도망자(profugus), 범법자(transgressor), 배교자(apostata). 라틴어권 독자에게 이 이름은 사전에서부터 이미 악인이었다.
서방 기독교에서 이 해석을 굳힌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16권 4장이다. 그는 창세기 11장 1~9절을 인용한 뒤 바벨이 ‘혼란’을 뜻한다고 풀고, 앞 장에서 언급한 니므롯이 그 성읍의 창건자라고 결론짓는다. 그러고 나서 번역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Quod non intellegentes nonnulli ambiguo Graeco falsi sunt, ut non interpretarentur contra Dominum, sed ante Dominum; ἐναντίον quippe et contra et ante significat.
이를 이해하지 못한 몇몇 사람은 그리스어의 중의성에 속아, ‘주님을 거슬러’로 옮기지 않고 ‘주님 앞에서’로 옮겼다. ἐναντίον은 ‘거슬러’와 ‘앞에서’를 모두 뜻하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16권 4장. 라틴어 본문은 통용 교정본 계열을 따랐고, 번역은 직접 옮겼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두 뜻 중 어느 쪽이 옳은지를 성경 용례로 판정한다. 시편의 “우리를 지으신 주님 앞에서 울자”와 욥기의 “네가 주님을 거슬러 분노를 터뜨렸다”를 나란히 놓고, 니므롯의 경우는 뒤쪽이라고 결정한다. 그리고 ‘사냥꾼’이라는 낱말의 뜻을 땅에서 난 생물들을 속이고 짓누르고 없애는 자로 확정한다. 결론은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Erigebat ergo cum suis populis turrem contra Deum, qua est impia significata superbia. Merito autem malus punitur affectus, etiam cui non succedit effectus.
그러므로 그는 자기 백성과 함께 하나님을 거슬러 탑을 세웠으니, 그 탑이 가리키는 것은 불경한 교만이다. 악한 의도는 그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마땅히 벌을 받는다.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16권 4장.
뒤 문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해석 원칙이다. 결과가 없어도 의도만으로 처벌이 정당하다는 원칙이 있어야, 아무 죄목도 적히지 않은 본문에서 죄를 읽어 낼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원칙을 명시함으로써 창세기 11장의 침묵을 해석의 여지로 바꾸어 놓았다.
같은 장에서 그는 벌의 성격도 설명한다. 명령하는 자의 지배력은 언어에 있으므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한 자가 사람들에게 알아들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 그 교만에 합당한 벌이라는 것이다. 언어 분화를 형벌로 읽는 서방 전통의 근거가 여기 있다.
중세와 근세를 지나며 니므롯은 문학과 회화의 표준 도상이 된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 31곡에서 니므롯은 지옥 제9원을 지키는 거인들 가운데 하나로 등장한다. 그의 가슴에는 사냥 나팔이 걸려 있는데, 창세기 10장 9절의 사냥꾼이라는 호칭에서 온 소품이다. 그가 입을 열어 외치는 유일한 대사는 이렇다.
«Raphèl maì amècche zabì almi»
(뜻을 알 수 없는 소리)
단테, 『신곡』 「지옥편」 31곡 67행.
이 행은 번역되지 않는다. 초기 주석가들부터 번역 불가로 보았고, 오늘날의 주석도 뜻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요점이라고 본다. 베르길리우스는 니므롯을 “어리석은 영혼”이라 부르며, 그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세상에서 한 언어만 쓰이지 못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그에게는 모든 언어가 남들에게 그의 언어가 그런 것만큼이나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벌이 그 사람의 인격이 된 셈이다. 단테는 니므롯을 거인으로 그리는데, 이는 창세기 6장의 거인족과 니므롯을 묶은 고대 전승, 그리고 올림포스를 오르려 한 그리스 신화의 거인들을 아우구스티누스의 해석과 겹쳐 읽은 결과다.
회화에서는 피터르 브뤼헐이 결정적이다. 그는 바벨탑을 세 번 그렸다. 1553년경 로마 체류 중 상아에 그린 소품은 소실되었고, 1563년 패널화 두 점이 남아 있다. 큰 쪽은 가로 155센티미터 세로 114센티미터로 빈 미술사박물관에 있고(소장번호 GG 1026), 작은 쪽은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에 있다. 빈 그림의 왼쪽 아래 구석에는 왕과 수행원들이 서 있고 석공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 인물이 니므롯으로 해석된다. 로테르담 그림에서는 이 무리가 통째로 빠져 있다.
브뤼헐이 그린 탑의 외형은 아치를 층층이 쌓은 로마 콜로세움을 본떴다. 당시 기독교인에게 콜로세움은 이교도의 건축이자 초기 기독교인 박해의 현장이었고, 인간의 위업인 동시에 오만의 표상이었다. 창세기 본문의 진흙 벽돌 지구라트와는 닮은 데가 없다. 그림의 구조물이 미완성으로 보이고 한쪽으로 기울어 보이는 것도 화가의 선택이다. 오늘날 우리가 바벨탑이라는 말에서 떠올리는 형태는 16세기 플랑드르 화가가 로마에서 본 원형 경기장에서 왔다.
지금까지 본 것은 빈자리를 메우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그 빈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고대 유대 주석가들은 알고 있었다. 명시적으로 적어 놓기까지 했다.
창세기 랍바 38장 6절은 창세기 11장 1절의 “온 땅의 말이 하나요 말이 같았더라”를 풀이하면서 시작한다. 히브리어 אֲחָדִים(아하딤, ‘같은’)을 אֲחוּדִים(아후딤, ‘가려진’)으로 고쳐 읽는 해석이 제시되고, 그 근거가 이렇게 붙는다.
מַעֲשֶׂה דּוֹר הַמַּבּוּל, נִתְפָּרֵשׁ. מַעֲשֶׂה דּוֹר הַפְלָגָה, לֹא נִתְפָּרֵשׁ.
maʿăśeh dôr hammabbûl, nitpārēš. maʿăśeh dôr happəlāgâ, lōʾ nitpārēš.
홍수 세대의 행위는 명시되었다. 분열 세대의 행위는 명시되지 않았다.
창세기 랍바 38장 6절.
이 한 줄이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는다. 창세기 6장은 홍수 세대의 죄를 분명히 적었다. 땅이 강포로 가득했다고 썼다. 그런데 창세기 11장은 분열 세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쓰지 않았다. 벌은 있는데 죄목이 없다.
랍비들의 대응은 죄목을 만들어 넣는 것이었다. 같은 절이 이어서 그들이 한 말을 재구성한다.
לֹא כָּל הֵימֶנּוּ לָבוּר לוֹ אֶת הָעֶלְיוֹנִים וְלִתֵּן לָנוּ אֶת הַתַּחְתּוֹנִים, אֶלָּא בּוֹאוּ וְנַעֲשֶׂה לָנוּ מִגְדָּל וְנַעֲשֶׂה עֲבוֹדַת כּוֹכָבִים בְּרֹאשׁוֹ, וְנִתֵּן חֶרֶב בְּיָדָהּ, וּתְהֵא נִרְאֵית כְּאִלּוּ עוֹשָׂה עִמּוֹ מִלְחָמָה.
그가 위의 것들을 자기 몫으로 고르고 아래의 것들을 우리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자, 우리가 탑을 세우고 그 꼭대기에 우상을 만들어 그 손에 칼을 쥐여 주자. 그것이 그와 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자.
창세기 랍바 38장 6절.
탑 꼭대기의 무장한 우상은 창세기 어디에도 없다. 이 장면은 죄목이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기 위해 작성되었다. 같은 절에서 랍비 엘아자르는 이 죄를 홍수 세대의 죄와 견준다. 홍수 세대는 “전능자가 무엇이기에 우리가 그를 섬기겠는가”(욥기 21장 15절)라고 말했으니 왕에게 “당신도 나도 궁전에 있지 말자”고 한 격이고, 분열 세대는 “당신은 나가고 내가 궁전을 차지하겠다”고 한 격이어서 후자가 더 무겁다는 판정이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대목이 뜻밖의 방향으로 간다. 더 무거운 죄를 지었다는 분열 세대는 살아남았고, 홍수 세대는 남은 자가 없었다. 랍비들의 설명은 이렇다. 홍수 세대는 강포에 빠져 있었기에 남은 자가 없었고, 분열 세대는 “온 땅의 말이 하나”였다는 구절이 보여 주듯 서로 사랑했기에 남은 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평화는 위대하다”는 격언이 붙는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더라도 그들 사이에 평화가 있으면 하나님이 그들을 치지 못한다는 취지의 해설까지 이어진다.
같은 절 안에서 분열 세대는 최악의 반역자이자, 서로 사랑했기에 살아남은 공동체다. 앞서 타르굼 위요나단에서 본 것과 같은 종류의 균열이다. 본문이 평가를 비워 두었기 때문에 상반된 평가가 같은 자리에 공존할 수 있었다.
죄목의 부재는 근대 성서학에서도 계속 지적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석가는 그 침묵을 인정하면서도 교만과 형벌이라는 틀 자체는 유지했다. 이 틀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 시어도어 히버트가 2007년 『성서문학회지』에 실은 논문 「바벨탑과 세계 문화의 기원」이다. 시카고 매코믹 신학교의 구약학자인 그는 창세기 11장 1~9절이 교만과 형벌에 관한 이야기가 전혀 아니며, 오로지 문화적 차이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그의 논거는 여럿이다. 첫째는 앞에서 본 4절의 문법이다. 성읍과 탑을 쌓는 것도 이름을 내는 것도 수단이고, 목적은 흩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꼭대기가 하늘에 있는 탑”이라는 표현이 고대 근동의 상투 어구라는 점이다. 신명기 1장 28절과 9장 1절은 가나안 성읍들의 성벽을 “하늘까지 닿은”이라고 묘사한다. 아시리아 왕 산헤립은 유다의 성읍 아제카의 성벽을 아카드어로 “하늘 높이 닿은”이라고 적었다. 함무라비 시대의 연도 표기에는 자바바와 이난나의 신전 탑을 두고 “그 꼭대기가 하늘 같은”이라는 수메르어 표현이 나온다. 바빌론의 신전 구역 에사길라는 ‘머리를 높이 든 집’이라는 뜻이고, 「에누마 엘리시」 6번째 토판은 그 건설을 묘사하며 “그들이 에사길라의 머리를 높이 들어 압수에 맞먹게 했다”고 쓴다. 지구라트 에테메난키의 이름은 ‘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집’이다. 높이를 강조하는 이 상투 어구들은 하늘을 기어올라 신을 공격하겠다는 뜻을 담지 않는다.
셋째는 “이름을 내자”라는 표현이다. 히브리어 성서에서 이름을 낸다는 관용구는 언제나 긍정적으로 쓰인다.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크게 하는 데도(이사야 63장 12절, 예레미야 32장 20절), 아브라함의 이름이 창대해지는 데도(창세기 12장 2절), 다윗의 명성에도(사무엘하 8장 13절) 같은 표현이 쓰인다. 히버트는 이 표현이 자만이나 불복종을 뜻한 사례가 성서에 없다고 정리한다.
넷째는 7절의 동사 בלל(발랄)이다. 성서의 다른 용례에서 이 동사는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는’ 일에만 쓰인다(출애굽기 29장 40절, 레위기 14장 10절, 민수기 6장 15절 등). 혼란이나 좌절이라는 부정적 뜻은 칠십인역이 이 동사를 그리스어 συγχέω(쉰케오)로 옮기면서 들어왔다. 이 그리스어에는 ‘뒤섞다’ 외에 ‘혼란시키다’, ‘좌절시키다’, ‘파괴하다’라는 뜻이 있다. 근대 사전과 번역본이 창세기 11장에서만 이 동사에 부정적 색을 입혔다는 것이 히버트의 지적이다.
다섯째는 6절의 첫 낱말 הֵן(헨)이다. 이 말은 보통 “보라” 정도로, 지금의 상황을 가리키는 기능어다. 그런데 여러 현대 역본이 이를 “만일”로 옮겨 6절 전체를 조건절로 만들었다. 그러면 하나님의 첫 반응이 미래에 대한 우려가 된다. 현재 상태를 확인하는 문장이라는 성격은 사라진다. 히버트는 이 번역의 근거가 문법이 아닌 신학에 있다고 본다.
여섯째는 8절이다. 앞에서 확인한 대로 공사가 그친 대상은 성읍이다. 히버트는 미완성으로 서 있는 탑이라는 도상 자체가 해석자들의 상상력의 산물이며 본문에는 그런 그림이 전혀 없다고 못을 박는다.
히버트가 해석사 전체에서 예외로 꼽는 인물이 한 사람 있다. 12세기 에스파냐의 유대인 주석가 아브라함 이븐 에즈라다. 히버트의 정리에 따르면 이븐 에즈라는 “꼭대기가 하늘에 있는 탑”을 신명기 1장 28절과 같은 높이의 관용 표현으로 보았고, 탑을 세운 사람들이 실제로 하늘에 오를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고 적었다. 또한 흩어짐을 그들 자신에게 유익한 조치로 읽었다. 판 데르 토른과 판 데르 호르스트도 이븐 에즈라가 니므롯에 관한 부정적 전승들을 물리치고 그를 짐승에 대한 인간의 능력을 처음 보여 준 인물이자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사람으로 설명했으며, 그 때문에 나흐마니데스에게 비판받았다고 기록한다.
히버트의 논문에는 곧 반론이 나왔다. 존 스트롱은 2008년 같은 학술지에 「하나님의 형상을 부수다」를 실어, 하나님의 행위를 가리키는 적절한 낱말은 ‘형벌’이 아니라 ‘부숨’이라고 주장했다. 고대 근동에서 정복한 왕은 자기 형상과 이름을 새긴 비석을 세웠고, 적이 그 이름을 긁어내는 것은 왕 자신을 지우는 행위였다. 스트롱은 시날의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내려 한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긁어내고 그 자리에 자기 이름을 새기는 일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앙드레 라코크는 2009년 「시날 골짜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로 응답했다. 그는 히버트의 목표가 “랍비와 교부들의 주석 이래” 통용된 독법, 곧 인간의 오만과 그에 대한 형벌이라는 독법을 반박하는 데 있다고 정리한 뒤, 세 방향에서 반대한다. 해석사의 압도적 일치를 가볍게 볼 수 없다는 것, 포로기 이후 유다의 저자가 바빌론을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는 이야기를 썼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시날 골짜기라는 지명과 벽돌·역청이라는 재료와 이름을 내겠다는 계획이 문헌학적으로 부정적 함의를 띤다는 점이다.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브라이언 휴스는 2025년 『스코틀랜드 신학지』에 실은 논문에서 히버트와 반론자들의 논의를 언어관의 문제로 다시 정리했다.
양쪽 모두 창세기 11장에 죄를 지시하는 낱말이 없다는 사실 자체는 다투지 않는다. 논쟁은 그 침묵을 어떻게 읽느냐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한쪽은 침묵을 저자가 도덕적 평가를 하지 않은 증거로 읽고, 다른 쪽은 당대 독자에게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던 함의가 있었다고 읽는다. 후자가 옳더라도 그 함의를 복원하는 작업은 본문 바깥의 자료에 기대야 한다. 곧 어느 쪽을 택하든, 우리가 아는 바벨탑 이야기의 상당 부분이 본문 바깥에서 왔다는 사실은 남는다.
기독교 전통에는 바벨탑과 짝을 이루는 또 하나의 장면이 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이다. 예루살렘에 모인 제자들에게 성령이 내리고, 그들이 여러 언어로 말하자 각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언어로 알아듣는다. 바벨에서 흩어진 언어가 오순절에 다시 모였다는 도식은 설교와 신학서에서 오랫동안 반복되었다.
이 연결의 근거는 몇 가지다. 사도행전 2장 9~11절에 나열된 지역 목록이 창세기 10장의 민족 목록과 성격이 비슷하다는 점, 언어의 흩어짐을 다룬 구약 본문이 창세기 11장 말고는 없다는 점, 두 장면 모두 신의 하강으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신약학자 크레이그 키너는 이런 요소들이 쌓여 있으므로 누가가 의도적으로 연결했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차이도 함께 지적한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내려와 언어를 흩어 하나 됨을 막았고,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이 내려와 언어를 흩어 여러 문화의 하나 됨을 만든다는 것이다.
반대 견해도 만만치 않다. 베일러대학의 미키얼 파슨스는 오순절을 바벨의 역전으로 보는 독법이 신학적으로 매력적이지만, 누가나 그의 청중이 그 연결을 지었다고 볼 만한 고대의 근거가 빈약하다고 본다. 그가 더 유력하게 보는 배경은 시내산 언약의 갱신이다. 희년서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때를 그해 셋째 달이라 적고(1장 1절), 뒤에서 오순절(칠칠절)을 셋째 달의 절기로 적는다(6장 1절). 율법 수여와 오순절을 잇는 이 암시는 랍비 유대교 시기에 명시적으로 진술된다(바빌로니아 탈무드 「페사힘」 68b). 사도행전 2장의 소리와 불과 말은 출애굽기 19장 16~19절의 시내산 현현에 따르는 현상들이며, 여기서 누가가 오순절을 새 언약의 틀에서 생각했음이 드러난다고 파슨스는 본다.
구약 안에도 비슷한 기대를 담은 구절이 있다. 스바냐 3장 9절은 하나님이 만민에게 “정결한 입술”(שָׂפָה בְרוּרָה, 사파 베루라)을 주어 모두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어깨를 나란히 하여 섬기게 하겠다고 말한다. 여기 쓰인 שָׂפָה는 창세기 11장이 되풀이해 쓴 바로 그 낱말이다. 낱말이 겹치므로 두 본문을 잇는 독법이 성립하지만, 스바냐 본문 자체는 바벨을 언급하지 않는다.
이 논쟁의 구조는 앞 장들과 같다. 후대의 본문이 앞선 본문을 끌어다 쓰는 일 자체는 정상적인 해석 행위이고, 성서 안에서도 늘 일어난다. 문제는 그 연결을 원저자의 의도로 되돌려 놓을 때 생긴다. 오순절이 바벨의 역전이라는 도식은 두 본문을 함께 읽는 독자가 만들어 낸 것이며, 그 도식 안에서 언어의 다양성은 극복되어야 할 저주가 된다. 앞서 본 대로 창세기 11장은 그 다양성을 저주라고 말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 추적한 것을 논지 기준으로 다시 묶으면 세 갈래다.
첫째, 요소들의 출처가 각각 다르다. 탑의 붕괴와 “하늘로 올라가자”는 선언은 기원전 2세기 희년서에서 처음 나온다. 주모자 니므롯은 창세기 10장에서 데려온 인물로, 칠십인역의 그리스어 ἐναντίον이 열어 준 두 갈래 뜻을 필론이 부정적으로 확정하고 요세푸스가 참주로 완성했다. 아브라함과의 대결과 불가마는 창세기 15장 7절의 지명 ‘우르’를 ‘불’로 읽는 데서 파생해 위필론과 탈무드와 미드라시에서 확장되었다. 교만이라는 죄목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론』 16권 4장에서 번역 문제를 명시적으로 처리하고 의도만으로 처벌이 정당하다는 원칙을 덧붙임으로써 서방 전통에 고정되었다. 미완성으로 기울어진 콜로세움 모양의 탑은 1563년 브뤼헐의 패널화다. 어느 것도 창세기 11장에 없다.
둘째, 채워 넣기를 유발한 것은 본문의 침묵이다. 창세기 11장은 벌을 서술하면서 죄목을 적지 않았다. 홍수 세대의 강포를 명시한 창세기 6장과 나란히 놓이면 이 결핍은 더 두드러진다. 창세기 랍바 38장 6절의 랍비들은 이 결핍을 정확히 인지했고, 인지한 다음 탑 꼭대기의 무장한 우상이라는 장면을 만들어 그 자리를 채웠다. 채워 넣기는 결핍을 자각한 뒤에 이루어진 작업이었다.
셋째, 전승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았다. 타르굼 위요나단은 같은 번역본 안에서 니므롯을 반역자로도, 탑 공사를 거부한 인물로도 그린다. 에프렘과 이쇼다드는 그를 하나님의 뜻을 수행한 지도자로 읽었다. 창세기 랍바 38장 6절은 분열 세대를 더 무거운 죄인으로 판정한 직후 그들이 서로 사랑했기에 살아남았다고 적는다. 이븐 에즈라는 12세기에 교만 해석을 거부했고, 히버트는 2007년에 같은 자리로 돌아가 그 해석 전체를 반박했다. 부정적 독법이 표준이 된 것은 여러 독법 가운데 그것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남는 물음은 침묵의 성격이다. 창세기 11장의 저자가 평가를 의도적으로 비워 둔 것인지, 당대 독자에게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어 생략한 것인지는 본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히버트를 따르면 전자이고 스트롱과 라코크를 따르면 후자다. 이 물음이 확정되려면 창세기 11장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쓰였는지가 먼저 정해져야 하는데, 그 문제도 열려 있다. 논쟁의 형태는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확정되지 않은 것과 별개로, 해석사가 남긴 자료는 그 자체로 읽을 값이 있다. 아홉 절짜리 이야기 하나가 2천 년 넘게 폭군과 거인과 불가마와 무너진 탑을 만들어 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따라가 보면, 그것은 본문이 말한 것이 아니라 본문이 말하지 않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