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은 네 강의 이름까지 대며 에덴의 자리를 일러 준다. 그 기술을 지도에 맞춰 보려는 작업이 150년 넘게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빙하기 말 페르시아만의 해수면 곡선과 아라비아반도의 마른 물길 같은 자료가 쌓였다. 정작 에덴은 나오지 않았다. 본문의 지리 기술이 애초에 지도에 대응하도록 짜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지명이 이만큼 촘촘하게 나오는 대목은 드물다. 창세기 2장 10절부터 14절까지는 에덴에서 강 하나가 흘러나와 넷으로 갈라진다고 적고, 네 강의 이름을 하나씩 댄다. 비손, 기혼, 힛데겔, 유프라테스다. 비손이 지나는 땅에는 금이 나고 그 금이 좋다는 말까지 덧붙는다. 힛데겔은 오늘날의 티그리스강이고 유프라테스는 이름 그대로 남아 있다. 두 강은 지금도 지도에 있다.
이 정도면 위치를 특정할 수 있어야 한다. 19세기 이래 여러 사람이 그렇게 판단했고, 후보지로 제시된 곳은 아르메니아 고원, 이라크 남부, 이란 북서부, 바레인, 튀르키예 남동부, 이집트 기자, 심지어 미국 미주리주까지 늘어났다. 후보가 이렇게 흩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무언가를 말해 준다. 같은 본문을 읽고 서로 500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을 지목하는 상황은 자료의 부족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탐색이 헛돌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작업에 매달린 사람들이 실제로 확보한 것이 있다. 빙하기 말 페르시아만 바닥의 지형, 아라비아반도를 가로지르던 하천의 자취, 해수면 상승의 연대다. 모두 검증 가능한 지질학·고기후학 자료이며 지금도 인용된다. 다만 그 자료가 증명하는 것과, 그 자료 위에 얹힌 주장은 같지 않다. 이 글은 그 간격이 어디서 벌어지는지를 따라간다.
먼저 본문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 창세기 2장 10절은 이렇다.
וְנָהָר֙ יֹצֵ֣א מֵעֵ֔דֶן לְהַשְׁק֖וֹת אֶת־הַגָּ֑ן וּמִשָּׁם֙ יִפָּרֵ֔ד וְהָיָ֖ה לְאַרְבָּעָ֥ה רָאשִֽׁים׃
wenahar yotse me'eden lehashqot 'et-haggan umishsham yipparred wehayah le'arba'ah ra'shim
강 하나가 에덴에서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머리가 되었다.
창세기 2장 10절. 히브리어 본문은 웨스트민스터 레닌그라드 사본 전자판. 옮김은 필자.
동사 야차(yatsa)는 나온다는 뜻이고, 앞에 붙은 전치사 멤(me-)은 출발점을 나타낸다. 강은 에덴에서 나와 밖으로 흐른다. 그리스어 칠십인역도 같은 방향으로 옮겨 엑포류에타이 엑스 에뎀(ekporeuetai ex Edem), 곧 에덴으로부터 흘러나온다고 적는다. 갈라지는 지점은 동산을 적신 다음이다. 하나의 물줄기가 위에 있고 네 줄기가 아래에 있는 구조다.
이 구조는 실제 하천 지형과 맞지 않는다. 강은 상류에서 여러 지류가 모여 하류로 갈수록 하나가 된다. 하구에서 갈라지는 삼각주가 있기는 하지만, 삼각주의 갈래는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 서로 다른 대륙으로 가지 않는다. 창세기의 네 강 가운데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는 나란히 흘러 같은 바다로 들어가고, 기혼은 구스를 두르며, 비손은 하윌라를 두른다고 되어 있다. 구스는 구약 다른 곳에서 주로 나일강 상류의 누비아를 가리킨다. 한 수원에서 갈라진 네 줄기가 메소포타미아와 아프리카로 흩어진다는 배치는 실제 지형보다 세계 전체를 지시하는 도식에 해당한다.
남은 두 이름, 비손과 기혼은 성경 밖 어느 문헌에도 강 이름으로 나오지 않는다. 고대 근동의 방대한 설형문자 기록에도, 이집트 기록에도 없다. 하윌라라는 땅 이름도 마찬가지다. 위치를 특정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이 두 이름에 실재하는 강을 배정하는 작업이 되고, 배정의 근거는 본문 바깥에서 가져와야 한다. 후보지가 흩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배정 작업은 근대 고고학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있었다. 기원후 1세기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 1권 1장 3절에서 네 강을 하나씩 지목했다. 비손은 인도를 지나 바다로 들어가는 강이며 그리스인이 갠지스라 부르는 강이며, 기혼은 나일이다. 이 배정은 그리스 지리학의 세계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호메로스 시대 이래 그리스인은 모든 강이 땅을 두르는 하나의 큰 담수 흐름 오케아노스에서 갈라져 나온다고 보았고, 기원전 1세기까지도 유프라테스가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습지로 사라졌다가 에티오피아에서 나일로 다시 솟는다고 적은 지리학자가 있었다. 하나의 수원에서 네 강이 갈라진다는 창세기의 구도는 그 세계상 안에서 어색하지 않았다.
기독교 교부들이 이 배정을 받아들이면서 갠지스와 나일은 오랫동안 표준 답이 되었다. 기원전 2세기 헬레니즘 시기 유대 문헌인 집회서 24장도 비손을 티그리스와 나란히 언급하지만 위치를 더 알려 주지는 않는다.
16세기에 장 칼뱅이 창세기 주석에서 이 배정을 정면으로 기각했다. 그의 논거는 단순하고 결정적이다. 힛데겔이 티그리스이고 나머지 하나가 유프라테스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데, 비손과 기혼을 갠지스와 나일로 보는 견해는 그 강들 사이의 거리 하나만으로 반박된다. 실제로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수계와 나일 수계는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서로 다른 산맥에서 물을 받는다. 갠지스는 아예 다른 대륙이다. 칼뱅은 대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가 합류해 이룬 물줄기 언저리를 후보로 놓았다.
칼뱅의 지적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성경을 의심해서가 아니라는 데 있다. 본문을 지형 기술로 읽으려는 사람이 그 읽기를 성실하게 밀고 나갔을 때 부딪히는 벽을 그가 먼저 기록해 둔 셈이 된다. 그리고 그 벽은 지금도 그대로다. 2024년에 나온 기자 피라미드설이 기혼을 나일로, 비손을 인더스로 배정할 때 되살아나는 것이 바로 칼뱅이 기각한 그 배정이며, 칼뱅의 반론도 그대로 되살아난다.
낱말의 뜻부터 정해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통용된 설명은 수메르어 에딘(edin)에서 왔다는 것이었다. 에딘은 들판, 초원, 관개되지 않은 벌판을 뜻한다. 이 설명은 아카드어 에디누(edinu)를 중간 고리로 놓는다. 문제는 그 고리가 약하다는 점이다.
알란 밀라드는 학술지 『Vetus Testamentum』 34권 1호(1984년) 103~106쪽에 실은 논문에서 이 계보를 검토했다. 아카드어 에디누는 서기관이 수메르어와 아카드어 대응을 익히려고 만든 어휘 목록 한 곳에만 나오고, 아카드어로 쓰인 문학 작품이나 문서 어디에도 용례가 없다. 실제로 쓰이지 않은 낱말이 아람어와 히브리어로 건너가 정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히브리어 에덴의 첫 자음은 아인(ʿ)인데, 아카드어 에디누의 첫소리 e-가 아인에 대응한다고 보는 것도 무리다.
밀라드가 내놓은 대안은 서셈어 어근 아인-달렛-눈(ʿdn)이다. 이 어근은 풍요, 윤택함, 즐거움을 뜻한다. 히브리어 성경 안에도 용례가 있다. 시편 36편 8절(마소라 본문 9절)과 예레미야 51장 34절의 복수형은 기쁨이나 즐거움으로 옮겨진다. 이 대안을 결정적으로 만든 것은 시리아 북부 텔 페케리예에서 나온 조각상이다.
이 비문에서 아람어 어근 ʿdn은 물을 대어 땅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히브리어 에덴이 물이 풍부한 땅을 가리키는 보통명사 계열에서 왔다는 해석이 여기서 실물 근거를 얻었다. 현재 독일어권 성서학 사전을 비롯한 여러 참고 문헌은 수메르어 에딘 계보를 지지자가 거의 남지 않은 옛 설명으로 정리한다.
이 변화가 위치 논의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다. 에덴이 수메르어 지명에서 왔다면 그 낱말 자체가 남부 메소포타미아를 가리키는 표지가 된다. 서셈어 형용사 계열에서 왔다면 에덴은 물이 넉넉한 땅을 뜻하는 일반명사이고, 지도 위의 좌표를 지시하지 않는다. 어원 논의만으로 위치설이 무너지지는 않지만, 위치설이 기대던 언어학적 발판 하나는 빠진 상태다.
위치설 가운데 가장 널리 인용되는 것이 페르시아만 침수설이다. 이 설의 바탕에는 검증된 지질 자료가 있으므로 먼저 그것부터 분리해 두어야 한다.
페르시아만은 얕다. 평균 수심이 35미터 안팎이고 가장 깊은 곳도 100미터 남짓이다. 빙하기에 전 지구 해수면은 지금보다 최대 120미터가량 낮았다. 이 조건이면 만 전체가 물 밖으로 드러난다. 쿠르트 램벡은 학술지 『Earth and Planetary Science Letters』 142권 1~2호(1996년) 43~57쪽에 실은 논문에서 마지막 최대 빙하기 이후 페르시아만의 해안선 위치를 복원했다. 만 바닥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와 카룬강이 하나로 합쳐 호르무즈 해협 쪽으로 흐르던 골짜기였고, 약 1만 7000년 전부터 해수면이 오르기 시작해 7000년 전 무렵 지금과 비슷한 높이에 이르렀다.
제프리 로즈는 학술지 『Current Anthropology』 51권 6호(2010년) 849~868쪽에 실은 논문에서 이 드러난 분지를 인간 거주의 관점에서 다뤘다. 그가 걸프 오아시스라고 이름 붙인 이 지역은 네 강과 아라비아 대수층에서 솟는 샘물을 받았고, 주변 내륙이 극도로 건조해질 때 오히려 넓어졌다. 최대 시기에는 드러난 면적이 영국 크기에 이르렀다. 로즈가 주목한 것은 만 연안의 유적 분포다. 그 이전에는 흩어진 사냥 야영지 몇 곳뿐이던 곳에, 약 7500년 전을 기점으로 석조 가옥과 원거리 교역망과 정교한 채색 토기를 갖춘 유적 60여 곳이 갑자기 나타난다. 선행 인구가 보이지 않는데 완성된 정착 문화가 등장하는 이 공백을, 로즈는 침수로 밀려 나온 집단으로 설명했다.
여기까지는 고고학과 지질학의 영역이고, 에덴과 아무 관계가 없다. 로즈의 논문은 에덴을 다루지 않는다. 그런데 램벡과 로즈가 정리한 자료는 다른 주장의 발판으로 계속 쓰인다.
미국 사우스웨스트미주리주립대학의 고고학자 유리스 자린스는 1980년대에 이 드러난 분지를 에덴의 자리로 지목했다. 기혼은 이란에서 만으로 흘러드는 카룬강, 비손은 아라비아반도 중부를 흐르다 말라 버린 하천으로 보고, 네 강이 만나던 지점이 지금 물밑에 있다는 구도다. 자린스는 이 설을 아담과 하와 이야기에 대한 해석과 묶었다.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 넘어간 전환을 압축한 기억이라는 해석이다.
이 주장이 대중에게 전달된 경로를 짚어 둘 필요가 있다. 널리 인용되는 출처는 도라 제인 햄블린이 『Smithsonian』 18권 2호(1987년 5월) 127~135쪽에 쓴 특집 기사다. 자린스가 7년에 걸쳐 다듬은 가설을 소개하는 잡지 기사이며, 동료 심사를 거친 학술 논문이 아니다. 자린스는 아라비아반도 지표 조사와 메소포타미아 유목 연구로 학계에서 평가받은 발굴자이지만, 에덴 가설은 그의 학술 논문 목록에 없고 햄블린의 기사를 통해 퍼졌다. 이후 40년 동안 이 설을 소개한 글 대부분이 같은 기사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발표 매체가 주장의 참과 거짓을 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매체는 어떤 검증을 거쳤는지를 알려 준다. 학술지에 실린 논문은 같은 분야 연구자가 논증의 빈틈을 지적할 기회를 거친다. 잡지 특집 기사는 그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페르시아만 침수설이 40년 동안 학계에서 정설이 되지도 않고 정면으로 반박되지도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은, 애초에 반박을 주고받을 자리에 올라간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손을 아라비아반도의 마른 물길에 배정하는 논증은 별도의 계보를 갖는다. 보스턴대학의 지질학자 파루크 엘바즈는 1990년대 초 인공위성 영상에서 아라비아 중부를 비스듬히 가로질러 쿠웨이트로 빠지는 하천의 자취를 확인했다. 폭이 5킬로미터에 이르는 구간이 있고, 부채꼴 퇴적지는 오늘날 쿠웨이트의 3분의 2와 이라크 남부 일부를 덮는다. 지표는 대부분 모래언덕에 가려져 있다.
이 물길 자체는 지질학 문헌에서 독립적으로 다뤄진다. 자와드 알술라이미와 앨프리드 피티는 학술지 『Sedimentary Geology』 97권 3~4호(1995년) 203~229쪽에 와디 알바틴과 거기 딸린 충적선상지의 기원과 퇴적 모델을 다룬 논문을 실었다. 하천 자국과 퇴적지는 성경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지형이다.
여기에 성경을 연결한 사람이 제임스 사우어다. 하버드 셈어박물관 소장품 책임자를 지내고 아라비아반도 여러 유적을 발굴한 그는 학술지 『Biblical Archaeology Review』 22권 4호(1996년) 52~57쪽과 64쪽에 실은 글에서, 이 물길을 쿠웨이트강이라 부르고 비손으로 보자고 제안했다. 논거는 셋이다. 창세기가 비손이 지나는 하윌라에 좋은 금이 난다고 적었다는 점, 이 물길의 지류 하나가 아라비아 서부의 마흐드 앗다하브 금광 지대까지 닿는다는 점, 그리고 이 하천이 기원전 3500년에서 2000년 사이에 말랐다는 점이다. 사우어는 자신이 회의론자였다가 생각을 바꿨다고 밝혔다. 같은 호에 실린 별도 글은 엘바즈가 위성 영상에서 물길을 찾아낸 경위를 소개한다.
사우어의 논증에는 조용한 전제가 하나 들어 있다. 기원전 3500년에서 2000년 사이에 마른 하천의 기억이, 적어도 1500년 뒤에 글을 쓴 사람에게 이름까지 정확히 전달되었다는 전제다. 사우어 자신도 이 점을 인정하며 성경 기록자의 기억력이 대단했다는 뜻이 된다고 적었다. 이 전제를 받아들이면 논증은 성립한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남는 것은 마른 하천이 하나 있었다는 사실뿐이고, 그 하천을 비손이라 부를 근거는 사라진다.
더 무거운 문제는 배정의 자의성이다. 아라비아반도와 이란 고원에는 빙하기 이후 마른 물길이 여럿 있다. 그중 하나를 비손으로 고르는 기준은 금광과의 연결인데, 금이 산출되는 지대는 그 지역에 여러 곳이 있다. 남은 이름 하나를 남은 물길 하나에 맞추는 작업은 후보가 여럿일 때 언제나 성공한다. 성공했다는 사실이 맞혔다는 뜻은 되지 못한다.
페르시아만 침수설에는 본문과 직접 부딪히는 대목이 있다. 이 설의 구도에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카룬, 마른 하천은 모두 만 쪽으로 흘러들어 한곳에서 만난다. 네 강이 모이는 합류점이 에덴이다.
창세기 2장 10절의 구조는 반대다. 앞에서 본 대로 강 하나가 에덴에서 나와 동산을 적시고, 그 뒤에 갈라져 넷이 된다. 하나가 먼저 있고 넷이 나중이며, 방향은 에덴 바깥쪽이다. 합류가 아니라 분기다. 침수설을 본문에 맞추려면 이 문장을 거꾸로 읽어야 한다.
이 어긋남을 지적하는 것은 본문을 문자 그대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쪽을 가리킨다. 침수설은 창세기의 지리 기술이 실제 지형을 옮긴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만 작동하는데, 정작 그 기술의 가장 명확한 문법적 특징인 물의 방향이 지형과 맞지 않는다. 본문을 지형 보고서로 읽겠다고 선언한 다음, 본문에서 지형과 맞지 않는 부분만 골라 무시하는 구조가 된다. 선택의 기준은 본문에서 나오지 않고 미리 정해 둔 결론에서 나온다.
21세기 들어 가장 널리 퍼진 연결은 튀르키예 남동부 샨르우르파 인근의 신석기 유적이다.
이 유적을 에덴과 묶는 이야기가 대중에 자리 잡은 계기는 2006년 독일 주간지 『Der Spiegel』의 표지 기사다. 제목은 「에덴동산을 찾아서. 성경 속 낙원의 자취를 좇는 고고학자들」이었다. 이후 같은 구도가 여러 매체로 복제되었고, 미국 과학 채널이 「에덴으로 가는 문」이라는 제목의 방송을 내보내면서 다시 확산됐다.
논거로 제시된 것은 셋이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발원지 권역이라는 점, 기둥에 뱀이 새겨져 있다는 점, 뱀과 나무로 보이는 형상이 함께 새겨진 작은 석판이 나왔다는 점이다.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 넘어가는 시기라는 사실도 타락 서사와 겹쳐 읽혔다.
발굴을 맡은 독일고고학연구소 연구진은 이 연결을 공개적으로 부인했다. 옌스 노트로프는 2017년 4월 10일 연구단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항목별로 반박했다. 괴베클리 테페에는 샘이 솟는 곳이 없다. 이 사실은 정주 취락으로 보기 어렵다는 논거로 이미 쓰이던 것이며, 물이 풍부한 동산이라는 이미지와는 정면으로 어긋난다. 뱀 부조가 많은 것은 맞지만 여우와 독수리와 멧돼지와 거미의 부조도 그만큼 많다. 뱀 하나만 골라 읽는 근거가 본문에도 유적에도 없다.
석판 해석은 더 구체적으로 뒤집혔다. 노트로프는 괴베클리 테페의 도상과 다른 유적의 유사 사례를 대조하면 나무로 읽던 형상이 사람일 가능성이 높고, 그 오른쪽 물체는 새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고 적었다. 중앙 기둥 한 쌍을 아담과 하와로 읽는 해석에 대해서는, 두 기둥 모두 허리띠와 아랫도리를 걸친 모습으로 새겨져 있고 이는 같은 시기 점토 인형과 대조할 때 둘 다 남성임을 가리킨다고 밝혔다.
연대 문제가 남는다. 노트로프가 지적한 간격은 이렇다. 유적의 구조물은 기원전 10천년기의 것이고, 에덴 서사가 문자로 기록된 시기는 아무리 이르게 잡아도 기원전 11세기에서 10세기다. 구조물이 버려지고 흙으로 덮인 뒤로 9000년 가까이 지난 시점이다. 연구단의 공식 문답은 이보다 더 짧게 정리한다. 괴베클리 테페와 에덴을 잇는 어떤 유비에도 동의하지 않으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고 못 박는다. 슈미트 자신이 한 학술지 인터뷰에서 남긴 말도 같은 취지다. 그것을 에덴동산이라고만은 부르지 말라는 요청이었다.
학술 쪽 평가도 같은 방향이다. 에드워드 배닝은 학술지 『Open Archaeology』 2023년 논문에서 이 유적을 둘러싼 지난 10년의 논의를 검토하면서, 에덴과의 연결을 빙하기 이전 고도 문명설이나 외계인 방문설과 나란히 유사고고학 주장으로 분류했다. 같은 논문에서 그는 순수 의례 중심지라는 슈미트의 원래 해석 자체도 재검토 대상이 되었다고 정리한다. 갈판과 화덕과 동물 뼈 같은 생활 흔적이 나오면서, 의례와 거주가 함께 이루어진 곳일 가능성이 논의된다. 네지미 카룰이 이끄는 타쉬 테펠레르 조사로 이 유적이 샨르우르파 일대에 퍼진 유사 유적 연결망의 하나임도 드러났다. 유일한 사례가 아니었다.
이 대목이 보여 주는 구조가 있다. 유적 자체의 연구는 계속 갱신되며 더 복잡해지는데, 에덴 연결설은 2006년 잡지 기사에서 제시된 형태 그대로 반복된다. 발굴단이 항목별로 반박한 뒤에도 논거가 수정되지 않는다. 갱신되지 않는 주장은 자료로 검증되는 주장이 아니다.
2024년에 나온 주장 하나가 검색 결과 상단을 채우고 있으므로 함께 다룬다. 컴퓨터공학 전공자인 콘스탄틴 보리소프는 학술지 『Archaeological Discovery』에 실은 논문에서 에덴이 이집트 기자 고원에 있었고 대피라미드가 생명나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논증의 뼈대는 지도 해석이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 학자 밀레토스의 헤카타이오스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세계지도의 복원도에서, 세계를 둘러싼 대양 오케아노스에서 흘러나오는 강은 나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인더스 넷뿐이라는 관찰이 출발점이다. 여기서 기혼을 나일로, 비손을 인더스로 배정한다. 나일이 들어오므로 에덴은 이집트로 옮겨진다. 13세기 헤리퍼드 세계지도에서 낙원이 오케아노스 강가에 그려진 점과, 요세푸스가 『유대 고대사』에서 정원을 적신 강이 온 땅을 돌아 네 갈래로 나뉘었다고 적은 점이 보조 논거로 쓰인다.
여기서 논증은 다른 성격으로 넘어간다. 오케아노스를 물이 흐르는 강 대신 하늘의 강, 곧 오로라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해석하고, 기자 피라미드와 마추픽추와 우르와 나스카 지상화가 적도에 약 30도 기울어진 대원 위에 늘어선다는 배치를 그 하늘 강의 자취로 본다. 마지막으로 대피라미드 왕의 방 내부에서 하전 입자의 거동을 모의실험한 결과 나무 모양의 빛 무늬가 나타난다는 점을 들어, 생명나무가 서 있던 성스러운 산은 대피라미드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짓는다.
이 논증에서 검증 가능한 명제와 검증 불가능한 명제가 어떻게 섞여 있는지 보아야 한다. 헤카타이오스 지도 복원도에 네 강이 그려져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헤리퍼드 지도에 낙원이 그려져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오케아노스가 오로라를 가리킨다는 것, 고대 유적들이 특정 대원을 따라 배치되었다는 것, 왕의 방의 빛 무늬가 생명나무라는 것은 검증 절차가 없는 해석이다. 앞의 두 명제가 참이라는 사실이 뒤의 세 명제로 넘어가는 다리는 논문 안에 없다.
연대도 맞지 않는다.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기원전 26세기 구조물이고, 헤카타이오스의 지도는 기원전 6세기, 헤리퍼드 세계지도는 13세기 물건이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인의 세계관과 13세기 잉글랜드 수도사의 세계관을 겹쳐서 기원전 26세기 이집트 건축물의 의미를 규정하는 구조다. 지도는 그것을 그린 사람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알려 주지, 그 지도가 가리킨다고 해석된 장소에서 200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 주지 않는다.
이 논문이 고고학 학술지에서 인용되거나 검토된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보도량과 학술적 반향이 반대 방향으로 벌어진 사례다.
위치설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점이 드러난다. 모두 창세기 2장의 지리 기술을 정보로 읽고, 거기에 실재하는 지형을 배정하려 한다. 그런데 히브리 성경의 다른 대목은 에덴을 그렇게 다루지 않는다.
에스겔 28장은 두로 왕을 향한 선언에서 그가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었고 온갖 보석을 덮고 있었다고 말한다. 두로 왕이 실제로 에덴에 거주한 적이 없으므로 이 문장은 위치 정보가 아니다. 같은 책 31장은 이집트 왕을 에덴의 나무들과 견주고, 이사야 51장 3절과 요엘 2장 3절은 회복과 파괴를 묘사하며 에덴을 비교 대상으로 끌어온다. 이 용례들에서 에덴은 좌표를 지시하지 않고 비교의 기준점으로 쓰인다.
여기에 앞에서 본 어원 논의를 겹치면 그림이 맞아떨어진다. 에덴이 물이 넉넉한 땅을 뜻하는 서셈어 어근에서 왔다면, 이 낱말은 원래 특정 지점을 지시하도록 만들어진 말이 아니다. 창세기 2장이 네 강을 대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아는 강 둘과 모르는 강 둘을 짝지어 놓는 구성은, 실재하는 세계와 닿아 있으면서 동시에 그 세계 안 어디로도 특정되지 않는 배치를 만든다. 지도를 읽으려는 사람에게는 결함이지만, 세계 전체를 적시는 하나의 수원을 말하려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장치다.
에덴의 위치를 찾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이유는 세 층위에서 정리된다. 낱말 층위에서 에덴은 지명이라기보다 물이 넉넉한 땅을 뜻하는 보통명사 계열이며, 이를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명에 붙들어 매던 수메르어 어원 계보는 텔 페케리예 비문 이후 근거를 잃었다. 본문 층위에서 창세기 2장의 물은 에덴에서 바깥으로 흘러나가 넷으로 갈라지고, 이 방향은 어떤 실제 하천계와도 맞지 않으며 네 강을 합류점에 모으는 페르시아만 침수설과 정면으로 어긋난다. 검증 층위에서 위치설들은 확인 가능한 사실과 확인 불가능한 해석을 한 논증 안에 섞어 놓았다. 마른 하천이 아라비아를 가로질렀다는 것은 위성 영상과 퇴적층으로 확인되지만 그 하천의 이름이 비손이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는다. 괴베클리 테페에 뱀 부조가 있다는 것은 확인되지만 그 뱀이 창세기의 뱀이라는 것은 확인되지 않는다. 헤카타이오스 지도에 네 강이 그려졌다는 것은 확인되지만 오케아노스가 오로라라는 것은 확인되지 않는다. 세 경우 모두 앞 문장과 뒤 문장을 잇는 다리가 논증 안에 없다.
그럼에도 이 탐색은 결과물을 남겼다. 램벡의 해안선 복원, 로즈의 걸프 오아시스 분석, 엘바즈가 찾아낸 마른 물길, 알술라이미와 피티의 퇴적 모델은 모두 지금도 쓰이는 자료다. 네 연구는 하나같이 에덴을 언급하지 않는다. 성경과 무관한 질문에 답하려고 만들어졌고, 성경과 무관하게 검증된다. 에덴을 찾겠다는 동기가 좋은 자료를 낳았지만, 그 자료는 에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남는 질문은 창세기 2장을 어떤 종류의 글로 읽을 것인가로 옮겨 간다. 지형 보고서로 읽으면 비손과 기혼을 찾는 작업이 계속되어야 하고, 그 작업은 지난 150년과 같은 결과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세계 전체를 적시는 수원에 관한 서술로 읽으면 두 이름이 지도에 없다는 사실 자체가 설명된다. 이 선택은 고고학 자료로 판정되지 않는다. 판정에 쓸 자료가 더 나오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떤 자료가 나와도 판정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에 확인해야 할 것은 에덴의 좌표가 아니라, 창세기 2장과 3장이 무엇을 설명하려고 쓰인 글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