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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재앙 이야기는 무엇을 주장하려고 이렇게 짜였는가 — 재앙의 수, 자료층, 창조의 역순, 그리고 '열 신' 대응표의 출처

성경 안에서도 재앙의 수와 순서가 서로 맞지 않는다. 지금의 열 가지 목록은 편집의 산물이고, 그 배열은 창세기 1장을 거꾸로 되감는다. 널리 도는 '재앙 대 이집트 신' 대응표는 후대 해설이 만들어 붙인 것이다.

2026년 9월 12일

시편 두 편이 서로 다른 목록을 적는다

출애굽기 7장에서 12장까지가 전하는 이집트의 재앙을 사람들은 대개 열 가지로 센다. 그런데 같은 사건을 회고하는 성경의 다른 본문들은 다른 목록을 적는다.

시편 78편 44절에서 51절은 강물이 피가 된 일, 파리 떼, 개구리, 황충, 우박이 풀과 나무를 친 일, 우박이 가축을 친 일, 역병, 맏아들의 죽음을 열거한다. 시편 105편 28절에서 36절은 어둠으로 시작해 피, 개구리, 파리와 모기, 우박, 메뚜기, 맏아들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두 시편은 항목의 수가 다르고 순서도 다르며, 출애굽기의 순서와도 어긋난다. 시편 105편은 출애굽기에서 아홉째인 어둠을 맨 앞에 놓는다.

이 차이는 사소한 기억의 착오로 넘기기 어렵다. 세 본문 모두 같은 전승을 다루면서 서로 다른 배열을 제시하므로, 열 가지라는 수와 그 순서가 처음부터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이 글이 따라가려는 논지는 하나다. 출애굽기의 재앙 서사는 사건 보도가 아니라 이집트의 우주 질서를 창조의 역순으로 해체하는 구성물이며, 그 구성은 여러 자료층과 편집을 거쳐 지금 모양이 되었다. 널리 인용되는 '열 재앙 대 열 신' 대응표는 후대 해설이 구성한 것이며 본문에는 없다.

'열 재앙'이라는 명칭은 본문에 없다

낱말부터 정리해야 한다. 히브리어 성경은 이 사건들을 오트(אוֹת, 표징)와 모페트(מוֹפֵת, 이적)로 부른다. 타격을 뜻하는 마카(מַכָּה)는 출애굽기 9장 14절, 11장 1절, 12장 13절에서만 쓰인다. 후대 유대 전통에서 이 사건들을 묶어 부르는 마코트 미츠라임, 곧 '이집트의 타격들'이라는 표현도 나중에 정리된 명칭이다.

본문이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수를 세는 방식이 나중에 정해졌다는 정황과 맞물린다. 무엇을 하나로 셀지가 정해져 있지 않으면 목록의 길이도 정해지지 않는다.

한 이야기 안에 두 사람의 지팡이가 있다

출애굽기의 재앙 서사를 자세히 읽으면 앞뒤가 맞지 않는 자리가 여럿 나온다.

지팡이를 드는 사람이 일정하지 않다. 어떤 대목에서는 모세가 자기 지팡이로 물을 치고, 다른 대목에서는 아론이 지팡이를 물 위로 내민다. 7장 17절에서 모세는 자기 손의 지팡이로 강물을 치겠다고 말하는데, 7장 19절에서는 아론이 이집트의 물 위로 손을 뻗으라는 지시를 받는다. 치는 동작과 내미는 동작도 다르다.

이집트 술사들의 등장도 일정하지 않다. 어떤 재앙에서는 술사들이 같은 일을 흉내 내다가 결국 따라가지 못하고, 다른 재앙에서는 아예 나오지 않는다. 예고의 유무도 규칙적이지 않아서, 셋째와 여섯째와 아홉째 재앙에는 사전 경고나 파라오와의 대면이 없다. 이스라엘이 재앙에서 면제되었다는 진술도 넷째, 다섯째, 일곱째, 아홉째, 열째에만 나오고 나머지에는 없다.

19세기 이래의 문헌비평은 이런 불일치를 자료층의 흔적으로 읽었다. 새뮤얼 롤스 드라이버가 1913년 『구약 문헌 입문』에서 제시한 분석표가 오랫동안 기준으로 쓰였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구분은 두 계열이다. 제사장 문서로 분류되는 층에서는 아론이 주역이고, 손을 내미는 동작이 쓰이며, 이집트 술사들이 등장한다. 제사장 문서가 아닌 층에서는 모세가 홀로 파라오 앞에 서고, 야훼가 직접 재앙을 일으키며, 파라오가 스스로 마음을 무겁게 한다.

윌리엄 프롭은 1999년 앵커 바이블 주석서 『출애굽기 1~18장』 286쪽에서 287쪽에서 피의 재앙 본문을 이 두 계열로 나누었고, 그레이엄 데이비스는 2020년 국제비평주석 『출애굽기 1~18장』 493쪽에서 499쪽에서 거의 같은 구분을 따르되 제사장 문서가 아닌 층이 다시 두 계열의 혼합이라고 보았다. 데이비스의 정리에 따르면 편집자는 한 계열을 뼈대로 삼고 다른 계열에서 짧은 대목들을 끌어와 덧붙였다.

자료층을 나누면 재앙의 수도 달라진다. 모셰 그린버그는 어둠의 재앙을 제사장 문서 쪽으로 돌리면 나머지 계열이 일곱 가지가 되고, 아론의 지팡이가 뱀이 되어 술사들의 뱀을 삼키는 장면을 첫 항목으로 세면 제사장 문서 쪽도 일곱 가지가 된다고 보았다. 프롭은 갈대 바다가 갈라지는 장면까지 포함하면 제사장 문서 쪽이 일곱 이적을 이룬다고 제안했다. 두 제안 모두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열이라는 수가 최종 편집의 결과라는 점을 같은 방향에서 가리킨다.

문헌비평과 자료층 같은 이야기 안에서 등장인물의 역할, 신의 이름, 어휘, 반복되는 문구가 일정한 짝을 이루어 갈라질 때, 그 짝들을 서로 다른 시기에 쓰인 문서의 흔적으로 보고 나누는 작업이다. 성립 여부를 판정하는 근거는 그 짝이 본문 전체에서 얼마나 일관되게 유지되는지에 있다. 자료를 나눈 뒤에도 최종 본문이 왜 지금 모양인지는 따로 물어야 한다.

세 개씩 세 묶음, 그리고 마지막 하나

최종 본문의 구성은 정교하다. 우베르토 카수토가 1951년 히브리어로 낸 출애굽기 주석은 이 배열을 정리했다. 1967년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매그니스 출판사에서 영역판이 나왔고, 92쪽에서 93쪽에 해당 서술이 있다.

아홉 재앙이 세 개씩 세 묶음으로 놓인다. 각 묶음의 첫째 재앙은 아침에 나일강가에서 예고되고, 둘째는 파라오의 거처에서 예고되며, 셋째는 예고 없이 닥친다. 첫째 재앙군의 첫 항목인 피는 7장 15절에서 아침에 물가로 나가는 파라오를 맞으라는 지시로 시작하고, 넷째 재앙인 파리는 8장 20절에서, 일곱째 재앙인 우박은 9장 13절에서 같은 형식으로 시작한다. 열째 재앙은 이 틀 바깥에 홀로 서 있다.

카수토는 재앙이 둘씩 짝을 이루는 구조도 지적했다. 첫째와 둘째는 나일강에 매여 있고, 다섯째와 여섯째는 질병이며, 일곱째와 여덟째는 하늘에서 내려와 농작물을 없애고, 아홉째와 열째는 어둠을 공유한다. 이 짝 구조를 근거로 그는 넷째 재앙이 셋째와 성격을 나누어야 한다고 보고, 히브리어 아로브(עָרֹב)를 곤충 떼로 읽었다. 게리 렌즈버그가 2003년 『바이블 리뷰』 19권 4월호 18쪽에서 23쪽에 실은 논문도 같은 결론을 논증했다. 랍비 전통에서는 이 낱말을 짐승과 새가 섞인 무리로 읽었으므로, 여기서 고대 해석과 현대 해석이 나뉜다.

세 묶음이라는 구분은 근대 학자가 처음 발견한 것이 아니다. 유월절 하가다에 실린 랍비 예후다의 약호가 재앙의 첫 글자를 셋으로 끊어 데차크, 아다시, 베아하브로 외운다. 이 약호는 열째 재앙을 셋째 묶음에 붙이지만, 앞의 아홉이 세 묶음을 이룬다는 인식은 이미 거기 들어 있다.

창세기 1장을 거꾸로 되감기

구조가 정교하다는 관찰에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 지오니 제빗의 논증이다. 제빗은 1976년 『유대인 계간 평론』 67권 193쪽에서 211쪽에 「출애굽기 재앙 서사의 제사장적 편집과 해석」을 실었고, 1990년 6월 『바이블 리뷰』 6권 3호에 「열 재앙을 보는 세 가지 방법」을 발표해 같은 논지를 넓혔다.

제빗의 관찰은 어휘에서 출발한다. 재앙 서사에는 창세기 1장의 낱말들이 되풀이해 나온다. 물, 물고기, 땅, 티끌, 떼를 지어 우글거리다, 가득 차다, 내다, 사람, 짐승 같은 낱말들이다. 프롭도 앵커 바이블 주석 345쪽에서 346쪽에서 두 본문 사이의 어휘 접촉을 길게 정리했다.

대응은 낱말에 그치지 않는다. 창세기 1장 20절에서 하나님은 물에게 생물을 떼 지어 내라고 말하고, 출애굽기 7장 28절에서 29절은 나일강이 개구리로 우글거려 온 땅을 덮는다고 적는다. 창세기의 명령이 축복이었다면 출애굽기의 같은 동작은 재난이다. 셋째 재앙도 같은 구조다. 창세기에서 사람을 지은 재료인 땅의 티끌이 출애굽기 8장 12절에서 13절에서 모기가 되어 사람과 짐승을 덮는다.

제빗은 왜 하필 열인가라는 물음에도 같은 자리에서 답을 찾았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말하는 장면, 곧 '하나님이 이르시되'가 정확히 열 번 나온다. 창조가 열 번의 발언으로 이루어졌다면 그 창조를 되감는 사건도 열 번이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 해석에서 열이라는 수는 편집자가 만든 대응이다.

이 논증의 강점은 검증 가능한 자료 위에 서 있다는 데 있다. 낱말의 일치는 본문을 대조하면 확인되고, 창세기 1장의 발언 횟수도 셀 수 있다. 약점도 있다. 어휘가 겹친다고 해서 편집자가 의도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물과 땅과 짐승을 다루는 이야기라면 창조 이야기와 어휘가 겹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 논증은 대응의 존재를 보여 주되, 대응이 의도적이라는 결론까지 강제하지는 않는다.

파라오의 마음을 가리키는 세 동사

재앙 서사를 읽는 사람이 가장 자주 걸리는 대목은 파라오의 마음이다. 한국어 번역은 이를 '완악하게 하다'로 옮기지만 히브리어는 한 낱말이 아니다.

세 동사가 쓰인다. 하자크(חָזַק)는 강하게 하다, 단단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12회 나온다. 카베드(כָּבֵד)는 무겁게 하다, 둔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6회 나온다. 카샤(קָשָׁה)는 뻣뻣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7장 3절에 한 번 나온다. 집계 방식에 따라 합계를 19회로도 20회로도 센다.

וַאֲנִי אַקְשֶׁה אֶת לֵב פַּרְעֹה וְהִרְבֵּיתִי אֶת אֹתֹתַי וְאֶת מוֹפְתַי בְּאֶרֶץ מִצְרָיִם

와아니 아크셰 에트 레브 파르오 웨히르베티 에트 오토타이 웨에트 모프타이 베에레츠 미츠라임

그리고 나는 파라오의 마음을 뻣뻣하게 하고, 이집트 땅에서 나의 표징과 나의 이적을 많게 하겠다.

출애굽기 7장 3절. 마소라 본문. 한국어는 직접 옮김.

세 동사는 뜻이 서로 다르다. 하자크는 힘을 준다는 뜻이어서, 같은 낱말이 시편 27편 14절에서 '담대하라'로 쓰인다. 카베드는 무게를 준다는 뜻이고, 같은 어근에서 영광을 뜻하는 카보드가 나온다. 카샤만이 '단단하게 굳히다'에 가깝다. 한국어와 영어 번역이 셋을 모두 '완악하게 하다'로 옮기면서 히브리어가 구분한 차이가 지워졌다.

주어도 일정하지 않다. 어떤 자리에서는 야훼가 주어이고, 어떤 자리에서는 파라오 자신이며, 어떤 자리에서는 '파라오의 마음이 무거워졌다'처럼 주어가 드러나지 않는다. 8장 15절, 8장 32절, 9장 34절에서는 파라오가 스스로 마음을 무겁게 하고, 9장 12절에서는 야훼가 파라오의 마음을 강하게 한다. 본문은 두 주어를 나란히 놓은 채 정리하지 않는다.

이 병치가 자료층과 맞물린다는 관찰이 있다. 제사장 문서가 아닌 층에서는 카베드 어근이 주로 쓰이며 파라오 자신이 주어인 경우가 많고, 야훼가 마음을 굳힌다는 진술은 제사장 문서 쪽에 몰려 있다는 정리다. 이 관찰이 맞다면 자유의지와 예정을 둘러싼 오랜 신학 논쟁의 상당 부분은 두 자료층이 한 본문 안에 겹쳐 있는 결과를 해석하려는 시도가 된다.

본문이 직접 말하는 표적: 이집트의 신들

재앙이 무엇을 겨냥했는지는 본문이 한 번 명시한다.

וְעָבַרְתִּ֣י בְאֶֽרֶץ־מִצְרַיִם֮ בַּלַּ֣יְלָה הַזֶּה֒ וְהִכֵּיתִ֤י כָל־בְּכוֹר֙ בְּאֶ֣רֶץ מִצְרַ֔יִם מֵאָדָ֖ם וְעַד־בְּהֵמָ֑ה וּבְכָל־אֱלֹהֵ֥י מִצְרַ֛יִם אֶֽעֱשֶׂ֥ה שְׁפָטִ֖ים אֲנִ֥י יְהוָֽה׃

웨아바르티 베에레츠 미츠라임 발라일라 하제 웨히케티 콜 베코르 베에레츠 미츠라임 메아담 웨아드 베헤마 우베콜 엘로헤 미츠라임 에에세 셰파팀 아니 아도나이

그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가며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모든 맏이를 칠 것이며, 이집트의 모든 신에게 심판을 행하겠다. 나는 야훼다.

출애굽기 12장 12절. 레닌그라드 사본에 기초한 마소라 본문. 한국어는 직접 옮김.

민수기 33장 4절도 같은 표현을 되풀이한다. 이집트인들이 맏아들을 장사 지내는 동안 야훼가 그들의 신들에게 심판을 행했다고 적는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본문은 이집트의 신들이 심판을 받았다고 말할 뿐, 어느 재앙이 어느 신을 겨냥했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대응표는 본문에 없다.

대응표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서 무너지는가

오늘날 설교와 교재에서 널리 쓰이는 표는 첫째 재앙을 나일의 신 하피에, 둘째를 개구리 머리를 한 여신 헤케트에, 셋째를 땅의 신 게브에, 다섯째를 암소 머리를 한 하토르에, 아홉째를 태양신 라에, 열째를 파라오의 신적 계승권에 짝지운다. 이 표의 계보를 따라가면 근대 주석에 닿는다.

나훔 사르나가 1986년 『출애굽 탐구』 79쪽에서 정리한 서술이 자주 인용되는 출발점이다. 나일강이 신 하피로 신격화되었고 범람이 오시리스의 현현으로 여겨졌으므로, 피의 재앙은 그 지역에서 두 신의 힘이 줄어든 사건으로 읽혔으리라는 서술이다. 사르나의 서술은 조심스럽다. 특정 재앙이 특정 신을 겨냥했다고 단정하지 않고, 이집트인들이 그렇게 받아들였을 법하다는 데까지만 간다.

존 커리드는 1997년 『고대 이집트와 구약』 104쪽에서 120쪽에 「이집트 열 재앙에 대한 주석적·역사적 고찰」을 실어 이 논의를 체계화했다. 제빗도 1990년 논문에서 몇 가지 대응을 제시했다. 우박과 메뚜기가 바람과 폭풍으로 나타나는 세트, 또는 생명의 여신 이시스, 또는 농작물의 보호자 민을 겨냥했다는 해석이다. 제빗이 민을 유력한 후보로 본 근거는 출애굽기 9장 31절에 있다. 이 구절은 우박이 내릴 때 보리와 삼이 익어 가고 있었고 밀과 쌀보리는 아직 자라지 않았다고 적어, 재앙의 시점을 농사 주기 안에 놓는다.

대응표가 무너지는 자리는 목록의 중간에 몰려 있다. 다섯째 재앙인 가축 역병에는 뚜렷이 대응하는 신이 없어 암소 머리의 하토르를 끌어오지만 연결이 헐겁다. 여섯째 재앙인 종기에는 치유의 신 세크메트나 이시스를 붙이는데 근거가 약하다. 넷째 재앙은 앞서 본 대로 그 낱말이 짐승인지 곤충인지부터 정해지지 않았다. 곤충으로 읽으면 쇠똥구리 머리의 케프리를 붙일 수 있지만, 이 연결을 설득력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사정을 종합하면 판단이 나온다. 본문은 이집트의 신들이 심판받았다고 말하고, 이집트 종교에서 나일강과 태양과 소가 신격과 연결되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열 개의 재앙과 열 개의 신을 하나씩 짝지은 표는 후대 해설의 구성이며, 절반쯤에서 억지가 된다. 본문이 겨냥한 대상은 개별 신격이라기보다 이집트 세계의 작동 방식 전체다. 물이 마실 수 없게 되고, 땅이 벌레를 내고, 하늘에서 불이 섞인 우박이 내리고, 태양이 사흘 동안 사라지는 순서는 나일강과 태양을 축으로 돌아가던 질서가 멈추는 과정이다.

사건이 없어도 서사는 일을 한다

역사성 논의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론은 얀 아스만의 기억사다. 하이델베르크대학교의 이집트학자였던 아스만은 1997년 하버드대학교 출판부에서 낸 『이집트인 모세: 서구 일신교 안의 이집트 기억』에서 이 접근을 제시했다.

기억사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묻는 대신, 한 집단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며 그 기억이 현재에 무엇을 하는지를 묻는다. 아스만은 모세를 기억의 인물로 규정했다. 성경 바깥에 모세의 실재를 뒷받침하는 독립 증거가 없다는 사정을 인정하되, 그 사정이 이 인물의 영향력을 조금도 줄이지 않았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 접근의 뿌리는 모리스 알박스가 정리한 집단기억 이론에 있고, 아스만은 아내 알라이다 아스만과 함께 문화적 기억 이론으로 이를 확장했다.

재앙 서사에 이 방법을 적용하면 물음이 바뀐다. 재앙이 일어났는가 대신, 이 이야기를 이렇게 기억한 집단은 무엇을 확정하려 했는가를 묻게 된다. 답의 방향은 본문 안에 있다. 당대 최강국의 왕이 자기 땅의 물과 하늘과 태양을 지키지 못했고, 그 왕의 술사들이 셋째 재앙에서 손을 들었으며, 마지막에는 왕 자신의 후계자를 잃었다. 이 배열은 이스라엘의 신을 자연과 정치 권력 위에 두는 주장을 세운다. 아스만 본인이 기억사의 접근은 선택의 폭이 넓다고 인정했듯, 이 방법은 사건의 실재를 판정하지 않는다. 그 대신 서사가 무엇을 하는지를 설명한다.

결론 — 수와 순서와 표적이 모두 편집의 산물이다

지금까지 확인한 것을 논지 기준으로 묶으면 세 갈래다.

첫째, 목록 자체가 유동적이었다. 시편 78편과 105편은 항목의 수와 순서가 서로 다르고 출애굽기와도 어긋난다. 출애굽기 안에서도 지팡이를 드는 사람, 술사들의 등장, 예고의 유무, 이스라엘의 면제 여부가 일정하지 않아 자료층으로 나뉜다. 그린버그와 프롭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일곱이라는 수를 복원하려 한 시도는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열이 최종 편집의 산물이라는 방향을 함께 가리킨다.

둘째, 최종 본문은 정교하게 짜인 구성물이다. 카수토가 정리한 세 묶음 구조는 예고의 방식까지 규칙적이고, 카수토가 지적한 짝 구조는 넷째 재앙의 번역 문제와 맞물려 있다. 제빗이 짚은 창세기 1장과의 어휘 접촉, 그리고 창조의 열 번 발언과 재앙의 열 항목이라는 대응은 이 구성이 창조 이야기를 아는 독자를 전제로 쓰였음을 시사한다. 어휘 일치만으로 편집 의도를 단정할 수는 없으나, 구조의 규칙성과 합치면 우연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정도가 된다.

셋째, 표적에 대한 진술은 본문에 있고 대응표는 본문에 없다. 출애굽기 12장 12절과 민수기 33장 4절은 이집트의 신들에 대한 심판을 명시하지만 어느 재앙이 어느 신을 겨냥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사르나와 커리드와 제빗이 각각 제시한 대응은 해석이며, 다섯째와 여섯째 재앙에서는 후보를 찾지 못해 연결이 느슨해진다.

남는 물음은 해석의 순서에 있다. 이 서사를 읽을 때 먼저 물어야 할 것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인지, 이 본문이 무엇을 주장하려고 이렇게 짜였는가인지에 따라 같은 자료가 다르게 배치된다. 자료층 분석과 구조 분석과 기억사는 뒤쪽 물음에 답하도록 만들어진 도구이며, 앞쪽 물음에 대해서는 판정을 내리지 않는다. 두 물음을 한 번에 답하려는 시도가 이 주제의 논의를 오래 붙들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