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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카라한 테페의 연대는 어떻게 정해졌나 — 방사성탄소 측정과 형식 비교의 차이

2026년 9월 12일

튀르키예 남동부의 신석기 유적 카라한 테페를 소개하는 글은 대개 '1만 1천 년 전'이라는 숫자로 시작한다. 그런데 같은 유적에 붙는 구체적 연대는 자료마다 크게 어긋난다.

출처 성격제시된 점유 연대
영문 위키백과 개요란기원전 9750년경 조성, 9400년경 폐기
같은 문서 본문기원전 10000~9500년
다수의 영어권 개설 자료기원전 9600~8000년
2025년 말 Archaeology 지 기사약 12,000~10,200년 전(대략 기원전 10000~8200년)

시작 시점은 기원전 10000년에서 9600년 사이로 모이지만, 끝나는 시점은 기원전 9400년과 8000년으로 1400년이나 벌어져 있다. 앞쪽이 맞으면 짧게 쓰이다 버려진 의례 중심지이고, 뒤쪽이 맞으면 토기 이전 신석기 A기에서 B기로 넘어가는 전환기 전체를 관통한 장기 취락이다. 유적의 성격 자체가 달라지는 차이다.

이 편차가 생긴 원인은 단순하다. 카라한 테페의 방사성탄소 측정값이 아직 학술지에 공표된 적이 없다. 지금 통용되는 연대는 석기와 건축 형식을 이웃 유적과 견주어 얻은 값이다. 그 방법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지만, 형식 비교로 얻은 연대에 측정으로 얻은 연대와 같은 정밀도를 붙이면 근거보다 숫자가 앞서게 된다.

방사성탄소 연대가 재는 것과 재지 못하는 것

먼저 측정의 원리부터 밝힌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대기 중 질소가 우주선을 맞아 탄소의 방사성 동위원소 14C로 바뀐다. 살아 있는 생물은 호흡과 섭식으로 이 동위원소를 계속 받아들여 대기와 비슷한 비율을 유지한다. 죽으면 공급이 끊기고 14C만 붕괴해 줄어든다. 반감기는 약 5730년이다. 남은 비율을 재면 죽은 뒤 지난 시간이 나온다. 잴 수 있는 것은 시료가 된 생물이 죽은 시점이지 그 시료가 놓인 건물이 세워진 시점이 아니다. 이 차이가 뒤에 나올 모든 어려움의 뿌리다.

측정 결과는 곧바로 달력 연도가 되지 않는다. 대기 중 14C 농도가 시대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테와 산호처럼 연대를 따로 아는 시료로 만든 보정 곡선에 대조해 달력 연도로 환산한다. 보정을 거치지 않은 값은 BP로 적는데, 이때 기준점은 방법이 개발된 1950년이다. 보정을 거친 값은 cal BC로 적고, 하나의 연도 대신 구간으로 나온다. 학계는 대개 95.4% 확률 구간을 함께 밝힌다.

여기에 함정이 하나 더 있다. 보정 곡선에는 평탄한 구간이 있다. 대기 농도가 몇백 년 동안 비슷했던 시기다. 이런 구간에 걸린 시료는 아무리 정밀하게 측정해도 확률 구간이 넓게 나온다. 뒤에 나올 괴베클리 테페의 측정값 여럿이 이 문제에 걸려 있다.

예리코의 층위에서 만들어진 A기와 B기

측정값이 없을 때 고고학이 쓰는 방법은 형식 비교다. 유물과 건축의 형식이 시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이용해 상대 순서를 매기고, 연대를 아는 다른 유적에 견주어 절대 연도를 추정한다.

서아시아 초기 신석기의 표준 구분은 영국 고고학자 캐슬린 케니언이 만들었다. 그는 예리코의 층위를 관찰하다가 건물 평면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발견했다. 앞선 단계에서는 건물이 둥글고, 뒤이은 단계에서는 사각형이다. 앞을 토기 이전 신석기 A기(PPNA), 뒤를 B기(PPNB)라 불렀다. 케니언은 건물 평면에 더해 물질문화의 차이도 구분의 근거로 삼았다.

실제 현장에서 가장 유용한 지표는 화살촉이다. 지금은 서아시아 전역의 자료를 바탕으로 아주 세밀한 분류 체계가 마련돼 있어, 화살촉 형식이 지질학의 표준화석과 같은 구실을 한다.

형식 연대와 절대 연대 형식 연대는 유물의 생김새를 비교해 얻는 순서와 시기다. 재료가 남아 있기만 하면 쓸 수 있고 비용이 들지 않지만, 형식이 지역마다 시차를 두고 퍼지므로 오차가 수백 년에 이를 수 있다. 절대 연대는 방사성탄소처럼 물리·화학적 측정으로 얻는 연도다. 오차 범위를 수치로 밝힐 수 있는 대신 적절한 시료와 맥락이 갖춰져야 한다. 발굴 보고에서 두 연대는 서로를 검증하는 관계로 쓰인다.

괴베클리 테페의 경우 화살촉 조성이 분명한 답을 준다. A기 형식인 엘키암·헬완·아스와드 화살촉이 나오고, B기 형식인 비블로스와 넴리크 화살촉이 아주 흔하며 네발르 초리 화살촉은 드물다. 그런데 B기 후기의 특징적인 형식은 빠져 있다. 독일고고학연구소의 올리버 디트리히는 여기서 이 유적이 B기 중엽 이후, 곧 기원전 8000년 무렵에 버려졌다고 판단했다. 농경이 확립되는 시점과 겹치므로 수렵채집 유적이 사라지는 시기로서 앞뒤가 맞는다고 보았다.

매립된 건물에서는 연대를 재기 어렵다

괴베클리 테페에서 절대 연대를 얻는 작업이 왜 20년 넘게 애를 먹었는지는 유적의 형성 과정과 얽혀 있다.

이 유적의 대형 건물들은 쓰임이 끝난 뒤 흙과 돌로 가득 찬 상태였다. 건물을 정리하고 설비를 일부 뜯어낸 뒤 다시 채웠다는 것이 초기 해석이었다. 채우는 작업은 빠르게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데, 물이나 바람이 실어 온 무균 퇴적층이 중간에 끼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형성 과정이 연대 측정에는 재앙이다. 채움층에서 나온 유기물은 건물보다 오래됐을 수도, 젊을 수도 있다. 더 어린 시료가 더 낮은 깊이에 놓여 층위가 거꾸로 뒤집힌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게다가 탄화된 유기물 자체가 드물어, 최근 조사에 이르러서야 쓸 만한 양이 확보됐다.

그래서 연구진은 건물을 직접 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첫 시도는 토양 탄산염이었다. 석회암 표면이 퇴적물에 덮이면 그 위에 탄산칼슘 층이 생기기 시작한다. 박편에서 가장 오래된 층만 골라 재면 돌이 묻힌 시점 가까운 값이 나올 것이라는 발상이다.

결과는 실패에 가까웠다. 층위의 상대 순서는 확인됐지만 절대 연대가 지나치게 젊게 나왔다. III층은 기원전 9천년기로 밀려났고, II층은 8천년기, 심하면 7천년기 값까지 나왔다. 디트리히는 토양 탄산염 값이 건축과 층위의 절대 기준점을 주지 못하며, 기껏해야 매립과 유적 폐기의 하한을 정하는 데 쓰인다고 적었다.

하한 연대(terminus ante quem) 어떤 사건이 늦어도 이 시점 이전에 일어났다는 것만 알려 주는 연대다. 건물이 묻힌 뒤에 생긴 물질을 재면 건물이 그보다는 먼저 있었다는 사실만 확정된다. 언제 지어졌는지는 여전히 열려 있다. 반대로 어떤 사건이 이 시점 이후에 일어났음을 알려 주는 값은 상한 연대(terminus post quem)라 부른다.

벽에 바른 진흙이 돌파구가 됐다

돌파구는 벽 미장이었다. 건물 벽에 바른 미장은 진흙이고, 진흙에는 유기물이 소량 섞여 있다. 이 유기물은 벽을 바르던 시점에 함께 들어갔다.

D 구조물의 벽 미장에서 뽑은 시료 KIA-44149가 9984 ± 42 14C-BP를 냈다. 보정하면 95.4% 확률로 기원전 9745~9314년이다. 이 값은 해당 원형 건물을 A기에 놓는다.

이어 보호 시설 기초를 놓으려고 판 깊은 시굴에서 탄화 물질이 제법 나왔다. D 구조물의 둘레 벽에 바로 붙여 판 L9-78 구역 시굴에서 나온 목탄 3점(UGAMS-10795·10796·10799)은 암반 가까이에서 채집한 것인데, 보정 연대가 95.4% 확률로 기원전 9664~9311년에 모인다. 벽 미장 값과 잘 맞는다.

디트리히는 여기에 단서를 달았다. 이 네 값이 모두 보정 곡선의 완만한 평탄 구간에 걸려 확률 범위가 넓어졌다고 했다. 목탄 3점과 D 구조물의 층위 대응 관계를 정확히 밝히려면 발굴이 더 필요하다고도 적었다.

채움층에서 나온 값들은 여전히 엇갈린다. 33번 석주 북쪽에서 나온 동물 이빨의 콜라겐(KIA-44701)은 9800 ± 120 BP로, 보정하면 기원전 9746~8818년이다. 같은 채움층의 L9-69 구역 목탄(UGAMS-10798)은 9540 ± 30 BP로 기원전 9127~8763년이다. 디트리히는 D 구조물이 언제 버려지고 묻혔는지에 대해 아직 합의가 없다고 적었다.

이 두 값의 차이가 해석을 가른다. 동물 이빨이 건물을 쓰던 시기의 것이라면, 건물은 묻히기 전 수백 년 동안 쓰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빨이 매립 과정에 섞여 들어왔다면 건물의 수명은 짧을 수 있다. 시료 하나의 귀속 판단이 수백 년을 좌우한다.

L9-68 구역의 묻힌 부식토층에서 뽑은 부식산(IGAS-2658)은 8880 ± 60 BP, 보정하면 기원전 8241~7795년이다. 이 구역에서 토기 이전 신석기의 마지막 활동을 표시하며 II층의 하한이 된다. C 구조물에 대해서는 값이 하나뿐이다. L9-97 구역 시굴에서 나온 UGAMS-10797이 9700 ± 30 BP, 91.6% 확률로 기원전 9261~9139년이다.

2016년 시점에 이 유적의 유기물 방사성탄소 측정값은 모두 11건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선사 유적 가운데 하나가 발굴 21년 만에 확보한 숫자다.

모르타르 시료가 층 순서를 무너뜨렸다

그 뒤 상황이 달라졌다. 독일고고학연구소의 리 클레어가 2020년 e-Forschungsberichte 2호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2018년과 2019년에 특수 건물 A·B·C·D를 3차원으로 실측하면서 건물 진흙 모르타르의 유기 잔류물로 가속기질량분석 연대를 냈다. 이 시료들은 채움층 시료보다 훨씬 균질했다.

결과는 두 가지다. 첫째, 이 건물들은 여러 시기에 걸쳐 지어졌고 알려진 것보다 오래 쓰였다. 어떤 건물은 마지막 축조 단계가 기원전 9천년기 중반에 해당하는데, 처음 세운 시점에서 5세기 넘게 지난 뒤다. 둘째, 그 결과 둥근 특수 건물(슈미트의 III층, A기)과 사각형 건물(II층, B기)의 연대가 분명히 겹친다. 슈미트가 세운 세 층 순서는 폐기됐다.

같은 글에서 클레어는 채움층의 성격도 다시 읽었다. 의도적 매립이라던 기존 결론 대신, 높은 쪽 둔덕과 사면에서 흘러내린 고고학 퇴적물이 건물을 덮었다고 본 것이다. 이 해석은 채움층에 A기와 B기 유물이 섞여 있는 이유와, 그 안에서 뽑은 방사성탄소 값이 들쭉날쭉한 이유를 함께 설명한다.

측정 시료의 종류를 바꾸었더니 층위 해석과 유적 형성 과정의 해석이 함께 바뀌었다. 연대 측정은 해석을 확인하는 절차에 그치지 않고 해석을 바꾸는 절차로 작동했다.

사이부르츠에서는 측정값 11건이 서로 맞았다

같은 지역의 다른 유적에서는 연대 작업이 훨씬 깔끔하게 끝났다. 샨르우르파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20km 떨어진 사이부르츠다.

이스탄불대학교의 에일렘 외즈도안이 2024년 Documenta Praehistorica 51권 44~58쪽에 발표한 논문이 첫 3년의 조사를 정리했다. 이 유적은 주변의 큰 취락과 달리 수직 층위가 없다. 한 시기만 사람이 살았다는 뜻이다.

남쪽 구역 건물들의 바닥 위에서 나온 목탄으로 방사성탄소 연대 11건을 얻었다. 모든 값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기원전 9천년기 중반을 가리켰다. 이 연대는 초기 B기에 해당하며, 같은 유적에서 나온 뗀석기 조성과 건축 형식과도 맞았다. 점유 기간은 약 300년이다. 북쪽 구역과 남쪽 구역의 시간 관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건축과 뗀석기 기술이 두 구역에서 일관되므로 큰 시차는 없으리라고 보았다.

사이부르츠의 사례가 보여 주는 것은 세 가지다. 시료가 바닥 위라는 분명한 맥락에서 나왔다는 것, 측정값이 11건이어서 서로 검증된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가 형식 연대와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세 조건이 갖춰져야 연대를 확정했다고 말할 수 있다.

카라한 테페에는 공표된 측정값이 없다

카라한 테페로 돌아오면 사정이 다르다.

발굴 책임자인 이스탄불대학교의 네지미 카룰이 2021년 Türk Arkeoloji ve Etnografya Dergisi 82호 21~31쪽에 발표한 논문은 이 유적의 구조물 AA·AB·AD를 다루면서 이들이 발견 순서에 따라 명명됐고 후기 A기와 초기 B기로 연대가 매겨졌다고 적었다. 그게 전부다. 시료 번호도, 측정값도, 확률 구간도 이 논문에 없다.

논문이 담은 것은 층서 관찰이다. 구조물 AB의 채움층 맨 아래에는 두께 1.5m의 어두운 색 흙이 있고, 그 안에 크기가 제각각인 돌과 고고학 유물이 섞여 있다. 카룰은 여기에 토기 조각 몇 점이 들어 있었다고 적었다. 토기 이전 신석기 유적의 채움층에 토기가 있다는 서술은 그 자체로 검토가 필요한 대목이다. 후대에 섞여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면 이 층의 시료로 건물 연대를 재는 작업은 처음부터 조심스러워진다.

정리하면 카라한 테페의 '기원전 9600년'이나 '9750년' 같은 숫자는 이웃 유적과의 형식 비교에서 나온 값이다. 비교 대상인 괴베클리 테페의 연대 자체가 2020년에 크게 수정됐으므로, 그 수정이 카라한 테페의 추정 연대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도 아직 공표되지 않았다.

발굴 진척도가 이 상황을 설명해 준다. 카라한 테페의 고고학적 채움층은 카룰의 서술로 약 10헥타르에 걸쳐 있고 채석장을 더하면 5헥타르가 붙는다. 2023년 기준으로 발굴된 면적은 전체의 5% 미만이다. 카룰 팀이 2019년 이후 판 면적은 0.2헥타르 남짓이다.

보도자료가 앞서고 논문이 뒤따른다

카라한 테페의 조사 경과를 늘어놓으면 이 시차가 눈에 들어온다.

시기내용공표 형식
1997년지표조사로 유적 확인조사
2000년바하틴 첼릭, Neo-Lithics 2/3호 6~8쪽에 보고학술지
2018~2019년네지미 카룰 주도 본격 발굴 시작발굴
2021년타쉬 테펠레르 프로젝트 출범, 구조물 AB 전면 노출학술지 + 보도
2021년 9월 24일일반 공개보도
2023년 9월대형 인물상과 독수리 조각 출토보도자료
2024년 8월맷돌 바닥돌의 야생 당나귀 부조보도자료
2025년 10월사람 얼굴을 새긴 T자 석주, 석제 미니어처 모음보도자료
2026년 8월 25일표범 등에 앉은 사람 조각보도자료

2021년 이후로 새 발견은 모두 문화관광부 보도자료와 장관의 소셜미디어 게시를 통해 먼저 세상에 나왔다. 학술 보고는 그 뒤를 따른다. 2026년 8월에 나온 표범 조각에 대해서도, 연대와 제작 기법과 해석을 다룬 고고학 보고는 아직 없다.

이 순서가 빚는 부작용은 숫자에서 드러난다. 2023년 9월에 나온 대형 인물상의 높이는 튀르키예 관광 당국의 보도자료에서 2.45m로, 문화관광부 발표를 옮긴 다른 매체에서 2.3m로 적혀 있다. 같은 정부 채널에서 나온 두 값이 15cm 차이가 난다. 유적 면적도 카룰의 논문은 10헥타르에 채석장 5헥타르를 더하는 방식으로 적는데, 영어권 매체는 14헥타르 또는 25에이커라는 단일 수치를 쓴다.

여기에 자동 생성으로 보이는 웹 문서가 끼어든다. 카라한 테페를 다루는 영어권 웹 문서 상당수가 관광 홍보 또는 검색 노출을 노린 것이고, 서로 다른 수치를 그대로 베껴 옮긴다. 면적이 10·12·13·14헥타르로 뒤섞이고 연대가 저마다 다른 상태가 이렇게 유지된다.

결론 — 연대를 모른다는 말과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은 다르다

정리하면 이렇다. 카라한 테페에 붙는 '1만 1천 년 전'이라는 숫자의 출처는 이 유적에서 뽑은 시료의 측정값이 아니다. 석기 형식과 건축 형식을 이웃 유적에 견주어 얻은 추정값이고, 발굴 책임자 카룰이 2021년 논문에서 밝힌 것은 구조물 AA·AB·AD가 후기 토기 이전 신석기 A기와 초기 B기에 속한다는 서술까지다.

이 상황을 세 갈래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형식 연대와 절대 연대는 정밀도가 다르다. 사이부르츠에서는 바닥 위 목탄으로 측정값 11건을 얻어 기원전 9천년기 중반이라는 결론과 약 300년이라는 점유 기간까지 제시했다. 카라한 테페에는 그에 해당하는 자료가 아직 없다.

둘째, 측정값이 있어도 맥락이 나쁘면 해석이 갈린다. 괴베클리 테페는 20년 넘게 이 문제를 겪었다. 채움층 시료는 건물보다 오래되거나 젊을 수 있었고, 토양 탄산염은 지나치게 젊은 값을 냈으며, 벽 미장과 진흙 모르타르에 이르러서야 쓸 만한 값이 나왔다. 그리고 그 값이 나오자 슈미트가 세운 세 층 순서가 폐기됐다.

셋째, 발표의 순서가 인식을 왜곡한다. 카라한 테페의 주요 발견은 2021년 이후 학술지보다 보도자료로 먼저 나왔고, 그 과정에서 같은 유물의 크기가 두 가지로, 유적 면적이 네 가지로 유통됐다. 대중 자료가 제시하는 연대의 1400년 편차도 같은 경로에서 생겼다.

연대를 확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 유적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암반을 깎아 만든 건물의 구조, 기둥의 배치, 조각의 형식, 채움층의 층서는 이미 관찰되어 기록됐다. 이웃 유적과 같은 문화권에 속한다는 판단도 형식 비교만으로 충분히 선다. 확정되지 않은 것은 그 안에서의 순서와 기간이다. 카라한 테페가 괴베클리 테페보다 이른지 늦은지, 두 유적이 얼마나 오래 겹쳤는지가 여기에 달려 있다.

앞으로 무엇이 나오면 판단이 달라지는지도 분명하다. 카라한 테페의 건물 벽 미장이나 바닥 위 탄화 물질에서 뽑은 측정값이 여러 건 공표되고 그 값들이 서로 정합적이라면, 지금의 추정 연대는 확정 연대가 된다. 반대로 그 값들이 넓게 흩어진다면, 이 유적이 한 시기의 취락이었다는 전제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남쪽 평지의 주거 구역은 아직 본격 발굴에 들어가지 않았고, 그 구역의 바닥 퇴적물은 특수 건물의 채움층보다 시료 맥락이 좋을 가능성이 높다.

기원전 1만 년 무렵의 유적에서 100년 단위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일이 지나쳐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다투는 문제가 바로 순서다. 어느 유적이 먼저인지, 기념비적 건축과 정착과 농경 가운데 무엇이 앞섰는지를 묻는 이상, 몇백 년의 차이는 논증의 성립 여부를 가른다. 지금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값은 측정값이 아닌 추정값이며, 그 사실은 숫자를 옮겨 적는 자리마다 함께 적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