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와 돌과 꽃가루에서 과거의 행동과 건강을 읽어 내는 작업에는 구조적인 난점이 있다. 같은 자료가 정반대의 두 결론과 똑같이 잘 들어맞는 상황이 반복해서 생긴다. 원인은 개별 연구자의 실수가 아니고 자료가 만들어지는 방식에 있다.
프랑스 남서부 타른에가론주, 아베롱 협곡 위쪽 브뤼니켈 마을 인근에 동굴 하나가 있다. 입구는 플라이스토세 동안 자연적으로 막혔다가 1990년에 지역 동굴탐사가들이 다시 열었다. 그 사이 수십만 년 동안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
입구에서 336미터 들어간 큰 방에서 발견된 것은 부러뜨린 석순을 쌓아 만든 고리 모양 구조물 두 개와 작은 더미 네 개였다. 큰 고리는 대략 6.7×4.5미터, 작은 고리는 대략 2.2×2.1미터다. 불에 탄 흔적도 함께 나왔다. 자크 조베르와 소피 베르헤이던과 도미니크 장티를 비롯한 연구진은 2016년 5월 25일 『Nature』 534권에 연대측정 결과를 실었다. 구조물 위로 다시 자란 석순과 불에 탄 뼈, 그리고 구조물을 이루는 석순의 끝부분을 각각 우라늄 계열 방법으로 재서, 17만 6,500년(±2,100년)이라는 값을 얻었다. 서로 다른 시료에서 같은 값이 재현됐다.
이 연대는 현생 인류가 유럽에 오기 훨씬 전이므로 구조물을 만든 것은 네안데르탈인이다. 논문이 강조한 것은 입구에서 336미터 떨어진 지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거리에서 작업하려면 불을 들고 들어가 어둠 속에서 조명을 유지해야 한다. 지하 공간을 다룰 줄 알았다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확실하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그다음이다. 구조물을 왜 만들었는지는 자료에 남지 않는다. 의례를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불을 피우기 위한 방풍 구조일 수도 있고, 지금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용도일 수도 있다. 물질 흔적에서 행동은 읽히지만 동기는 읽히지 않는다.
이 난점이 가장 길게 드러난 사례가 이라크 쿠르디스탄 브라도스트 산지의 샤니다르 동굴이다.
미국 고고학자 랠프 솔레키는 1951년부터 1960년까지 이 동굴을 발굴해 깊이 4~7미터 지층에서 네안데르탈인 10명의 유해를 찾아냈다. 남자와 여자와 아이가 섞여 있었다. 솔레키는 일부가 동굴 천장에서 떨어진 바위에 맞아 죽었지만 다른 일부는 정식 장례 절차를 거쳐 매장됐다고 주장했다. 뒤엣것의 대표 사례가 샤니다르 4호였다.
샤니다르 4호가 '꽃 매장'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유해 주변 흙 시료에서 꽃가루 덩어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프랑스 고식물학자 아를레트 르루아구랑이 이 시료를 분석했고, 여러 종류의 꽃가루가 덩어리로 뭉쳐 있다는 점에서 누군가 꽃을 꺾어 시신 위에 놓았다고 해석했다. 이 해석은 네안데르탈인을 우둔하고 야만적인 존재로 보던 당시의 통념을 뒤집는 데 크게 기여했다.
비판은 곧 나왔다. 꽃가루는 동굴에서 일하거나 살던 사람들이 근래에 묻혀 온 것일 수 있고, 굴을 파는 설치류나 곤충이 옮겼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이 동굴에서 자다가 추위나 낙석으로 죽은 뒤 자연 과정이 흙과 식물로 시신을 덮었을 뿐이라는 설명도 제시됐다. 솔레키의 발굴은 유물의 매장 맥락을 정밀하게 기록하는 전문 기준이 자리 잡기 전에 이루어졌으므로 사후 검증이 어려웠다. 솔레키는 문제의 샤니다르 4호를 블록째 떼어 내 옮기는 방식으로 수습했고, 그 과정에서 뼈가 흘러나왔다는 기록이 발굴 노트에 남아 있다.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진이 2014년 쿠르드 지방정부의 초청으로 다시 들어갔다. 목적은 솔레키가 유해를 찾아낸 퇴적층의 연대를 확정하는 것이었다. 솔레키는 위쪽 유해에 대해 방사성탄소법의 당시 한계였던 5만~4만 5천 년 전이라는 하한밖에 제시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새 유해를 찾을 생각이 없었는데, 2015년과 2016년에 동굴 바닥 아래 약 5미터 지점에서 관절이 이어진 다리 일부를 포함한 네안데르탈인 뼈가 나왔다.
엠마 포메로이를 제1저자로 하는 10명의 연구진은 2020년 학술지 『Antiquity』 94권 373호 11~26쪽에 이 발견을 보고했다. 샤니다르 Z라 명명된 이 개체는 7만~6만 년 전으로 추정되며, 층서 증거는 의도적 매장을 가리켰다. 바닥을 파 만든 구덩이 안에 놓여 있었고, 커다란 수직 바위가 표지처럼 서 있는 지점 뒤쪽에 다른 개체들과 함께 모여 있었다. 발굴진은 이 바위가 이동하는 집단이 같은 자리로 돌아와 죽은 이를 묻을 수 있게 해 주는 표지였다고 본다. 포메로이는 관건이 매장의 의도성이라고 정리했다. 시신을 묻는 일은 포식자를 부르지 않고 냄새를 줄이려는 실용적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되며, 그 범위를 넘어설 때에만 상징적 사고와 애도를 말할 수 있다고 포메로이는 덧붙였다.
2020년 시점에서 포메로이는 꽃 매장 가설에 회의적이었다가 가능성 쪽으로 기울었다고 밝혔다. 샤니다르 Z 주변 퇴적물에서도 고대 꽃가루와 광물화된 식물 잔해가 나왔기 때문이다.
3년 뒤 같은 연구팀이 방향을 다시 돌렸다. 크리스 헌트를 제1저자로 하고 포메로이와 팀 레이놀즈와 에밀리 틸비와 그레임 바커가 참여한 논문이 2023년 학술지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에 실렸다. 이들이 제시한 가장 유력한 설명은 땅에 굴을 파는 단독성 벌이었다. 벌 한 마리가 나르는 꽃가루 뭉치에는 동시에 여러 종을 방문했을 경우 한 종 이상이 섞일 수 있으므로, 여러 종이 섞인 덩어리라는 사실이 사람의 채집을 가리키지 않는다. 샤니다르 동굴에서 사람이 덜 밟는 구역, 특히 동굴 안쪽 벽 가까이에는 벌이 판 굴이 실제로 남아 있고, 후속 발굴에서 고대의 굴도 확인됐다. 논문은 시신 위에 식물을 덮었을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꽃 매장 가설이 이 검토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70년 동안 같은 꽃가루가 세 번 다르게 읽혔다. 사람이 꺾어 놓은 꽃에서, 오염이나 설치류의 소행으로, 다시 벌이 나른 것으로. 그동안 유해의 배치에 대한 판단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꽃은 부정되고 의도적 매장은 강화됐다. 자료가 늘었는데도 결론이 한 방향으로 수렴하지 않은 이유는, 각 해석이 배제해야 하는 대안이 자연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연 과정은 언제나 후보로 남는다.
같은 구조의 난점이 건강 연구에서는 더 날카롭게 나타난다.
마크 코언과 조지 아멜라고스가 1984년에 엮은 『Paleopathology at the Origins of Agriculture』는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 넘어간 21개 사회의 유골 자료를 모았고, 그중 19개에서 건강 지표가 나빠졌다고 보고했다. 감염병과 치과 질환이 늘고 영양 결핍 흔적이 늘었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 결론은 이후 30년 넘게 신석기 이행을 다루는 서술의 기본 틀이 되었다.
제임스 우드와 조지 밀너와 헨리 하펜딩과 케네스 와이스는 1992년 학술지 『Current Anthropology』 33권 4호 343~370쪽에 이 추론 방식을 정면으로 문제 삼는 논문을 실었다. 제목에 붙은 이름이 그대로 이 문제의 이름이 됐다.
우드와 공저자들은 세 가지 문제를 구분해 제시했다. 첫째는 인구가 정상 상태가 아니라는 문제다. 고고학에서 집단의 건강을 재는 지표로 자주 쓰이는 것이 평균 사망 연령인데, 이 값은 사망률뿐 아니라 출생률에도 좌우된다. 출생률이 높아지면 어린 개체의 비율이 늘고 평균 사망 연령은 자동으로 내려간다. 건강이 나빠지지 않아도 숫자는 나빠진다.
실제로 이들은 코언이 1989년에 제시한 논증에 이 지적을 적용했다. 농경과 정착이 평균 사망 연령의 하락 및 영양 부족과 감염병에서 오는 골격 병변의 증가와 함께 나타난다는 관찰에서 코언은 삶의 질 악화를 끌어냈다. 우드와 공저자들은 같은 관찰에 다른 설명이 똑같이 잘 들어맞는다고 반박했다. 이유식으로 쓸 곡물이 늘면 수유 기간이 짧아지고, 수유 중에는 임신이 잘 되지 않으므로, 수유 기간 단축은 출산 간격을 좁혀 출생률을 올린다. 출생률이 오르면 평균 사망 연령이 내려간다. 건강 악화 없이도 같은 숫자가 나온다.
둘째 문제가 이 선택적 사망이다. 셋째는 개인별 취약성 차이가 측정되지 않는다는 문제다. 같은 환경에 놓여도 사람마다 병에 걸릴 확률과 걸린 뒤 버틸 확률이 다르다. 유전, 태내 환경, 어린 시절의 영양 상태가 모두 여기에 들어간다. 유골 자료에는 이 차이가 기록되지 않으므로, 집단 전체의 병변 빈도가 실제로 무엇을 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우드와 공저자들이 개체별 취약성과 연령별 사망 위험을 연결하는 간단한 모형으로 보인 결론은 이렇다. 수렵채집에서 정착 농경으로의 이행에 관한 유골 증거는 건강이 개선됐다는 해석과 악화됐다는 해석 양쪽과 똑같이 잘 들어맞는다.
이 지적이 유골 연구를 무력화하지는 않았다. 반론의 방향은 두 가지였다.
앨런 굿맨은 1993년에 우드와 공저자들이 다른 갈래의 증거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뼈와 이빨은 죽을 때의 상태뿐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의 상태에 관한 정보도 담고 있다는 것이 논지였다. 신장과 장골 계측은 전반적인 영양 상태를 가리키고, 치아 법랑질을 보면 이가 형성되던 시기의 스트레스를 읽을 수 있다.
이 방향을 실제로 밀고 나간 것이 2011년 학술지 『Economics and Human Biology』에 실린 에이미 머머트와 공저자들의 논문이다. 이들은 1984년 이후에 나온 연구들을 모아 신장 감소 추세가 유지되는지 검토했다. 코언과 아멜라고스의 책이 21개 사회 중 19개에서 건강 악화를 관찰했던 자리를, 이들은 여러 스트레스 지표를 함께 쓰는 방식으로 다시 점검했다. 결과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농경 의존도와 신장 감소가 함께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단일 작물 의존에서 오는 영양 결핍과 성장 저해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다만 이들도 지형 같은 교란 요인을 인정했다. 기복이 심한 지형에 사는 집단은 골격 강건성이 오히려 떨어지는 쪽으로 나타나, 평지 집단과 반대 방향의 결과가 나왔다.
지표를 늘리는 전략은 우드와 공저자들의 지적을 없애지 않고 우회한다. 각 지표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편향돼 있다면, 여러 지표가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그 방향을 잠정적으로 받아들일 근거가 생긴다. 이것은 증명이 아니라 수렴 논증이며, 새 지표가 반대 방향을 가리키면 다시 흔들린다.
선사 자료 해석의 난점은 한 가지 형태로 반복된다. 자료의 부재를 현상의 부재로 읽는 순간 결론이 만들어진다.
브뤼니켈 동굴에서 의례의 물증이 없다는 사실은 의례가 없었음을 뜻하지 않는다. 샤니다르에서 부장품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유골에 병변이 없다는 사실은 병이 없었음을 뜻하지 않는다.
같은 구조가 역사 자료에서도 나타난다. 하비 화이트하우스가 이끈 연구진은 세샤트 데이터베이스로 1만 년에 걸친 414개 사회를 분석해 도덕적 신이 사회 복잡성보다 나중에 나타난다는 결과를 2019년 『Nature』에 실었다. 바스티안 베하임과 공저자들이 제기한 반론의 핵심은 결측치 처리였다. 어떤 사회에 대해 도덕적 신의 존재 여부가 기록돼 있지 않을 때 연구진은 이를 부재로 코딩했는데, 자료가 적은 이른 시기가 이 처리 때문에 자동으로 '도덕적 신 없음'이 되어 시간 순서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2021년 7월 7일 논문을 철회했다. 수정판은 2022년 학술지 『Religion, Brain & Behavior』에 실렸고, 결측치 처리를 고친 뒤에도 주요 결론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들의 보고다.
유골의 병변이든 동굴의 꽃가루든 역사 데이터베이스의 빈칸이든, 문제의 형태는 같다. 기록이 남지 않은 이유가 그 일이 없었기 때문인지 기록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를 자료 자체가 알려 주지 않는다. 그 둘을 가르려면 자료 밖에서 온 가정이 필요하고, 결론의 상당 부분은 그 가정에서 나온다.
브뤼니켈 동굴은 17만 6,500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불을 들고 336미터를 들어가 석순으로 구조물을 쌓았다는 사실을 확정한다. 왜 쌓았는지는 확정하지 않는다. 샤니다르 동굴은 네안데르탈인 여럿이 같은 지점에 반복해서 안치됐고 샤니다르 Z가 판 구덩이 안에 놓였다는 사실을 확정하며, 꽃가루에 대해서는 70년 동안 세 가지 해석을 거쳐 지금은 벌을 가장 유력한 설명으로 둔다. 신석기 이행기의 유골은 병변과 신장 감소를 기록하지만, 그 기록이 건강 악화를 뜻하는지는 출생률과 선택적 사망과 개인별 취약성이라는 세 변수를 통제해야 정해진다.
세 사례를 관통하는 것은 하나의 구조다. 선사 자료는 죽은 것과 남은 것만 기록하며, 남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이 침묵을 부재로 읽으면 결론이 빠르게 나오고, 유보로 읽으면 결론이 잘 나오지 않는다. 세샤트 논문의 철회는 이 선택이 최신 데이터베이스 연구에서도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남는 물음은 자료를 더 모으면 이 문제가 풀리는가다. 브뤼니켈의 정밀 연대측정과 샤니다르의 재발굴은 둘 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작업이었고 새 사실을 많이 더했다. 그런데도 동기에 관한 물음과 건강에 관한 물음에서는 해석의 폭이 크게 줄지 않았다. 자료의 양을 늘리는 일과 추론의 폭을 좁히는 일은 별개의 과제이며, 뒤엣것에는 새로운 종류의 증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