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홍수 이야기와 메소포타미아 전승이 겹친다는 사실은 1872년 이래 확정되어 있다. 그런데 창세기와 가장 가까운 장면들은 가장 오래된 수메르어 판본이 아닌 가장 늦은 신아시리아 판본에서만 확인되고, 수메르어 판본의 결말은 창세기와 다른 방향으로 간다. 계통의 순서와 유사성의 분포가 어긋난다.
1872년, 대영박물관의 조지 스미스가 성서고고학회에서 「대홍수에 관한 칼데아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니네베에서 나온 쐐기문자 점토판 단편들의 번역이었고, 그중에 홍수 이야기가 있었다. 신이 인류를 멸하기로 결정하고, 한 사람이 미리 경고를 받아 배를 만들고, 물이 빠진 뒤 제사를 드린다는 줄거리였다.
이 발표는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창세기 6장에서 9장까지의 내용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성경보다 오래된 문서에 같은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된 순간이었다.
그 뒤로 150년 넘게 두 전승의 관계가 연구되었고, 메소포타미아 쪽에서 세 갈래의 판본이 확인되었다. 이 글은 그 세 판본이 각각 무엇을 담고 있는지, 창세기와 겹치는 요소가 어느 판본에서 나오는지를 확인한다. 확인해 보면 어긋나는 자리가 하나 나온다. 가장 닮은 장면이 가장 오래된 판본에 없다.
메소포타미아 홍수 전승은 언어와 시기에 따라 셋으로 나뉜다.
가장 이른 것이 수메르어 판본이다. 토르킬 야콥센이 1981년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00권 4호에 실은 논문 「The Eridu Genesis」에서 이 판본을 복원하고 번역했으며, 에리두 창세기라는 이름도 이때 그가 붙였다. 원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 논문은 1987년에 낸 『The Harps That Once: Sumerian Poetry in Translation』에 수록되었다.
두 번째가 아카드어 아트라하시스 서사시다. 윌프레드 램버트와 앨런 밀러드가 1969년 옥스퍼드 클래런던에서 낸 『Atra-Hasis: The Babylonian Story of the Flood』가 표준 교정본이며, 미겔 시빌이 수메르어 홍수 설화를 다룬 부록을 붙였다. 이 부록은 2011년 판에도 그대로 실렸다.
세 번째가 길가메시 서사시 제11서판이다. 스미스가 1872년에 발표한 것이 이 판본이고, 점토판은 대영박물관에 K.3375로 등록되어 있다. 실물의 제작 연대는 기원전 7세기 무렵이다.
세 판본에서 홍수 영웅의 이름이 바뀐다. 수메르어에서 지우수드라, 아카드어에서 아트라하시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우트나피슈팀이다. 이름이 바뀌어도 그가 다스리던 도시는 슈룹팍으로 유지된다.
가장 이른 판본을 다룰 때 함께 짚어야 할 것이 그 자료의 물리적 상태다.
수메르어 홍수 설화는 점토판 한 점에 남아 있다. 니푸르에서 나온 CBS 10673이고, 아르노 푀벨이 1914년에 처음 간행했으며 지금은 펜실베이니아대학 박물관에 있다. 필사 연대는 기원전 17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곧 고바빌로니아 시기다.
보존 상태가 나쁘다. 옥스퍼드 수메르 문학 전자 텍스트 총서의 정리에 따르면 이 점토판에서 읽을 수 있는 부분은 37~50행, 84~100행, 135~162행, 201~217행, 251~261행이다. 나머지는 결손이다. 야콥센의 복원본에서도 단편과 단편 사이에 32행에서 39행에 이르는 공백이 반복해서 표시된다.
이 조건이 뒤에 나올 논의 전체를 좌우한다. 수메르어 판본에 어떤 장면이 없다고 말할 때, 그것이 원래 없었는지 결손 부분에 있었는지를 구분할 수 없다.
남아 있는 부분만으로도 줄거리의 뼈대는 확인된다. 창조가 먼저 나온다. 안과 엔릴과 엔키와 닌후르사가가 검은 머리 사람들을 빚고 짐승들을 번성하게 했다는 서술이다. 이어서 왕권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다섯 도시가 각각의 신에게 배정된다. 에리두는 누딤무드에게, 바드티비라는 여주인에게, 라라크는 파빌사그에게, 지파르는 우투에게, 슈룹팍은 수드에게 주어졌다.
그다음이 홍수 결정이다. 지우수드라는 왕이자 구두 사제였고, 신들의 회의가 내린 결정을 벽 너머로 듣는다.
iz-zi-da inim ga-ra-ab-dug4 inim-[ju10 he2-dab5] / numun nam-lu2-ulu3 ha-lam-e-/de3\ [nam-bi ba-tar]
담벼락아, 내가 너에게 말을 하겠으니 내 말을 붙들어라. …… 인간의 씨를 없애기로 그 운명이 정해졌다.
수메르어 홍수 설화, 단편 C 20행과 23행. 교정본은 옥스퍼드 수메르 문학 전자 텍스트 총서(ETCSL) 1.7.4. 꺾쇠 안은 결손 부분의 복원이다. 옮김은 필자.
이 장면의 형식이 특이하다. 신이 지우수드라에게 직접 말하지 않는다. 신들은 서로 맹세를 걸어 결정을 누설하지 않기로 했고, 그래서 엔키는 벽에 대고 말한다. 벽 옆에 서 있던 지우수드라가 그것을 듣는다. 맹세를 어기지 않으면서 경고를 전달하는 장치다.
다음 단편으로 넘어가면 이미 홍수가 지나간 뒤다. 배를 만드는 장면은 결손 부분에 들어 있다.
ud 7-am3 ji6 7-am3 / a-ma-ru kalam-ma ba-ur3-ra-ta
이레 낮 이레 밤 동안 홍수가 땅을 휩쓴 뒤에
수메르어 홍수 설화, 단편 D 3~4행. 교정본은 옥스퍼드 수메르 문학 전자 텍스트 총서(ETCSL) 1.7.4. 옮김은 필자.
이어서 태양신 우투가 나타나 하늘과 땅을 비추고, 지우수드라가 거대한 배에 구멍을 뚫자 우투의 빛이 배 안으로 들어온다. 지우수드라는 우투 앞에 엎드려 절하고 소를 잡고 양을 바친다.
아트라하시스 서사시는 수메르어 판본보다 훨씬 완전한 이야기를 담는다. 고바빌로니아 시기인 기원전 18세기에서 17세기 무렵에 아카드어로 작성되었다.
이 판본은 홍수 이전의 상황까지 설명한다. 하급 신들이 수로를 파고 농업 시설을 유지하는 노동에 지쳐 반란을 일으키고, 그 노동을 대신할 존재로 인간이 만들어진다. 인간이 신들의 노역을 덜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관념은 수메르인과 바빌로니아인 모두에게 표준적인 것이었다.
길가메시 서사시 제11서판은 이 이야기를 다시 가져다 쓴다. 홍수 이야기가 이 서사시에 들어온 이유는 우트나피슈팀이 신들에게 영생을 얻은 인물이고, 그 주제가 서사시 전체의 주제인 불사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세 판본과 창세기 사이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요소들이 있다.
신적 결정이 먼저 선포되고 그것이 한 사람에게 전달된다는 구조가 그중 하나다. 창세기 6장은 신이 인류를 멸하기로 결정했음을 알리고 곧바로 노아에게 그 말이 전달되는 순서로 진행된다. 에리두 창세기에서는 신들의 회의가 결정을 내린 뒤 지우수드라가 은밀한 방식으로 경고를 받는다.
배를 만들어 살아남는다는 줄거리, 동물과 인류의 씨를 보존한다는 목적, 물이 빠진 뒤의 제사도 공통된다. 홍수의 기간을 이레로 잡는 것도 수메르어 판본과 아카드어 판본에 함께 나온다.
공통 요소의 목록은 여러 연구자가 작성했다. 고든 웬함은 창세기 서술과 아트라하시스 서사시, 라스 샤므라 판본, 길가메시 제11서판, 에리두 창세기 사이에서 17개 항목을 공통점으로 꼽았다.
공통 요소 가운데 창세기와 가장 구체적으로 겹치는 것이 새를 날려 보내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장면이 나타나는 자리가 문제다.
길가메시 제11서판의 서술은 이렇다. 배가 니무시산에 걸려 엿새 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이레째 되는 날 우트나피슈팀이 비둘기를 날려 보내지만 앉을 곳이 없어 돌아온다. 제비를 날려 보내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까마귀를 날려 보내자 물이 빠진 것을 보고 돌아오지 않는다.
창세기 8장의 순서와 대응한다. 노아도 새를 내보내 물이 빠졌는지를 확인하고, 비둘기는 돌아오며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는다.
문제는 연대다. 이 새 날리기 장면은 기원전 750년 무렵의 신아시리아 판본 길가메시 제11서판, 그리고 기원전 3세기에 쓴 베로소스에게서만 확인된다. 더 이른 판본에는 없다. 기원전 1700년 무렵으로 올라가는 아트라하시스 서사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손상되어 있고 약 58행이 결손이다.
수메르어 판본에도 이 장면이 없다. 단편 D에서 홍수가 지나간 뒤 우투가 나타나고 지우수드라가 제사를 드리는 장면으로 곧장 넘어간다. 그다음은 33행 가까이 결손이다.
여기서 통상적인 서술 하나가 성립하지 않는다. 수메르 설화가 먼저 있었고 창세기가 그것을 물려받았다는 서술이다. 계통상 수메르어 판본이 가장 이른 것은 사실이지만, 창세기와 가장 구체적으로 겹치는 장면은 그 판본에서 확인되지 않고 1천 년 뒤의 아시리아 판본에서만 확인된다.
결손과 부재를 구분해야 한다는 조건이 여기서 작동한다. 새 날리기 장면이 아트라하시스와 수메르어 판본에 원래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 자리가 깨져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있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장면의 실재가 확인되는 가장 이른 자료가 기원전 8세기의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차이도 확인해 두어야 한다. 세 판본과 창세기가 갈라지는 자리가 몇 군데 있다.
배의 모양이 다르다. 길가메시 제11서판은 장인들이 만든 정육면체 모양의 배를 역청으로 밀봉했다고 묘사한다. 수메르어 판본의 단편에서는 배를 마구르구르라 부를 뿐 구조에 관한 서술이 남아 있지 않다.
홍수 뒤의 신들의 태도도 다르다. 길가메시 제11서판에서는 신들이 우트나피슈팀의 제사 주위에 모여들며 홍수가 지나쳤음을 후회한다. 에리두 창세기에는 이런 집단적 회한의 장면이 없다.
결말이 가장 크게 다르다. 수메르어 판본에서 안과 엔릴은 지우수드라에게 신과 같은 생명을 주고 영원한 생명을 내려 준다. 그리고 그를 딜문에 정착시킨다.
mu nij2-gilim-ma numun nam-lu2-ulu3 uri3-ak / kur-bal kur dilmun-na ki dutu ed2-ce3 mu-un-til3-ec
짐승들과 인간의 씨를 지킨 까닭에, 바다 건너의 땅 딜문, 해가 뜨는 곳에 그를 살게 했다.
수메르어 홍수 설화, 단편 E 10~11행. 교정본은 옥스퍼드 수메르 문학 전자 텍스트 총서(ETCSL) 1.7.4. 옮김은 필자.
창세기의 노아는 영생을 얻지 않는다. 땅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늙어 죽는다. 홍수 생존자가 인간의 조건을 벗어나 신들의 영역으로 옮겨 가는 결말과, 생존자가 인간으로 남아 새 세대의 조상이 되는 결말은 같은 줄거리에서 나오는 서로 다른 결론이다.
창세기가 이 지역을 가리킬 때 쓰는 지명이 시날이다. 창세기 11장의 탑 이야기도 시날 평지에서 벌어진다.
이 지명과 수메르의 관계에 관한 가설이 제출되어 있다. 아카드어 슈메루(Šumeru)가 서쪽으로 전해지면서 변형된 형태가 성경의 시날, 이집트 문헌의 상가르(Sngr), 히타이트 문헌의 산하라(Šanhar)라는 설명이다. 이 가설은 확정되지 않았고, 아카드인이 남부 지역을 왜 슈메루라고 불렀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이야기의 배경에 실제 사건이 있었는지에 관해서도 견해가 제출되어 있다. 기원전 2900년 무렵 남부 메소포타미아 일부에서 일어난 특정 홍수에서 이 이야기가 비롯되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지역의 조건을 보면 가능성 자체는 있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하류의 충적평야는 지형이 평탄해 강이 범람하면 넓은 면적이 한꺼번에 잠긴다. 도시들이 강가와 수로변에 몰려 있었으므로 대규모 범람 한 번이 여러 도시를 동시에 덮칠 수 있다.
다만 이 설명이 이야기의 세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홍수가 인류를 멸하기 위한 신들의 결정이라는 구성, 경고를 은밀히 전달하는 장치, 생존자가 영생을 얻는 결말은 실제 범람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 요소들은 이야기의 구성이며 자연 현상의 기록이 아니다.
메소포타미아 홍수 전승은 수메르어 판본에서 아카드어 판본을 거쳐 길가메시 제11서판으로 이어진다. 영웅의 이름이 지우수드라에서 아트라하시스로, 다시 우트나피슈팀으로 바뀌면서도 그가 다스린 도시는 슈룹팍으로 유지된다. 계통의 순서 자체는 분명하다.
그런데 창세기와의 유사성은 이 순서를 따라 커지지 않는다. 가장 구체적인 일치인 새 날리기 장면은 계통의 끝자락, 기원전 8세기 신아시리아 판본과 기원전 3세기 베로소스에서만 확인된다. 가장 이른 수메르어 판본은 사본이 한 점뿐이고 그나마 절반 이상이 결손이며, 남아 있는 결말은 창세기와 반대 방향으로 간다. 생존자가 딜문에서 영생을 얻는다.
이 상태에서 어떤 서술이 성립하고 어떤 서술이 성립하지 않는지를 나눌 수 있다. 창세기 홍수 이야기가 메소포타미아의 더 오래된 전승과 같은 이야기 계열에 속한다는 서술은 성립한다. 여러 판본에 걸쳐 반복되는 구성 요소가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반면 창세기가 수메르 설화를 물려받았다는 서술은 자료의 연대와 맞지 않는다. 창세기와 가장 가까운 형태는 수메르어 판본으로부터 1천 년 뒤에 아카드어로 정리된 판본이다.
이 결론이 뒤집힐 조건도 분명하다. 아트라하시스 서사시 제3서판의 결손 58행이 새 사본으로 메워지고 거기에 새 날리기 장면이 있으면, 그 장면의 확인 연대가 900년 앞당겨진다. 수메르어 홍수 설화의 다른 사본이 나와 결손 부분이 채워져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문제를 미결로 두는 것은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점토판이 깨져 있다는 물리적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