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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은 표식을 남겼는가 — 스페인 동굴 벽화 연대 논쟁과 그 바깥의 자료들

규칙적인 표식을 남기는 행위가 호모 사피엔스만의 것이었다는 전제는 지난 15년의 발굴로 흔들렸다. 흔들린 정도가 자료마다 다르다는 점이 논쟁을 길게 만들고 있다.

2026년 9월 12일

왜 이 논쟁이 생겼는가

20세기 내내 고고학 교과서는 하나의 그림을 공유했다. 4만 년 전 무렵 유럽에 호모 사피엔스가 들어오면서 동굴 벽화와 조각상과 장신구가 한꺼번에 나타났고, 그 이전에 유럽에 살던 네안데르탈인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는 그림이다. 이 대비는 두 종의 운명을 설명하는 데도 쓰였다. 상징을 다루는 능력이 사피엔스에게만 있었고, 그 능력이 더 큰 집단과 더 넓은 연결망을 가능하게 했으며, 그래서 네안데르탈인이 밀려났다는 설명이다.

이 그림은 두 가지를 동시에 전제한다. 첫째, 규칙적인 표식을 남기는 행위가 사피엔스의 고유한 능력이라는 것. 둘째, 그 능력이 4만 년 전 유럽에서 처음 눈에 보이게 됐다는 것. 지난 15년 사이에 나온 발굴과 연대측정은 두 전제를 각각 다른 방향에서 흔들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사피엔스의 표식이 4만 년보다 훨씬 오래됐다는 자료가 나왔고, 유럽에서는 사피엔스가 오기 전의 지층에서 표식이 나왔다.

그런데 뒤쪽 자료는 앞쪽과 성격이 다르다. 아프리카 자료는 유물 자체가 층에서 나오므로 층의 연대를 재면 된다. 네안데르탈인의 상징 행위를 다투는 자료는 대부분 벽에 그려진 것이거나 동굴 깊숙한 곳의 구조물이어서, 유물 자체가 아닌 그 위나 아래에 쌓인 광물의 연대를 재야 한다. 연대측정 방법 자체가 논쟁의 본체가 되는 이유다.

우라늄-토륨 연대측정 동굴 벽이나 석순에 물이 흐르면서 얇은 방해석(탄산칼슘) 껍질이 쌓인다. 물에 녹아 있던 우라늄은 이 껍질에 함께 갇히지만 토륨은 물에 거의 녹지 않아 처음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 뒤 우라늄이 붕괴하면서 토륨이 생기므로, 두 원소의 비율을 재면 껍질이 언제부터 쌓이기 시작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림 위에 껍질이 덮여 있다면 그 연대는 그림의 최소 연대가 된다. 최대 50만 년까지 거슬러 잴 수 있어 방사성탄소법이 닿지 못하는 구간을 메운다. 문제는 이 방법이 계(系)가 닫혀 있다고 가정한다는 점이다. 나중에 흐른 물이 우라늄을 씻어 내가면 남은 토륨의 비율이 높아져 실제보다 오래된 값이 나온다.

2018년 스페인 동굴 벽화 연대

2018년 2월 23일 Science에 실린 논문이 논쟁의 중심이다(호프만 외, 2018, Science 359권 912~915쪽).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디르크 호프만과 사우샘프턴 대학의 앨리스테어 파이크를 포함한 연구진은 스페인 세 동굴에서 그림 위를 덮은 방해석 껍질의 우라늄-토륨 연대를 쟀다. 칸타브리아의 라 파시에가 동굴에 있는 붉은 사다리 모양 기호, 엑스트레마두라의 말트라비에소 동굴에 있는 손 스텐실, 안달루시아의 아르달레스 동굴에 있는 붉게 칠한 석순이 대상이었다. 세 곳 모두에서 6만 4천 800년 전보다 오래된 최소 연대가 나왔다.

이 값이 맞는다면 결론은 하나다. 사피엔스가 유럽에 들어온 것은 4만 5천 년 전 무렵이므로, 6만 5천 년 전 유럽에 살던 사람은 네안데르탈인뿐이다. 그림을 그린 것도 그들이어야 한다.

반박은 연대측정법을 겨냥했다

논문이 나온 해 9월, 뤼도비크 슬리마크 연구진이 같은 학술지에 논평을 실었다(Science 361권 eaau1371). 논지는 세 동굴 각각의 자료가 고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라 파시에가의 경우 연구진이 얻은 스무 개 남짓한 연대 가운데 6만 4천 860년이라는 값 하나만 유난히 오래됐고 나머지는 훨씬 젊었다. 말트라비에소도 사정이 비슷해서, 가까운 지점에서 뽑은 시료들이 대부분 신뢰도 높은 젊은 연대를 내는 가운데 한 시료만 7만 년 전을 가리켰다. 슬리마크 연구진은 이 하나를 택한 근거가 약하며, 전체 자료를 함께 보면 4만 7천 년 전 쪽이 더 그럴듯하다고 주장했다. 아르달레스에 대해서는 다른 지적을 했다. 그곳은 석순에 붉은 침전물이 덮여 있을 뿐 무엇을 그린 형상이 아니어서, 사람이 칠한 것인지 자연 현상인지 가리기 어렵다고 보았다.

호프만 연구진은 한 달 뒤 답변을 실었다(Science 362권 eaau1736). 여러 시료 가운데 오래된 값만 골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방해석이 그림 위에 덮이는 시점은 지점마다 다르므로 가장 오래된 값이 그림의 최소 연대를 가리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답했다. 젊은 값들은 그보다 나중에 같은 벽면의 다른 지점에 방해석이 쌓인 결과라는 설명이다.

2019년에는 랜들 화이트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더 긴 반박을 냈다(화이트 외, 2020, Journal of Human Evolution). 이 글은 우라늄이 나중에 씻겨 나가면 연대가 실제보다 오래 나온다는 점을 지적하며, 오스트리아의 한 동굴 유석과 말트라비에소의 깨진 석순에서 그런 개방계 거동이 실제로 확인된 사례를 들었다. 우라늄-토륨 값만으로 판정하지 말고 수리지질학과 광물학 정보를 함께 보고, 가능하면 다른 방법과 교차 검증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2020년에는 같은 스페인의 네르하 동굴에서 결정적인 사례가 보고됐다. 벽화를 덮은 탄산칼슘 층의 우라늄-토륨 연대를 재어 보니 우라늄 함량이 낮은 시료일수록 연대가 오래 나오는 역상관 관계가 나타났다. 우라늄이 이동해 빠져나간 결과로 해석되며, 같은 역상관이 아르달레스·말트라비에소·라 파시에가 자료에서도 보인다는 것이 이 연구의 지적이었다.

2024년 호프만 연구진은 말트라비에소 손 스텐실에 대한 추가 연대를 모아 다시 발표했다. 논쟁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이겼는지가 아니라, 벽화 연대를 둘러싼 다툼이 그림의 해석에서 물이 광물을 어떻게 씻어 내는가라는 지구화학 문제로 옮겨 갔다는 사실이다.

벽화를 빼고 남는 것들

벽화 연대가 흔들린다고 해서 네안데르탈인의 상징 행위를 다투는 자료 전체가 함께 무너지지는 않는다. 연대측정 방식이 다르거나, 아예 연대가 논쟁 대상이 아닌 자료가 여럿 있다.

브뤼니켈 동굴의 석순 구조물

프랑스 남서부 아베롱 계곡의 브뤼니켈 동굴은 홍적세에 자연적으로 입구가 막혔다가 1990년에 동굴 탐험가들이 자갈 비탈을 파고 들어가면서 다시 열렸다. 입구에서 336미터 들어간 지점의 바닥에 부러진 석순으로 만든 고리 모양 구조물이 있다. 400개가 넘는 석순을 부러뜨려 옮기고 쌓아 올렸다. 큰 것은 긴지름 6.7미터에 짧은지름 4.5미터, 작은 것은 2.2미터에 2.1미터이며, 석순을 한 겹에서 네 겹까지 나란히 눕히고 작은 조각을 사이에 끼워 받쳤다. 일부 석순은 고리에 기대어 수직으로 세웠다. 불에 그을리거나 붉게 변한 자리와 태운 뼈도 나왔다.

자크 조베르 연구진은 구조물이 만들어진 뒤 그 위에 다시 자라난 방해석과 부러진 석순 끝, 태운 뼈에 붙은 방해석의 우라늄 계열 연대를 재어 17만 6천 500년 전이라는 값을 얻었고, 오차는 2천 100년이다(조베르 외, 2016, Nature 534권 111~114쪽). 여기서는 연대측정 대상이 그림을 덮은 얇은 껍질 대신 두꺼운 석순 자체이므로, 벽화 논쟁에서 문제가 된 개방계 거동이 끼어들 여지가 훨씬 적다.

17만 6천 년 전 유럽에는 네안데르탈인 말고 다른 사람족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 구조물을 만든 것은 그들이다. 이 자료가 보여주는 것은 세 가지다. 햇빛이 전혀 닿지 않는 336미터 안쪽까지 들어갔다는 것, 그러려면 불을 안정적으로 다뤄야 했다는 것, 그리고 400개 넘는 석순을 옮겨 일정한 형태로 배치하는 일을 여럿이 나눠 했다는 점이다. 구조물의 용도는 지금도 알려지지 않았다.

크라피나의 독수리 발톱

크로아티아 크라피나 유적은 1899년에서 1905년 사이에 발굴됐다. 이 유적의 퇴적층은 전자스핀공명법과 우라늄 계열 연대로 13만 년 전으로 측정됐고, 모든 층에서 무스테리안 석기가 나오며 최하층을 뺀 모든 층에서 네안데르탈인 유해가 나온다. 사피엔스가 유럽에 오기 8만 년 전이다.

다보르카 라도브치치 연구진은 이 유적의 최상층에서 나온 흰꼬리수리 발톱 여덟 점과 발가락뼈 한 점을 다시 조사했다(라도브치치 외, 2015, PLoS ONE 10권 e0119802). 네 점에는 가장자리가 닳은 자른 자국이 여러 줄 있고, 여덟 점 모두에 광택이 나는 면이나 마모 흔적이 있다. 가장 큰 세 점에는 발톱 안쪽의 거의 같은 위치에 작은 홈이 파여 있다. 발톱에는 먹을 살이 거의 없으므로 식용으로 떼어 낸 것으로 보기 어렵다. 연구진은 이 흔적들을 끈에 꿰어 매다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해석했고, 중복되는 좌우를 근거로 최소 서너 마리의 독수리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했다. 같은 유적의 다른 동물 뼈에는 이런 가공 흔적이 없다.

2020년에는 같은 연구진이 싱크로트론 적외선 분광법으로 발톱 표면을 비파괴 분석해 결과를 다시 확인했다(라도브치치 외, 2020, Scientific Reports). 발톱을 쓴 방식에 대해서는 목걸이나 팔찌로 보는 견해와 소리를 내는 도구로 보는 견해가 함께 있다.

새를 다룬 다른 사례들

맹금류를 다룬 흔적은 크라피나 한 곳에 그치지 않는다. 이탈리아 푸마네 동굴에서는 맹금 날개뼈에 깃털을 뽑기 위해 자르고 긁은 자국이 나왔다. 크림반도 자스칼나야 6 유적에서는 까마귀 뼈에 일정한 간격으로 새긴 자국이 나왔고, 연구진은 간격이 규칙적이라는 점을 근거로 우연한 도살 흔적과 구분했다(마이키치 외, 2017, PLoS ONE 12권 e0173435). 스페인 코바 포라다다에서는 샤텔페롱 문화층에서 흰죽지수리 발가락뼈가 가공된 채로 나왔다(로드리게스 이달고 외, 2019, Science Advances 5권 eaax1984).

새긴 뼈와 안료

독일 아인호른회레 동굴에서는 큰뿔사슴 발가락뼈에 새긴 갈매기 모양 무늬가 나왔다. 실비아 레더 연구진은 이 뼈를 직접 연대측정해 5만 1천 년 전으로 확인했다(레더 외, 2021, Nature Ecology & Evolution). 사피엔스가 중부 유럽에 닿기 전이다. 뼈를 새기려면 미리 삶아 부드럽게 만들어야 했다는 실험 결과도 함께 제시됐다.

안료 사용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벨베데레 유적에서는 20만~25만 년 전 층에서 붉은 안료를 쓴 흔적이 보고됐다. 스페인 쿠에바 데 로스 아비오네스에서는 11만 5천~12만 년 전의 바닷조개가 구멍이 뚫리고 안료가 묻은 채로 나왔다.

회의적인 쪽의 논거

이 자료들을 모두 인정하지 않는 연구자도 있다. 앞서 벽화 연대를 반박한 슬리마크는 네안데르탈인의 장신구라 불리는 물건들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그가 보기에 이 물건들 가운데 제작이라 할 만한 가공을 거친 것이 하나도 없고, 150년 가까이 찾았는데도 구멍을 뚫은 장신구가 한 점도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 지적에는 따져 볼 구석이 있다. 구멍을 뚫는 것이 상징 행위의 필수 조건인지가 먼저 문제가 된다. 홈을 파고 끈을 감는 방식으로도 매달 수 있고, 실제로 크라피나 발톱의 홈은 그런 용도로 해석된다. 다른 한편 슬리마크의 요구에는 방법론적 이유가 있다. 가공 흔적이 적을수록 자연적 마모나 도살 과정의 우연한 자국과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그러면 판정이 연구자의 해석에 더 많이 기대게 된다.

또 하나의 반론은 시점을 겨냥한다. 네안데르탈인의 상징 행위라고 제시된 자료 상당수가 4만 5천~4만 년 전, 곧 사피엔스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 시기에 몰려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이 사피엔스에게서 배웠을 수 있다. 이 반론은 코바 포라다다의 샤텔페롱 자료처럼 늦은 사례에는 유효하지만, 브뤼니켈(17만 6천 년 전), 크라피나(13만 년 전), 마스트리흐트-벨베데레(20만~25만 년 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 시기 유럽에 사피엔스는 없었다.

자료를 신뢰도별로 정리하면

지금까지 나온 자료를 연대측정의 성격에 따라 나누면 다툼의 지형이 보인다.

자료연대측정 대상다툼의 상태
마스트리흐트-벨베데레 붉은 안료20만~25만 년 전퇴적층연대는 안정, 용도는 다툼
브뤼니켈 석순 구조물17만 6천 500년 전석순과 재성장 방해석연대와 인공성 모두 폭넓게 인정
크라피나 독수리 발톱13만 년 전퇴적층연대는 안정, 장신구 여부는 다툼
로스 아비오네스 조개11만 5천~12만 년 전퇴적층연대는 안정, 용도는 다툼
스페인 세 동굴 벽화6만 4천 800년 전 이전그림 위 방해석 껍질연대 자체가 다툼의 중심
자스칼나야 6 까마귀 뼈4만 년 전 이후퇴적층가공 의도 여부가 다툼
아인호른회레 새김 뼈5만 1천 년 전뼈 직접 측정연대는 안정
코바 포라다다 수리 발가락뼈4만 년 전 안팎퇴적층사피엔스 영향 가능성이 다툼

표에서 읽히는 것은 이렇다. 가장 논쟁적인 자료는 동시에 가장 인상적인 자료, 곧 벽화다. 반대로 연대가 가장 단단한 자료인 브뤼니켈 구조물은 그림이 아니어서 ‘예술’이라 부르기 애매하다. 이 어긋남이 논쟁을 길게 만든다.

‘상징’이라는 말이 문제를 키운다

논쟁이 잘 풀리지 않는 데는 낱말의 문제도 있다. 논의에서 ‘상징 행위’는 적어도 세 가지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킨다.

첫째는 규칙적인 표식을 만드는 행위다. 일정한 간격으로 선을 새기거나 같은 형태를 되풀이해 그리는 것이 여기 해당한다. 브뤼니켈의 고리, 아인호른회레의 갈매기 무늬, 자스칼나야의 규칙적인 칼자국이 이 범주다. 판정 기준은 분명하다. 간격과 형태가 우연으로 설명되지 않을 만큼 규칙적인가를 보면 된다.

둘째는 몸을 꾸미는 행위다. 발톱과 조개와 안료가 여기 해당한다. 판정이 어려워지는 지점은 사용 흔적이 매다는 행위에서 나왔음을 어떻게 확인하느냐다.

셋째는 어떤 표식이 다른 무언가를 대신 가리키는 것, 곧 좁은 의미의 상징이다. 이것은 고고학 자료만으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사피엔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블롬보스 동굴의 7만 3천 년 전 격자무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세 가지를 뭉뚱그리면 논쟁이 엉킨다. 첫째 의미로는 네안데르탈인의 상징 행위가 이미 증명됐다고 보는 연구자도, 셋째 의미로는 증명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서로 다른 것을 두고 같은 낱말로 다투게 된다.

이 논쟁이 바꾸는 것

네안데르탈인의 표식이 인정되면 두 가지 설명이 힘을 잃는다.

하나는 인지 혁명 가설이다. 5만~4만 년 전 사피엔스에게 어떤 신경학적 변화가 일어나 상징을 다루는 능력이 생겼고 그것이 유럽의 동굴벽화로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아프리카 자료가 이 설명의 시점을 10만 년 전으로 끌어내렸고, 네안데르탈 자료는 그 능력이 사피엔스 계통에서만 생긴 것인지를 묻는다. 두 계통이 갈라진 시점을 유전체 분석대로 50만 년 전으로 잡든 최근의 화석 형태 분석대로 130만 년 전으로 잡든, 양쪽이 모두 표식을 남겼다면 그 능력의 뿌리는 분기 이전으로 내려간다.

다른 하나는 대체의 원인을 인지 능력의 차이에서 찾는 설명이다. 네안데르탈인이 4만 년 전 무렵 사라진 이유로는 인구 규모, 기후 변동, 생태적 유연성, 사피엔스와의 경쟁 등 여러 가설이 있다. 상징 능력의 차이를 원인으로 드는 설명은 그 차이가 실재했다는 전제에 기대는데, 그 전제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결론 — 다툼은 능력이 아니라 측정과 낱말에 남아 있다

네안데르탈인이 규칙적인 표식을 남겼는가에 대해서는 자료가 여러 갈래로 모였다. 17만 6천 500년 전 브뤼니켈에서 400개 넘는 석순을 옮겨 고리를 만들었고, 13만 년 전 크라피나에서 독수리 발톱을 잘라 홈을 파고 광을 냈으며, 5만 1천 년 전 아인호른회레에서 뼈를 삶아 갈매기 무늬를 새겼다. 이 세 자료는 연대측정 대상이 퇴적층이거나 물체 자체여서, 벽화 논쟁을 만든 개방계 문제에서 벗어나 있다. 반면 가장 널리 알려진 스페인 세 동굴의 6만 4천 800년 전 연대는 우라늄이 나중에 씻겨 나갔을 가능성을 두고 여덟 해째 다투는 중이다.

그러므로 지금 남은 다툼은 네안데르탈인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느냐가 아니다. 하나는 특정 측정값을 믿을 수 있느냐는 지구화학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까지를 상징이라 부를 것이냐는 정의의 문제다. 앞의 것은 자료로 풀린다. 개방계 거동을 걸러 내는 절차가 표준으로 자리잡고 다른 방법과 교차 검증이 쌓이면 결론이 난다. 뒤의 것은 자료로 풀리지 않는다. 블롬보스의 격자무늬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것과 같은 이유로, 크라피나의 발톱이 무엇을 뜻했는지도 알 길이 없다.

앞으로 확인될 지점은 둘이다. 하나는 벽화 연대의 재측정이다. 호프만 연구진이 2024년에 말트라비에소 자료를 보강했으므로, 같은 지점에서 다른 방법으로 얻은 값이 나오면 논쟁의 무게가 한쪽으로 기운다. 다른 하나는 브뤼니켈 같은 유형의 자료가 더 나오는가다. 깊은 동굴 안의 구조물은 자연 현상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연대측정도 까다롭지 않으므로, 비슷한 사례가 몇 곳 더 확인되면 표식의 문제와 별개로 네안데르탈인의 조직된 행동에 대한 그림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