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장 세 사람을 삼대로 잇는 계보는 서로 다른 지역의 조상 전승을 하나로 묶은 틀이고, 그 틀 안에 들어간 일화들은 각각 다른 시대의 다른 문제에 답하려고 만들어졌다. 인물의 실재를 확인하지 못해도 그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는 본문과 고대 근동 자료로 추적할 수 있다.
창세기를 차례대로 읽으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로 이어지는 한 집안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으며, 야곱의 열두 아들에게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나온다. 이 계보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예배 언어에 그대로 들어와 있어서, 신을 부르는 호칭 자체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그런데 같은 계보를 조금만 넓혀 보면 성격이 달라진다. 야곱의 이름은 이스라엘로 바뀌고, 그의 형 에서는 에돔이 되며, 이복형 이스마엘은 이스마엘 족속의 조상이 되고, 조카뻘인 롯의 두 아들은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된다. 가족 관계도를 끝까지 그리고 나면 요르단강 양쪽에 살던 여러 민족의 관계도가 된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두 가지 질문이 따로 서게 된다. 계보가 언제 어떤 필요에서 지금 모양이 되었는가가 하나이고, 그 계보 안에 들어간 개별 일화가 원래 무엇을 설명하던 이야기였는가가 다른 하나다. 뒤엣것은 앞엣것의 답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고대 서아시아에서 계보는 개인의 혈연을 적는 문서였고, 동시에 집단 사이의 서열과 친소와 영토를 표현하는 문서였다. 두 기능이 한 문서 안에 섞여 있으므로, 어떤 계보를 읽을 때는 이름 하나하나가 개인인지 집단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창세기의 족장 계보에서는 집단 쪽 성격이 뚜렷하다.
창세기 25장 23절에서 리브가가 받은 신탁은 뱃속의 쌍둥이를 두고 "두 민족"과 "두 백성"이라고 부른다. 히브리어 본문은 고임(goyim)과 레움밈(le'ummim)을 쓰는데, 둘 다 민족을 가리키는 낱말이다. 같은 절은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로 끝난다. 이 문장을 개인의 형제 관계로 읽으면 에서가 야곱의 하인이 되었다는 뜻이 되어야 하는데, 창세기 어디에도 그런 장면은 없다. 반면 에돔이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던 기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으면 문장이 그대로 성립한다. 사무엘하 8장 14절은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었다고 기록하고, 열왕기하 8장 20절은 여호람 때 에돔이 유다에 반기를 들어 독립했다고 기록한다.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이름을 바꾸는 장면도 같은 성격이다. 마소라 본문 기준 창세기 32장 29절에서 상대는 "네 이름을 다시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개명 장면이지만 결과로 나오는 것은 민족의 이름이다. 창세기 36장 1절은 아예 "에서 곧 에돔"이라고 두 이름을 붙여 적는다. 창세기 19장 37절과 38절은 롯의 두 딸이 낳은 아들의 이름을 각각 모압과 벤암미라고 적고, 이들이 모압 사람과 암몬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고 밝힌다. 이야기 자체가 근친 성관계라는 불명예스러운 기원을 두 이웃 민족에게 붙이고 있으므로, 이 대목은 이웃 민족의 기원을 평가하는 서술이다.
같은 방식이 더 노골적으로 쓰인 자리는 창세기 9장 20절부터 27절까지다. 노아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은 함인데 저주를 받는 것은 함의 아들 가나안이고, 저주의 내용은 가나안이 형제들의 종이 된다는 선언이다. 개인의 잘잘못과 처벌 대상이 어긋나는 이 어색함은, 이야기의 목적이 함이라는 개인을 심판하는 데 있지 않고 가나안 사람의 종속을 설명하는 데 있다고 보면 사라진다.
야곱의 아들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장자 르우벤은 창세기 35장 22절의 사건 때문에 49장 3절과 4절에서 자격을 잃고, 주도권은 유다와 요셉에게 넘어간다. 유다는 남왕국의 중심 지파이고,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북왕국의 중심 지파다. 형제들 사이의 갈등과 화해라는 서사가 다루는 것은 두 왕국 지역의 관계다. 르우벤 지파는 요단강 동쪽에 있다가 일찍 세력을 잃었으므로, 장자가 자격을 잃는다는 설정은 그 사실과 맞물린다.
여기까지는 어느 진영에서도 크게 다투지 않는다. 다툼은 그다음에서 시작된다. 이 계보가 옛 기억을 담은 것인가, 아니면 훨씬 나중에 만들어진 것인가.
본문에 시대착오가 있으면 그 본문이 쓰인 시기의 하한을 잡을 수 있다. 시대착오란 이야기의 배경 시대에는 아직 없던 것이 이야기 안에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는 현상이다. 조선 초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 주인공이 감자를 먹는 장면이 나오면, 그 소설은 감자가 조선에 들어온 19세기 이후에 쓰였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야기가 통째로 지어낸 것이라는 증거는 아니지만, 글쓴이가 자기 시대의 물건을 배경 시대에 옮겨 놓았다는 증거는 된다.
성서 본문의 숫자를 그대로 계산하면 족장들은 기원전 2천년기 전반 사람이다. 열왕기상 6장 1절은 출애굽에서 솔로몬 성전 착공까지 480년이라 하고, 출애굽기 12장 40절은 이집트 체류 기간을 430년이라 한다. 솔로몬 4년을 기원전 967년 무렵으로 잡으면 야곱 가족이 이집트로 내려간 때는 기원전 1870년대가 된다. 이 연대를 기준으로 놓고 본문을 읽으면 맞지 않는 것이 여럿 나온다.
낙타가 그중 하나다. 리브가를 데려오는 장면(창 24장), 야곱의 재산 목록(창 30장 43절), 요셉을 사 간 상인들(창 37장 25절)에 낙타가 짐 나르는 가축으로 자연스럽게 나온다. 리다르 사피르헨과 에레즈 벤요세프는 2013년 학술지 『Tel Aviv』 40권 277~285쪽에 실린 논문에서,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을 따라 뻗은 아라바 계곡의 구리 제련 유적에서 나온 짐승 뼈를 방사성탄소연대측정으로 분석했다. 이 계곡은 낙타가 아라비아반도에서 남부 레반트로 들어올 때 반드시 지나야 하는 통로이며, 기원전 14세기부터 9세기 말까지 구리를 생산한 곳이다. 두 사람은 가축화된 낙타 뼈가 기원전 10세기 마지막 3분의 1 이후의 지층에서만 유의미하게 나타난다고 보고했다. 족장들이 살았다는 시기보다 900년 남짓 뒤다.
블레셋 사람도 그렇다. 창세기 21장과 26장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은 그랄의 블레셋 왕 아비멜렉과 조약을 맺는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이 가나안 남부 해안에 정착한 것은 기원전 12세기 초, 이집트 신왕국이 이른바 바다 민족과 충돌한 뒤의 일이다. 아브라함의 출신지로 나오는 "갈대아 우르"(창 11장 31절)의 갈대아인도 마찬가지다. 갈대아는 바빌로니아 남부에 자리 잡은 아람계 집단의 이름인데, 아시리아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이 기원전 9세기다.
요셉 이야기의 이집트 세부 사항은 더 늦은 시기를 가리킨다. 이집트학자 도널드 레드퍼드는 1970년 브릴 출판사에서 낸 『A Study of the Biblical Story of Joseph』에서, 창세기 37장부터 50장까지에 나오는 이집트 이름들을 이집트 문서에 실제로 나타나는 이름 형태와 대조했다. 요셉이 받은 이름 사브낫바네아, 그의 아내 아스낫, 장인 보디베라가 모두 후기 왕조 시대, 곧 제26왕조 이후(기원전 7세기 중반부터 5세기 말까지)에 흔한 형태이며 신왕국 시기에는 드물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보디베라는 "라가 준 자"라는 뜻인데, 이런 구성의 이름이 비문에 확인되는 것은 기원전 1000년 이후다.
앞에 정리한 자료를 어떻게 다룰지에서 견해가 나뉜다. 20세기 중반까지 미국 고고학자 윌리엄 올브라이트와 그를 따르던 학자들은, 기원전 2천년기 메소포타미아 문서에 나오는 관습이 족장 이야기의 관습과 닮았다는 점을 들어 "족장 시대"가 실재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라크 북부 누지에서 나온 점토판이 근거로 쓰였다. 상속자가 없는 사람이 종을 양자로 삼는 관습, 아내를 누이라고 칭하는 관습 같은 것이 창세기와 겹친다는 것이었다. 토머스 톰슨이 1974년에 낸 『The Historicity of the Patriarchal Narratives』와 존 반 세터스가 1975년에 낸 『Abraham in History and Tradition』이 이 논거를 무너뜨렸다. 두 사람이 보인 것은 두 가지다. 제시된 병행 사례 상당수는 고대 근동 법 문서 어느 시기에나 나오는 흔한 조항이고, 나머지는 누지에만 있고 창세기에는 실제로 없는 것을 있다고 읽은 결과였다. 톰슨은 고고학이 족장 전승의 어떤 사건도 역사로 입증하지 못했고 개연성조차 보여 주지 못했다고 적었다.
반대편 논거도 남아 있다. 이집트학자 케네스 키친은 2003년 어드먼스 출판사에서 낸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344~345쪽에서, 요셉이 은 20세겔에 팔렸다는 창세기 37장 28절의 수치를 근거로 들었다. 메소포타미아 문서에서 노예 한 사람 값은 우르 제3왕조 시기(기원전 22세기부터 21세기까지)에 10세겔 정도였다가, 기원전 18세기와 17세기에 20세겔 안팎이 되고, 기원전 15세기와 14세기에는 30세겔로 올라간다. 창세기의 수치가 기원전 18세기 시세와 맞으므로 그 시기의 기억이 보존된 것이라는 논증이다.
이 논증이 성립하려면 조용히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이야기를 적은 사람이 1000년 넘게 앞선 시대의 시세를 알고 썼다는 전제다. 그런데 앞서 본 대로 같은 이야기의 이집트 이름들은 자기 시대의 형태를 그대로 쓰고 있다. 한 문서 안에서 이름은 기원전 7세기 것을 쓰고 가격은 기원전 18세기 것을 썼다고 보려면, 그렇게 될 만한 경로를 따로 대야 한다. 노예 가격 20세겔이 오랫동안 관용적으로 쓰인 액수일 가능성도 남는다. 출애굽기 21장 32절은 소가 종을 받아 죽였을 때 주인에게 은 30세겔을 물리라고 규정하는데, 이 액수는 법조문에 굳어진 값이다. 키친의 논거는 하나의 수치가 특정 시기를 가리킨다는 주장이고, 반대편은 같은 문서 안 여러 요소가 서로 다른 시기를 가리킨다는 주장이다. 수치 하나로 문서 전체의 연대를 정하기는 어렵다.
세 족장은 각기 다른 지역에 결부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과 마므레, 곧 유다 남부 산지에 붙어 있다. 그가 사서 무덤으로 삼는 막벨라 굴도 헤브론에 있다. 이삭은 브엘세바와 그랄, 곧 더 남쪽 네게브 지역에 붙어 있다. 야곱은 벧엘과 세겜, 그리고 요단강 동쪽 길르앗과 마하나임에 붙어 있는데, 이 지명들은 모두 북왕국 이스라엘의 영역이다.
이스라엘 고고학자 이스라엘 핑켈슈타인과 스위스 성서학자 토마스 뢰머는 2014년 학술지 『Hebrew Bible and Ancient Israel』 3권 1호 3~23쪽에 실린 공동 논문에서, 아브라함 전승이 철기 시대 후반 남부 산지 주민의 시조 전승이며 마므레 성소에서 전해졌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같은 해 두 사람은 학술지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에 야곱 전승을 다룬 논문을 따로 실었고, 핑켈슈타인은 학술지 『Tel Aviv』 41권 95~125쪽에 야곱 이야기와 이스라엘 형성을 다룬 논문을 실었다. 두 갈래 전승이 합쳐진 계기로 이들이 지목한 것은 기원전 722년 북왕국이 아시리아에 멸망한 사건이다. 북쪽 주민이 남쪽으로 유입되고 유다가 북쪽 영토에 대한 연고를 주장하게 되면서, 북쪽의 조상 야곱을 남쪽의 조상 아브라함의 손자로 배치할 실익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이 설명은 계보의 서열과 맞는다. 남쪽 인물인 아브라함이 가장 윗세대에 서고, 북쪽 인물인 야곱이 그 아래에 놓인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지만 그 이름의 정당성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에서 나온다. 다만 합쳐진 시점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스위스 학자 알베르 드 퓌리는 야곱 이야기가 오래된 전승을 보존하며 첫 문서화는 기원전 8세기에 이루어졌다고 보았고, 이스라엘 역사학자 나다브 나아만은 야곱 이야기 자체가 바빌론 포로기에 아브라함·이삭 이야기와 함께 작성되었다고 보았다. 기원전 8세기부터 6세기 사이라는 폭이 현재 논의의 범위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이스라엘 초기 문헌에서 아브라함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원전 8세기 북왕국 예언자 호세아는 12장에서 야곱 이야기를 자세히 언급한다. 마소라 본문 기준 12장 4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בַּבֶּטֶן עָקַב אֶת־אָחִיו וּבְאוֹנוֹ שָׂרָה אֶת־אֱלֹהִים׃
babbeten ʿaqav ʾet-ʾaḥiw uvʾono sara ʾet-ʾelohim
모태에서 그는 제 형의 발꿈치를 잡았고, 기력이 왕성할 때에는 신과 겨루었다.
호세아 12장 4절(한국어 성경 12장 3절). 히브리어 본문은 마소라 전승판(Miqra according to the Masorah) 전자 교정본.
발꿈치를 뜻하는 아케브(ʿaqev)와 야곱(Yaʿaqov)이 같은 자음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이 문장은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는 말놀이로 읽힌다. 호세아는 이어지는 절들에서 야곱이 아람으로 도망한 일과 아내를 얻으려고 일한 일까지 언급한다. 그런데 같은 장에 아브라함은 나오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기원을 고백하는 오래된 문구로 꼽히는 신명기 26장 5절도 마찬가지다.
אֲרַמִּי אֹבֵד אָבִי וַיֵּרֶד מִצְרַיְמָה וַיָּגָר שָׁם בִּמְתֵי מְעָט
ʾarammi ʾoved ʾavi wayyered miṣraymah wayyagor sham bimte mʿaṭ
내 아버지는 떠돌던 아람 사람이었고, 이집트로 내려가 적은 수로 그곳에 머물렀다.
신명기 26장 5절. 히브리어 본문은 마소라 전승판 전자 교정본. 오베드(ʾoved)는 '길을 잃은', '방랑하는', '망해 가는' 가운데 어느 쪽으로도 옮길 수 있으며, 아람으로 도망했다가 돌아온 야곱을 가리킨다는 데에는 이견이 적다.
이 고백에도 아브라함은 없다. 아브라함이 백성 전체의 조상으로 분명히 불리는 본문은 포로기 문헌에서 나타난다. 에스겔 33장 24절은 유다 땅에 남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은 혼자였어도 이 땅을 차지했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한다고 전하고, 이사야 51장 2절은 포로가 된 백성에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바라보라고 권한다. 두 본문 모두 기원전 6세기의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야곱 전승이 먼저 있었고 아브라함이 계보의 맨 앞에 선 것은 나중이라는 추론이 여기서 나온다.
신의 칭호에서도 같은 분리가 보인다. 창세기 31장 42절과 53절은 신을 "이삭이 두려워하는 이"(파하드 이츠하크)라고 부르고, 49장 24절은 "야곱의 전능자"(아비르 야아콥)라고 부른다. 독일 학자 알브레히트 알트는 1929년 슈투트가르트 콜함머 출판사에서 낸 『Der Gott der Väter』에서, 이런 칭호들이 원래 각 씨족이 자기 조상의 이름을 붙여 섬기던 별개의 신을 가리켰고 나중에 야훼와 하나로 합쳐졌다는 가설을 세웠다. 알트의 가설은 세부에서 비판을 많이 받았고, 특히 마티아스 쾨케르트가 1988년에 낸 『Vätergott und Väterverheißungen』이 알트의 논증 방식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럼에도 이 칭호들이 각기 다른 전승층에서 왔다는 관찰 자체는 남아 있다.
이삭이 세 족장 가운데 가장 희미하다는 점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이삭이 주인공인 장은 창세기 26장 하나뿐이고, 그 내용은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일, 그랄 왕 아비멜렉과의 갈등, 우물 분쟁, 브엘세바 맹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아브라함 이야기(창 12장, 20장, 21장)와 거의 같다. 독자적 전승이 적은 인물을 아브라함과 야곱 사이의 중간 세대로 세웠다는 해석이 여기서 나온다.
족장 전승과 실제 역사를 잇는 시도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널리 퍼진 것이 힉소스 가설이다. 힉소스는 이집트어로 "외국 땅의 통치자들"이라는 뜻의 칭호에서 온 이름이며, 레반트 출신 셈어 사용 집단을 가리킨다. 이들은 나일강 삼각주 동부의 아바리스, 곧 오늘날의 텔 엘다바 유적을 수도로 삼아 이집트 북부를 다스렸다. 이것이 이집트 제15왕조이고, 지배 기간은 대략 기원전 1638년부터 1530년까지로 추정된다. 야곱 가족이 정착했다는 고센 땅이 삼각주 동부이고, 가나안 출신 셈족인 요셉이 이집트 재상이 된다는 설정이 셈계 왕조 아래에서 더 그럴듯해 보이므로, 두 이야기를 겹쳐 읽으려는 시도가 계속 나왔다.
이 겹쳐 읽기의 출발점은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다. 요세푸스는 『아피온 반박』에서 기원전 3세기 이집트 사제 마네토의 저술을 인용한다. 그 인용문에 따르면 "목자"라고도 불린 이 왕들은 아바리스에서 포위되었다가 합의를 맺고 가족과 재산을 거느린 채 광야를 지나 시리아로 떠났으며, 지금의 유대 땅에 예루살렘을 세웠다. 요세푸스는 이 목자들이 곧 자기 민족의 조상이라고 단언한다(『아피온 반박』 1권 103절). 그러나 그가 이 글을 쓴 목적은 유대 민족의 역사가 그리스인보다 오래되었음을 증명하는 변론이었다. 마네토의 원본은 전하지 않고 요세푸스의 선택적 인용으로만 남아 있으며, 마네토가 히브리인이나 유대인을 언급했는지 자체가 확인되지 않는다.
두 번째 근거는 이름이다. 이집트와 가나안 여러 곳에서 "야쿱하르"라는 이름을 새긴 풍뎅이 모양 인장이 나왔다. 1969년 하이파 인근 쉬크모나에서 발견된 인장은 기원전 1730년 이전으로 추정되며, 야쿱은 야곱의 셈어 형태를 이집트 문자로 옮긴 형태다. 이스라엘 고고학자 아하론 켐핀스키는 1988년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4권 1호에 실은 글에서 이 인물을 기원전 18세기 가나안의 왕으로 보고, 약 1세기 뒤 이집트를 다스린 같은 이름의 힉소스 왕의 조상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다만 켐핀스키 본인도 이 야곱이 성서의 야곱과 같은 인물은 아니라고 밝혔다. 야쿱하르가 어느 왕조에 속했는지, 제14왕조인지 제15왕조인지, 힉소스 왕의 봉신이었는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야곱엘" 형태의 이름은 기원전 2천년기 전반 서아시아 문서에 흔한 이름 유형이므로, 이름이 같다는 사실만으로는 동일 인물이라는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동일시를 가로막는 것은 연대와 서사 구조다. 앞 절에서 본 성서 내부 연대를 그대로 쓰면 야곱이 이집트로 내려간 때는 기원전 1870년대로, 힉소스 왕조가 시작되기 약 240년 전이다. 반대로 출애굽기 1장 11절에 나오는 라암셋 성을 기준으로 삼으면 출애굽은 람세스 2세 시대인 기원전 13세기가 되어, 힉소스 축출보다 250년 안팎 늦어진다. 힉소스와 연결하려면 성서가 제시한 연대 수치를 버려야 하는데, 그 수치를 버리는 순간 성서를 역사 기록으로 읽는다는 전제 자체가 약해진다. 힉소스 가설은 성서의 역사성을 옹호하려는 동기에서 자주 제시되지만, 성립하려면 성서의 연대를 포기해야 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서사 구조는 더 어긋난다. 힉소스는 이집트를 다스린 지배층이었고, 테베의 왕 아흐모세 1세에게 군사적으로 패해 쫓겨났다. 창세기의 야곱 가족은 기근을 피해 온 이주민이며 파라오의 호의에 기대어 산다. 요셉도 파라오를 섬기는 관리다. 출애굽기는 노예가 된 집단이 도망하는 이야기다. 지배층이 전쟁에 져서 추방된 사건과 피지배층이 탈출한 사건은 방향이 반대다.
힉소스가 어떤 집단이었는지에 대한 그림도 최근 20년 사이에 바뀌었다. 크리스 스탠티스를 비롯한 연구진은 2020년 학술지 『PLoS ONE』 15권 7호에 실은 논문에서, 아바리스 유적에 묻힌 75명의 치아 법랑질에 남은 스트론튬 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했다. 스트론튬 동위원소 분석이란, 어린 시절 마신 물과 먹은 음식에 든 지역별 지질 성분이 치아에 고정되어 남는 성질을 이용해 그 사람이 자란 지역을 추정하는 방법이다. 분석 결과 주민 상당수가 여러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었고, 이 양상은 힉소스 왕조 이전과 재위 기간 모두에서 나타났다. 오히려 왕조 기간에는 삼각주에서 태어난 사람의 비율이 더 높았다. 연구진은 여러 세대 그곳에 살던 집단이 권력을 잡은 것으로 해석했고, 이주자 가운데 남성보다 여성이 많다는 점도 무력 침입 모형과 맞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 결과가 뜻하는 바는 힉소스 가설에 양면으로 작용한다. 한편으로는 "이집트를 정복한 외래 민족"이라는 그림이 흔들리므로, 그 그림 위에 세워진 성서와의 연결도 함께 흔들린다. 다른 한편으로는 레반트 사람들이 삼각주 동부로 이주해 여러 세대 살다가 떠나는 흐름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므로, 개인의 동일시가 아닌 다른 종류의 연결 가능성이 열린다.
현재 학계에서 진지하게 논의되는 형태가 이 두 번째 쪽이다. 도널드 레드퍼드는 1992년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에서 낸 『Egypt, Canaan, and Israel in Ancient Times』에서, 출애굽 전승이 가나안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던 힉소스 축출의 기억을 이스라엘이 자기 역사로 받아들인 결과일 수 있다고 보았다. 독일 이집트학자 얀 아스만은 1997년 하버드대학교 출판부에서 낸 『Moses the Egyptian』 39~42쪽에서 같은 방향의 견해를 제시했다. 로널드 헨델은 2001년 학술지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20권 601~622쪽에 실은 논문에서, 출애굽 전승이 여러 기억이 겹쳐 형성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집트 제국이 수백 년 동안 가나안을 지배한 경험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가설들은 야곱과 요셉이라는 인물의 실재를 주장하지 않는다. 주장하는 것은 이야기가 반영한 상황의 종류다. 그러므로 "야곱과 요셉이 힉소스였다"는 명제와 "출애굽 전승의 배경에 힉소스 시대의 경험이 있다"는 명제를 구분하지 않으면 논의가 엉킨다. 앞엣것은 연대와 서사 구조 때문에 학계에서 거의 지지받지 못하고, 뒤엣것은 증명되지는 않았으나 여러 학자가 지지하는 가설이다.
계보의 형성 시기를 다루는 논의는 여기까지다. 그 계보 안에 들어간 개별 일화로 넘어가면 질문이 바뀐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은 창세기 안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대목이고, 부자 관계를 소재로 삼은 일화 가운데 해석이 가장 많이 쌓인 대목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를 다룰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본문에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지를 세어 보는 일이다.
명령은 이렇게 시작한다.
קַח־נָא אֶת־בִּנְךָ אֶת־יְחִידְךָ אֲשֶׁר־אָהַבְתָּ אֶת־יִצְחָק וְלֶךְ־לְךָ אֶל־אֶרֶץ הַמֹּרִיָּה וְהַעֲלֵהוּ שָׁם לְעֹלָה עַל אַחַד הֶהָרִים אֲשֶׁר אֹמַר אֵלֶיךָ׃
qaḥ-naʾ ʾet-binka ʾet-yeḥideka ʾasher-ʾahavta ʾet-yiṣḥaq wulek-leka ʾel-ʾereṣ hammoriyya wuhaʿalehu sham luʿola ʿal ʾaḥad hehariim ʾasher ʾomar ʾeleka
네 아들, 네 하나뿐인 자, 네가 사랑하는 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일러 줄 산들 가운데 하나에서 그를 번제로 올려 드려라.
창세기 22장 2절. 히브리어 본문은 마소라 전승판 전자 교정본.
이 한 절에 확인해 둘 것이 셋 있다. 첫째는 "가라"로 옮긴 레크 레카(lek-leka)라는 표현이다. 이 형태는 히브리어 성경 전체에서 두 번만 나오는데, 하나가 여기이고 다른 하나가 창세기 12장 1절, 곧 아브라함이 처음 부름을 받는 장면이다. 마소라 본문 전체를 검색하면 다른 용례가 나오지 않는다. 두 명령은 구조도 같다. 12장에서는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고, 22장에서는 아들을 데리고 "내가 네게 일러 줄 산"으로 가라 한다. 아브라함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같은 문장 형태로 묶여 있다.
둘째는 모리야라는 지명이다. 역대하 3장 1절은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야 산"에 성전을 지었다고 적는다. 이 때문에 유대교 전승은 이삭이 묶인 자리와 성전 터를 같은 곳으로 본다. 요세푸스도 『유대 고대사』 1권 226절에서 아브라함이 간 산이 나중에 다윗이 성전을 세운 곳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창세기 본문만으로는 모리야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기원전 3세기에서 2세기 사이에 번역된 그리스어 칠십인역은 이 지명을 아예 지명으로 옮기지 않았다.
Λάβε τὸν υἱόν σου τὸν ἀγαπητὸν ὃν ἠγάπησας, τὸν Ἰσαάκ, καὶ πορεύθητι εἰς τὴν γῆν τὴν ὑψηλήν, καὶ ἀνένεγκον αὐτὸν ἐκεῖ εἰς ὁλοκάρπωσιν
labe ton huion sou ton agapēton hon ēgapēsas, ton Isaak, kai poreuthēti eis tēn gēn tēn hypsēlēn, kai anenenkon auton ekei eis holokarpōsin
네 아들, 네가 사랑한 그 사랑하는 자 이삭을 데리고 높은 땅으로 가라. 그리고 거기서 그를 번제로 올려 드려라.
칠십인역 창세기 22장 2절. 스웨티(H. B. Swete) 교정본 『The Old Testament in Greek according to the Septuagint』 제1권.
번역자는 히브리어 모리야를 고유명사로 읽지 않고 "높은"이라는 뜻의 형용사로 풀어 "높은 땅"이라고 옮겼다. 예루살렘과의 동일시가 이 번역자에게는 자명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성전 터와 이 산을 잇는 것은 역대하 단계에서, 곧 기원전 4세기 무렵의 해석이다.
셋째가 이 글의 나머지를 지탱하는 낱말이다.
본문에 없는 것도 확인해야 한다. 창세기 22장 13절에서 아브라함은 숫양을 발견해 아들 대신 바치는데, 이 대체를 신이 명령하는 장면이 없다. 아브라함이 스스로 판단해 행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 어디에도 인신제사를 금지하거나 비난하는 말이 없다. 12절에서 천사는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하면서 그 이유를 "네가 나를 두려워하는 줄 이제 내가 알았다"고 밝힌다. 명령의 정당성을 다루지 않고 시험이 끝났음을 알린다.
원인론 공식이 붙는 자리도 눈여겨볼 만하다. 창세기에는 어떤 관습이나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그렇게 부른다"는 식으로 마무리하는 대목이 많다. 22장에도 그런 공식이 나오는데, 붙는 대상은 지명이다.
וַיִּקְרָא אַבְרָהָם שֵׁם־הַמָּקוֹם הַהוּא יְהוָה יִרְאֶה אֲשֶׁר יֵאָמֵר הַיּוֹם בְּהַר יְהוָה יֵרָאֶה׃
wayyiqraʾ ʾavraham shem-hammaqom hahuʾ YHWH yirʾe ʾasher yeʾamer hayyom buhar YHWH yeraʾe
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야훼께서 보신다"라 불렀다. 그래서 오늘날 "야훼의 산에서 그가 보이신다"라고 말한다.
창세기 22장 14절. 히브리어 본문은 마소라 전승판 전자 교정본. 마지막 어형은 능동으로도 수동으로도 읽을 수 있어 "보신다"와 "보이신다" 사이에서 번역이 나뉜다.
설명되는 것은 장소의 이름이지 제사 방식의 변경이 아니다. "그가 아들 대신 숫양을 바쳤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그렇게 한다"는 문장은 본문에 없다. 후대 율법도 장자 대속 규정을 설명할 때 이 사건을 근거로 들지 않는다. 유월절 어린양의 경우와 대조되는 지점이다. 출애굽기 12장은 유월절 규정을 설명하면서 그 기원이 된 사건을 명시하는데, 장자 대속 규정에는 그런 연결이 없다.
본문의 구성도 한 덩어리가 아니다. 15절부터 18절까지는 천사가 두 번째로 하늘에서 불러 맹세와 축복을 덧붙이는 대목인데, 존 스키너는 1910년 T&T 클라크에서 낸 국제비평주석 창세기 편 332쪽에서 이 단락을 후대 편집자의 첨가로 판정했다. 근거로 든 것은 앞 이야기와의 연결이 느슨하다는 점, 신의 이름 사용 방식이 앞뒤로 어긋난다는 점, 표현에 독창성이 없다는 점이다. 19절에서 브엘세바로 돌아가는 것이 원래 이야기의 끝이다. 그렇다면 "네가 네 아들, 네 하나뿐인 자를 아끼지 않았으므로"라는 보상의 선언(16절)은 나중에 덧붙은 해석이라는 뜻이 된다. 뒤에서 보겠지만 신약이 붙잡은 표현이 바로 이 덧붙은 대목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려면 그것이 전제하는 관행을 알아야 한다. 자녀를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행위는 구약 본문 여러 곳에 나오며, 이스라엘 바깥에서만 벌어진 일로 그려지지 않는다.
열왕기하 3장 27절은 이스라엘과 유다 연합군에 포위된 모압 왕 메사가 왕위를 이을 맏아들을 성벽 위에서 번제로 드렸고, 그 뒤 이스라엘에 큰 진노가 임해 군대가 물러갔다고 적는다. 미가 6장 7절은 예배자가 스스로 던지는 물음의 형태로 같은 관행을 언급한다.
הַאֶתֵּן בְּכוֹרִי פִּשְׁעִי פְּרִי בִטְנִי חַטַּאת נַפְשִׁי׃
haʾetten bukori pishʿi puri viṭni ḥaṭṭaʾt nafshi
내 맏아들을 내 허물의 값으로, 내 몸의 열매를 내 목숨의 죗값으로 드려야 하는가.
미가 6장 7절. 히브리어 본문은 마소라 전승판 전자 교정본.
열왕기하 16장 3절과 21장 6절은 유다 왕 아하스와 므낫세가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다고 기록한다. 예레미야 7장 31절은 예루살렘 남쪽 힌놈 골짜기의 도벳에서 자녀를 불사르는 일을 두고, 야훼가 명하지도 마음에 두지도 않은 일이라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음을 전제한다. 사사기 11장에서는 입다가 서원대로 딸을 처리하는데, 본문은 그 행위를 비난하지 않는다.
더 까다로운 것은 율법 자체다. 출애굽기의 이른바 계약 법전에 다음 규정이 있다.
מְלֵאָתְךָ וְדִמְעֲךָ לֹא תְאַחֵר בְּכוֹר בָּנֶיךָ תִּתֶּן־לִי׃ כֵּן־תַּעֲשֶׂה לְשֹׁרְךָ לְצֹאנֶךָ שִׁבְעַת יָמִים יִהְיֶה עִם־אִמּוֹ בַּיּוֹם הַשְּׁמִינִי תִּתְּנוֹ־לִי׃
muleʾatka wudimʿaka loʾ tuʾaḥer bukor baneka titten-li. ken-taʿase lushorka luṣoʾneka shivʿat yamim yihye ʿim-ʾimmo bayyom hashshumini tittuno-li
네 곡식과 즙을 드리는 일을 미루지 말라. 네 아들들 가운데 맏이를 내게 줄지니라. 네 소와 양에게도 그와 같이 하라. 이레 동안 어미와 함께 두었다가 여드레째 되는 날 내게 줄지니라.
출애굽기 22장 28절과 29절(한국어 성경 22장 29절과 30절). 히브리어 본문은 마소라 전승판 전자 교정본.
맏아들과 맏가축을 한 문장 안에서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라고 지시한다. 다른 본문은 이 요구를 짐승으로 대신 갚는 길을 연다. 출애굽기 13장 13절과 34장 20절은 나귀의 첫 새끼를 양으로 대속하고 사람의 맏아들도 반드시 대속하라고 규정한다. 대속으로 옮긴 낱말 파다(padah)는 값을 치르고 되찾는다는 뜻이다. 요구 자체는 유지하면서 이행 방식만 바꾼 구조다.
에스겔에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대목이 있다.
וְגַם־אֲנִי נָתַתִּי לָהֶם חֻקִּים לֹא טוֹבִים וּמִשְׁפָּטִים לֹא יִחְיוּ בָּהֶם׃ וָאֲטַמֵּא אוֹתָם בְּמַתְּנוֹתָם בְּהַעֲבִיר כָּל־פֶּטֶר רָחַם
wugam-ʾani natatti lahem ḥuqqim loʾ ṭovim umishpaṭim loʾ yiḥyu bahem. waʾaṭammeʾ ʾotam bumattunotam buhaʿavir kol-peṭer raḥam
나 또한 그들에게 좋지 않은 규례와 그것으로는 살 수 없는 법도를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모든 첫 태생을 넘겨 드리게 하여 그들의 예물로 그들을 더럽혔다.
에스겔 20장 25절과 26절. 히브리어 본문은 마소라 전승판 전자 교정본.
예언자는 첫 태생을 넘겨 드리라는 규례가 신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 규례가 좋지 않은 것이었고 백성을 더럽히려는 목적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설명 방식 자체가, 그런 규례가 실제로 통용되었고 그 사실을 어떻게든 해명해야 했다는 정황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 바깥의 자료로 눈을 돌리면 논쟁이 있다. 지중해 서부의 페니키아계 도시, 특히 카르타고에서는 토페트라고 불리는 야외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화장한 어린아이의 뼈를 담은 항아리가 대량으로 나왔다. 그리스와 로마 저술가들은 카르타고인이 아이를 제물로 바쳤다고 기록했다. 20세기 후반 들어 이 기록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연구자들이 나왔다. 제프리 슈워츠를 비롯한 연구진은 2012년 학술지 『Antiquity』 86권에 실은 논문에서, 화장된 유해의 연령 추정 방식에 문제가 있으며 이 유적은 사산아와 신생아 사망자를 묻은 묘지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론도 같은 학술지에 실렸다. 퍼트리샤 스미스를 비롯한 연구진은 2013년 『Antiquity』 87권 1191~1199쪽에서 사망 연령 분포가 자연 사망률과 맞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제사 해석을 유지했고, 파올로 셀라와 조지핀 퀸을 비롯한 연구진은 같은 호 1199~1207쪽에서 유해 분석에서 한발 물러나 유적의 배치와 봉헌 비문 같은 다른 증거를 근거로 같은 결론을 냈다. 이 논쟁은 화장으로 변형된 유해에서 사망 연령을 어떻게 추정하느냐에 걸려 있으며, 표본의 연령 추정 방법 자체가 쟁점이므로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 논쟁의 결과가 어느 쪽으로 나든 구약 본문의 증언은 그대로 남는다. 금지 명령이 반복된다는 사실은 그 관행이 통제 대상이었음을 뜻하고, 예언자들이 그것을 해명해야 했다는 사실은 그것이 야훼 종교 바깥의 일로만 치부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이 대목에서 가장 널리 퍼진 해석은 창세기 22장을 인신제사 금지를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로 읽는다. 신이 일부러 명령을 내려 아브라함을 시험한 뒤 마지막 순간에 멈춰 세움으로써, 사람의 피를 받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는 설명이다. 주일학교 교재와 대중 종교사 서적과 백과사전에 거의 예외 없이 실려 있고, 성서학 문헌에서도 여전히 발견된다. 이 설명은 보통 19세기 독일 성서학의 성과로 소개된다.
그런데 이 해석을 만들었다고 지목되는 학자들의 책을 펴 보면 다른 문장이 나온다. 헤르만 궁켈은 1902년에 낸 창세기 주석 241쪽부터 242쪽까지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궁켈은 먼저 인신제사가 고대 이스라엘과 그 이웃들에게 잘 알려진 관행이었음을 모압, 암몬, 아랍, 아람, 페니키아의 사례를 들어 정리한 뒤, 창세기 22장의 성격을 이렇게 규정한다.
Gen 22 ist ursprünglich die Sage vom Kinderopfer zu Jeruʾel. Sie erzählt, wie die Gottheit an dieser Stätte eigentlich den erstgeborenen Sohn zum Opfer gewollt, wie sie aber für den Knaben einen Widder als Ersatz genommen hat. … Von Polemik gegen dies Opfer hält sich die Sage ganz fern; sie ist also vorprophetisch.
창세기 22장은 본래 예루엘에서 행하던 자녀 제사에 관한 전승이다. 이 전승은 그 장소에서 신이 원래 맏아들을 제물로 요구했으나 소년 대신 숫양을 받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 이 전승은 그 제사에 대한 논박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예언자 이전의 것이다.
헤르만 궁켈, 『Genesis, übersetzt und erklärt』 제2판(괴팅겐, 1902), 242쪽. 예루엘은 궁켈이 본문의 여러 표현에서 복원한 성소 이름이며 역대하 20장 16절에 나온다.
궁켈은 이 이야기를 성소의 제의 전승으로 보았고, 그 전승이 숫양 대체를 설명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본문이 인신제사를 논박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한다. 논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궁켈에게는 이 전승이 예언자 시대 이전의 것임을 보여 주는 근거였다. 제사를 비난하는 목소리는 예레미야와 에스겔 시대에 나오는데, 이 이야기에는 그 목소리가 없다는 논증이다.
존 스키너도 같은 판단을 적었다. 스키너는 앞에서 언급한 국제비평주석 창세기 편에서 이 이야기의 해석을 두 갈래로 정리한다. 하나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으로 읽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제의 전승으로 읽는 방식이다. 앞엣것을 소개한 뒤 스키너는 이렇게 잇는다.
The story contains no word in repudiation of human sacrifice, nor anything to enforce what must be supposed to be the main lesson.
이 이야기에는 인신제사를 거부하는 말이 한 마디도 없고, 주된 교훈이라고 전제되는 것을 뒷받침하는 내용도 전혀 없다.
존 스키너,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Genesis』(에든버러: T&T 클라크, 1910), 332쪽. 인용한 문장에 이어 스키너는 그 주된 교훈이 무엇으로 전제되는지를 밝힌다. 그런 제사가 아브라함 후손의 종교에 자리를 얻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스키너는 그 뒤 궁켈의 제의 전승 해석을 받아들이고, 지중해권의 병행 사례를 덧붙인다. 하나는 에우세비오스가 『복음의 준비』 1권 10장에 인용한 비블로스의 필론의 페니키아 신화다. 그 이야기에서 페니키아 사람들이 엘루스라 부르는 크로노스는 아노브레트라는 님프에게서 외아들을 얻었고, 그 아들의 이름을 이에우드라 불렀으며, 전쟁의 위기가 닥치자 아들에게 왕의 옷을 입히고 제단을 세워 제물로 바쳤다. 궁켈은 이 이야기가 창세기 22장의 원형일 수 있다고 보면서, 이에우드라는 이름이 히브리어 야히드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며 페니키아어로 "외아들"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하나는 아가멤논이 딸 이피게네이아를 바치려 할 때 아르테미스가 대신 암사슴을 놓았다는 그리스 이야기다.
여기서 통념의 계보가 어긋난다는 것이 드러난다. "인신제사 반대 논박"이라는 해석은 궁켈이나 스키너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은 그 해석을 명시적으로 배제했다. 미국 역사학자 제임스 굿먼은 2013년 쇼켄 출판사에서 낸 『But Where Is the Lamb?』를 준비하면서 이 해석의 출처를 추적했고, 13세기 유대 주석가 이븐 카스피에게서 비슷한 주장을 찾아냈다. 이 해석이 널리 퍼진 것은 계몽주의 이후이며, 19세기 성서학, 특히 아브라함 가이거의 작업을 거쳐 20세기 대중서로 옮겨갔다는 것이 굿먼의 정리다.
본문의 해석으로서 이 통념이 부딪히는 문제는 앞 절에서 확인한 것들이다. 신이 숫양 대체를 명령하지 않고, 명령 자체를 철회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며, 아브라함은 순종했다는 이유로 축복을 받는다. 숫양 대체에 붙는 원인론 공식도 없다. 존 레벤슨은 1993년 예일대학교 출판부에서 낸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the Beloved Son』에서 이 문제들을 묶어 다른 결론을 냈다. 창세기 22장은 맏아들이 신에게 속한다는 제의 관념을 폐기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관념을 전제하는 이야기이며, 실제 관행이 사라진 뒤에도 관념 자체는 문헌 안에서 계속 작동했다는 주장이다. 레벤슨이 다루는 범위는 창세기에 그치지 않는다. 카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르우벤과 요셉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선택받은 아들은 언제나 맏이가 아니며, 그 아들이 죽음에 넘겨졌다가 되돌아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것이 그의 관찰이다.
이 해석의 방향을 놓고 견해가 나뉜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굿먼이 정리한 대로, 창세기 22장이 인신제사 반대 논박이 아니었다는 데 동의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 이야기가 원래 무엇을 뜻했는지에 대해서는 합의가 없다. 궁켈처럼 특정 성소의 제의 전승으로 보는 견해, 레벤슨처럼 맏아들에 대한 신의 권리를 다루는 이야기로 보는 견해, 그리고 애초에 이 장이 아브라함 이야기에 늦게 삽입된 것이어서 옛 제의와의 연결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견해가 함께 있다.
그럼에도 하나는 갈라져 나온다. 역사적 해석과 신학적 해석은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한다. 창세기 22장이 기원전 어느 시점에 무엇을 설명하려고 만들어졌는가 하는 물음과, 이 본문을 읽는 공동체가 그것을 무엇으로 받아들였는가 하는 물음은 답이 같을 이유가 없다. 굿먼의 표현대로, 앞엣것은 역사이고 뒤엣것은 그 이야기가 이후 수천 년 동안 겪은 일이다.
본문이 겪은 일 가운데 가장 추적하기 쉬운 것이 번역이다. 앞에서 본 칠십인역 창세기 22장 2절은 히브리어 야히드를 아가페토스(ἀγαπητός), 곧 "사랑받는"으로 옮겼다. 히브리어 본문은 "네 아들, 네 하나뿐인 자, 네가 사랑하는 자"로 세 마디를 늘어놓는데, 그리스어는 "네 아들, 네가 사랑한 그 사랑하는 자"가 되어 하나뿐이라는 뜻이 사랑받는다는 뜻에 흡수되었다. 12절과 16절에서도 같은 번역이 유지된다.
νῦν γὰρ ἔγνων ὅτι φοβῇ τὸν θεὸν σύ, καὶ οὐκ ἐφείσω τοῦ υἱοῦ σου τοῦ ἀγαπητοῦ δι᾽ ἐμέ.
nyn gar egnōn hoti phobē ton theon sy, kai ouk epheisō tou huiou sou tou agapētou di' emou
네가 신을 두려워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너는 나를 위하여 네 사랑하는 아들을 아끼지 않았다.
칠십인역 창세기 22장 12절. 스웨티 교정본.
이 그리스어 표현이 신약에서 다시 나타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아끼지 않는다는 동사를 같은 형태로 쓴다.
ὅς γε τοῦ ἰδίου υἱοῦ οὐκ ἐφείσατο ἀλλ᾽ ὑπὲρ ἡμῶν πάντων παρέδωκεν αὐτόν
hos ge tou idiou huiou ouk epheisato all' hyper hēmōn pantōn paredōken auton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그를 넘겨주신 이가
로마서 8장 32절. 그리스어 본문은 『Novum Testamentum Graece』 제28판.
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아끼지 않은 주체이고, 로마서에서는 신이 그 자리에 선다. 페이도마이(φείδομαι)라는 동사와 "자기 아들"이라는 목적어가 나란히 놓이는 구성이 같으므로, 바울이 칠십인역 창세기 22장의 표현을 가져다 쓴 것으로 보는 주석가가 많다. 앞 절에서 확인한 대로 창세기 22장 16절은 후대에 덧붙은 단락이므로, 신약이 붙잡은 표현은 편집 단계에서 생겼다.
히브리서는 더 직접적이다.
Πίστει προσενήνοχεν Ἀβραὰμ τὸν Ἰσαὰκ πειραζόμενος καὶ τὸν μονογενῆ προσέφερεν, ὁ τὰς ἐπαγγελίας ἀναδεξάμενος, πρὸς ὃν ἐλαλήθη ὅτι ἐν Ἰσαὰκ κληθήσεταί σοι σπέρμα
pistei prosenēnochen Abraam ton Isaak peirazomenos kai ton monogenē prosepheren, ho tas epangelias anadexamenos, pros hon elalēthē hoti en Isaak klēthēsetai soi sperma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삭을 바쳤다. 약속을 받은 그가 자기 외아들을 드렸으니, 그에게는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었다.
히브리서 11장 17절과 18절. 그리스어 본문은 『Novum Testamentum Graece』 제28판. 인용된 문구는 칠십인역 창세기 21장 12절과 글자까지 일치한다.
여기서 쓰인 모노게네스(μονογενής)는 "외아들"이라는 뜻으로, 야히드의 본래 뜻에 가깝다. 저자는 아브라함이 약속과 명령 사이에 놓였음을 정확히 짚는다. 창세기 21장 12절은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릴 것"이라고 못을 박았으므로 이삭이 죽으면 약속이 성립하지 않는다. 히브리서 11장 19절은 아브라함이 신은 죽은 자 가운데서도 살리실 수 있다고 헤아렸다고 설명하며 이 긴장을 푼다. 이 설명은 창세기 본문에 없으며, 히브리서가 더했다.
꾸란은 또 다른 방향으로 간다. 37장 102절에서 아브라함은 꿈에서 본 것을 아들에게 말하고 아들은 "아버지여, 명령받은 대로 하십시오"라고 답한다. 아들이 스스로 동의한다는 점이 창세기와 다르다. 그리고 결말에서 대체가 신의 행위로 명시된다.
وَفَدَيْنَاهُ بِذِبْحٍ عَظِيمٍ
wa-fadaynāhu bi-dhibḥin ʿaẓīm
그리고 우리는 큰 제물로 그를 대속하였다.
꾸란 37장 107절. 우스만 판본. 파다(فدى)는 히브리어 파다와 같은 어근으로 값을 치르고 되찾는다는 뜻이며, 출애굽기 13장 13절의 장자 대속 규정에 쓰인 낱말과 같다.
창세기 본문이 하지 않은 두 가지를 꾸란은 한다. 아들의 동의를 명시하고, 대체를 신의 행위로 명시한다. 아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으며, 37장 112절에 가서야 이삭의 출생이 예고된다. 이 순서 때문에 후대 이슬람 주석에서는 제물이 될 뻔한 아들을 이스마엘로 보는 견해가 다수가 되었다.
아들의 동의는 유대교 전승에서도 나타난다.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 1권 227절에서 이삭이 25세였다고 적고, 232절에서는 이삭이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기꺼이 받아들여 스스로 제단으로 갔다고 적는다. 창세기 본문은 이삭의 나이도 반응도 적지 않는다.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뒤 이 본문의 무게가 달라졌고, 중세 십자군 박해기에는 개종을 강요당한 유대인 부모의 처지와 겹쳐 읽혔다. 로쉬 하샤나에 숫양 뿔 나팔을 부는 관습도 이 사건과 연결되어 설명된다.
철학 쪽 수용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것은 쇠렌 키르케고르가 1843년 요하네스 데 실렌티오라는 필명으로 낸 『Frygt og Bæven』이다. 이 책의 첫 번째 문제 제기는 다음 한 문장이다.
Gives der en teleologisk Suspension af det Ethiske?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라는 것이 있는가.
쇠렌 키르케고르, 『Frygt og Bæven』(1843), 프로블레마 1. 덴마크 왕립도서관이 공개한 『Søren Kierkegaards Skrifter』 제4권 전자판.
키르케고르가 묻는 것은 보편 윤리가 최고의 의무인지다. 아들을 죽이는 행위는 윤리의 기준으로는 살인이므로, 아브라함이 칭송받는다면 윤리보다 상위의 무엇이 작동했다고 보아야 한다는 논증이다. 이 물음은 본문이 답하지 않은 자리를 파고들었다. 창세기 22장은 명령의 정당성을 논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내면도 묘사하지 않는다. 스키너가 이 이야기의 특징으로 지목한 것이 바로 그 침묵이다. 겉으로 드러난 준비 과정은 자세히 적으면서 아브라함의 마음 상태에는 한 마디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빈자리가 2000년 넘게 해석을 불러들인 조건이 되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잇는 삼대 계보는 역사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확인되지 않는 이유는 그 계보가 하는 일이 혈연의 기록과 다르다는 데 있다. 에서는 에돔이고 이스마엘은 이스마엘 족속이며 롯의 두 아들은 모압과 암몬이다. 형과 아우의 순서는 집단 사이의 서열을 나타내고, 아버지와 아들의 배치는 어느 전승이 더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는지를 나타낸다. 남쪽 산지에 결부된 아브라함이 북쪽에 결부된 야곱보다 윗세대에 서 있다는 사실은, 두 전승이 한 가문으로 묶인 시점을 기원전 722년 북왕국 멸망 이후로 보게 하는 근거가 된다. 초기 문헌에서 야곱만 나오고 아브라함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추론을 뒷받침한다.
같은 자료에서 반대 방향으로 읽을 여지도 남아 있다. 유목 씨족의 개인이 왕실 비문에 기록될 가능성은 애초에 낮으므로, 성서 밖 증거가 없다는 사실이 실존하지 않았다는 증명이 되지는 않는다. 노예 가격을 근거로 기원전 2천년기의 기억이 보존되었다고 보는 케네스 키친의 논증도 반증되지 않았다. 다만 그 논증이 성립하려면 같은 본문의 이집트 이름들이 왜 기원전 1천년기의 형태인지를 따로 설명해야 한다. 여기서 갈리는 것은 무엇을 본체로 보느냐다. 본문 안에서 가장 이른 시기를 가리키는 요소를 본체로 잡으면 오래된 기억을 담은 문서가 되고, 가장 늦은 시기를 가리키는 요소를 본체로 잡으면 그 시기에 쓰인 문서가 된다. 낙타와 블레셋 사람과 갈대아와 보디베라는 모두 뒤쪽을 가리킨다.
힉소스 가설은 두 명제를 구분하면 정리된다. 야곱과 요셉이 힉소스 집단의 일원이었다는 명제는 연대가 맞지 않고 서사의 방향이 반대여서 성립하기 어렵다. 힉소스는 이집트를 다스리다 전쟁에 져서 쫓겨난 지배층이고,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주인공들은 기근을 피해 들어와 노예가 되었다가 도망하는 집단이다. 반면 레반트 사람들이 나일강 삼각주 동부로 이주해 여러 세대 살다가 떠난 흐름이 실제로 있었고 그 경험이 이스라엘 전승에 반영되었다는 명제는 고고학 자료와 충돌하지 않는다. 2020년 아바리스 유적에서 75명분의 치아를 분석한 결과가 보여 준 것이 그 흐름이다. 표본이 한 유적에 한정되므로 이집트 전역으로 넓혀 말할 수는 없다.
개별 일화로 내려가면 논의의 성격이 바뀐다. 창세기 22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본문이 어떤 관행을 전제하고 있느냐다. 맏아들을 신에게 넘기라는 규정이 율법 안에 있고, 짐승으로 값을 치러 되찾는 규정이 그 옆에 있으며, 예언자들은 그런 규례가 어떻게 야훼에게서 나올 수 있었는지를 해명해야 했다. 창세기 22장은 그 문제의 한복판에 놓인 이야기다. 본문은 명령을 비난하지 않고, 숫양 대체를 명령하지 않으며, 그 대체에 원인론 공식을 붙이지 않는다. 그런 관찰에서 헤르만 궁켈은 1902년에 이 이야기가 제사에 대한 논박과 무관하다고 판정했고, 존 스키너는 1910년에 본문에 인신제사를 거부하는 말이 없다고 적었으며, 존 레벤슨은 1993년에 이 이야기가 맏아들에 대한 신의 권리를 폐기하지 않고 전제한다고 주장했다. 세 사람이 도달한 결론은 서로 다르지만, 출발점이 된 본문 관찰은 같다.
그러므로 "창세기 22장은 인신제사를 금지하려는 이야기"라는 널리 퍼진 설명은 19세기 성서학의 성과가 아니다. 그 학문이 도달한 결론은 오히려 반대쪽이었다. 이 설명의 계보는 13세기 유대 주석을 거쳐 계몽주의 이후에 확산된 것이며, 본문 자체보다 근대 독자의 판단에서 나온 것에 가깝다.
남는 것은 수용의 역사다. 칠십인역 번역자가 야히드를 아가페토스로 옮기면서 '하나뿐인 아들'은 '사랑하는 아들'이 되었고, 바울과 히브리서 저자는 그 그리스어 표현을 가져와 다른 사건을 설명했다. 꾸란은 아들의 동의와 신의 대속을 본문에 명시했고, 요세푸스는 이삭의 나이와 자발성을 채워 넣었으며, 키르케고르는 본문이 답하지 않은 명령의 정당성을 정면으로 물었다. 이 모두는 창세기 22장이 남긴 침묵 위에 세워졌다. 스키너가 지적한 대로 이 이야기는 준비 과정을 자세히 적으면서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한 마디도 쓰지 않는다.
계보의 형성 시기와 개별 일화의 뜻을 따로 묻더라도, 어느 쪽으로 읽든 확인해야 할 대상은 본문이다. 본문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먼저 세어 보는 일은 역사비평의 전유물이 아니며, 신앙의 언어로 이 본문을 읽는 쪽에서도 같은 작업을 거쳐야 무엇을 믿는지 말할 수 있다. 궁켈과 스키너의 문장이 백과사전의 요약과 어긋난다는 사실이 그 점을 보여 준다. 요약본만 읽고 학설의 계보를 말하면 실제 계보와 반대되는 말을 하게 된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물음도 그대로 남아 있다. 족장 전승이 한 가문의 이야기로 묶인 정확한 시점은 기원전 8세기와 6세기 사이 어디쯤이라는 폭 안에서만 말할 수 있고, 창세기 22장이 아브라함 이야기에 들어온 시점도 확정되지 않았다. 카르타고 토페트 유적을 묘지로 볼지 제사 터로 볼지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 문제들은 새 발굴이나 새 문서가 나오면 답이 달라질 수 있는 종류이며, 그때 달라지는 것은 계보가 언제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답이며, 계보가 무엇을 하는 장치인가에 대한 답은 그대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