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obhan.me

고고학

타쉬 테펠레르의 인물상 — 우르파 맨에서 표범을 탄 사람까지, 반복되는 형식과 해석의 한계

2026년 9월 12일

2026년 8월 25일,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장관 메흐메트 누리 에르소이가 카라한 테페에서 나온 조각 하나를 공개했다. 높이 약 70cm이고, 표범의 등에 사람이 올라앉은 모습이다. 사람과 동물을 한 덩어리로 결합한 복합 조각이며, 유적에서 처음 나온 형식이다. 장관은 지금까지 마주친 적 없는 양식이라고 발표했다.

발견 맥락이 이 조각의 값어치를 올린다. 조각은 지름 약 3m의 원형 건물 안, 벽을 따라 도는 낮은 단 위에 놓인 그대로 나왔다. 바닥은 납작한 돌로 포장돼 있었다. 유물이 원래 놓였던 자리에서 나오면, 단독 작품으로 떼어 보는 대신 그 공간의 쓰임과 함께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유례없는'이라는 말이 무엇에 걸리는지는 따져 볼 여지가 있다. 사람과 동물을 위아래로 겹쳐 놓은 복합 조각은 2022년에 이미 학술 문헌에 기록됐기 때문이다. 그 기록이 가리킨 유적 가운데 하나가 카라한 테페다.

1993년 우르파 시내 공사장에서 나온 남자

이 지역의 인물상 계열을 이야기하려면 30년 전으로 가야 한다.

1993년 샨르우르파 시내 발리클리괼 구역의 공사 중에 사람 크기의 석상이 나왔다. 발리클리괼 석상 또는 우르파 맨이라 부른다. 샨르우르파 고고학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석회암을 깎아 만들었고 높이는 1.80m다. 자료에 따라 1.90m로 적히기도 한다.

생김새의 특징은 이렇다. 눈구멍이 깊게 파이고 그 안에 검은 흑요석 덩어리가 박혀 있다. 코는 일부 부서졌고, 입은 아예 없다. 목에는 V자 모양 선이 둘러 있어 목걸이로 읽힌다. 그 밖에 몸에 걸친 것은 없다. 두 손을 배 앞에 모아 성기를 쥐고 있다. 다리는 없고 아래쪽이 U자 모양으로 처리됐는데, 받침대의 홈에 끼우려고 그렇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자 바하틴 첼릭은 이 석상이 예니 마할레라 부르는 신석기 취락에서 나왔으리라고 보았다. 1997년 예니 마할레 발굴에서는 테라초 바닥을 갖춘 원형 건물 두 채가 확인됐다. 테라초는 돌조각을 섞어 굳힌 바닥 마감재다.

흑요석은 이 지역에서 나지 않는다. 눈에 박힌 흑요석 조각은 먼 거리 교류를 뜻한다. 목의 V자 선은 괴베클리 테페의 T자 석주에도 나타난다. 곧 이 석상은 지역 형식 안에 놓인 작품이다.

타쉬 테펠레르 튀르키예어로 '돌 언덕들'이라는 뜻이다. 튀르키예 문화관광부가 2021년에 출범시킨 샨르우르파 신석기 연구 프로젝트의 이름이며, 하란 평원 둘레의 토기 이전 신석기 유적 10여 곳을 하나로 묶어 조사한다. 괴베클리 테페, 카라한 테페, 사이부르츠, 귀르쥐테페, 차크막테페, 세페르테페, 예니 마할레가 여기 들어간다. 프로젝트 책임자는 이스탄불대학교의 네지미 카룰이고, 2025년 기준으로 10개 지역에서 발굴이 진행 중이며 튀르키예 15개와 외국 21개를 합쳐 36개 학술 기관이 참여한다.

사이부르츠 벤치에 새겨진 다섯 형상

계열의 성격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 주는 자료는 사이부르츠에서 나왔다. 유프라테스강 동쪽 60km, 동타우루스 산맥 남쪽 기슭의 유적이다. 1949년에 들어선 현대 마을이 유적 대부분을 덮고 있어서 마을 이름이 유적 이름이 됐다. 발굴은 2021년에 시작됐다.

이스탄불대학교의 에일렘 외즈도안이 2022년 Antiquity 96권 390호 1599~1605쪽에 보고한 내용은 이렇다. 공동 건물은 지름 11m이고 석회암 암반을 파서 만들었다. 바닥에서 올라온 벤치 위에 돌벽을 얹었다. 벤치는 높이 0.6~0.8m, 폭 0.6m이며, 벽을 따라 폭 0.4m가량의 빈 자리가 여러 개 있어 원래는 기둥이 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벤치 안쪽 면에 다섯 형상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패널의 크기는 0.7~0.9m × 3.7m다. 남성 형상 하나만 고부조이고 나머지는 저부조다.

고부조와 저부조 부조는 바탕면에서 형상을 도드라지게 깎은 조각이다. 도드라진 정도가 크면 고부조, 작으면 저부조라 한다. 고부조는 형상이 바탕에서 떨어져 나올 듯이 튀어나오고, 저부조는 선으로 그린 그림에 가깝다. 한 패널 안에서 한 형상만 고부조로 처리했다면, 그 형상이 나머지와 다른 위상을 갖는다는 신호로 읽힌다.

형상들이 향한 방향과 자세를 보면 두 개의 장면이 이어져 있다. 다른 형상들은 서로를 마주 보는데, 고부조 남성만 방 안쪽을 향해 정면으로 서 있다. 이 남성은 오른손으로 성기를 쥐고 있다. 다리 위쪽의 둥근 돌출부는 무릎으로 보이며, 앉은 자세에서 앞으로 굽힌 모습을 원근감 있게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머리는 훼손됐지만 둥근 얼굴, 큰 귀, 튀어나온 눈, 두꺼운 입술이 남아 있다. 목에 두른 삼각형 띠가 눈에 띈다.

이 남성 양옆에 표범 두 마리가 측면 모습으로 배치돼 있다. 입을 벌려 이빨이 드러나 있고, 긴 꼬리는 몸 쪽으로 말려 올라가 있다. 서쪽 표범에는 성기가 표현돼 있고 다른 한 마리에는 없다.

서쪽에는 두 번째 장면이 있다. 두 번째 사람과 황소가 측면으로 놓여 있다. 사람은 배에 성기 모양 돌출부가 있어 남성으로 보이고, 살짝 쪼그린 자세이며, 앞의 세 형상에 등을 돌리고 있다. 들어 올린 왼손은 펼쳐져 있는데 손가락이 여섯 개다. 오른손에는 뱀 또는 딸랑이를 쥐었고 그 머리가 땅을 향한다. 황소는 몸을 측면으로 그렸으면서 머리는 위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그려 두 뿔이 다 보이게 했다. 뿔을 강조하려고 일부러 시점을 어긋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외즈도안이 결론에서 짚은 것은 두 가지다. 형상의 성별을 알려 주는 요소는 성기뿐이며, 이빨과 뿔을 과장한 처리에서 보듯 동물의 포식성과 공격성이 강조된다. 그리고 고부조 남성이 목에 두른 삼각형 띠는 예니 마할레 석상과 괴베클리 테페 T자 석주의 특징이다. 앞서 본 우르파 맨의 V자 선이 여기서 다시 나온다.

카라한 테페의 인물상들

카라한 테페에서 나온 인물 형상은 지금까지 넷으로 정리된다.

첫째는 구조물 AB의 벽에서 튀어나온 사람 머리다. 카룰이 2021년 논문에 적은 관찰은 이렇다. 구조물 서쪽 위쪽에 능선처럼 남은 부분이 있고, 그 가운데가 공간 안으로 뻗어 나온 사람 머리 모양이다. 머리는 입구 계단 쪽으로 살짝 돌아가 있다. 머리 근처 벤치에는 작은 벽감 두 개가 있다. 머리가 표현한 것은 이마가 튀어나오고 입술이 두꺼우며 턱 아래에 수염이 난 남자다.

이 머리가 놓인 공간의 구조도 함께 적혀 있다. 암반을 깎아 세운 기둥이 열 개이고, 따로 만들어 얕게 판 자리에 끼운 납작한 판 하나를 더해 기둥 수가 열하나가 된다. 북쪽에는 구불구불한 수로가 건물 안으로 열려 있다. 구조물 AB로 들어가는 주 출입구는 이웃한 구조물 AD를 거치고, AB에서 AA로 이어지는 통로도 있다.

카룰은 여기서 조심스러운 해석을 붙였다. 한쪽 끝으로 들어가 다른 쪽 끝으로 나가는 의례 절차가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남근 상징을 갖춘 사람 머리 앞을 지나야 했으리라고 보았다. 그는 이 해석이 예비적이며 복합 구조물의 발굴이 끝나고 유물 분석이 이뤄진 뒤에 다듬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둘째는 2023년 9월에 공개된 대형 인물상이다. 앉은 자세의 남성이고 벤치에 고정된 채 발견됐다. 갈비뼈와 등뼈와 어깨뼈를 도드라지게 표현했고, 두 손으로 성기를 쥐고 있으며 목에는 넓은 V자 장식이 있다. 같은 구역에서 독수리 조각과 바닥에 놓인 판돌들이 함께 나왔다. 높이는 문화관광부 발표를 옮긴 매체들이 2.3m로 적었고, 튀르키예 관광 당국의 보도자료는 2.45m로 적었다.

셋째는 2025년 10월에 공개된 T자 석주다. 기둥 머리에 사람 얼굴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눈썹뼈가 뚜렷하고 눈두덩이 깊으며 코가 앞으로 뭉툭하게 나왔다. 신석기 T자 석주에 사람 얼굴을 새긴 사례로는 처음 보고됐다. T자 석주가 사람을 추상화한 형상이라는 기존 해석에 구체적인 근거가 붙은 셈이 된다.

넷째가 2026년의 표범 조각이다.

같은 2025년 시즌에는 인물상이 아닌 발견도 하나 나왔다. 메워서 폐기한 다른 건물 안에서, 바닥이 없는 돌 사발 속에 돌판과 돌막대, 그리고 멧돼지·독수리·여우를 표현한 소형 석상들이 함께 놓인 채 발견됐다. 각 석상의 높이는 3.3cm이고 머리마다 석회암 고리가 둘려 있었다. 카룰은 이 배치가 상징적인 순서를 따른 것으로 보며, 건물을 메워 폐기하는 과정과 연결된 의례의 일부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Archaeology 지는 2025년의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카라한 테페를 꼽았다.

'유례없는'이라는 말이 걸리는 범위

여기서 2026년 발표의 표현을 다시 볼 수 있다.

외즈도안의 2022년 Antiquity 논문은 사이부르츠 부조를 같은 지역의 다른 자료와 견주면서 세 가지를 나란히 언급했다. 괴베클리 테페 T자 석주의 해석에서 사람과 동물의 관계가 중심을 차지한다는 것, 카라한 테페에서 동물을 등에 업은 사람 형상이 나왔다는 것, 그리고 네발르 초리의 복합 조각에서 사람과 동물이 위아래로 겹쳐 놓였다는 것이다. 카라한 테페에 관한 서술의 출처로 그는 카룰의 2021년 논문을 달았다.

외즈도안이 지목한 사이부르츠의 차이는 바로 그 대비에서 나온다. 다른 유적에서는 사람과 동물이 수직으로 겹쳐 있는데, 사이부르츠에서는 같은 높이에 나란히 놓여 다른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사람과 동물이 비슷한 크기로 같은 층에 배치된 점이 토기 이전 신석기 사람들의 서사에서 새로 확인된 차원이라고 그는 적었다.

정리하면 사람과 동물을 수직으로 결합한 복합 조각은 2021년과 2022년 학술 문헌에 이미 기록돼 있었고, 그 기록에는 카라한 테페와 네발르 초리가 함께 들어 있다. 2026년 발표의 '지금까지 마주친 적 없는 양식'이라는 표현은 그보다 좁게 읽어야 한다. 표범이라는 특정 동물의 등에 사람이 올라앉은 자세, 그리고 그 자세를 70cm 크기의 독립된 환조로 만든 형식이 카라한 테페에서 처음이라는 뜻으로 좁히면 그 표현은 성립한다. 사람과 동물을 겹쳐 놓은 발상 자체가 처음이라는 뜻으로 읽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표현을 좁혀 읽는 일이 발견의 값어치를 깎지는 않는다. 오히려 값어치가 어디에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이 조각의 값어치는 형식의 새로움보다 발견 맥락에 있다. 지름 3m의 작은 건물, 납작한 돌로 포장한 바닥, 벽을 따라 도는 단, 그 위에 놓인 그대로의 조각이라는 조합이다. 사이부르츠의 부조가 지름 11m의 공동 건물 벤치에 있었고 카라한 테페의 2023년 인물상도 벤치에 고정돼 있었다면, 벤치라는 설비와 인물상이 함께 놓이는 배치가 이 지역에서 반복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문자가 없는 상징을 어디까지 읽을 수 있는가

반복은 확인된다. 그 반복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지금까지 정리된 반복 항목은 이렇다. 성기를 쥐거나 드러낸 남성 형상, 목에 두른 V자 또는 삼각형 띠, 맹수와 함께 배치되는 사람, 이빨과 뿔을 과장한 동물, 그리고 벤치 위나 벽면에 고정된 배치가 그것이다. 우르파 맨에서 2026년 표범 조각까지 1000년 넘는 기간에 걸쳐 같은 요소가 거듭 나타난다.

해석의 재료가 부족한 까닭은 단순하다. 이 사회에는 문자 기록이 없다. 개별 동물이 무엇을 뜻했는지 적어 둔 문서가 없고, 형상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 이야기도 남지 않았다. 남은 것은 돌에 새긴 형태와 그것이 놓인 자리뿐이다.

연구자들의 서술 방식이 이 제약을 반영한다. 독일고고학연구소의 옌스 노트로프는 2026년 표범 조각에 대해, 표범이 이 지역의 대형 고양이과 포식자였고 힘이 세고 위험해서 숙련된 사냥꾼에게도 어려운 사냥감이었을 것이며 그 점이 상징적 의미를 더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맹수들 사이에 두려움 없이 선 사람, 또는 맹수를 제어하는 듯한 사람이 힘의 표현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가능성을 제시하는 형식이고, 무엇을 뜻한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카룰의 서술도 같다. 구조물 AB의 통로 구조에서 의례 절차를 읽으면서 예비적 해석이라고 못 박았고, 2025년 미니어처 배치에 대해서도 폐기 의례와 연결된 것일 수 있다는 정도로 적었다. 외즈도안은 사이부르츠 부조를 '서사'라고 부르면서도 무엇에 관한 서사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가 끌어온 해석은 슈미트가 2013년에 제시한 것, 곧 강한 상징을 갖춘 괴베클리 테페가 변하는 세계에서 기억을 붙들어 두는 새로운 연결점이었다는 읽기이며, 사이부르츠 부조도 공동체의 가치를 살아 있게 한 집단 기억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는 수준에 머문다.

후대 신화를 소급해 적용하는 방법은 여기서 위험해진다. 표범이 등장하는 후대 근동 도상은 많고, 사람이 맹수를 제어하는 구도도 청동기 이후 미술에 흔하다. 그러나 기원전 9천년기와 기원전 2천년기 사이에는 7000년이 있다. 형태가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 의미가 이어졌다고 볼 근거는 없다.

같은 석주에서 혜성과 달력을 읽어 낸 사람들

해석을 어디서 멈추느냐가 실제 논쟁으로 번진 사례가 있다. 괴베클리 테페의 43번 석주를 두고 벌어진 일이다.

이 석주에는 독수리류 새와 전갈, 그리고 원반 모양 형상이 새겨져 있고 기둥 아래쪽에는 머리 없는 사람이 있다. 연구자들은 이 기둥을 '독수리 석주'라 부른다.

에든버러대학교 공학부의 마틴 스웨트먼과 디미트리오스 치크리치스는 2017년 Mediterranean Archaeology and Archaeometry 17권 1호 233~250쪽에 논문을 실었다. 이들은 이 석주의 동물 형상을 별자리로 대응시키고, 세차운동을 이용해 그 별자리 배치가 가리키는 연대를 계산했다. 결과는 기원전 10950년 전후 250년이었다. 이 시점은 영거 드라이아스라 부르는 한랭기의 시작과 겹친다. 이들은 43번 석주를 그 한랭기를 촉발한 혜성 충돌의 기념물로, 괴베클리 테페의 건물들을 천체 관측 시설로 해석했다.

발굴 연구진이 같은 학술지에 반박문을 실었다. 노트로프, 올리버 디트리히, 라우라 디트리히, 세실리 렐레크 트베트마르켄, 모리츠 킨첼, 요나스 슐린트바인, 데브림 쇤메즈, 리 클레어가 공동 저자이고, 17권 2호 57~63쪽이다.

반박의 갈래는 넷이다. 첫째, 별자리는 별들을 임의로 묶은 것인데 그 묶음이 1만 년 넘게 안정적으로 유지됐다는 전제에 근거가 없다. 둘째, 유적의 도상 가운데 일부만 맥락에서 떼어내 골라 쓰고 나머지는 대부분 다루지 않았다. 셋째, 제안된 43번 석주의 연대가 방사성탄소 증거보다 700년에서 1000년 앞선다. 넷째, 기둥 아래쪽의 머리 없는 사람을 죽음과 절멸의 상징으로 읽으면서, 그 형상에 분명하게 강조된 남근은 언급하지 않았다.

넷째 항목이 방법론적으로 가장 무겁다. 남근이 강조된 형상을 죽음의 표상으로 읽으려면 그 모순을 설명해야 한다.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면 도상 전체를 읽은 작업이 되지 못하고 가설에 맞는 부분만 골라 쓴 작업이 된다.

스웨트먼은 논지를 확장했다. 2024년 7월 Time and Mind 17권 3·4호 191~247쪽에 실린 논문에서, 그는 43번 석주의 V자 기호 하나하나를 하루로 읽고 12개의 태음월에 11일의 윤일을 더한 태음태양력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이 해석을 카라한 테페까지 확장했다. 카라한 테페 구조물 AB의 기둥이 열하나라는 사실이 윤일 수와 맞는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언론에 '세계 최초의 달력'으로 보도됐다.

같은 기둥 수를 놓고 두 서술을 나란히 놓아 보자. 카룰의 2021년 보고는 암반에서 깎은 기둥이 열 개이고 따로 만들어 끼운 판이 하나 더해져 열하나가 됐다고 적었다. 열하나가 처음부터 목표였다면 처음부터 열하나를 깎았을 것이라는 반문이 가능하다. 발굴 보고의 관찰과 그 위에 얹은 계산이 어긋나는 지점이다.

이 논쟁이 대중적 유사고고학과 이어지는 경로도 짚어 둘 만하다. 그레이엄 핸콕의 웹사이트에 실린 앤드루 콜린스의 글은 카라한 테페의 구조물 배치를 별자리 관측과 연결하고, 이 유적을 빙하기 말에 사라진 선진 문명의 흔적으로 읽는다. 이런 글은 카룰의 논문을 정확히 인용하면서 해석만 갈아 끼우기 때문에 겉보기로는 학술 문헌과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구분 기준은 두 가지로 좁혀진다. 하나는 어떤 진술이 발굴 보고에 기록된 관찰인지 그 위에 얹은 해석인지 가리는 일이다. 기둥이 열 개 더하기 하나라는 서술은 관찰이고, 그것이 윤일 수라는 서술은 해석이다. 다른 하나는 그 해석이 어떤 자료가 나오면 틀린 것으로 판정되는지 밝히고 있는가다. 별자리 대응 해석은 이 조건을 제시하기 어렵다. 어떤 동물 형상이 새로 나와도 다른 별자리에 대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 — 반복은 자료이고 의미는 아직 자료가 아니다

정리하면 세 가지가 분리된다.

첫째, 형식의 반복은 확인된 자료다. 1993년 우르파 시내에서 나온 석상부터 2026년 카라한 테페의 표범 조각까지, 성기를 드러낸 남성 형상, 목에 두른 V자 또는 삼각형 띠, 맹수와 함께 놓인 사람, 이빨과 뿔을 과장한 동물, 벤치나 벽면에 고정된 배치가 거듭 나타난다. 외즈도안이 2022년 사이부르츠 부조에서 확인한 것도 이 계열이며, 그는 고부조 남성의 삼각형 목띠가 예니 마할레 석상과 괴베클리 테페 T자 석주의 특징이라고 적었다.

둘째, 개별 발표의 표현은 좁혀 읽어야 한다. 사람과 동물을 위아래로 겹친 복합 조각은 카룰의 2021년 보고와 외즈도안의 2022년 논문에 이미 들어 있다. 2026년 문화관광부 발표의 '지금까지 마주친 적 없는 양식'은 표범 등에 올라앉은 자세와 70cm 독립 환조라는 형식에 걸리는 말로 읽어야 성립한다. 이 조각의 값어치는 형식의 새로움보다 원래 놓인 자리에서 발견됐다는 맥락에 있다.

셋째, 의미는 아직 자료가 아니다. 문자 기록이 없고 형상들의 관계를 설명한 이야기도 남지 않았다. 발굴 책임자들의 서술이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 그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카룰은 의례 절차 해석에 예비적이라는 단서를 달았고, 외즈도안은 '서사'라 부르면서도 무엇에 관한 서사인지는 말하지 않았고, 노트로프는 표범의 상징적 의미를 추정의 형식으로 말했다.

판단이 갈리는 자리도 분명하다. 이 인물상들을 조상으로 보는 읽기와 신격으로 보는 읽기, 그리고 특정 개인의 초상으로 보는 읽기가 모두 열려 있다. 2023년 인물상이 갈비뼈와 등뼈를 도드라지게 표현해 죽은 사람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자세는 살아 있는 사람의 것이라는 문화관광부 발표의 서술이 이 미결정 상태를 그대로 보여 준다. 지금 공표된 자료는 세 읽기 가운데 어느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

확인될 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벤치와 인물상이 함께 놓이는 배치가 다른 유적에서도 같은 형태로 나오는지다. 사이부르츠의 공동 건물은 절반만 발굴됐고 그 위에 선 현대 주택 두 채를 철거한 뒤에야 전모가 드러난다. 카라한 테페는 전체 면적의 5% 미만이 발굴됐다. 다른 하나는 2026년 표범 조각의 학술 보고다. 발표 시점에는 연대와 제작 기법과 해석을 다룬 고고학 보고가 없었으므로, 그 보고가 나오면 이 조각이 어느 단계의 어느 건물에 속하는지가 정해진다.

돌에 새긴 형태를 세고 비교하는 작업과 그 형태가 무엇을 뜻했는지 말하는 작업 사이에는 자료의 층이 하나 빠져 있다. 문자가 없는 사회를 다루는 고고학에서 그 층은 대개 채워지지 않는다. 반복을 세어 계열을 확인하는 일까지가 지금 가능한 범위이고, 그 범위를 넘어서는 진술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표시해 두는 일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