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으로 넘어간 집단의 유골에서는 영양 결핍과 감염병과 신장 감소가 함께 나타난다. 그런데도 농경은 전 세계로 퍼졌다. 이 어긋남을 메우는 변수는 삶의 질이 아닌 출생률이다. 여기서 개인의 손익과 집단의 확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사람이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을 진보로 보는 서술이 오래 표준이었다. 식량이 안정되고 잉여가 생기고 인구가 늘고 도시와 문자와 국가가 뒤따랐다는 순서다. 이 서술에는 한 가지 전제가 조용히 깔려 있다. 농사를 지은 사람들이 수렵채집을 하던 사람들보다 잘 살게 됐다는 전제다.
유골 자료는 이 전제를 지지하지 않는다.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1987년 5월 잡지 『Discover』에 실은 글에서 농경을 인류 역사 최악의 실수라 부를 때 근거로 삼은 것도 유골 자료였다. 그 뒤 40년 가까이 유골 연구가 쌓였고, 건강이 나빠졌다는 방향 자체는 유지됐다. 그러면 물음이 남는다. 개인에게 손해였다면 농경은 왜 퍼졌는가.
마크 코언과 조지 아멜라고스가 1984년에 엮은 『Paleopathology at the Origins of Agriculture』는 이 논의의 출발점이다. 수렵채집에서 식량 생산으로 넘어간 21개 사회의 유골 자료를 모았고, 그중 19개에서 건강 지표가 나빠졌다. 감염병과 치과 질환이 늘고 영양 결핍 흔적이 늘었다.
영양 결핍이 늘었다는 결과는 얼핏 이상하다. 식량 생산량이 늘었는데 영양이 나빠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코언과 아멜라고스가 정리한 원인은 네 갈래다. 수확과 수확 사이의 계절적 굶주림, 필수 영양소가 빠져 있는 단일 작물에 대한 의존, 흉작,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과 교역 구조다. 전체 생산량이 늘어도 한 종류 작물에 몰리면 그 작물에 없는 영양소는 통째로 빠진다. 수렵채집 집단의 식단은 종류가 훨씬 다양했다.
에이미 머머트와 공저자들은 2011년 학술지 『Economics and Human Biology』에 실은 논문에서 1984년 이후 나온 연구들로 이 추세가 유지되는지 다시 검토했다. 이들이 중심 지표로 삼은 것은 신장이었다. 성인 키는 성장기의 영양 상태를 누적해 반영하므로 단일 시점의 병변보다 안정된 지표다. 결과는 여러 지역에서 농경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성인 신장이 낮아진다는 것이었다. 단일 작물 의존에서 오는 성장 저해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다만 이들 자신이 교란 요인을 인정했다. 골격 강건성, 곧 뼈가 얼마나 두껍고 튼튼한지는 지형에 크게 좌우된다. 기복이 심한 지역에 사는 집단은 오히려 강건성이 낮게 나와 평지 집단과 반대 방향의 결과가 나왔다. 하나의 지표만으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 근본적인 방법론적 반론이 붙는다. 제임스 우드와 공저자들이 1992년 학술지 『Current Anthropology』 33권 4호 343~370쪽에서 제기한 골학적 역설이다. 뼈에 병변이 남으려면 병을 앓은 뒤 상당 기간 살아남아야 하므로, 병변이 많은 집단은 병을 견딘 사람이 많았던 집단일 수 있다. 평균 사망 연령도 마찬가지다. 출생률이 오르면 어린 개체의 비율이 늘어 평균 사망 연령이 자동으로 내려간다. 건강이 나빠지지 않아도 같은 숫자가 나온다.
이 반론이 중요한 이유는 뒤에 다시 나온다. 우드와 공저자들이 대안 설명으로 제시한 기제가 실은 농경 확산을 설명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농경이 노동을 늘렸다는 주장도 자주 나온다. 근거는 살아 있는 수렵채집 집단을 관찰한 자료다.
리처드 보셰이 리는 1963년 10월부터 1965년 1월까지 보츠와나 도베 지역의 !쿵족과 함께 현지조사를 했다. 리의 방법은 단순했다. 야영지를 떠나 식량을 구하러 가는 일을 산업사회의 출퇴근에 대응시켜, 누가 언제 나가고 언제 돌아오는지를 기록했다. 1964년 7월 초부터 8월까지 4주 동안의 기록에서 도베 야영지의 성인들은 주당 약 2.5일 일했고, 평균 노동일이 약 6시간이었으므로 식량 획득에 쓰는 시간은 주당 12~19시간이었다. 가장 열심히 일한 사람은 28일 중 16일 사냥을 나간 남성이었고, 그조차 주당 최대 32시간이었다.
마셜 마셜 살린스는 1966년 시카고에서 열린 '사냥꾼 인간' 학술회의에서 리의 관찰을 근거로 수렵채집민을 원초적 풍요 사회로 불렀다. 살린스의 논지는 풍요가 욕구의 충족이고, 충족은 많이 생산하거나 적게 욕망하는 두 경로 중 하나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수렵채집민은 뒤쪽 경로를 택했다는 설명이다.
이 수치는 그대로 쓰기 어렵다. 리 자신이 1984년에 낸 도베 !쿵족 단행본에서, 원래 추정치인 주당 12~19시간에 식량 가공과 도구 제작과 살림이 빠져 있었다고 밝혔다. 이것들을 넣으면 남성 44.5시간, 여성 40.1시간으로 올라간다. 리는 이 수치도 현대 서구 가구가 임금노동과 가사에 쓰는 총 시간보다는 적다고 덧붙였다.
다른 집단과의 비교에서도 편차가 크다. 크리스틴 호크스와 제임스 오코넬이 1981년에 보고한 오스트레일리아 중부 알야와라족의 수치는 !쿵족의 두 배에서 다섯 배에 이르렀다. 두 집단이 생태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이런 차이가 났다는 점에서 !쿵족 수치의 대표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데이비드 캐플런은 원초적 풍요 사회 논제의 어두운 면을 다룬 논문에서 이 편차들을 정리했다.
노동 시간 자료가 말해 주는 것은 결국 하나다. 수렵채집이 끊임없는 생존 투쟁이었다는 통념은 틀렸고, 그렇다고 모든 수렵채집 집단이 여유로웠다고 일반화할 근거도 부족하다. 농경이 노동을 늘렸다는 명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확산의 원인을 삶의 질에서 찾지 못한다면 다른 곳을 봐야 한다. 그 답이 인구학에 있다.
장피에르 보케아펠은 2011년 7월 29일 학술지 『Science』 333권 6042호 560~561쪽에 이 현상을 정리한 논문을 실었다. 자료는 북반구, 곧 유럽과 북아프리카와 북아메리카의 공동묘지 약 100곳에서 나온 유골이었다. 신호는 단순했다. 농경이 도착한 시점을 기준으로 놓으면, 그 뒤 묘지에 묻힌 유골 중 청소년의 비율이 급격히 올라간다.
보케아펠이 이 지표로 추정한 변화는 여성 한 사람당 합계출산율 2명 증가였다. 한 여자가 평생 낳는 아이가 둘 더 늘었다는 뜻이다. 유럽 자료를 따로 검토한 션 다우니와 공저자들의 2014년 논문은 신석기 인구 증가와 붕괴가 모두 빠르게 일어났으며 내재 성장률이 각각 연 0.172퍼센트와 연 -0.024퍼센트였다고 보고했다. 같은 연구는 신석기 이전 중석기 집단이 장기적으로 늘지도 줄지도 않는 정지 상태였다고 정리했다.
출생률이 왜 올랐는가. 가장 자주 지목되는 기제는 수유 기간의 단축이다.
여기에 정착 자체의 효과가 더해진다. 이동 생활에서는 어른이 아이를 업고 다녀야 하므로 스스로 걷지 못하는 아이가 둘 이상이면 이동이 어려워진다. 한곳에 머물면 이 제약이 사라진다.
이 기제는 앞서 본 골학적 역설 논문에서 우드와 공저자들이 코언의 논증에 맞서 내놓은 대안 설명과 같다. 이유식이 늘면 수유 기간이 줄고 출생률이 오르고 평균 사망 연령이 내려간다는 연쇄다. 우드와 공저자들은 이 연쇄를 건강 악화 해석을 반박하는 데 썼고, 보케아펠은 같은 연쇄를 인구 급증을 설명하는 데 썼다. 같은 기제가 두 논증에서 반대 방향으로 쓰인 셈인데, 두 쓰임이 충돌하지는 않는다. 출생률 상승은 건강 지표를 나쁘게 보이게 만들면서 동시에 실제로 인구를 불린다.
여기서 확산의 구조가 드러난다. 어떤 생활 방식이 퍼지는 데 필요한 조건은 그 방식을 택한 집단이 더 빨리 불어나는 것 하나다. 구성원이 더 잘 살 필요는 없다.
농경 집단의 구성원 개인이 수렵채집 집단의 구성원보다 키가 작고 이가 나쁘고 감염병에 더 걸렸다 해도, 여자 한 사람이 아이를 둘 더 낳으면 몇 세대 만에 인구 비율이 역전된다. 인구가 불어난 집단은 더 넓은 땅을 차지하고, 수렵채집 집단은 밀려나거나 흡수된다. 개인의 건강이라는 지표와 집단의 확산이라는 지표는 서로 다른 것을 재고 있고, 확산을 좌우하는 쪽은 뒤엣것이다.
농경을 택한 사람들의 의도는 이 설명에 들어가지 않는다. "자손을 더 많이 남기려고 농사를 짓자"고 결정한 사람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곡물을 갈아 이유식을 만들 수 있게 되고 정착해서 아이를 업고 다닐 필요가 없어지면, 출산 간격은 개인의 선택과 무관하게 좁아진다. 그 결과는 몇 세대 뒤에나 드러난다.
돌아갈 수 없다는 조건도 여기에 붙는다. 인구가 일단 불어나면 그 인구를 수렵채집으로 먹일 수 없다. 같은 면적의 땅에서 농경이 부양할 수 있는 인구는 수렵채집이 부양할 수 있는 인구보다 훨씬 많고, 그래서 농경으로 늘어난 인구는 농경을 그만두는 선택지를 잃는다. 한 세대의 결정이 다음 세대의 선택지를 없앤다.
인구학적 설명은 농경이 시작된 뒤의 확산을 설명한다. 시작 자체는 설명하지 않는다. 첫 세대는 아직 인구 증가의 이익을 보지 못한 채 노동과 건강의 비용을 먼저 치른다.
이 자리에 의례적 결속이 답의 일부일 수 있다는 제안이 있다. 근거로 자주 인용되는 유적이 터키 남동부의 괴베클리 테페다. 기원전 10천년기와 9천년기에 세워진 이 유적의 T자형 석회암 기둥은 최대 5.5미터에 이르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설명에 따르면 이를 세운 것은 수렵채집 집단이었다. 농경이 완성되기 전에 대규모 공동 건축이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발굴을 이끌었던 클라우스 슈미트는 이곳을 순전한 의례 중심지로 보았고, 여기서 "신전이 먼저, 마을이 나중"이라는 순서가 제안됐다. 이 해석은 이후 약해졌다. 테드 배닝은 2011년 「So Fair a House」에서 문제의 구조물이 장식이 많은 주거 건물일 수 있다고 반박했다. 최근 발굴은 배닝 쪽에 가깝다. 유네스코 설명은 최근 발굴에서 주거 건물로 보이는 비기념비적 구조물이 확인됐다고 적고, 현재 발굴을 이끄는 네지미 카룰은 보호구역 북쪽 약 1,500제곱미터에서 두 번째 점유 단계의 직사각형 건물을 노출시켰다고 밝혔다. 카룰은 공동 건축물과 주거가 함께 있었으므로 이 유적을 여러 용도의 건축이 동시에 쓰인 취락으로 봐야 한다고 정리했다. 인근 사이부르치에서는 초기 신석기 건물 50채 이상이 확인됐고 대부분 주거용이었다.
그러면 괴베클리 테페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좁아진다. 의례가 정착을 낳았다는 순서는 지탱되지 않는다. 지탱되는 것은 농경이 완성되기 전의 집단이 수 톤짜리 돌을 옮겨 세울 조직력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조직력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정착을 유지하는 데 어떤 몫을 했는지는 아직 자료로 가려지지 않았다.
농경으로 넘어간 집단의 유골은 대부분 나쁜 신호를 담고 있다. 21개 사회 중 19개에서 건강 지표가 나빠졌고, 여러 지역에서 농경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성인 신장이 낮아졌다. 이 신호들의 해석에는 골학적 역설이라는 방법론적 제약이 붙지만, 여러 지표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는 점은 남는다. 노동 시간에 관해서는 !쿵족 자료와 알야와라족 자료의 편차가 커서 아직 일반화가 어렵다.
확산을 설명하는 변수는 출생률이다. 곡물 이유식과 정착이 수유 기간을 줄여 출산 간격을 좁혔고, 북반구 묘지 약 100곳의 유년지수는 농경 도착 이후 급격한 출생률 상승을 가리키며, 추정된 증가폭은 여성 한 사람당 합계출산율 2명이다. 개인이 더 못 살게 되면서 집단은 더 빨리 불어나는 조합이 가능하고, 실제로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일단 불어난 인구는 수렵채집으로 되돌아갈 수 없으므로 선택지도 함께 사라진다.
여기서 설명되지 않고 남는 것은 첫 세대다. 인구 증가의 이익은 몇 세대 뒤에 나타나는데 비용은 당대에 치러진다. 괴베클리 테페는 농경 이전 집단의 조직력을 보여 주지만, 최근 발굴에서 주거 건물이 함께 확인되면서 의례가 정착을 이끌었다는 순서는 근거를 잃었다. 시작을 설명하는 일과 확산을 설명하는 일은 서로 다른 과제이며, 지금 확보된 자료는 뒤엣것에 훨씬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