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사료와 유물로 과거를 다시 읽는 긴 호흡의 글
한글은 고립된 발명이 아니다
920년 거란에서 1599년 만주까지 북방 왕조는 나라를 세울 때마다 문자를 만들었다. 1444년 최만리의 상소가 훈민정음을 그 계보에 놓은 기록을 원문으로 확인한다.
창제된 문자의 존폐를 가른 조건
파스파와 데저렛은 국가와 조직의 후원을 받고도 끊겼고, 바이와 은코와 아들람은 후원 없이 살아남았다. 열두 문자의 존폐를 가른 네 가지 조건을 따진다.
창제자가 알려진 문자는 한글뿐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고트 문자에서 아들람까지, 창제자와 창제 연도가 기록으로 확인되는 문자 11가지를 글자 모양과 함께 정리한다.
인류의 기원부터 이른바 4대문명까지 — 최근 연대 자료가 보여주는 여러 곳의 기원
제벨 이르후드부터 얼리터우까지, 최근 30년 사이 바뀐 고고학 연대를 정리하고 단일 기원설과 4대문명 구도가 자료와 어디서 어긋나는지 살핀다.
메소포타미아 홍수층과 흑해 가설 — 홍수 이야기를 특정 사건에 맞추려는 시도가 백 년 동안 연대에서 어긋나 온 과정
우르·키시·슈루팍의 진흙층은 서로 다른 시기의 것이었고, 흑해가 갑자기 잠겼다는 가설은 설명 대상 자체가 어긋난다. 점토판이 그리는 물이 어떤 물인지부터 따진다.
수메르인의 자칭과 수메르어의 재발견 — 이웃이 붙인 이름과 이웃의 언어로 복원된 문명
수메르인은 자신을 수메르인이라 부른 적이 없다. 이름도 해독도 존재 증명도 모두 아카드어를 경유했고, 그 의존 때문에 이 민족의 실재는 40년 넘게 부정당할 수 있었다.
쐐기문자는 회계 장부에서 시작되었다 — 원쐐기문자의 해독 상태와 수메르어 표기 여부 논쟁
인류 최초의 점토판 5천 점은 곡물과 가축과 노동을 적은 장부다. 그 기호들이 어떤 언어를 적었는지는 확정되지 않았고, 이 상태가 수메르사에서 알 수 있는 것의 범위를 정한다.
수메르 도시 국가의 질서 — 국경 중재, 부채 사면, 그리고 법전이라 불리는 문서의 성격
전체를 다스리는 정부가 없는 곳에서 질서를 만든 것은 강제력이 아니라 신의 권위를 빌린 승인이었다. 우르남무 법전과 왕명록이 법령집이나 역사서가 아니라는 연구사를 따라간다.
수메르 도시 국가와 중국 춘추전국의 비교 — 닮은 구조와 다른 기록
두 분열기는 신 앞의 맹세로 구속되는 협정, 실제 권력과 분리된 정통성 발급처, 변방 세력의 통합이라는 구조를 공유한다. 그러나 전쟁 규모와 사상 생산의 대비는 남은 문서의 장르 구성에 의존한다.
누지 문서는 어떻게 족장 이야기의 증거가 되었다가 증거이기를 그쳤는가 — 비교 방법이 무너진 경위
이라크 북부 누지에서 나온 점토판은 40년 동안 창세기 족장 이야기의 시대 배경을 확증하는 자료로 인용되었다. 이 합의를 무너뜨린 것은 새 발굴이 아니라 4000점 가운데 열두 점만 인용되고 있다는 계산이었다.